"내가 고양이와 놀고 있으면서 사실은 그 고양이가 나와 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내가 어찌 알겠는가?"
철학자 몽테뉴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 단어를 쓰고 같은 공간에 있어도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리처드 세넷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대사회에 '너희'와 '우리'를 가르는 부족주의가 팽배해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협력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동물에게 서로 편을 나누는 부족주의는 자연스러운 충동이지만 서로 다른 계급과 종교, 인종이 섞인 오늘날의 복잡 사회에서 부족주의는 자칫 폭력적으로 치달을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세넷은 저서 '투게더'에서 중세 길드부터 현대 기업 구글까지 협력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해왔는지 살펴보고 사회적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세넷은 타인에게 반응하는 것도 하나의 기술(craft)이라며 협력은 단지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적 의무나 이상적 개념이 아니라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필수요소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오늘날 사회의 협력이 원활하지 못한 데는 새로운 자아의 등장이 기인했다고 말한다. 유년 시절에 불평등이 심해지고 사회적 권위와 신뢰가 약해지면서 '움츠러드는' 인성을 가진 '비협동적 자아'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그는 개시한 지 1년 만에 서비스를 폐쇄했던 '구글 웨이브' 사례를 들어 자기 말만 하는 '귀머거리 대화'가 어떤 실패를 가져오는지 보여준다. 구글 웨이브는 이메일, 메신저, 블로그, 트위터 등을 합친 커뮤니케이션 통합 프로그램으로 2009년 공개됐지만 1년 만에 실패를 선언했던 서비스다. 구글 웨이브의 목표는 다양한 생각과 조언이 모니터에 명료하고 선명하게 나타나도록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것만으로는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그 프로그램이 '정보 공유'를 '소통'이라고 착각한 게 가장 큰 실패 요인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반면 그는 성공적인 공동체 조직 사례로 사회운동가 솔 앨린스키를 꼽았다. 앨린스키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지 않았다. 단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잡담을 나누게 한 것뿐이었다. 이때 남 앞에 잘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발언하도록 격려했고 자신은 중립적인 태도를 지키되 요청이 있으면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이런 방식은 젊은 추종자들을 끌어당겼는데 그들 중에는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이 있었다.
김홍중(사회학) 서울대 교수는 “세넷은 고전적 연대 개념과 구분되는 21세기적 협력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며 “그것은 타자에 대한 단순한 공감이 아니라, 거리를 둔, 지성적인 감정이입에 기초하며, 타자들과의 동일성이 아닌 차이의 조절과 이해에 기초하고, 변증법적 지양이 아니라 대화법을 통한 소통에 기초하며, 정치적 좌파가 아닌 사회적 좌파의 논리에 기초한다”고 설명했다.
투게더 |
대립의 시대, 통합이 아니라 ‘협력’이 필요하다
구글웨이브 1년만에 폐쇄된 이유는
경쟁과 불통에 갇힌 시대 상대를 인정하고 협력하라
신자유주의가 만든 불평등 사회를 극복할 열쇠 ‘협력’을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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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음 질문에 답해보자. ‘인터넷이 당신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바꾸어놓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우선 두 가지 단어에 대해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우선 ‘인터넷’에 대한 보다 엄밀한 용어정리와 ‘사고(思考)’에 대한 개념 정의(定義)가 선행돼야 한다. 또 이 질문에서 유념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닌 ‘당신’이란 용어다. 즉 답변을 해야 하는 입장에선 ‘인터넷이 ‘나’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바꿔놓았나’란 질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책은, 세계의 석학 150명이 이 같은 질문에 답한 내용을 모아놓은 것이다. 각 방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지식인들이 자신에게 끼친 인터넷의 영향을 털어놓다니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답변자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 ‘빈 서판’의 스티븐 핑커, ‘다중지능’의 하워드 가드너, ‘몰입의 즐거움’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광자의 춤’의 안톤 자일링거, 위키피디아 창업자 래리 싱어…. 그야말로 각 분야를 선도하는 세계적 지성들이다.
이들은 모두 ‘엣지(Edge) 재단’의 회원들이다. ‘엣지 재단’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하는 지식 살롱’쯤 된다. 물론 회합은 인터넷상에서 이뤄진다. 존 브록만 ‘엣지’ 발행인은 “인터넷에서 중요한 것은 컴퓨터도 인간도 아니다”며 “인터넷의 요체는 바로 사고(thinking)”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이 질문을 150명의 석학들에게 던진 것이다.
물리학자이자 컴퓨터공학자인 W 대니얼 힐리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과 웹의 차이를 혼동한다”며 “네트워크를 통해 가능해진 서비스와 네트워크 자체를 혼동하는 것은 있을 법한 실수”라고 말한다. 예컨대 초창기 전기 소비자는 자신이 전등을 산다고 믿었다. 전기가 처음 응용된 전등의 인상이 워낙 강렬해서 전기가 가져다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인터넷은 ‘상호 연결된 컴퓨터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뜻한다. 인터넷을 통해 웹 등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컴퓨터 화면을 맞대고 있을 때만 인터넷을 사용한다고 믿지만 실제로 전화 통화나 텔레비전 시청, 심지어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때에도 인터넷을 사용한다. 무슨 말이냐고?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 전화 통화를 해도 어떤 날은 아날로그 회선으로, 또 어떤 날은 인터넷을 사용할 수도 있다.
비행기 항로나 결항 여부, 공항의 상태 등도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시스템을 완벽하게 작동하기가 불가능하다. 대니얼 힐리스는 “인터넷은 복잡한 시스템들이 서로 적응하며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우리의 의사결정 방식도 바꿔 놓았다”며 “인간과 기계가 어우러져 복잡하게 ‘얽힌’ 네트워트가 그 주역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스티븐 핑커는 이 같은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핑커는 “나는 인터넷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어놓고 있다는 일반적인 주장에 갸웃할 수밖에 없다”며 “전자 매체가 두뇌의 정보 처리 메커니즘을 뒤바꾸어놓을 리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이어 “인터넷 발전에서 가장 흥미로운 추세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어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고방식에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10여 년 전 월드와이드웹의 등장과 함께 인터넷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달라지고 그래픽 브라우저가 마련된 덕분”이라고 말한다.
매우 극단적이며 상반된 답변들도 눈에 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저자 니콜라스 카는 “인터넷이 집중하고 사유하는 능력을 갉아먹고 있는 듯하다. 내 정신은 이제 인터넷이 떠먹여주는 대로 정보를 받아들이려 한다. 눈 깜짝 할 새에 지나가는 정보의 급류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라며 한탄한다. 이에 대해 래리 싱어는 “그건 당신 생각이고”라며 콧방귀를 뀐다. 싱어는 “우리는 여전히 자유의지를 품고 있어, 집중하고 사유하고, 그 사유의 결과에 따라 행동할 능력이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어떤가. 당신의 생각은?
우리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
인터넷이 당신의 생각을 조종한다?
소셜미디어시대 `달라진` 생각들
인터넷 세상, 생각의 변화는? 세계 석학들의 경고와 전망
소셜미디어시대 `달라진`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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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 레저(1979∼2008)를 기억하며.’
아아, 다 필요 없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등장하는 헌사. 이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차고 넘친다. 21세기 제임스 딘 반열에 오른 레저에게 바친다는데, 그럼 됐다. 서평 끝.
안타깝다. 이러쿵저러쿵은 여기서 멈춰야 한다. 진심으로 말씀드리니, 이 소개 글은 더 읽을 필요 없다. 배트맨을 좋아한다면 조커가 그립다면, 여기서 멈추고 책을 보시라. 하긴 배트맨은 개뿔, 슈퍼맨도 지겹다 하는 분도 있겠다. 그럼 이 책, 눈길도 주지 마시라.
이미 눈치 챘겠지만, ‘배트맨과 철학’은 전공서적이다. 배트맨대학 덕후(일본어 오타쿠·은둔형 외톨이에서 유래된 말)학과 학부생쯤은 돼야 읽는 맛이 제대로다. 영화 한두 편 봤거나 옛 TV 만화의 아련한 추억 정도론 접근이 상당히 난해하다. 물론 누구라도 책을 씹어 먹는 게 불가능하진 않다(번역을 고교생들이 했다. 우리도 한글은 읽지 않나!). 하지만 영화는 물론이고 국내에 들어온 배트맨 그래픽노블 정도는 다 독파해야 고개가 끄덕여지는 사례가 가득하다. 삼킬 순 있으나 목구멍에 자주 걸릴 것이라는 얘기다.
한마디로 ‘배트맨과 철학’은 평소 배트맨 애독(청)자들이 가졌던 철학적 혼란에 대한 의문을 해소시켜 주는 책이다. 배트맨은 왜 그렇게 당하고도 끝끝내 악당들을 살려둘까(영화에선 잘 죽인다). 갑부인 브루스 웨인이 뭐가 아쉬워서 불법 자경단이 되어 밤거리를 배회할까. 허구한 날 정체성에 회의를 느끼면서 결국엔 다시 쫄쫄이를 입는 이유가 뭘까. 친절하게도 미국에서 나름 일가를 이룬 철학 종교학 윤리학(심지어 물리학까지) 교수와 박사들이 이런 궁금증을 학문적으로 접근한다.
배트맨은 어릴 적 상처를 박쥐에 투영시켜 존재 방식을 찾는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더라도. 동아일보DB
잠깐 고급스러운 척하자. 배트맨은 명백히 대중문화 상품이지만, 중층적인 해석을 가능케 하는 심도 깊은 텍스트다. 실례, 뱉고 나니 감당이 안 된다. 그냥 얜 좀 다르다. 거미에 물린 적도 없고, 친부모가 하늘을 나는 외계인도 아니다. 엄청난 재산과 뼈를 깎는 육체적 단련을 빼면 평범한 장삼이사(張三李四)다.
‘똘끼’는 충만하다. 어린 시절 눈앞에서 부모가 목숨을 잃은 뒤 눈이 뒤집혔다. 초등학생쯤 되는 애가 복수도 아니고, 평생 악과 싸우기로 결심한다. 그러곤 영웅도 범죄자도 아닌 ‘다크 나이트(Dark Knight·어둠의 기사)’로 산다. 분명 나쁜 놈 같진 않은데, 애들한테 “본받으라”고 권하긴 머뭇거려진다. 만화나 영화가 나올 때마다 끊임없이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도 이런 모호한 경계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배트맨과 철학’이 명쾌한 해답을 주리라 기대하진 말자. 알잖은가. 철학이 언제 우리 등을 시원하게 긁어준 적이 있던가. 그래도 이 책은 좋은 의미에서 꽤나 편향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비트겐슈타인까지 어질어질한 철학이 수북하지만, 결론은 배트맨이 몇 가지 결점은 있을지언정 옹호 가능한 캐릭터라고 쓰윽 손을 들어준다. 안쓰럽긴 해도 악플 달릴 정도는 아니란 거다. 하긴, 배트맨도 슈퍼맨처럼 ‘우리의 친구’ 아닌가.
다만 이 책은 사공이 너무 많다. 저자가 너무 많다 보니 꼭지마다 문장의 편차가 너무 심하다. 가벼웠다 무거웠다 쉬웠다 어려웠다 하는데 전혀 리드미컬하지 않다. 이는 결코 고등학생 4명이 번역을 나눠 맡았기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원문은 보지 않았지만, 웬만한 번역가보다 훨씬 애쓴 티가 난다. 감수자 말대로 ‘미덕적’ 같은 부자연스러운 대목도 있지만, 왜 그걸 살렸는지도 수긍이 간다. 하나 더, 돈 좀 들더라도 영화 스틸 컷이나 관련 만화를 군데군데 넣어 줬더라면. 그리 정색 안 해도 철학책인 줄 다 아는데. 냉소 어린 히스 레저 얼굴이 보고팠건만. 어찌 그리 야박하누.
배트맨과 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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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는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고향(개성)에 대한 그리움을 맛에 빗댔다. 싱아는 봉숭아만 한 야생초다. 4~5월에 줄기의 속살을 먹었다. 박완서는 또 "나를 키운 것은 할머니 이야기들"이라고 했다.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가 '가시 속에 든 오돌오돌한 밤알'이자 '게딱지 안에 있는 맛있는 살'이었다"는 것이다.
기억은 새겨진다. 입에 어릿대고 눈에 삼삼하고 귀에 자욱하다. 한국의 대표적 민속학자가 쓴 '이젠 없는 것들'은 발갛게 화로 안을 들여다보셨던 할머니 할아버지와 재회하는 기분이다. 잠든 추억을 깨우는데 아득하고 헛헛하다. 책장을 넘기며 "없다"라고 몇 번 중얼거리게 된다. 고샅이 없고 아궁이가 없고 화로가 없다. 세월이 더 흐르면 남은 기억마저 문드러질 것이다. 그래서 반가운 책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 '고샅'이라고 하면 모양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고샅은 농촌 마을 안의 좁다란 골목길이다. "작달막한 담들을 끼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이웃해 있는 골목, 굽이져 돌아가는 그 창자 같은 길을 고샅이라 부르면서 정 들여왔다"고 저자는 썼다. 토담 너머로 음식 사발이 오갔고, 꼬맹이들에게 고샅은 놀이터였다. 하지만 이젠 기울고 없다.
구멍가게는 또 어떤가. 들고 날 때 구멍 드나들 듯 등을 굽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일까. 상품이라곤 보잘것없는 가게지만 아이들에겐 백화점과 같았다. 옛사람은 사립문을 늘 비스듬히 열어 두었지만 우리는 디지털 도어록으로 꼭꼭 걸어 잠근다. 두레박으로 이야기를 길어올리던 우물도 메워졌고, 돌아오지 않을 나그네처럼 주막도 사라졌다.
이 땅의 사시사철은 구들장을 따라서 들고 나고 했다. 군불을 지피는 아궁이에 이어진 방바닥 아래 불길은 '고래'라고 불렀다. 고래를 덮은 납작하고 작은 돌판은 구들장, 거기에 흙을 덮어 평평하게 바른 방바닥은 구들바닥이라 일러왔다. 식솔들은 뜨끈한 아랫목에 모여 피붙이 정을 다졌지만 아파트에 살면서 아랫목도 잃어버렸다.
지난날 막걸리는 집에서 담갔다. 우선 쪄낸 쌀을 독에 담는다. 누룩을 끼얹어서는 고루 저어 섞는다. 그리고 알맞게 물을 부으면 일단 술이 앉혀진다. 익기 시작하면 보글보글 거품을 내며 끓는다. 술 익는 향내가 방 안에 번진다. 아이들은 막걸리를 거르고 남은 재강(술찌끼)에 설탕을 타 야금야금 먹었다. 달달하고 얼큰했다.
식사 뒤에는 커피나 차 따위가 아니라 숭늉을 마셨다. 옛날 숭늉은 누룽지 숭늉이었다. '눌은밥'이라고도 하는 누룽지는 솥 바닥에 붙은 밥이다. 누르스름해서 보기부터 구수했다. 이제 전기밥솥에는 누룽지가 눌어붙지 않는다.
어머니는 아이의 앞니를 지붕에 던지며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라고 소원을 빌었다. 쓸모없는 헌 이를 받아가는 보답으로 까치가 새 이를 물어다 준다고 믿었다. 음력으로 12월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은 어른에게는 '묵은세배' 하는 날이고 아이에겐 '까치까치 설날'이었다. 요즘엔 아무도 챙기지 않는 명절이다. 까치에게 빌 것도 없어진 것이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시 '향수')라고 정지용은 노래했다. 고향에 부치는 그리움이 어려 있다. 화로에 둘러앉아 언 몸을 녹이고 떡이나 밤을 구워먹고 나누던 이야기도 그립다.
다듬이 소리가 들리고 물레방아가 돌고 콩 볶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책이다. 장가는 '들고' 시집은 '간다'고 해야 타당하다는 이야기도 구수하다. 장가는 '장인·장모의 집'을 뜻하는 장가(丈家)로 쓸 수 있다는 추측, 신랑이 처가에 들어가 혼례를 올리고 신부를 데려오는 절차 때문이다.
저자 김열규(81)는 국문학과 민속학을 기둥 삼아 한국학을 세운 학자다. 퇴직하고 1991년 경남 고성의 바닷가 마을로 내려갔다. 앞에는 남해가 보이고 뒤로는 산이 품어주는 작은 양옥집에 산다. 정원에는 매화와 풍년화, 동백꽃이 한창이다.
낙향하고 나서 그는 60권의 책을 냈다. 은퇴란 말이 무색하다. 저자는 전화 통화에서 "산업화 근대화 도시화로 오늘날 우리 대부분은 뿌리 잘린 나무처럼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한번 돌아보게 하자는 생각으로 이번 책을 썼다"는 것이다.
정경과 이야기가 끈끈하게 과거와 나를 이어준다. 욕심과 속도로 체한 배를 '할머니 약손'처럼 문질러주는 것 같다. 섬세하고 넉넉한 표정을 지닌 글에 비해 사진이 밋밋하고 무뚝뚝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리움으로 걷는 옛길'처럼 기억 속으로 침잠할 수 있다.
이젠 없는 것들 1 |
이젠 없는 것들 2 |
고샅길… 다듬이…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는 130여 가지 추억
그 많던 고샅·고래·재강은 어디로 갔을까
한국문화를 연구한 노학자의 ‘사라진 것들’에 대한 에세이
`이젠 없는 것들` 펴낸 김열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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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왕비가 수라를 드는 동안 그날의 번인 궁녀 3명이 일렬횡대로 엎드린 채 지켜봤다. 왕이 물린 음식은 궁녀들이 먹었다. 물론 퇴선간(退膳間·궁중의 중간 부엌)에서 '재활용'될 때도 위계(位階)가 있었다. 처음에는 지밀상궁(큰방상궁)을 중심으로 예순 이상 선참 상궁들이 상머리에 둘러앉았다. 다음에는 50대에서 40대, 그다음은 30대, 마지막엔 젊은 나인과 10대 생각시 순서로 먹었다.
세수간(洗手間) 나인은 아침저녁으로 왕과 왕비의 세숫물, 목욕물을 대령했다. 옻칠한 함지에 더운물을 담고 작은 대야를 한데 받쳐 올렸다. 왕이 대소변을 봐야 할 땐 잡일을 맡던 복이처(僕伊處)의 나인이 매우틀(梅雨틀·이동식 변기)에 여물을 잘게 썬 매추라는 것을 뿌려 가져왔다. 왕이 일을 마치면 명주로 뒤처리한 뒤 매추를 뿌리고 덮어서 갖고 나갔다.
궁녀도 봉급을 받았다. 관리와 아전, 관노가 온갖 물건을 수레에 잔뜩 싣고 나타난다. "먼저 김혜순 상궁 앞으로 나오시오." "알겠소." "중미(중등품 쌀) 2되 5홉, 감장(단간장) 4홉, 청장(진하지 않은 장) 1홉 6작을 지급하도록 하게." 한 되는 한 말의 10분의 1, 한 홉의 10배(약 1.8리터)에 해당한다. 작(勺)은 한 홉의 10분의 1이다. 구한말에 돈으로 월봉을 받은 기록을 보면 가장 높은 지밀상궁의 보수는 196원, 요즘 화폐가치로 약 200만원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부터 궁녀가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백제가 망할 때 궁녀들이 낙화암에서 몸을 던졌다는 기록이 나온다. 하지만 저자는 "의자왕 삼천 궁녀 설은 중국을 본뜬 과장일 뿐, 일부에 할거한 백제가 그 정도 수의 궁녀를 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고 썼다. 조선시대 민간에서는 딸을 궁녀로 들여보내는 것을 기피했다. 궁녀가 되는 10세 안팎의 소녀는 매우 가난하거나 특이한 사연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10년마다 정기적으로 궁녀를 선발했고 공백이 생기면 수시 충원도 했다. 조상 중에 죄지은 자가 없을 것, 조상이나 가까운 친척 가운데 중병을 앓은 자가 없을 것 등이 자격 요건이었다. 처녀만 궁녀가 될 수 있었고 비과학적 '처녀 감별'이 행해졌다. 의녀가 앵무새 피를 소녀 팔뚝에 떨어뜨려 피가 묻으면 처녀, 안 묻고 흘러내리면 처녀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궁녀의 은밀한 스캔들까지 담은 이 책은 희소성 있는 역사 교양서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인 저자는 비주류의 삶에 집중해왔다. "기존 한국사는 왕과 권신이 중심인 권력자의 기록이고, 그런 사료의 숲 안에서 아웃사이더가 걸어간 오솔길의 흔적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고 그는 적었다. 넓은 그물코로는 길어올릴 수 없는 이야기다.
궁녀의 하루 |
쌀·간장 받고 일하던 조선의 궁녀, 구한말에는 '연봉 2400(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했을 때)'
조선시대 궁녀는 가난하다? 노비는 까막눈? 사실은…
양반 부럽지 않은 궁녀·고위직 지낸 노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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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방송된 KBS 드라마 '추노'는 조선시대를 새로운 눈으로 재해석한 팩션형 드라마다. 훈련원 판관으로 소현세자의 측근이던 태하(오지호 분)는 세자의 죽음과 함께 노비로 추락했다가 기회를 틈타 도주한다. 이야기는 추노꾼인 대길(장혁 분)이 거액의 약속을 받고 그를 잡으러 떠나고, 얼마 안가 이 둘이 친구가 되면서 시작된다. 대길이 태하를 애증 섞인 말투로 "어이! 노비"라고 부를 때, 태하는 이렇게 답한다. "세상에 매어 있는 것들은 다 노비야."
<왕의 여자> <한국사 인물통찰> <조선을 바꾼 반전의 역사> 등을 집필해온 저자는 신간 <조선 노비들>에서 태하의 이 말이 조선시대 "노비의 본질"(23쪽)을 보여주는 말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전체 인구에서 최소 30퍼센트 이상이 노비 신분"이었으며 "노비가 그 시대의 일반인이었다"(7쪽)라고 소개한다. 스스로 생계를 해결한 양인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자영업자에 가깝다면, 노비는 고용 노동자에 가깝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고로 노비를 알아야, 조선시대를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의 노동자가 다종다양하듯, 노비 역시 마찬가지다. 단, 태하의 말처럼, 노비는 주인에게 매어있다. 주인과 노비 관계는 고용주와 노동자의 관계처럼 (이론상으로나마)동등하지 않고 '하늘과 땅'만큼이나 격차가 났다는 것, 이 신분이 아버지에서 자식으로 이어졌다는 것 등이 다른 점이다. 책은 조선시대 노비 열여덟 명의 삶을 소개하고 노비의 개념, 기원, 결혼, 사회적 지위, 재산 등 제도를 친절하게 소개한다.
노비는 크게 세가지 경로를 통해 '공급'됐다. 전쟁에서 붙잡힌 포로, 중범죄를 지은 죄인,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가 그 대상이었다. 중국과 달리 조선에서는 한번 노비가 되면 신분은 대를 이어가며 지속됐다. 대개 주인집에 공물을 바치거나 부역을 했는데, 주인과 함께 살며 이 의무를 수행한 노비를 솔거노비, 따로 살며 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노비를 외거노비라 불렀다. 관청에 속한 관노비, 개인이 주인인 사노비로 나뉜다.
드물지만, 학문이 깊어 선비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노비 박인수, 재산으로 한성 최고의 기생 '성산월'을 차지한 이름 모를 공노비 같은 사례도 있었다. 이를 통해 공물을 주인에게 바치거나 부역하면, 노비도 공부할 수 있고, 사유재산을 가질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일부 노비들 중에는 재산을 축적하여 부자의 반열에 올라선 이들이 있었다. 조선 태종 대에 의흥삼군부의 좌군에 속한 공노비였던 불정은 실록에 기록될 정도로 '부자 노비'였다.
반석평은 그 총기를 알아본 그의 주인이 후대가 없는 부잣집에 양자를 들여보냈다. 오늘날 장관급에 해당하는 정2품 지중추부사까지 지낸 반석평은 훗날 자신의 신분을 조정에 밝혔지만, 공직이 박탈되지 않고 그의 주인이 공직에 천거된 행운까지 쥐었다. 노비가 재산으로 기생은 살 수 있어도 과거시험을 볼 수는 없었던 셈이다. 노비와 달리 주인과 계약에 의해 일정기간 노동력을 파는 '머슴'의 경우 과거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운 좋은 사례도 있지만, 노비의 본질은 주인에게 구속돼있다는 점이다. 사노비의 경우 주인의 재산으로 간주돼 기본적 인간대접을 받지 못한 경우도 허다했다. <조선왕조실록> <어유야담> 등에 실린 투기심하고 엽기적인 주인에게 손가락이 잘린 여종, 술주정하다 주인에게 맞아 죽은 노비 등은 이 시대 노비의 삶이 얼마나 비천한가를 보여준다.
저자는 이렇게 다양한 노비들의 삶과 제도를 복원하며 조선시대 또다른 면모를 들려준다. 풍부와 사료에 저자의 찰진 입담이 더해져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선 노비들, 천하지만 특별한 |
노비는 불평등 고용 노동자, 비천했지만 인생역전도 있었다
양반 부럽지 않은 궁녀·고위직 지낸 노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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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인사철마다 이따금 등장하는 단골 이슈는 우리나라 정치 엘리트들의 농지 불법 취득 의혹이다. 1949년 6월21일 제정된 대한민국 ‘농지개혁법’은 농사를 짓는 자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경자유기전’(耕者有其田)의 원칙을 확립한 것이기에, 권력을 쥔 자들이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사기 위해 시골로 주소지를 옮겼다가 다시 서울로 되돌아오는 관행은 그 자체로 농지법과 주민등록법을 위반한 것이 된다. 이 법을 통해 단군 이래 수천년 동안 이어진 소작제를 철폐하고, 토지개혁을 시행한 인물이 바로 ‘비운의 정치인’ 죽산 조봉암(1898~ 1959)이다.
조봉암은 <약산 김원봉>(2005년)과 <김산 평전>(2006년)을 통해 잊혀진 혁명가들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은 작가 이원규씨가 도달한 또하나의 큰 산이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죽산을 “평화와 정의의 씨를 뿌리고 간 순교자”라고 부르며 “마지막 평전으로 죽산을 쓸 것이라 다짐했었고, 더 이상 책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모든 힘을 여기 쏟았”다고 밝히고 있다. 결기 어린 그의 말처럼 책 뒤편에 붙은 10쪽이 넘는 참고자료 목록과 죽산의 주변인들의 인터뷰 기록을 보면, 저자가 책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죽산이었을까. 그가 처음 다룬 김원봉은 약관의 나이에 의열단을 이끌며 빛나는 항일 경력을 쌓았음에도 해방과 분단, 전쟁으로 이어지는 비극 속에서 잊혀진 인물이 되어 버렸고, 김산은 님 웨일스의 <아리랑>을 통해 하나의 완성된 신화로 남았으나 중국 대륙이라는 커다란 바닷속에서 형체를 알아 보기 어렵게 녹아버리고 말았다. 이에 견줘 죽산은 권력욕에 눈이 먼 이승만에게 ‘사법 살인’을 당하지만, 그가 뿌리 내린 농지법의 정신은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관철되고 있으며, 그가 주장한 평화통일론과 사회민주주의는 이제 한국 사회의 주류 담론의 지위에 올라서 있다. 조봉암은 죽음으로써 자신의 삶을 완성해 냈기에 앞의 김원봉이나 김산의 죽음에서 묻어나는 허무함이나 무참함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훨씬 덜하다. 그래서 조봉암은 앞서 두개의 비극을 다루고 난 저자가 도달할 수밖에 없었던 자연스런 귀착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은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서 알 수 있듯 조봉암의 출생에서부터, 한 사람의 공산주의자로 성장해 가는 청년기의 궤적, 그리고 모스크바-만주-상하이를 오갔던 항일 경력, 해방 이후 공산주의와 결별한 뒤 거물 정치인으로 떠오르는 과정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전문 연구자가 아니면 쉽게 이해하기 힘든 상하이파-이르쿠츠크파로 나뉘었던 조선공산당(조공)의 파벌 투쟁이나, 1·2·3차에 이르는 조공의 결성과 궤멸, 해방 이후 혼란스런 정치 격변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는 이 책을 전문 연구자들의 난해한 논문과 구별 짓는 가장 큰 장점이다.
책의 백미는 후손들이 추억하는 조봉암의 인간적인 면모이다. 조봉암은 언변이 뛰어나고 조직 장악력이 강해 토론 모임에서 늘 중심을 잡았고, 큰딸과 영화 구경 가는 것을 좋아해 슬픈 영화를 보며 자주 눈물짓기도 했다. 여기서 자세히 언급하긴 곤란하지만, 간단치 않았던 그의 여성 편력과 그것이 이후 정치 역정에 드리운 그늘을 엿보는 것도 흥미롭다.
젊은 시절 조봉암은 철저한 공산주의자였고, 상하이 시절 저지른 ‘실수’로 인해 공산당 주류로부터 배척당한 뒤 전향을 선언하고 사회민주주의자가 됐다. 그래서 1956년 대선 때 30%의 득표율(개표 과정에서 일어난 부정을 고려한다면 실제 득표율은 더 높았을 것이다)을 기록할 수 있었다. 이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어떤 진보정당도 넘지 못한 ‘넘사벽’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가 이념의 순결을 지켜 공산주의자로 남았다면, 야심이 없는 담백한 인물이었다면, 그가 한국 사회에서 누리고 있는 지금과 같은 독특한 지위는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적잖은 잘못, 실책, 판단 착오를 저지른 인물이었고, 결국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지은이는 조봉암을 통해 다른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것은 그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이 ‘아이러니’의 비릿함이다.
조봉암평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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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바이러스와 공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세계적인 과학칼럼니스트 칼 짐머가 쓴 ‘바이러스 행성(A Planet of Viruses)’은 일종의 바이러스 ‘역설’을 풀이한 책이다.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해롭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바이러스가 없다면 인간과 지구도 존재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지구상 어느 곳도 바이러스가 없는 장소는 없다. 바이러스는 지구 생태계의 진화와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새로운 물질을 제공한다.
저자는 “인간은 100가지가 넘는 HPV(인유두종 바이러스) 균주의 숙주이며, HPV는 끊임없이 새로운 돌연변이를 습득하고 서로 유전자를 교환한다. 백신이 가장 성공한 두 균주를 박멸한다면, 자연선택을 통해 다른 균주들이 그들을 대신할지도 모른다. 토끼를 재컬로프(신화속 동물)로, 사람을 나무로 변신시킬 수 있는 바이러스의 진화적 창의성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했다.
인류는 바이러스를 잘못 이해함으로써 질병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감기(주로 바이러스 감염)에 널리 쓰이는 치료법은 항생제다. 세균에만 듣고 바이러스에는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음에도 말이다. 때로 의사들은 환자가 감기에 걸렸는지 세균에 감염되었는지 모른 채 항생제를 처방한다. 걱정하는 부모로부터 뭐라도 해달라는 압력 때문에 항생제를 처방하곤 한다. 항생제를 과잉 처방하다간 환자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항생제는 내성을 띤 세균이 진화하도록 자극하기 때문이다. 어설픈 의사는 사실상 다른 질병에 걸릴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1950년대엔 AIDS(후천성면역결핍증)로 불리는 무서운 병을 옮기는 HIV 바이러스가 침팬지에게서 인간에게 전파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30년 뒤에 그 바이러스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살인자가 되었다.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살인적인 바이러스가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생명의 유전적 다양성은 대부분 바이러스 유전자에 들어 있다. 그들은 새로운 형질을 탄생시키곤 한다.
그러나 평생 사는 동안 마시는 산소의 상당 부분을 생산하는 데 바이러스가 없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까. 바이러스는 지구의 기온을 조절하는 데에도 절대 필요한 존재다. 현재 우리 인간의 유전자에는 먼 조상 때 감염된 수천 종류의 바이러스에서 온 유전물질도 들어 있다. 이 지구는 바이러스의 행성과 다름없다는 의미다.
미국 라이스대학교가 만든 바이러스의 DNA를 감싸고 있는 단백질 껍질(shell)의 화려한 이미지. 이 껍질을 깨고 내부를 분석하면 바이러스 생명력의 비밀을 알아내 바이러스를 이로운 약물 운반체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인간이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는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바이러스는 때로 인간의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치명적이지만,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공기를 만들어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것. 저자는 책에서 ▲바이러스가 어떻게 우리의 삶과 생물권을 휘젓고 있는지 ▲최초의 생명이 출현할 때 바이러스가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바이러스가 어떻게 새로운 질병을 만들어내는지 ▲우리가 어떻게 해야 우리의 목적에 맞게 바이러스를 다스릴 수 있는지 ▲바이러스가 미래에 우리의 운명을 어떻게 좌우할지에 관한 최신 연구결과들을 소개한다.
바이러스 행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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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인기를 끌면서 많은 기업들이 모바일 마케팅 차원에서 주목하는 기법 중 하나가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다. 이 기법은 비디오 게임의 특성을 활용해 이용자의 체험을 유도하고 관심을 높이는 것이다. SNS인 포스퀘어는 관광지나 레스토랑 등 특정 장소를 먼저 이용하는 사람에게 일종의 훈장같은 배지를 부여하고 점수를 쌓을 수 있게 한다. 이용자에게 미션을 부여해 성취를 통한 심리적 즐거움을 주고 단계별로 적절한 보상을 줌으로써 적극적인 구매와 참여를 유도하는 대표적인 모바일 마케팅 사례다.
《마케팅 키워드 101》은 게이미피케이션과 같은 최신 트렌드부터 일반 경영이론에 이르기까지 마케팅 전반을 101개 키워드로 정리한 경영지침서다. 고려대 경영대 마케팅 전공 교수인 저자는 마케팅 이론과 개념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각 키워드를 최근 이슈화됐거나 관심을 모은 사례를 들어가며 간략하면서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또 마케팅 부서 담당자나 소규모 점포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지침까지 제시한다. 게이미피케이션을 마케팅에 도입할 경우 전통적인 광고에서 즐겨 사용하는 스토리텔링 기법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흥미로운 얘깃거리로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게임 형식으로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면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노베이터와 얼리어댑터를 구별해 설명한 부분도 흥미롭다. 이노베이터는 신제품 출시 시점부터 구매하는 시기로 따졌을 때 2.5% 안에 드는 소비자, 얼리어댑터는 2.5% 이후 16% 이내에 드는 소비자다. 이노베이터는 열광적으로 빨리 구매하지만 입소문에는 인색하고 얼리어댑터는 일반 소비자보다 일찍 구매하면서 이용 경험을 알리는 데 적극적이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는 이노베이터보다 얼리어댑터가 더 가치가 높은 고객이라는 설명이다.
이 책은 저자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3분 라디오 MBA’란 제목으로 진행한 130여편의 방송 콘텐츠를 재구성한 것이다. 힐링, 꽃중년, 체리 피커(혜택만 빼먹는 얌체 고객) 등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시사용어부터 시장 분석과 기업경영 전략, 브랜드 관리, 소비자 심리와 고객 관리, 시장조사와 타깃 설정, 가격 결정, 광고와 프로모션, 유통·서비스업에 이르는 방대한 콘텐츠를 담고 있다.
총 8장으로 이뤄진 이 책은 마케팅 전반을 체계적으로 다룬 이론서는 아니지만 장별로 키워드를 중심으로 짜임새있게 구성돼 있어 해당 부문이나 산업에 대한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6장에서는 준거가격과 세트메뉴 가격, 가격 할인, 미끼 상품, 무한 리필, 쿠폰, 리베이트 등의 키워드를 엮어 가격을 결정하는 여러 가지 요인과 이를 마케팅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유기적으로 설명한다. 유통·서비스업과 관련된 키워드를 묶은 마지막 장에서는 PB(유통업체 자체 상표)와 카테고리 킬러, 회원제 창고형 클럽, 드러그스토어 등을 통해 국내 유통업계의 최신 트렌드를 소개하고 있다.
마케팅 키워드 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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