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역설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 세상에서는 모든 게 거꾸로다. 미덕은 악덕이고, 신중함은 어리석음이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소비를 줄이고 빚부터 갚으라는 처방은 지금의 병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여기서 크루그먼이 말하는 '역설의 세상'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완전히 딴 세상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세상이 뒤바뀌었는지, 왜 거꾸로 되었는지는 이제 그만 물으라"는 게 크루그먼의 주문이다. 원인이나 배경이 무엇이든 당장 절실한 건 상황을 인식하고 처방을 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특히 모든 게 뒤바뀐 세상, 거꾸로인 세상에서는 전통적이거나 교과서적 해법이 아니라 전혀 다른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얼마나 심각한가 하는 진단이 필요하다. 크루그먼은 "미국 경제는 대공황 때와 매우 흡사한 대침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업률이 그 당시처럼 20%를 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업자 수가 2007년 680만명에서 2011년 12월 1300만명으로 배 가까이나 늘었다. 인간의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요소가 바로 고용이다. 비자발적 실직이 길어지면 유능한 사람도 '무능한' 사람으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장기 실업자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감에 입은 상처가 깊은 것이다. 크루그먼은 책 맨 앞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마땅한 실업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크루그먼의 결론은 '일자리 가뭄'이 재정 적자보다 훨씬 큰 문제라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이 15조달러를 넘는 미국 경제가 '겨우' 1조달러 정도의 적자를 겁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5년을 넘어선 불황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달러를 '폭발적'으로 찍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도 돈이 넘쳐나는데 돈을 더 풀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그는 "현재의 불황은 침체 정도가 너무 심각해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단언한다.
그럼 요즘 같은 상황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빚부터 갚아야 한다는 전통적·교과서적 긴축 처방은 힘을 잃고 만 것인가? 크루그먼이 긴축 신봉자들이라고 비판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알베르토 알레시나(하버드대), 라구람 라잔(시카고대) 등은 잘못된 처방으로 비판받아 마땅한가? 1997년 말 외환 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의 긴축 처방을 받아 살아난 우리나라가 별종인가?
이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일본에서 찾아보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크루그먼의 충실한 제자인 셈이다. 크루그먼이 처방한 대로 돈을 많이 풀고 그에 따라 엔화 가치가 급락하는 가운데 주가가 급등하고 주요 기업의 수출이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아베노믹스다. 그러나 일본 경제가 근본적으로 회복되려면 기업의 구조조정과 경쟁력 향상, 새 성장 동력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 견해이다. 풀린 돈이 단기적 진통제 노릇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 처방은 아니라는 것이다.
달러 역시 더 찍어내면 사회적 통증을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가장 안전한 통화로 인정받고 있을 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통용되는 기축통화이자 단일 수출품목으로 미국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게 달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 나라 경제의 경쟁력은 돈이 아니라 기업 경쟁력에 달려 있고 그 바탕 위에서 전통적·교과서적 긴축 처방전을 찾게 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 |
보수 경제학자! 당신들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야
돈 찍어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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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한방에 보낼 수 있다
경기가 돌아오지 않은 진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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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배우 리처드 버턴과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963년 영화 '클레오파트라'를 함께 찍다가 사랑에 빠졌다.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도 2005년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에 부부로 출연했다가 실제 연인이 되었다.
미국 심리학자 로버트 엡스타인은 배우들이 영화를 찍다가 사랑에 빠지는 일이 왜 일어나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실험에 참가한 생면부지의 남녀를 짝 지우고 박자에 맞춰 함께 호흡을 하거나, 연인처럼 서로 눈을 오래 응시하게 했다. 몸이 닿지 않은 상태로 최대한 가까이 붙어 있게도 했다. 실험 후, 참가자 대부분이 상대방에 대해 친밀감을 느꼈다고 했다. 일부 남녀는 그 사이 시키지도 않은 키스까지 진도가 나갔다. 엡스타인의 결론은 이렇다. "사랑하기 때문에 연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연인처럼 행동함으로써 사랑의 감정이 만들어진다."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라 일컫는 윌리엄 제임스(1842~1910·미국)는 1890년 출간된 '심리학의 원리'에서 일찌감치 그 이유를 설명했다. "어떤 성격을 원한다면 이미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처럼 행동하라." 심리학에서는 이를 가정(As If)원칙이라 한다. 제임스는 "의도적으로 좋은 기분을 만들고 싶다면 언제 어디서나 활기차게 말하고 움직이면 된다"고 했다. 그러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아니라 '일체유행조(一切唯行造)'. 모든 게 행동하기 나름이다.
저자 와이즈먼(47)은 행동이 인간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영국의 저명한 행동심리학자다. 그는 제임스의 주장 이후 행동심리학계에서 행한 실험들을 소개하고 행동이 우리의 마음을 바꾸고 더 나아가 삶 전체를 바꾸는 신기한 메커니즘에 대해 설명한다. 행동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그는 독자도 실험에 끌어들인다. 이 책 제목 '립잇업(Rip it Up)'은 뜯거나 찢는다는 뜻이다. 어떤 것을 완전히 뜯어고치라고 요구할 때도 쓴다. 저자는 이 책 서문에서 독자에게 행동을 강조하기 위해 "다음 페이지를 찢어라"라고 한다. 한 장 넘기니 찢어도 무방한 빈 페이지가 있다. 찢지 않고 넘겼더니 뒷면에 이렇게 쓰여 있다. '아직 안 찢었나요?'
행동하면 무엇이 바뀌는가. 성큼성큼 걷는 이는 발을 질질 끄는 이보다 더 높은 행복감을 느낀다. 기도(祈禱)가 주는 평온의 효과도 행동 심리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기도의 내용보다 편안하고 차분한 기도의 태도 자체가 마음을 바꾸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가 얼굴을 찡그리지 못하도록 주름이 생기는 부위에 보톡스 주사를 놨더니 효험을 봤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지금 삶이 자신이 원한 것이 아니라면 자신을 지배하는 습관과 이별하라는 주문도 그래서 한다. 젊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습관을 가지면 노화도 늦춰진다. 습관을 바꾸면 운명이 바뀐다.
텍사스대 심리학 연구팀은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몸에 의해 좌우되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남자들에게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기 전과 후에 한 번씩 여성의 사진을 보여주고 매력도를 평가했다. 그 결과, 롤러코스터를 탄 뒤 점수가 후했다. 이유는 '땀 난 손'에 있었다. 맘에 드는 여성을 만났을 때 남자는 긴장하고 손에 땀을 쥔다. 마음은 손에 땀이 난 신체의 변화를 사랑의 신호로 잘못 해석했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문득 보석 같은 삶의 진리를 하나 얻는다. '사랑이 우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동을 바꿀 때 최고의 사랑이 찾아오는 것이다.'(117쪽) 책 곳곳에 소개된, 멋진 결과를 만드는 작은 행동 리스트도 유용하다.
립잇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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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역사는 승자 입맛에 맞게 왜곡된 기록이라고 말한다. 미국 역사평론가 조지 산타야나도 "역사란 당시 그곳에 없었던 사람이 말하는,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에 대한 거짓말 모음"이라고 꼬집었다.
'나쁜 세계사'는 전형적으로 사실과 다르게 왜곡된 기록들을 콕콕 짚어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최
근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든 링컨의 노예 해방부터 저자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보통 미국 남북전쟁은 인종 평등주의자인
링컨이 노예 해방을 위해 벌인 전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남북전쟁이 일어날 무렵까지만 해도 링컨은 노예제도 폐지론자가
아니었다. 링컨은 기본적으로 노예제도에 반대했지만 이미 노예제도를 시행하고 있던 주는 굳이 폐지할 필요가 없다는 뜻을 견지했다.
남북전쟁의 공개적 목표도 노예 해방이 아니라 미국 연방제 유지가 우선이었다.
매독이 아메리카 대륙을 다녀온 콜럼버스 일행이 유럽에 퍼뜨렸다는 이야기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 밖에도 허를 찌르는 역사 속 숨겨진 다양한 이야기를 저자는 흥미롭게 소개한다.
나쁜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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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 바르바로이(barbaroi)는 ‘야만인’을 뜻한다. 동시에 ‘말을 못하는 벙어리’의 의미도 있다. 그리스인에게 언어는 문명의 상징인 셈이다.
‘소준섭의 정명론’과 ‘한 단어 사전’은 문명을 이끌어온 일상 단어의 기원과 바른 개념을 분석한 책이다. 두 책 모두 흔히 사용하는 한자어 중에 상당수가 중국이 아닌 일본식 한자의 잔재라는 점에 주목했다.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정명론’의 저자는 근대 이후 한자문화권에서 일본이 언어의 개념을 지배했기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막강한 권위를 행사했다고 분석한다. 이미 익숙해진 용어이더라도 일본어의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다.
‘한 단어…’는 학술적인 분석을 비중 있게 실었다. 야나부 아키라, 미조구치 유조 등 일본 교수들이 근대 일본 지식인들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쓰이는 단어인 ‘개인’ ‘공사’ ‘문화’ ‘인권’ ‘천(天)’의 기원과 한자문화권에서 개념의 차이를 비교 분석했다. 이를테면 중국 고전에서 문화는 ‘문치교화(文治敎化)’의 의미로 위력이나 형벌에 의한 교화와 상반되는 정치 이념이었다.
‘한 단어…’가 의미 차이를 인식해 정확한 언어 사용을 강조한 반면 ‘…정명론’은 일본의 영향을 받은 사례를 조목조목 지적하며 잘못 쓰이는 단어 교정에 힘을 실었다. 우리가 자주 쓰는 ‘해외’라는 단어가 대표적이다. 말 그대로 바다 건너 외국을 의미하지만 이는 섬나라인 일본의 관점에 어울리는 표현이다. 외국이나 국외라는 표현이 맞다. ‘반도(半島)’ 역시 절반만 섬이라는 뜻으로 조선을 모욕적으로 일컫는 일본식 표현이다. 법조문이나 관공서 서류에는 ‘∼한 자’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일본어를 그대로 옮긴 표현이다. 저자에 따르면 광복 후 우리나라 민법이 일본 민법을 직역한 부분은 60%에 이른다.
두 책 모두 언어의 의존과 종속 현상을 경계한다. 공자의 사상이 수천 년 동안 동양 사회를 지탱해온 것은 말을 바로 세우는 ‘정명(正名)’을 중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논어’에는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하는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쓰여 있다. 자국어의 튼튼한 기초가 국가의 통합과 발전을 이끈다는 것이다.
소준섭의 정명론 |
한 단어 사전, 문화 |
한 단어 사전, 개인 |
한 단어 사전, 천 |
한 단어 사전, 공사 |
한 단어 사전, 인권 |
삐딱한 일본식 한자 ‘半島’는 ‘절반만 섬’ 뜻… 이 땅을 모욕한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