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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4년 7월 4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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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건물 폭파 협박을 받고도 직원들을 대피시키지 않은 한 독일 기업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기업이 직원들을 대피시키지 않은 것은 대피로 근무시간을 낭비하느니 직원들이 연기 속으로 사라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무리 폭파 협박이 거짓일 가능성이 크더라도 직원의 안전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기업이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문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업이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사소통 전문가 마르틴 베를레가 2년 만에 돌아왔다. 마르틴 베를레가 2012년 출간한 ‘나는 정신병원으로 출근한다’는 회사를 정신병원으로 묘사하며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번에 나온 ‘미치거나 살아남거나’는 그 후속편 격이다. 나는 정신병원으로 출근한다가 나온 이후 독일 전역의 독자들에게 받은 사연과 상담 내용 등이 충실하게 담겨 있다. 저자가 받은 상담메일만 2000여건이 넘는다고 한다.

300쪽이 넘는 책이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저자는 2년전 자신이 경고한 정신병원에서 아직도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환자’들에게 어서 서둘러 탈출할 것을 종용한다. 그는 정신병원이 왜 정신병원인지를 수많은 사례를 바탕으로 상세하게 설명한다. VIP 주차공간에 차를 댔다고 자기 차를 견인당한 직장인, 계부의 죽음은 규정에 없다며 휴가를 주지 않은 기업, 직원 부고를 ‘복사+붙여넣기’하는 인사팀, 소통을 늘리겠다며 직원의 개인공간과 사무실간 벽을 없앤 회사, 경영이 어렵다며 직원 월급은 깎으면서 임원들에게는 성과급을 몰아주는 기업.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일반적인 상식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기업에서는 효율성과 조직문화라는 방패를 앞세워 자행되는 일들이다. 오죽하면 저자가 “독일이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런 말을 덧붙여야 한다. 기껏해야 하루 16시간만 민주주의다. 그러니까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은 빼야 한다. 그곳에선 논리가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사무실 위층에 있는 사람이 무조건 옳다”고 말할 정도다.

마르틴 베를레는 이 책에서 정신병원에서 탈출하는 법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이미 전작에서 어느 정도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사실 생계가 걸린 문제에서 완벽한 해결책이란 나올 수가 없다. 결국엔 정신병원에서 살고 있는 직원들 스스로 탈출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결정할 문제다.

그나마 저자는 마지막에 희망을 이야기한다. 정신병에 걸린 기업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독일의 편의점 체인인 슐레커는 직원들의 연봉을 부도덕하게 억누르다 파산했다. 반면 직원들이 자신의 임금을 스스로 정할 수 있게 한 드럭스토어 체인 ‘디엠(dm)’은 같은 기간에 승승장구했다. 저자는 정신병 기업이 무너진 자리에 합리적인 사고방식의 기업이 들어서면 인간적인 기업문화도 점차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그 때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만큼 지금 당장 정신병원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탈출을 권유한다.

마르틴 베를레는 독일의 사례만을 이야기하지만, 기업 이름이나 사연을 보낸 사람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랜 시간 권위적인 사회 분위기에 익숙했던 한국의 상황은 독일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직장이나 기업에는 ‘중증’ 정신병원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어떨까. 탈출할지 미쳐갈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미치거나 살아남거나
마르틴 베를레 지음, 장혜경 옮김/라이프맵

미치거나 살아남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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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일으킨 문제행동이 탄로 난 순간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반성이 아니다. 사건이 발각된 직후에 바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인간의 심리 면에서 봤을 때 매우 부자연스럽다.”(30쪽)

중고등학교 교사 출신으로 범죄자 교육과 상담을 하고 있는 오카모토 시게키(岡本茂樹)는 리츠메이칸(立命館) 대학 산업사회학부 교수는 “만약 용의자가 검거 직후 반성한다고 말한다면 반드시 의심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개는 자신의 형량을 덜어보려고 계산적으로 말했거나 그저 형식적으로 대답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범죄를 저지르고 곧바로 반성한다고 말하는 용의자는 다른 용의자보다 훨씬 악질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오카모토 교수는 ‘반성의 역설; 반성을 시키면 범죄자가 된다’에서 소년원이나 교도소에서 수형자에게 죄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지나칠만큼 반성을 요구하는 경향에 대해 경고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문에 소년원 혹은 교도소에 들락날락했던 사람일수록 반성에 능숙해진다”는 점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의 마음에 쏙 드는 반성의 기술을 터득하는 것이다. 피고인이 법정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잘못을 뉘우치고 있습니다’하고 말하면 일반 시민들은 그 태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오카모토 교수는 오랜 기간 수형자들을 면담하면서 그들의 진심을 확인했다. 피해자보다는 자신의 부모 등 주변 사람들에게 죄스러움을 느끼거나 형량 줄이기에만 대부분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법정에서 무릎까지 꿇으며 용서를 빌었던 피고인도 예상보다 형량이 많이 나오면 항소를 하는 사례까지 생긴다.

반성을 강요하는 분위기에서는 진짜 반성은 없다”고 주장한다. 반성을 억지로라도 시키려는 일반적인 교육 관념이 오히려 반성할 줄 모르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는 주장이다. 잘못한 사람을 진정한 참회로 이끌기 위해서는 오히려 반성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반성의 역설
오카모토 시게키 지음, 조민정 옮김/유아이북스

속지말자, 다 거짓말이다…오카모토 '반성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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