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카로프(Joe Caroff), 1921년 8월 18일 ~ 2025년 8월 17일
1962년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닥터 노의 로고 제작을 의뢰받았을 때, 그래픽 디자이너 조 카로프는 007의 마지막 숫자 줄기가 월터 PPK 권총의 손잡이와 닮았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는 비밀 요원의 번호와 무기를 하나의 휘장으로 결합했다. 구불거리는 기울임은 화려함과 위험을 동시에 전했다. 처음에는 회사 레터헤드에 쓰일 디자인으로 300달러를 받았지만, 로고는 존 배리의 주제곡처럼 즉시 알아볼 수 있는 상징이 되었다.
카로프는 이후 로고가 재작업하는 과정을 불만스럽게 여겼다. “내 자존심이 상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만든 것은 내가 한 것만큼 좋아 보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본드 로고에서 보여준 간결함을 작품 전반에서 추구했다. 수백 편의 영화 포스터, 데카 레코드 앨범 표지, ABC·오리온 필름·뉴욕 경마협회 로고를 비롯해 다양한 기업 상징을 만들었다.
영화 포스터 작업은 동시대인 사울 배스보다 덜 추상적이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의 화재 탈출구 포스터는 자주 배스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실제 제작자는 카로프였다. 그는 비유적 요소를 활용해 감정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방식을 즐겼다. 황야의 무법자(1964), 석양의 무법자(1965)에서는 난폭한 총잡이를 콜라주 했고, 카바레(1972)에서는 수직으로 길게 늘어진 제목 위에 떠들썩한 라이자 미넬리를 배치했다. 파리의 마지막 탱고(1972) 포스터에서는 화려한 글자 아래 누운 말론 브란도를 통해 퇴폐적이고 애절한 분위기를 표현했다.
그는 007 로고에 대한 로열티를 받지 못했고, Eon 프로덕션에 뒤늦게 신용을 요구했으나 응답을 받지 못했다. 이름 없이 작업을 남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 장인으로서 드물게 인정받기를 바란 요청이었다.
2021년, 독일 미술 감독이자 역사학자인 틸로 폰 데브스키츠가 그래픽 디자인 잡지에 그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연재를 싣고서야 카로프의 이름은 다시 주목받았다.
그는 고객에게 여러 시안을 제시하지 않았고,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반복 작업을 이어갔다. 이 과정을 “이질적인 것의 소멸”이라고 불렀다.
뉴저지 린든에서 태어난 그는 벨라루스 출신 유대인 이민자 가정의 아들이었다. 아버지 줄리어스는 도장공이었고, 어머니 패니는 가정을 돌보며 조와 형제자매를 키웠다.
예술은 어린 시절부터 삶의 중심이었다. 네 살 때 친구가 가져온 수채화 세트로 흰 여름 정장을 다시 칠했고, 뉴어크 예술고에서 공부하며 아방가르드적 미학을 추구했다. 그는 입체파 양식으로 그린 사과 그림을 아버지에게 보여줬다가 “이게 사과를 그리는 방식이냐”는 말을 들은 일화를 회상했다.
1942년 브루클린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광고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입체파 화가 장 칼루의 사무실에서 조수로 일하며 개념적 명확성을 배웠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 공군에서 복무했고, 전후에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노먼 메일러의 데뷔작 The Naked and the Dead(1948) 표지를 맡으며 이름을 알렸다.
1965년에는 J Caroff Associates를 설립해 2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여러 영화 포스터를 동시에 제작했다. 포스터에는 종종 팝아트적 장난기가 담겼다. 비틀즈의 A Hard Day’s Night(1964) 포스터의 매듭진 기타 넥이 대표적이다.
우디 앨런과는 오랜 협업을 이어가며 맨해튼(1979), Zelig(1983) 등 12편의 포스터를 만들었다. 그는 글자와 개념을 결합해 메시지를 강화하는 방식을 즐겼다. 위대한 기차 강도(1978)에서도 같은 기법을 썼다.
논란의 포스터도 있었다. 타투(1981) 포스터는 여성 혐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1988)에서는 가시관을 붉고 검은 추상으로 표현해 보수적 기독교계의 반발을 샀다. 그러나 마틴 스코세지는 이를 영화 타이틀 시퀀스에 그대로 사용했다.
2006년 은퇴 후에는 그림에 전념했다. 아내 필리스와 함께 헌터대 사회복지학과 학생 장학금을 후원했으며, 필리스는 올해 2월 세상을 떠났다.
카로프는 “해답은 빨리 나타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억지로 붙잡고 있으면 소용없다. 그럴 땐 책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아들 피터와 마이클, 손녀 제니퍼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
Joe Caroff obituary
American graphic designer who created the 007 pistol logo for the James Bond films
www.theguard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