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檢察), ~ 2025년 9월 26일
민주화는 권위주의의 직접적 폭력을 약화시켰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권력의 공백이 생기면 누군가가 그 자리를 메운다. 한국의 경우, 군부와 정보기관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과정에서 검찰이 그 공백을 차지했고, 오늘날 사실상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조직으로 자리 잡았다. 이 아이러니는 민주화가 곧바로 모든 권력 집중을 해소하지는 못함을 보여준다.
권력 구조의 계보: 누가 ‘국가 권력’의 주인이었나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기에는 경찰이 정권의 핵심 통제 도구 역할을 했다. 언론 통제, 학생 · 시민 동원, 반공 통치 등에서 경찰력이 동원되며 정권 유지를 보조했다는 역사적 평가가 있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등장한 뒤에는 정보기관과 군부의 비중이 커졌다. 중앙정보부(중정)와 방첩사(보안사) 등 군 · 정보 조직은 치안 · 정보 · 탄압 기능을 내부화하며 권력의 실질적 집행자가 되었다. 정권은 정보를 통해 사회를 관리했고, 그 시스템은 군사독재의 도구로 작동했다.
그러나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하나회 핵심 인물이 숙청되고, 군부 핵심세력은 크게 약화했다. 이 숙청은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낮추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만큼 권력의 빈자리를 남겼다.
권력의 빈자리를 메운 조직, ‘사냥개’ 검찰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오랫동안 정권의 ‘사냥개’ 역할을 해온 검찰이었다. 검찰은 형사사법 체계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중심으로 한 권한 구조를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다. 형사소송법과 관행은 검찰 중심의 수사체계를 만들어 왔고, 이는 권위주의 시기에도 유지되었다. 민주화 이후 군부가 빠져나가자, 검찰은 제도적 · 관행적 장치를 바탕으로 권한을 확장하며 새로운 중심 권력으로 떠올랐다.
검찰이 가진 구조적 이점은 명확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보유함으로써 사건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전 과정을 통제할 수 있다. 기소 여부와 수사 방향을 결정하는 재량권은 정치적 · 사회적 영향력으로 연결된다. 또한 검찰의 수사 과정과 결정은 대체로 공개 전에 검찰 내부에서 이뤄지므로, 통제와 책임의 빈틈이 생기기 쉽다.
어떻게 권력이 ‘정치화’되는가
검찰권의 집중은 여러 방식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낳았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사와 기소는 정치적 견제 수단으로 쓰이기도 하고, 수사 발표와 언론 보도 연결은 여론을 형성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권한이 집중된 조직은 스스로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쉽고, 그 정당성은 ‘법과 정의의 수호’라는 명분으로 포장된다. 하지만 명분과 실제 권력 행사는 별개다. 민주적 통제 장치가 약한 상태에서는 권한 남용과 정치적 편향이 문제로 드러난다.
결과와 과제
검찰의 부상은 민주화가 낳은 역설이었다. 이 과정은 단순한 권력 이동이 아니었다. 권력의 주체만 바뀌었을 뿐, 중앙집권적 구조와 권한 집중은 여전히 남아 있다. 민주화는 권력의 외형을 바꿨지만, 제도적 견제와 권한 분산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
국회는 검찰청을 폐지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기소 기능은 법무부 소속 공소청이 전담하고, 수사 기능은 행정안전부 소속 중대범죄수사청으로 이관된다. 이제 검찰은 그 권력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고 해체의 길에 들어섰다. 검찰 사망을 알리는 신호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다. 권력이 다른 이름과 조직으로 재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권력의 분산과 견제, 투명성이다. 민주주의는 제도를 바꿨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감시와 수정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검찰 사망은 끝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가 맞이한 새로운 시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