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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회화란 세계의 피부에 매달리는 간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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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인 저자가 서양 회화 작품 중 51개를 뽑았다. 왜 51개 작품, 51명의 작가일까? 아직도 이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그림을 읽어주는 방식으로 전개한다. 미술관에서 도슨트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미술비평가적 시각’을 유지한다. 장점이다. 그림에 대해 미처 보지 못하는, 설명을 듣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부분을.

책에서 말하려는 내용과 무관하게 책을 보며 생기는 의구심, 다시 이 책을 보았을 때 생각할 거리에 대해 적었다. 저자의 방식과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일 뿐 책의 내용을 오롯이 전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의 내용은 글에 대한 생각과 의견이다.



회화란 세계의 피부에 매달리는 간절한 일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다. '세계의 피부'라는 게 뭘까? 몇 번이고 곱씹어도 잘 모르겠다. 모른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   저자의 다른 설명을 읽어도 '탁'하고 들어오질 않는다.

회화란 세계의 피부에 매달리는 간절한 일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지닌 얇은 피부의 표면을 회처럼 떠내는 일이다. 그러니까 작가는 특정 공간의 피부를 그렸는데 그 피부는 죽은, 사물화 된 벽만은 아니다. 분명 건축물은 생명체는 아니지만 그 말없는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빛이고 공기의 흐름이고 온도와 바람이다. 그 양과 농도의 정도에 따라 공간은 다채로운 표정으로 환생한다. 그것이 공간으로 스며들고 안개처럼 퍼져나가면서 모든 표면을 애무하는 것이다.)


무엇을 그리는가보다, 어떻게 그리는가가 문제다. 최종 생산물인 작품을 결정짓는 것은 언제나 ‘어떻게’ 그리는 가이다.  
—로버트 라이먼

(책에서 인용한 이유는 아마도 … 그림을 본다는 것은 작가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보는 이가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손을 떠난 그림은 이미 작가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느끼고 이해하고 바라보는 나의 것임에 틀림없다.)

이 책은 서양미술사를 기술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서양미술사에서 회화만을 추리고 그중에서 최고의 회화 작품을 선별해보고 싶었다. 나만의 서양 회화 수집 목록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최고’라는 말에 딴지를 걸고 싶다. 뭐가 최고인가? 생각은 제각각 다르겠지만 ‘나만의 회화 수집 목록’이라는 말에 바로 수긍했다.)

여기 선정된 그림은 철저하게 나 자신이 매혹된 회화작품이다. 그렇게 매료된 작품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 회화가 무엇인지 엿보고 싶어서 그것을 글로 썼다.

(의구심을 가지고 되묻는 독자를 위해 다시 말한다. “여기 선정한 그림은 철저하게 나 자신이 매혹된 회화작품이다.” 의구심 보다 선택한 그림을 쫓아가는 게 좋은 듯하다.)

작가 51명의 대표 작품 한 점씩을 선정했고 작품이 제작 순서에 따라 배열했다. 독자가 서양 회화가 어떤 흐름 속에서 진행되어 왔는지, 그리고 각 작품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면서 이어져왔는지를 입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기를 원했다. 결국 서양미술사에서 회화란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되고자 했는지를 해명하고자 했다.

(저자의 의도와 다르게 읽힐 것이다. 순차적으로 읽기를 원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순차적으로 영향을 주었을 리 없었을 것이라 믿는다.)



작가마다 회화에 대해 지녔던 독창적인 관점과 해석, 그리고 이를 실현한 독특한 방법론에 주목하고자 했다. 작가의 전기적인 사항이나 에피소드, 관련 활동 등은 가능한 한 배제했다. … 미술비평적인 시각을 유지하면서 글을 써 내려갔다.

(그림이 주는 의미와 분석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기존 그림을 차용한 책과 다름을 보여준다. 공감 가는 부분이다. 미술평론가, 큐레이터의 관점에서 아쉬웠던 점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책이 그런 것은 아니나, 많은 그림을 보여주는 책이 그림보다 그림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는 공감한다.)

시중에는 서양미술에 관한 상당한 양의 책이 쏟아져 나와 있다. 미술사가나 평론가뿐만 아니라 인문학자, 철학자, 미술기자, 도슨트 내지 열정적으로 그림을 사랑하는 이들이 저마다 그림을 고르고 이에 대해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있다.

그러나 그림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정보를 전달하는 해설서 내지 그림을 빌린 문학적인 에세이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생각이다. 그림을 보는 안목보다는 이야기가 될 만한 것을 가져다가 다소 장황하게 서술하는 식이다. 작가의 삶과 그의 행적, 에피소드, 그리고 익히 알려진 상식을 반복하면서 결론적으로 기존의 사실을 계속해서 재생산하는 경우다. 한편 당대의 철학자나 인문학자가 그림을 통해 자신의 사유를 소개하는 경우 제한된 작가, 작품만이 반복해서 등장하고 아울러 작품 자체의 질에 대한 논의보다는 인문학적인 의미만이 도해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미술에 대한 사유의 폭을 넓히고 작품 해석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가능하게 해주는 반면 특정 논리의 체계 안에서 한정된 그림만을 읽게 한다는 생각이 이 책을 쓰게 한 또 다른 동기다.

(기존 책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한다. 지금껏 보아 온 많은 미술책일 것이다. 그림을 오롯이 그림으로 보여주지 않고 그림을 통해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그림이 주체가 아니라 보조제로 쓰인 많은 책.)

우리 눈은 항상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호기심 많고 지칠 줄 모른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그림 안에서 해독하고 느껴지고 인지될 수 있는 대상, 얼룩, 흔적을 찾는 행위와 다름없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지적 허세를 충족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해독하고 해석해서 ‘대상, 얼룩, 흔적을 찾는 행위’이다.)

(그래서 결국 그림은 …) 그림은 구상이자 추상이면서 환상이고, 실재이기도 하며, 동시에 그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달아난다.

본다는 것은 사유하는 것이다. 예술의 역할은 인간으로 하여금 보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며, 예술에서 보는 것이란 직관을 의미한다. 이 직관은 지적 지식이 아니라 대상의 내부로 뚫고 들어가 대상이 가진 내성과 합일하는 공감이다. 선입견이나 학습에 의해 내재화된 시선에서 벗어난 안목이다. 일정한 조망의 거리를 확보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사유하고 깨닫고 인식한다.

(그림도 글과 마찬가지로 사유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회화란 단순하게 말해 평면에 환영을 주는 장치다. 회화의 개념은 매 시기마다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고 당대의 테크놀로지와 이미지 사이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삶을 부여받는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치면서 회화는 사실상 무력해졌다. 구상과 추상회화란 이미 과거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회화는 죽지 않고 매번 새롭게, 다르게 출현해서 다시 살아날, 그리고 죽어갈 기회를 엿본다.

(그림을 설명하는 책을 읽어야 할 이유이다. 구상과 추상회화가 이미 과거의 것이라는 것은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매번 새롭게, 다르게 출현해서 다시 살아난다. 보여주는 형태만 바뀐 것이다.)

인간은 항상 자기를 중심으로 사물과 세계를 본다. 그러나 사물은 이미 나와 무관하게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사물이라 부르는 것은 우리의 선입견에 의해 지배되고 있고, 폭력을 수반하는 종교와 도덕법칙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이런 사물을 지워내고 원초적인 사물의 모습을 홀연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예술의 영역에서 만나는 사물이다.

(선입견을 버리고 사물을 바라보자. 늘 편견에 자유롭지 못한 게 인간이다. 선입견은 편견이 된다. 편견은 사물과 세계를 왜곡하여 보이게 한다.)

그림 감상이 화가가 그려놓은 구도와 색상을 보는 것에서 멈춘다면 화가와 감상자, 작품과 감상자 사이에 깊은 교감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훌륭한 그림이란 말을 거는 그림일 것이다. 그림은 분명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으며, 그림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진정 살아 있는 그림이 된다.

(글을 읽는 것과 같다. 행간을 읽어야 한다. 그림을 본다는 건 작품이 말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듣는다는 것은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그림이다. 살아있는.)

—『오직, 그림』, 박영택

 

오직, 그림 : 알라딘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등으로 활동하며 34년 동안 현대미술의 이론과 현장을 두루 살핀 박영택 경기대학교 교수의 정수가 담긴 책 『오직, 그림』이 출간되었다. 서양미술사에서 결정적인 변화

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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