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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4년 7월 3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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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1903~1950)은 최근 몇 년 새 두드러지게 독서가들의 애호를 받고 있는 작가다. 전체주의를 비판한 ‘동물 농장’과 ‘1984년’의 소설가로서가 아니라 르포르타주, 평론, 서평, 기사, 칼럼 등 다양한 장르를 종횡무진했던 산문가로서다. ‘나는 왜 쓰는가’ ‘위건 부두로 가는 길’ 등의 책을 통해 소개된 산문들 덕분에 오웰은 오늘날 우리 시대를 반세기 전 온 몸으로 미리 겪었던 통찰과 혜안의 작가로 즐겨 호명되고 있다.

‘영국식 살인의 쇠퇴’는 오웰 전공자인 번역가 박경서씨가 오웰의 대표적 논픽션 작품들의 초안과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산문들을 골라 초역한 책이다. 인도에서 태어나 버마의 인도제국 경찰로 성년기의 첫 5년을 보낸 오웰은 “부정한 돈벌이”에 대한 속죄의 일환으로 영국에 돌아오자마자 하층민들과 어울리며 떠돌이 생활을 했다. 이튼 스쿨 출신의 중산층이었음에도 “스스로 밑바닥까지 내려가 억압받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그들 중 한 사람이 되어 압제에 대항하여 그들 편에 서기를 원했”던 것이다. 스스로를 철저히 노동계급으로 인식하며 죽음 직전의 가난으로까지 갔는데 이 체험은 극도의 사실적 묘사로 그의 논픽션에 반영돼 있다. 책에는 영국 북부 탄광 노동자들의 처참한 삶을 그려낸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취재 일기와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경험을 담은 ‘카탈루냐 찬가’의 초안, 부랑자들의 굴욕적이고도 절망적인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스케치가 실려 있다.

중산계급에서 노동계급으로 자발적으로 전환한 것은 작가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문학의 근원적 물음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였다.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까지는 얻을 수 있다고 예상하면서 살아가는 반면 노동계급의 사람들은 항상 스스로를 뭔가 신비스러운 권위의 노예로 생각”하는 것을 목도하고 “파시즘을 지지하고 있거나 지지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잃을 게 있는 사람들, 또는 계급사회를 염원하고 인류의 자유롭고 평등한 세계 지향을 두려워하는 자들”임을 간파한다. 행복이라는 것은 “노고든 고통이든 무엇인가로부터 벗어나는 형태를 제외하고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므로, 영원하다면 그것은 행복이 아니다. 요컨대, 유토피아는 불가능하다. 사회주의의 진정한 목표는 행복이 아니라 인류애이며, 행복은 그 부산물일 뿐이다.

오 웰은 인간에 대한 억압이면 무엇이든 맞서온, 제국주의와 파시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모두에 투쟁해온 지식인이었다. 전쟁과 가난이라는 현실의 핵심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했던 이 체험형 작가에게 무엇이 두려웠을까. “나는 이런 것들이 두렵다. 왜냐하면 객관적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는 느낌이 종종 들기 때문이다. …기록된 역사 대부분이 어떤 식으로든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이 유행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역사가 대체로 부정확하고 편파적이라는 것을 기꺼이 믿고 있다. 그런데 우리 시대에 특별한 점은 역사가 진실하게 쓰일 수 있다는 개념 자체를 포기하는 데 있다.”

이것은 “집권 세력이 미래뿐 아니라 과거도 통제하는 악몽 같은 세계”다. 한계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어느 정도라도 사실을 밝혀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가의 직설적 유머와 소재의 친숙함 때문에 웃펐던(웃지만 슬펐던) 대목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 제목하여 ‘어느 서평가의 고백’. 연간 100권 이상의 서평을 썼던 생계형 저작 노동자였던 오웰은 서평을 쓰는 대부분의 책에 “아니, 이것도 책이라고!”라는 코멘트를 자기도 모르게 내뱉는다. 하지만 막상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 “‘놓쳐서는 안 될 책’이니, ‘페이지마다 기억에 남을 어떤 것이 들어 있는 책’이니 하는 식의 진부하고 상투적인 표현들이 자석에 따라 움직이는 쇳가루처럼 제자리에 올라탄다.”

오웰에 따르면, 서평이란 매년 발행되는 수천 권의 책 중 많아야 50~100권, 최고 수준이라면 10~20권만이 받을 가치가 있다. “나머지 책에 대한 서평은 아무리 양심적으로 칭찬을 하건 욕을 하건 간에 본질적으로 사기다. 많은 책을 대충대충 평하다 보면 그 대부분에 대해 과찬하지 않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내가 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대다수의 책을 그저 무시해버리고, 중요해 보이는 소수의 책에만 아주 긴 서평을 쓰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오웰의 이 책은 서평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그야 물론이다.

영국식 살인의 쇠퇴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은행나무

조지 오웰의 덜 유명하지만, 더 재밌는 글들
조지 오웰의 르포, 에세이, 칼럼, 비평 선집 ‘영국식 살인의 쇠퇴’
스스로 밑바닥까지 내려간 작가 그가 말하는 문학의 근원적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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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정치적 논쟁이다. (경제학은 정답이 한 개만 있는) 과학이 아니고, 앞으로도 과학이 될 수 없다. 경제학에는 정치적·도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확립될 수 있는 객관적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제학적 논쟁을 대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오래된 질문을 던져야 한다. ‘Cui bono(누가 이득을 보는가)?’ 로마의 정치인이자 유명한 웅변가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말이다.”(435쪽)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들은 정치적 사안을 놓고는 수시로 공방을 벌인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누구라도 한 마디씩 자신의 견해를 내놓는다. 그러나 일상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경제적 사안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 왜?

많은 시민들이 정치와 달리 경제는 전문적이고 어려워서 나보다 더 잘 알고 더 똑똑한 전문가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국제적으로 유명한 경제학자인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2010년 주류 경제학의 허점들을 지적한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사실 경제학의 95%는 상식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수학, 전문 용어들을 동원해 보통 사람들에게 경제는 어렵고 전문적인 것처럼 위장함으로써 자신들의 영역을 공고히 했다는 지적이다.

그는 새 책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에서 ‘경제학의 95%는 상식에 불과’하고 ‘경제학은 정치’이며 ‘경제는 전문가들에게만 맡기기에는 너무 중요’하기에 시민들의 경제학적 지식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두꺼운 경제학 교과서를 읽으면서 특정 경제학의 시각을 무조건 흡수하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경제학적 논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특정 경제상황과 특정 도덕적 가치 및 정치적 목표하에서는 어떤 경제학적 시각이 가장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 시각을 갖출 수 있도록 경제학을 배우는 일이다.”

저자는 “우리 모두는 지난 몇십년 동안 경제학이 모든 문제에 하나의 답이 존재하는 과학이기에 비전문가들은 전문가들이 합의한 결론을 믿고 ‘더 이상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고 유도돼 왔다”며 이제는 “능동적 경제 시민이 되자”고 권한다. 경제도 자전거 타기를 처음 배우는 것처럼 초반에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지만 연습하면 생각보다 쉽다고 덧붙인다.

이 책은 그동안 주류 경제학·경제학자들로부터 주입된 지식을 떨쳐버리고 정치적 사안처럼 경제적 사안에 대해서도 기꺼이 의견을 말하는 ‘이 시대의 능동적 경제 시민’이 되도록 돕는 경제학 입문·교양서다. 책은 경제와 경제학이 무엇이고 왜 알아야 하는지에서 시작해 자본주의의 주체·제도 등이 그동안 어떻게 변해 왔는지 자본주의 역사를 설명한다. 이어 지난 수십년 동안 경제학계의 주류를 차지하면서 시장만능주의, 신자유주의로 진화한 신고전학파를 비롯해 9개 주요 경제학파의 핵심 내용, 탄생 배경, 장점과 단점을 조목조목 이해시킨다.

경제학을 과학이라고 강조하며 자신들만의 견고한 성을 쌓고 있는 신고전학파만이 경제학의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이런 설명에 뒤이어 저자는 시민들이 실제 경제상황을 해석하는데 경제학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여준다. ‘경제학 사용자 가이드’다.

실제 원서 제목은 <ECONOMICS:User’s Guide>이다. 생산량이나 소득, 최근 세계 경제불안의 핵심인 금융, 불평등과 빈곤, 일과 실업은 물론 정부의 역할과 국제 무역 등을 두루 다룬다. 독자로선 기존 경제학 책들과 달리 생생하게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의 경제에 대한 분석적 시각을 갖게 된다.

저자는 “책을 본 독자들이 실제 세상에서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는 생각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희망으로 이 책을 썼다”며 “기존 경제질서를 바꾸고 변화시키기는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부키

"경제학은 과학이 아니다" 삐딱한 교수의 유쾌한 뒤섞기
경제학은 정치에서 자유롭지 않다 ‘누가 이득 보는가’ 늘 되새겨 보라
경제를 학자들 손에만 맡겨두면 큰일난다
세상만사 경제학으로 해석? 신고전학파의 자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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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15일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신청은 세계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15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던 미국 4위의 글로벌 금융서비스업체가 한순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것이다.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을 촉발했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검은 백조(Black Swan)’라는 표현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검은 백조의 등장처럼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대재앙이라는 것.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의 수장이던 데븐 샤르마는 2008년 10월 미 의회에서 “주택 소유자나 금융기관, 신용평가사, 감독 당국, 투자자들, 그 누구도 이런 일이 닥치리라고 예견하지 못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이 엄청난 대재앙이 정말로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일까.

‘신호와 소음’의 저자 네이트 실버는 샤르마의 이 같은 진술이 ‘거짓말’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신용평가사들이 엄청난 경제적 대재앙을 ‘예측’하는 데 실패했을 뿐 주택시장의 거품 등 재앙의 징후는 지속해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실버에 의하면 신용평가사들은 기득권에 안주하는 가운데 눈에 보이는 정보에만 기반해 잘못된 예측을 남발했다. 그들은 당시 주택저당증권(MBS) 수천종에 AAA 등급을 매겼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재정을 확보한 정부나 최고의 기업 등 극히 소수의 경제주체에만 매기는 것이다. 그리고 신용평가사들이 남발한 ‘잘못된 예측’인 과도한 신용등급은 대재앙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잘못된 예측이 이루어지는 것은 정보화시대에 쓸모없는 정보, 즉 ‘소음’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정보통신 기술 발전의 영향으로 하루에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방대한 양의 정보가 생산된다. IBM의 추정에 의하면 전 세계가 하루에 생산하는 자료가 250경 바이트나 된다고 한다. 이렇게 엄청난 자료 중 분석과 예측에 유용한 정보인 ‘신호’는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소음’에 불과하다. 이 소음을 효과적으로 걸러내고 정보 중 진짜 ‘신호’를 찾아낼 때 제대로 된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 책의 주장이다.

신호와 소음을 구분하기 위해서 저자는 사고의 틀을 바꾸기를 제안한다. 이는 통계학의 ‘베이즈 정리’에 기반한 것. 베이즈 정리란 사전 확률을 도출한 뒤 새 정보가 나오면 가장 가능성 있는 것을 골라 적용해 사후 확률을 개선해 나가는 방법이다.

책은 정확한 미래예측을 위한 만능의 방법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베이즈 주의에 기반해 예측을 위한 최선의 방식을 찾아나간다. 저자가 책 속에서 제시하는 방법은 얻을 수 있는 정보나 대다수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도출해낸 공동의 결론 등을 이용해 신중하게 예측한 뒤 자신의 결론의 불완전성을 인정한 채로 천천히 작더라도 새로운 정보를 모으는 것. 이후 이 새로운 정보 중 진실을 내포하고 있는 ‘신호’를 골라내 지속적으로 예측을 업데이트해나가야 한다. 이 같은 방법을 통해 조금이나마 예측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저자는 이를 위해 한 분야에만 집중하면서 자잘한 정보는 무시하는 사람보다 여러 분야의 지식을 아우르며 다양한 시도를 하는 사람, 실수를 인정하며 끊임없이 예측의 재조정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책의 저자인 네이트 실버는 미국 주요 선거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해 화제를 모은 통계학자. 2008년 미국 대선 때 50개주 중 인디애나주를 제외한 49곳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했고, 총선에서 상원 당선자 35명을 모두 맞혔다. 당초 박빙이 전망됐던 2012년 대선에선 버락 오바마의 낙승을 단언했고 이 예상 또한 적중했다. 실버는 메이저리그 선수의 성적 예측 시스템으로 각광받고 있는 ‘페코타(PECOTA)’의 개발자로도 유명하다. 통계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에 기반해 쓰였지만 쉽게 읽히는 대중적인 책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롯해 메이저리그, 주식, 체스, 포커 등 다양한 분야의 흥미진진한 예시가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통계라는 쉽지 않은 학문과 엮어 독자에게 이해시키는 저자의 글솜씨가 일품이다. 특히 경제나 스포츠분야의 예시가 방대해 이 분야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이다.

신호와 소음
네이트 실버 지음, 이경식 옮김/더퀘스트

재난의 신호는 작은 숫자에서 시작된다
‘리먼 브러더스 파산’ 정말 예측할 수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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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실 돔 지붕 앞에 광창이 있어 동해 아침햇살이 본존불을 비췄다는 광창설, 법당 밑으로 샘물이 흘러 실내의 결로를 방지했다는 샘물 위 축조설 등 20세기 중반부터 지속돼온 석굴암 원형논쟁의 문제점을 낱낱이 지적한 책이 나와 눈길을 끈다.

20년 넘는 세월을 석굴암 연구에 바친 성낙주 석굴암미학연구소장은 신간 <석굴암, 법정에 서다>를 통해 석굴암 원형논쟁에서 제기된 다양한 학설들을 총망라해 편견과 오류를 지적했다. 1964년 문화재관리국 석굴암 복원공사 50주년을 맞아 출간된 이 책에는 당시 공사를 주도했던 황수영 박사를 추모하는 뜻도 담겨 있다.

20세기 들어 석굴암에선 두 번의 큰 공사가 진행된다. 첫 번째는 일제강점기인 1913년부터 시행된 전면수리공사이고 두 번째는 1964년 7월 문화재관리국의 석굴암 복원공사가 그것이다. 조선총독부는 석굴암 석실법당을 전면 해체하고 전실과 주실 전체를 시멘트로 덮어버렸다.

당초 전실에 철근콘크리트 옥개를 씌운다는 계획과 달리 보호시설물을 설치하지 않았다. 이후 석굴암은 50년간 지상에 노출된 상태로 있었다. 그러다 동국대 총장을 지낸 황수영(1922~ 2011)박사가 주도했던 두 번째 공사에서는 전실전각이 설립됐다. 또 총독부가 씌운 콘크리트 위에 2차로 콘크리트 두겁을 씌우고, 불상의 위치를 수정했다.

저자는 황수영 박사가 주도한 두 번째 복원공사를 두고 “본연의 종교성전으로 되살려낸 광정의 대기록”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훗날 이 공사는 석굴암 원형논쟁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1969년 남천우 서울대 교수가 ‘석굴암 원형보존의 위기-결로 파손을 빚게 된 개악보수를 따진다’는 글을 발표한 게 발단이 됐다.

석굴암 원형논쟁을 일으킨 학자들의 주장을 보면, 주실 안에 채광창이 있을 것이라는 광창설이 있다. 남천우 교수의 지론 중 하나인데, 동짓날 동해 일출 지점과 연결돼 주실 돔 지붕 정면에 아침 햇살을 받아들이는 채광창이 뚫려 있었다는 것이다.

동해의 아침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와 본존불 이마의 백호에 반사돼 주변을 밝게 비춘다는 일본인들의 ‘햇살신화’와 맥을 같이 한다. 이와 함께 나오는 얘기가 석굴암이 개방구조라는 것이다. 때문에 햇살이 들어오는 길을 막는 보호각 설치는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태녕 서울대 교수는 샘물 위 축조설도 제기했다. 석굴 뒤편에서 솟는 샘물의 냉기를 이용해 바닥을 식히면 굴 내의 수분이 아래로 가라앉아 이슬이 바닥 표면에만 맺히고 주벽 등에는 맺히지 않는다는 논리다. 원형논리는 석굴암은 석굴사원이 아니라, 옛날 그리스나 로마에서 유행한 대리석 신전과 비슷한 일반 건축물이란 석조신전설로까지 확대됐다.

저자는 이런 학설들에 대해 “대부분은 토함산의 현실을 무시한 환상과 신비주의의 부산물로 학술적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일단 토목구조상 주실 돔에 광창을 설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며, 채광창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위치는 높이와 각도를 따져봐도 도저히 부처님 상호에 빛이 비출 수 없다는 것이다.

개방구조설과 관련해서도 일제강점기 복원공사로 보호각이 설치되지 않은 탓에 훼손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동해의 소금안개에 절고, 잡목에 덮이고, 강우에 씻기고 토사에 묻히고 폭설에 갇히고 영하의 날씨에 얼어 터지는 말 그대로 수난의 시기”였다는 것이다. 샘물 위 축조설에 대해서도 “바닥에 이슬이 맺히면 스님과 신도들이 석굴암에서 어떻게 기도를 하겠냐”며 일축했다.

더 나아가 석굴암 원형논쟁의 근간에는 일본의 태양신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식민사관의 연장선이라고 피력했다. 그는 광창설과 개방구조설은 동해의 떠오르는 해가 석굴암 본존불을 비춘다는 햇살신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나온 학설로 봤다. 저자의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일제강점기 총독부는 석굴암을 복원하면서 보호각을 설치하지 않았다. 그 뒤 50년간 석굴암 전실은 노천에 방치됐다. 1912년 전실 야차상(가운데)과 1960년대 초 야차상의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사진제공=불광출판사

석굴암을 찾아온 다수의 일본인들은 토함산 중턱에서, 우리의 동해를 ‘햇살에 반짝이는 일본해’라며 감동을 받았다. 일찍이 일본의 민예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는 ‘석불사 조각에 대하여’에서 토함산 일출에 대해 서술한 바 있다. 데라우치 총독도 석굴암에서 ‘일본해’를 내려다보며 감회에 젖었다고 한다. 골동수집가 오쿠다 테이는 아침햇살을 본존불 백호와 직결시켰다.

더 나아가 토함산 햇살 이야기는 일제 때 초등교과서에도 실린다. 여기에는 태양숭배신앙을 갖고 있는 일본인의 정서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일본이란 국호부터 ‘태양의 나라’라는 뜻이며 일장기 역시 태양을 붉게 칠한 것이고, 일본불교는 대일여래를 숭배한다.

저자는 “태양신앙이 투영된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달콤한 이야기를 학자들이 그대로 수용한 것”이라고 비판하며 옛 문헌에도 석굴암과 일출을 결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삼았다. 실제로 <삼국유사> <불국사고금창기> <불국사 사적기>를 비롯해 각종 세시풍속관련 기록, 문사들이 쓴 석굴암 기행문이나 시를 봐도 햇살 신화에 대한 구절은 찾기 어렵다.

오히려 석굴암은 달과 더 가깝다는 주장을 했다. 토함산의 옛 이름은 함월산 또는 월함산으로 ‘달을 품어 안은 산’이란 뜻이다. 뿐만 아니라 1960~1970년대 경주에서는 정월대보름이나 한가위면 토함산서 달맞이를 하고 석굴암을 예불하는 풍습도 전해진다.

“지난 50년간 진행된 석굴암 원형논란은 결국 석굴암 연구를 지체시킨 학자들의 헤게모니 싸움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저자는 시종일관 “1300년 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해온 석굴암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신화와 환상을 걷어낸 석굴암의 맨얼굴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석굴암, 법정에 서다
성낙주 지음/불광출판사

구한말 석굴암이 원형의 기준? 말이 되나
동해 태양이 본존불 비췄다? 석굴암, 신화를 걷어내라
‘석굴암, 법정에 서다’ 낸 성낙주 소장
신비와 환상 걷어내고, 석굴암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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