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행복과 조화로운 성장에 가장 결정적이라는 ‘놀기’의 면에서라면 독재자 시절보다 못한 걸 넘어 비참한 지경이다. 독재자의 시절에는 아이가 오후 내내 뛰어놀았지만 이제 아이는 뛰어놀기는커녕 오후 내내 혹은 밤늦도록 컨베이어 벨트 위의 부품처럼 학원을 돌며 시들어간다.
왜 아이들은 독재 시절 아이들보다 행복하지 않을까? 김규항은 묻는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했다. 학원 안 가고 길거리에서 뛰어논다고 행복할까? 학원 다니는 아이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가? 아이의 부모는 그때 행복했을까? 개그처럼 단지 ‘그때가 좋았지’일 뿐인가?
진보적인 시민은 체벌이나 억압적 교육 같은 권위주의 교육엔 단호히 반대하지만, 아이가 학원을 돌며 시들어가는 신자유주의 교육 상황은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다. 그들의 모습은 체벌과 억압적 교육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말하던 독재자 시절 시민과 수십 년의 시차를 두고 빼닮았다.
‘어쩔 수 없는 현실’에 공감한다. 하지만 학원에 다니는 게 ‘신자유주의적 교육’일까. ‘자유주의 교육 상황’이라 했는데 ‘적’을 넣으니 전혀 다른 느낌이다.
무엇보다 학원에 다니면 불행하고 다니지 않으면 행복한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 잣대는 누가 그어 놓았을까. 그저 어른의 잣대로 줄세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우리 아이는 행복하다고 생각할까? 이 질문에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덧_
‘진보’ 또는 ‘진보적인 시민’이란 말이 왜 이리 거슬릴까. 그의 논리라면 수구꼴통 아니면 모두 진보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기우를 해본다. 아직 땅은 꺼지지 않았고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으니 ······
_2013.05.05
보고 듣고 느낀 한 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