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라는 질문은 결과를 묻는 것이 아니다.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이다.
사고력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나타난다.
질문은 철학의 핵심 가치다.
위대한 철학자는 예외 없이 ‘왜’를 알고 추구한다.
끊임없이 질문하며 자신이 뜻하고 추구하는 진리를 찾아 나선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근사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배운다는 것은 의문을 풀어가는 것이다.
먼저 자신이 가진 의문을 없애고,
그다음 의문이 없는 곳에서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 배움의 진전이다.
공부의 진정한 가치는 의문을 품고
질문을 통해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에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였다.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만 답을 찾아야 한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입을 막을 의도가 아니라면
양자택일형 질문을 하지 말아야 한다.
‘왜’라는 질문을 인색하게 여기거나
허용하지 않는 문화가 더 문제다.
‘왜’는 과정의 질문이다.
사고력은 과정 속에서 드러난다.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바꿔라.
유연하게 질문을 바꿔라.
질문할 수 있다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을 판단하려면 그의 대답이 아니라 질문을 보라.
일하는 사람은 결코 질문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질문은 많이 알아야 나온다.
자신의 제품과 서비스,
시대적 상황,
소비자가 처한 맥락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사전 지식이 충분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도 나오지 않는다.
Garbage In, Garbage Out.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
열린 마음으로 질문해야
좋은 질문이 나온다.
특히 한국인은
상대에게 대놓고 싫은 소리를 잘하지 않는다.
그래서 질문은 더욱 열려 있어야 한다.
Open–Ended Questions, 열린 질문이 필요하다.
닫힌 질문은 Yes 아니면 No밖에 답할 수 없다.
단순히 확신을 얻기 위해서는 충분하지만
세상을 넓게 보는 질문은 아니다.
물음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물음이 위대할수록 성장의 폭도 크다.
꼭 위대한 질문이 아니어도 된다.
의구심 자체가 이미 위대하다.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행복을 알아차리는 길인가?
이 질문 속에서 저자는 긍정을 발견했다.
긍정은 삶에 대한 태도,
고개 끄덕임,
인정, 받아들임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현실을 부정하며 살면,
그 삶은 용기 없는 겁쟁이의 삶이다.
받아들임은 아름답고 용기가 필요한 행위다.
너무 당연해서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에게
‘왜 안 돼?’라고 물어보라.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과 발상의 전환은
여기서 시작된다.
Why not!
하지만 창의력은 열심히 한다고 생기지 않는다.
창의력은 잉여 생활에서 나온다.
조금 느리게 살아도 된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라.
호기심의 온도를 유지하라.
상상력과 창의력을 갖추면 좋지만,
하나 없어도 괜찮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질문을 멈추지 마라.
인생은 객관식이 아니다.
답이 하나일 필요도 없다.
정답과 오답이 나뉠 필요도 없다.
때로는 여러 답을 모아야 제대로 풀린다.
왜 그런지 궁금하다.
왜 그런지 궁금하다.
왜 궁금한지 궁금하다.
왜 궁금한지를 왜 궁금해하는지가 왜 궁금한지 나는 궁금하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세상의 모든 것이 수수께끼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는 재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