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필화>(문학동네)는 필화(筆禍) 사건을 통해 횡포를 저지르는 권력과 그들에 맞선 이들의 싸움을 전하는 책이다. 말과 글을 문제 삼아 사람들을 옥죄는 부당한 권력의 생리와 횡포, 그에 맞선 양심적인 인사들의 고난의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명암을 고스란히 만나게 된다.책의 저자는 대한민국 인권 변론의 대명사격인 한승헌 변호사다. 한 변호사는 1960~1980년대 군부 독재 시절의 대표적인 시국 변호사였다. 수많은 양심수 변론을 통해 인권과 민주주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이 시대의 지식인이었다. 변호사인 그 자신이 한 여성잡지에 사형제도를 비판한 수필을 기고한 일로 중앙정보부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기도 했다.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한 변호사는 올해로 법조생활 55년을 맞이한다. 이 책은, '한승헌 변호사 법조 55년 기념선집 간행위원회'가 그의 법조생활 55년을 기념하여 그간 한 변호사가 남긴 글들을 모아 펴낸 '한승헌 변호사 법조 55년 기념선집'(총 4권) 중의 하나로 나온 것이다.
이 책의 핵심 주제어는 제목에도 나오는 '권력'과 '필화'다. 책은 모두 6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다. 이들 여섯 개 장은 필화 사건으로 사람들의 말과 글을 통제하고, 사상과 이념을 단죄하는 권력 작동의 메커니즘을 일관되게 그려내고 있다. 제1, 2장에는 각각 한국현대사의 대표적인 필화 사건의 개요와, 이들 사건에 대한 저자의 실제 변론문을 담았다. 제1, 2장은 이 책의 고갱이다. 필화 사건을 일으키는 권력의 집요함이 어느 정도인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만큼의 자유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 값진 것인지 저절로 깨닫게 된다.
'문학과 필화', '표현의 자유와 권력', '작가정신, 언론, 음란, 저작권의 제 문제', '정치적 통제와 법의식의 해부' 등의 제목이 달린 제3~6장은 그간 저자가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대다수가 길지 않은 언론 기고문들이다. 하지만 폭압의 시절에도 사표(師表)의 태도를 놓지 않았던 저자의 강단과 기개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
'필화'는 무엇인가. 저자에 따르면, 외국에서 필화 사건은 명예훼손이나 프라이버시 등 사권(私權) 침해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안보 관계법 위반을 이유로 한 시국사범의 성격을 띨 때가 많다. 글(작품)이나 말(발언) 등 표현에 문제가 없는데도 권력 쪽에서 처벌의 표적으로 삼고 나서는 사례가 빈번했다는 것이다.
필화 사건이 사악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점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17건의 필화 사건 첫머리에 등장하는 것은 '소설 <분지(糞地)> 사건'이다. 저자는 이를 '문학작품 반공법 기소 제1호' 사건으로 규정해 놓았다. <분지>를 쓴 소설가 남정현이 기소된 것은 1965년이었다. 굴욕적인 한일협정과 베트남 파병 문제 등으로 온 나라가 극심한 혼란에 휩싸인 시기였다.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정치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분지> 사건은 바로 그때 터졌다.
<분지>는 홍길동의 10대손 '홍만수' 일가가 8·15와 6·25의 어지러운 현실속에서 겪는 고난을 담은 단편소설이다. 소설 후반부에는 '만수'의 누이동생 '분이'를 학대하는 미군 병사 '스미스'의 만행과 이를 응징하는 '만수'의 도술 행각 등이 그려져 있다. 1심 판결에 증인으로 나온 평론가 이어령의 분석(?)에 따르면, <분지>는 민족문화의 주체성에 대한 자각이나 비서구적인 한국문화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대한민국 검찰은 공소장을 어떻게 만들어 놓았을까.
"대한민국이 마치 미국의 식민지 통치에 예속되어 주둔 미군들은 갖은 야만적인 학살과 난행 등을 자행하고 우리의 생명 재산을 무한히 위협하여···부정과 불의에 항거하는 자들은 미국의 강압과 보복을 받으면서도 굴복과 사멸함이 없이 최후의 승리를 쟁취한다는 양 남한의 현실을 왜곡 허위선전하여···북괴의 대남적화전략의 상투적 활동에 동조했다." (19쪽)
어마어마한 길이의 공소장 문체도 숨을 막히게 하지만, 내용이 너무 살벌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당시 검사는 증인 심문에서 이어령에게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놀랐'다고 말하면서 '증인은 용공적이라고 보지 않았'는지 묻는다. 이어령은 "병풍 속의 호랑이를 진짜 호랑이로 아는 사람은 놀라겠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아는 사람은 놀라지 않는다. <분지>는 신문기사가 아니다"라는 촌철살인의 답변을 내놓는다. 차라리 슬픈 코메디의 한 장면들이다.
필화 사건은 묵직하고 고리타분한(?) 정치 담론과만 관련되지 않는다. 뜨거운 논란을 부르는 '음란·외설' 시비가 필화 사건의 한 자리를 차지할 때도 많다. 1992년에 불거진 <즐거운 사라>(작가 마광수 연세대학교 교수) 사건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이 사건에 "'즐거운 사라'의 즐겁지 않은 수난"이라는 재치 있는 부제를 달아 놓았다.
저자에 따르면, 음란 시비 때문에 작가가 구속까지 된 예는 거의 없었다. 음란죄는 그 형벌도 1년 이하의 징역으로 가벼운 편이어서 모두가 불구속이라고 한다. 하지만 <즐거운 사라>의 경우에는 달랐다. 작가뿐만 아니라 출판사(청하출판사) 사장까지 구속되었을 정도로 이례적이었다.
안팎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세기의 '음란·외설 재판'은 시작되었다. 법적 공방의 핵심은 <즐거운 사라>가 문학 작품인가 아니면 퇴폐적이고 도색적인 음란물인가 하는 것이었다. 한 변호사는 어떻게 변론했을까.
"무릇 음란물이 되자면 우선 사람의 성욕을 자극·흥분시키는 것이 첫째 요건인데, 단상의 재판관 중에 이 소설을 읽고 성적으로 흥분하실 분은 한 분도 안 계시리라고 확신합니다. 고로 무죄판결을 내려주실 줄 믿습니다." (93쪽)
우스개 같은 변론이었지만 실제 대법원 판례에 바탕한 논리였다. 판결 결과는 기대와 달리 유죄로 나왔다. 그때 주변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요즘 판사들이 너무 젊어서 그 정도에도 흥분을 하신 모양이다." (94쪽)
간단한 촌평치고는 풍자와 익살이 제법 살아 있지 않은가. 저자는 이 사건의 대법원 상고 여부를 최종 결정하기 전에 주변에서 들은 '뼈있는' 의견도 소개해 놓았다.
"그래도 대법관들은 나이가 좀 많으니, 그리 쉽게 흥분하지는 않을 것이니까…." (94쪽)
<즐거운 사라>는 결국 대법원까지 간다. 저자는 최종심의 올바른 판결을 염원하면서 상고이유서를 정성껏 써냈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은 채. 하지만 나이 든 대법관들도 흥분해서였을까. 상고심 판결 역시 '역시나'로 마무리되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성묘사는 퇴폐 음란이요, 반윤리요, 그러니까 범죄다"라는 식의 유죄론이 위험하다고 평가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제3장의 '법적으로 본 성표현의 한계'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법원 판례는 형법 제234조와 244조상의 '음란 문서'를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억지스럽기 짝이 없다. 달력에 실린 여배우 얼굴만 보고도 '성적 흥분'이 일었던 중딩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고 달력을 음란물로 볼 수 있겠나.
그래도 우리나라 대법관들은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대법원 판례는 '음란 문서'의 음란성을, 당해 문서의 성에 관한 노골적이고 상세한 묘사?서술의 정도와 그 수법, 묘사?서술이 문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문서에 표현된 사상 등과 묘사?서술과의 관련성, 문서의 구성이나 전개 또는 예술성?사상성 등에 의한 성적 자극의 완화의 정도 등등을 통해 판별할 수 있다고 '강변'한다. 저자의 말마따나 이런 판시를 읽고 나서 '음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천재가 아니면 거짓말쟁이가 아닐까.
음란성 판정의 핵심인 '건전한 사회통념'이나 '성욕을 흥분 또는 자극', '보통인의 성적 수치심', '건전한 성풍속이나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 등을 과연 누가, 어떻게 해석할까. 그래서 저자는 이런 규정 자체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대법원에서 나온 이 판례 내용은 1951년에 나온 일본 최고재판소 판례를 그대로 베껴놓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일본 판례는 1918년 다이쇼[大正] 시대 판결과 근본을 같이한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 대법원의 음란죄 판례는 지금(당시 대법원 판례가 나온 1997년-기자) 80세 되는 할머니가 태어나던 때의 성풍속에 적용하던 박물관용 판례의 복사판이라고 일갈한다.
저자는 필화를, 있어서 불행한 것도 없어서 다행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언뜻 모순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혜안이 담겨 있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전자가 의당 해야 할 비판과 저항의 살아 있음의 증좌라면, 후자는 압제 앞에 항복한 침묵과 굴종의 반사적 현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넓은 의미의 '필화(筆禍)' 시대를 지나고 있다. 말 한 마디, 글자 몇 개가 사람들을 옥죄고 있다. 미사에서 나온 신부의 말 한 마디가 고발 대상이 돼버렸다. '민중'을 주권자로 본다는 정당 강령의 문구는 합법적이었던 정당을 해산해달라는 법적 신청의 근거가 되었다.
신부와 정당 강령의 말들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살려내려는 '따뜻한 무기'들이다. 그런데 그 '인간적인' 무기들을 빌미 삼아 권력은 진짜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 양심과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의당 해야 할 비판과 저항이 살아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이고 안심하고 있으면 될까.
올리버 웬델 홈스(1809~1894)는 미국 연방대법원 역사에서 가장 많은 소수 의견을 개진한 연방대법관이었다. 그가 '위대한 반대자'로 존경받는 이유다. 그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우리가 동의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반대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저자는 웬델 판사의 이 말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기본권의 헌법상 보장은 소수의견 내지 이단 그리고 지배세력이 꺼려하는 사상까지도 아울러 포용하는 것이어야 하며, 우리 시대의 문화와 자유와 진실을 국가권력의 자의로부터 지켜내야 할 헌법의 보장 기능은 어떤 이유로도 경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269쪽)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은 16년 전이 이 외침이 다시 한 번 굵게 울려퍼지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서글픈 현실이다.
권력과 필화 |
판사들의 '음란물' 판정,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이 책의 '증보판'이 나오는 건 막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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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서울 정동)에서 동대문까지 대로가 똑바로 뚫렸다. 상업과 조합의 거리다. …건물 층마다 특이한 진열대로 모든 직종과 상회가 들어서 있다. 종로는 불만 세력이 시위하러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1904년, 프랑스 철도 기술자 부르다레가 목격한 서울 종로 일대의 모습이다. 얼핏 보기에 그저 심상한 도시 풍경의 묘사 같은 이 글에서,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시민적(市民的) 원형의 발아'를 짚어낸다. 이미 근대의 전초병인 상인 계층이 배타적 동업조합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었으며, '불만'과 '시위'라는 단어는 사회가 중세적인 토양으로부터 결별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전작 '인민의 탄생'을 잇는 이 책은 '근대 한국인'이란 존재가 과연 어떻게 출현했는가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이를 위해 '국가와 시민 사회를 매개하는 여론 형성과 결집의 영역'이라는 하버마스의 공론장(公論場) 개념을 빌려온다. 공론장은 특정 계급이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활용하는 정보와 상품의 유통 영역, 인쇄 매체, 모임, 토론 단체, 교통망 등 총체적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개항 이후 이 공론장을 독점했던 양반의 영향력이 쇠퇴하자 '지식인 공론장'과 '평민 공론장'이 서로 연대하면서 공명(共鳴)했고, 그 과정에서 '시민의식'이 싹을 틔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민 공론장의 주체는 과연 누구였던가? 이미 한글 사용을 통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새로운 '문해(文解) 인민'이 '자각 인민'으로 진화했으며, 조선의 근대 이행기에 종교·정치·문예의 영역에서 양반 공론장을 대체해 나갔다는 것이다. '스스로 하늘의 도를 깨닫고 실행할 수 있다'는 최제우의 동학사상이 이들을 키웠고, 1894년 갑오개혁으로 한글이 국문의 지위로 격상되자 이들이 활약할 수 있는 '언문일치의 세계'가 도래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탄생한 근대적 사회와 '개인(個人)'은 향후 시민사회로 진화할 수 있는 출발점이었으나, 1910년 일제 강점으로 조선의 근대는 갑작스럽게 차단된다. 이제 '시민'의 존재는 상상력의 공간인 문학의 영역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역사에서 '근대 이행'의 충분조건이라 할 경제적 하부구조에 대한 분석이 약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시민의 탄생 |
近代 시민의 근원은 동학과 한글이었다
조선의 평민 공론장서 태어난 근대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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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협하는 어려움의 주요 원인은 부의 분배에서 불평등이 증가한다는 데 있다. 현대의 모든 발명은 이 현상을 심화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으며, 의회권력에 기대어 성립한 독점기업의 존재와 정치적 부패 또한 이런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잠깐 퀴즈. 위에 제시된 글의 배경은 언제일까? 1990년? 2001년? 2013년? 정답은 1883년이다. 130년도 전에 제기된 사회불평등의 문제들이 21세기를 사는 현재도 유효하다는 사실은 놀랍다. 우리 사회는 그때에 비해 과연 어느 정도 발전했을까? 당시 글쓴이가 제시한 새로운 대안은 지금 관점에서 봐도 진보적이고, 파격적이다. "우리의 근본적인 실수는 토지를 사유재산으로 취급한 것"이기 때문에 '토지사유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활동한 경제학자이자 사회개혁가 헨리 조지다. 그는 젊은 시절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인쇄공으로 근무하던 당시 신문사에 투고한 글이 톱기사로 게재되면서 일약 기자로 명성을 날렸다. 또 비참할 정도로 가난한 시절을 보낸 원인을 '토지의 대물림'에서 찾고 꾸준히 연구했다.
우리에게는 '진보와 빈곤', '노동 빈곤과 토지 정의' 등의 저서로 이름을 알렸으며, 이번에 나온 신간 '사회문제의 경제학'은 국내에 처음 소개가 되는 것이다. 특히 다른 저서들보다 다루는 주제가 훨씬 넓고, 읽기 평이하게 구성돼있어 헨리 조지의 사상을 쉽게 이해하는 데 유익하다.
헨리 조지도 독자들에게 전하는 말에서 "이 책에서 우리 시대의 중대한 사회문제를 구명하고자 노력했지만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지는 않았으며, 정치경제학의 원리를 철저하게 설명하는 데 필요한 추상적인 추론을 전개하지도 않았다"고 밝힌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헨리 조지의 든든한 조력자임을 자처하고 나섰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 책에 매료된 나머지 러시아판을 직접 번역한 톨스토이는 서문에서 "그가 쓴 뛰어난 책, 연설문, 기사 중에서 이 책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작품"이라고 아낌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토지가 모든 사람의 공동재산이라는 '토지공개념'과 그에 따른 '토지가치세제'로 요약된다. "본질적으로 토지는 당연히 개인의 소유물이 되어야 하는 인간 노동의 생산물과 다르다"는 게 헨리 조지의 기본 생각이다. 토지사유제가 오히려 토지의 효율적인 이용을 저해하고, 토지를 담보로 과도한 노동과 자본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한때 마르크스보다 더 많은 추종자를 거느렸던 그의 사상은 오랫동안 주류 학계에서 외면받았고, 실질적인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헨리 조지가 본 1982년 미국 뉴욕은 근사한 승마복을 입은 채 센트럴 파크 거리를 말을 타고 달리는 철도왕의 어린 딸과 교회에서 나눠주는 구제금을 받기 위해 광장 벤치에 사색이 된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는 부랑자의 두 풍경으로 나눠진다. 그는 질문한다. 일부 사람들이 가진 것이 충분치 않아서 품위있게 살 수 없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갖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토지가 이용되고 있는가? 모든 노동이 고용되고 있는가?
헨리 조지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독자들이 거부감없이 사회 부의 재분배, 기존 체제의 부당함, 인식 변화의 필요성 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논지를 펼친다.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그의 비판은 사뭇 신랄하다.
"영국의 한 작가가 모든 사람을 세 가지 범주, 즉 노동자, 거지, 도둑으로 구분한 적이 있다. 이런 분류는 자존심이 강한 상류층과 부유층의 마음에는 들지 않겠지만, 경제학적으로 볼 때 옳다. 개인이 부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 즉 노동, 타인의 증여, 절도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의 사상은 국내에도 차용된 적이 있다. 1989년 노태우 정부 시절의 토지공개념은 그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실질적으로 그의 사상이 정점을 찍은 때는 노무현 정부 때였다. 당시 경제참모였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헨리 조지의 토지 공개념을 근거로 종합부동산세 등을 마련하기도 했다. 현재는 그에 대한 논의 자체가 시들해진 상황이지만, 부동산이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그의 주장을 마냥 무시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사회개혁은 고함과 아우성으로, 불평과 비난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정당을 결성하고 혁명을 도모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생각의 각성과 사상의 진보를 통해 달성된다. 올바른 생각이 없으면 올바른 행동이 나올 수 없다. 힘은 항상 대중의 손에 있다. 대중을 억압하는 것은 그 자신의 무지와 근시안적 이기심이다."
사회문제의 경제학 |
톨스토이가 반한 책...헨리 조지의 '사회문제의 경제학'
토지 사유제는 세련된 형태의 노예제도
헨리 조지의 가장 대중적인 고전 ‘사회문제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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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나 인간이 알고 있는 지식이란 한 줌에 불과하다. 1908년 일본 제국대학 실험실에서 ‘마법의 맛을 내는 화학물질’인 글루탐산나트륨(MSG)을 발견할 당시에는 “천연 물질이라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겼다. 1940년대 이후 식품에 첨가하는 엠에스지의 양만 10년마다 2배씩 증가했고 각종 요리책에도 엠에스지를 넣으라고 권장했다.
오랜 시간, 엄청난 양을 먹은 뒤 진실의 일부가 밝혀졌다. 1957년에 안과 의사인 루카스와 뉴하우스가 어린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해 엠에스지가 망막 안쪽의 감광체 세포인 신경세포를 모두 파괴해버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럼에도 엠에스지는 변함없이 이유식에까지 첨가돼 팔려나갔다. 10년 뒤, 신경과학자 존 올니 박사가 엠에스지는 뇌에도 영향을 끼치는 독소라는 점을 밝혀냈다. 단 한번의 엠에스지 투여로 어린 쥐들 뇌의 시상하부가 파괴됐다.
하지만 실험 결과가 나온 이후에도 식품 제조업자들은 물론 정부 기관인 식품의약청(FDA)조차 꿈쩍하지 않았다. 다급해진 올니 박사가 미국의 의회에서 실험 결과에 대해 증언을 하고 난 뒤에야 식품 제조업자들은 유아 식품에서 엠에스지를 빼기 시작했다. 하지만 업자들은 ‘엠에스지 무첨가’라고 쓰고는 또다른 ‘흥분독소’를 첨가했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러셀 엘(L). 블레이록이 “식품업계의 반발을 각오하고 책을 쓴 이유”도 “대중에게 알리지 않고 기다리기에 어린아이와 고령자에게 닥칠 위험이 너무 중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흥분독소’는 엠에스지처럼 인체에 해를 끼치는 화학물질군을 통칭하는 단어다. 신경계를 이루는 기본 세포인 뉴런이 이런 물질에 노출되면 아주 빠르게 신호를 전달하다가 흥분해 죽은 것처럼 갑자기 사멸해 신경과학자들이 붙인 이름이다. 혀의 미각 세포를 자극하는 이 물질들은 각종 소스와 수프, 참치캔, 다이어트 식품, 담배에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책은 ‘흥분독소’가 급격한 뇌성장이 진행되는 어린아이들에게 특별히 해롭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뱃속의 아기에게도 흥분독소가 전달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한 성인, 특히 고연령층에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루게릭병 등 온갖 신경 변성 뇌질환을 일으킨다고 밝혔다. 책은 지은이가 1997년까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각종 연구 결과를 정리하고 가설을 세워 직접 논쟁에 뛰어들었던 결과물이다.
엠에스지의 위험성이 어느 정도 알려진 지금도, 이 물질들은 교묘히 확산되고 있다. ‘무설탕’이라고 표기한 어린이 요구르트에 들어 있는 ‘아스파탐’을 보자. 2년 동안 두 그룹의 쥐를 비교한 결과 아스파탐이 함유된 먹이를 먹은 쥐에서만 뇌종양이 발생했다. 뇌종양 발생률은 자연 상태 평균치보다 25배나 높았다. 지은이가 밝힌 ‘항상 엠에스지를 포함하는 식품 첨가물’은 가수분해 단백질, 카세인나트륨, 카세인칼슘, 이스트 추출물, 조직 단백질(대두 단백질), 자가분해 효모 등이다.
죽음을 부르는 맛의 유혹 |
혀를 사로잡는 ‘흥분 독소’, 뇌를 파괴한다
[經-財 북리뷰] 죽음을 부르는 맛의 유혹
흥분독소, 어떻게 피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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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과테말라 산 마르코스 지역의 커피 농장에서 출발한다. 미국 전업작가인 저자 마크 펜더그라스트는 2009년 개정판(초판 1999년)을 쓰면서 이곳을 찾았다. 저자가 목격한 불평등의 풍경은 여전했다. 왜소한 여인들이 자기 몸무게의 갑절은 될 법한 무거운 커피 자루를 끌고 다녔다. 아이들은 여덟 살부터 수확 일을 돕는다. 캄페시노(농장 노동자)들이 일 때문에 종종 아이들을 결석시키다 보니, 과테말라의 방학은 커피 수확기와 일치한다.
빈부격차가 현격한 과테말라에서 토지 분배는 편중돼 있다. 가장 힘든 일에 종사하는 이들은 정작 그 이익을 가져가지 못한다. 저자는 일꾼들을 보면서 문득 모순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수확된 생두가 가공을 거친 뒤에 수천 킬로미터를 건너서 이곳 과테말라 노동자들은 상상도 못할 라이프스타일을 누리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주고 있다니….” 유럽과 미국, 일본 같은 나라의 시민들은 아침 식탁이나 사무실, 호화로운 커피전문점에서 고된 노동을 감당하는 농장 노동자들의 하루 수입(3달러)에 해당하는 돈을 기꺼이 지불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저자는 “그렇다고 이 드라마에서 한쪽을 ‘악인’으로, 또 다른 쪽을 ‘희생자’로 분류한다면 그건 불공평하지 않을까? 사실 이와 같은 스토리에 얽힌 모든 것이 그렇게 간단히 다룰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커피의 역사와 현재는 복잡다단하다. 논란과 정략으로 점철되어 있다. 과테말라만 해도 커피는 불평등의 상징이면서 생활고에 버둥거리는 가족농들에겐 생존을 위한 중요 환금 작물이다. 원주민과 농민에 대한 탄압과 강탈, 외국시장 의존을 불러오는 핵심 요소로 작용했는가 하면, 산업화와 현대화의 근간을 이루기도 했다.
‘음식’으로서 커피는 달콤쌉쌀한 향으로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카페인이 든 나쁜 음료로 비난받는다. 커피는 역사학,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의학, 경제학에 걸친 분석 대상이다. 저자는 “학문 간 상호 연결성이 대단해서 세계 경제를 형성해온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데 좋은 수단”이라고 말한다. 책은 커피를 중심으로 각국의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문화사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커피의 양면을 이야기하지만 주된 관점은 잔혹과 불평등에 맞춰져 있다. 그것은 편향이라기보단 실제 역사가 그랬기 때문이다.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를 다룬 이 책에서 과테말라는 ‘잔혹’에 들어맞는 역사를 가진 국가다. 과테말라에서 커피는 인디언 원주민들을 여전히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핵심이다. 잔혹사에서 커피가 ‘학살자의 자금’으로도 쓰인 것을 빼놓을 수 없다. 1970년대 말 아프리카 사람들은 극심한 부패, 압제 정권에다 높은 커피 가격이 한 데 맞물려 고통받았다. 30만여명을 학살한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을 지탱한 자금은 커피에서 나왔다. 1977년 우간다의 구리와 면 산업은 파탄이었다. 주된 수출원은 커피 하나였다. 이디 아민은 커피 수익을 독식했고 그 돈으로 사치를 유지하고 군대 졸개들에게 보수를 지급했다. 우간다의 커피 수출물량 가운데 3분의 1은 미국으로 가는 것이었다. 뉴욕타임스는 그 해 “우간다인의 80%가 텃밭에서 기른 작물로 근근이 연명하는 실정인데 미국이 우간다의 커피에 연 2억달러를 지불한다”고 보도했다. 미국 사회운동가들은 부패정권 지원을 비판하면서 우간다산 커피 불매운동에 들어갔다.
저자는 책에서 여러 양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폭넓은 시각을 환기시킨다. 우간다 커피 논란에선 국가와 자본가의 모호한 태도를 볼 수 있다. 비판 여론과 불매 운동이 거세지자 제너럴푸즈, 프록터앤갬블, 네슬레 등 미국의 주요 로스팅 업체들은 전국커피협회 이름으로 우간다 대학살을 혐오스럽고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비난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한편으론 ‘일관성 있는 국가 정책’을 요구했다. 미국 정부가 강제하기 전까지는 불매를 실시하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우간다의 수출품종인 ‘로부스타’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78년 2월 열린 의회 청문회에서 우간다 망명자가 한 말은 “인간의 비극보다 자신들의 은행 잔액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들 같습니다”였다. 오하이오주 초선의원 도널드 피즈는 “미국 커피 회사들은 가격만 맞으면 아민이나 히틀러 같은 학살자와도 가까이 거래를 하는 곳입니까”라고 질문했다. 업계를 대변하는 어느 변호사의 조언은 “폭풍이 지나가길 가만히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미국은 1983년 과테말라에서 독재자의 살인이 벌어졌지만, 살인행위에 반대하는 확고한 도덕적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중앙아메리카 전체가 공산주의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될까봐 두려워한 것이다.
1934년 니카라과에서 정권을 잡은 독재자 소모사도 46개의 농장을 비롯해 막대한 커피 관련 소유 재산을 주축으로 삼아 가족 왕조를 세웠다. 이 독재정권은 1979년 산디니스타 혁명으로 무너진다. 혁명이 시작된 곳이 바로 소모사의 커피 농장이다. 산디니스타는 농장을 탈취하고 나중에 국영화했다. 한국에서 2000년대 중반 이후 유행한 공정무역 커피의 연원도 니카라과에서 찾을 수 있다.
캘리포니아 ‘생스기빙커피’의 소유주 폴 카제프는 1985년 친산디니스타 정부 커피 단체인 UNAG의 초대로 니카라과를 방문했다. 그는 니카라과산 로스팅 원두 포장 상품을 ‘평화를 위한 커피’로 출시했고, 산디니스타 정부에 파운드당 50센트를 기부했다. 매사추세츠 출신의 이상주의자 3명이 만들어 지금도 유명한 ‘이퀄 익스체인지’도 1980년대 최저보장가격을 지불하고 사온 니카라과산 커피를 ‘공정무역 카페니카’라는 이름으로 협동조합에 공급했다. ‘완벽한 커피’를 만드는 일에만 관심을 집중한 스페셜티 커피업자들이 커피의 재배, 가공, 수출 시스템에 내재된 불평등에 주목한 것이다.
책의 강점은 한쪽 편의 사실만 전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산디니스타의 주축은 도시 지식층으로 이들은 커피 재배에는 문외한이었다. 이들은 비료를 주거나 가지 치는 일을 제대로 못했다. 산디니스타 집권 이후 니카라과엔 황폐해지거나 방치되는 농장이 속출했다. 저자는 공정무역 커피에 호의적이면서도 “부유하지만 죄의식에 차 있는 공정무역 커피 판매업자들이 자신들이 파는 원두에 ‘괴로움, 고통, 굴욕’을 섞어 넣고 죄책감으로 커피를 사라고 다그친다”고 비판하는 코스타리카 커피 재배자의 문화제국주의적 비판론도 소개한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도 커피산업의 분수령이었다. 저자는 전쟁 당시 미국-유럽-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를 오가는 국제적인 커피산업의 동향을 설명하면서 특정 국가에서 벌어진 또 다른 전쟁의 양상도 보여준다. 예를 들어 과테말라에는 2차 세계대전 때 5000명의 독일인이 거주했다. 수출은행과 커피 수출회사를 장악한 독일인 상당수는 나치에 동조했다. 하지만 히틀러를 싫어한 독일계도 많았다. 현지엔 게슈타포(나치 독일의 비밀경찰) 요원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비나치 독일인들에게 가혹한 압력과 폭력적 위협을 가했다. 독일이 과테말라를 점령하면 처형할 ‘비애국적 독일인’ 명단까지 작성했다.
책은 잔혹과 불평등, 전쟁 같은 심각한 이야기만 다루지는 않는다. 흥미로운 커피 이야기들이 곳곳에 들어 있다. 시리얼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포스트와 켈로그에 관한 이야기는 음식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체로 잘 안다. 존 하비 켈로그 박사의 요양원에 환자로 있던 찰스 포스트가 콘플레이크를 베껴 먼저 출시한 건 유명한 이야기다. 그러나 두 회사의 경쟁과 갈등의 역사에 커피가 있다는 건 잘 모른다. 켈로그와 포스트 둘 다 커피를 몸에 해로운 마약의 음료라고 맹비난했다. 커피를 무절제하게 마실 경우 정신이 돌거나 심지어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여긴 이들이 많았는데 포스트는 ‘포스텀’이라는 자사의 음료를 광고하면서 “커피는 소화불량을 잘 일으키고 신경계의 기능장애를 일으킨다”는 내용의 편지를 돌렸다. 그러나 정작 포스트는 커피 애호가였다. 그리고 그의 딸은 포스트가 자살한 이후인 1928년 맥스웰하우스를 인수해 떼돈을 벌었다.
책은 아라비아의 수피교 수도승들이 밤새워 기도하기 위해 커피를 마신 시기로 올라간다. 17세기 이후 유럽에 확산된 커피사도 주요하게 다룬다. 교황 클레멘트 8세가 사탄의 음료라는 커피를 맛보곤 “이렇게 맛 좋은 사탄의 음료를 이교도들만 마시게 놔두다니 … 정식 기독교 음료로 만들어서 사탄을 우롱하자”라고 한 말도 유명한 커피사 중 하나다. 1909년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칼 융이 매사추세츠의 클라크 대학교를 방문해 강연한 이후 커피업자들이 소비자 구매와 관련된 심리학을 연구해 마케팅에 적용한 이야기나 20세기 중반까지 여성과 흑인을 차별하고 비하한 커피 광고 이야기도 책에서 볼 수 있다. 커피산업은 마르크스의 분석 대상이기도 했다. 마르크스는 문학적 비유를 곧잘 구사했는데 1848년 <철학의 빈곤>에선 “신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믿을지 모른다. 커피와 설탕의 생산이 서인도제도의 자연스러운 운영이라고. 그러나 2세기 전에 자연은 상업에는 무심하여서 그곳에 사탕수수도 커피나무도 심어 놓지 않았었다”고 말했다.
책은 커피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룬다. 에스프레소 기계의 최초 발명, 프랭크 시내트라의 노래 ‘더 커피 송’에 든 아메리카 지역의 커피 쿼터제 문제 같은 미시사와 카페인·건강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과학 이야기도 담았다. 또 커피를 맛있게 내리는 법을 부록으로 실었다. 커피 하나로 자본과 착취의 역사, 전쟁사, 빈곤사, 광고와 마케팅의 역사, 문화사, 과학사에 걸친 역사를 함께 읽어낼 수 있다.
저자는 300명을 인터뷰했다. 커피 농장 여러 곳을 직접 찾아가 취재했다. 참고문헌을 책에 다 담지 못해 자신의 홈페이지에 따로 올려놨을 정도다. 돋보이는 건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그는 “중앙아메리카를 여행하던 중에 커피, 권력, 폭력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거듭거듭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그런데 커피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라며 “바나나, 설탕, 면 농장에서 일하거나 금광, 다이아몬드광, 정유공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게 일하는 이들의 여건은 훨씬 가혹하다”고 말한다. 금, 모피, 다이아몬드, 향신료, 설탕, 코코아, 담배, 야자유, 석유 같은 다른 상품을 두고서도 이 책과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유럽의 백인들에게 점령되었던 북미 역시 산업적으로 발전하면서 특히 라틴아메리카를 그 대상으로 삼아 이 정복 대열에 합류”했으니 말이다.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
커피 한 잔에 섞인 잔혹과 불평등… 그러한 이유로 ‘달콤씁쓸’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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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사회적 격차가 극심해지고, 서유럽의 사회주의 운동이 재조명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레닌 평전이 나왔다. 이번이 네 권째다. 사회주의 혁명의 원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레닌이 건설하려 했던 공산당은 자신의 역사적 과제를 분명히 인식하고 단결한 정당, 명확한 강령을 바탕으로 대중과 올바른 관계를 구축한 정당, 다시 말해 엄격한 원칙과 혁명적 현실주의를 잘 결합한 정당이었다. 그러나 러시아 밖의 공산당들이 보여 준 것은 기회주의이고 종파적인 것들뿐이었다. 그들은 양 극단인 기회주의와 모험주의 사이에서 정신없이 왔다 갔다 했다. 레닌은 시간이 더 있었다면 일관된 혁명적 사회운동으로 발전시켰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가 허용하지 않은 것이 바로 그 시간이었다. 이 책은 레닌이 이루고자 한 혁명의 진정한 의미와 사회주의 본질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쉽게 풀이한다. 레닌이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지금의 사회주의 운동에 대해 뭐라고 평가할까. 저자는 나름의 답변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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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클리프의 <레닌 평전> 4부작. 러시아와 유럽의 다양한 사료와 문헌을 꼼꼼히 살펴보고 주의 깊게 분석한 바탕 위에서 1960년대 이후 이른바 '아래로부터의 역사학' 같은 사회사적 연구 성과도 흡수해 레닌의 진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레닌을 신성시하거나 악마화하는 기존의 레닌 전기와는 달리 레닌의 정치적 장점과 위대성뿐만 아니라 오류와 한계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 책은 <레닌 평전> 4부작의 마지막 권이며 1919~24년,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세계사의 결정적 시기를 다룬다. 레닌과 볼셰비키가 혁명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을 건설하고 성공과 실패를 겪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이 마지막 권에서 우리는 서유럽 혁명의 패배와 러시아 혁명의 변질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스탈린과 관료에 맞서 싸우는 레닌의 마지막 투쟁을 볼 수 있다.
레닌 평전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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