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략은 틀린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틀렸다고 인정하지 않는 순간이다.
히틀러는 갑자기 등장한 괴물이 아니었다. 그는 신호를 읽었고, 그 신호에 따라 움직였다. 라인란트, 오스트리아, 그리고 주데텐란트까지. 영국과 프랑스는 매번 한 걸음씩 물러섰다. 전쟁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선택은 또 다른 신호가 되었다. 더 나아가도 괜찮다는 신호. 뮌헨에서 체임벌린이 들고 온 ‘평화’는 사실상 전쟁의 예고장이었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왜 그들이 틀렸다고 쉽게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우리는 정말 다르게 행동하고 있는가.
이 책이 겨누는 것은 특정한 역사적 실패가 아니다. 그 실패를 가능하게 만든 사고의 방식이다. 우리는 상대를 이해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 기준으로 해석할 뿐이다. ‘거울 이미지’. 상대도 나처럼 생각하고, 같은 의미로 신호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가정. 소통은 이 가정 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어긋난다.
히틀러를 상대하던 유럽은 그를 ‘합리적인 행위자’로 이해했다. 스탈린은 독일이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들은 정보를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잘 안다고 믿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남겼다. 전략은 그 위에서 만들어졌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과거로 밀어 넣는다. 그러나 이 책은 묻는다. 정말 과거의 이야기인가. 우리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판단하고 있지 않은가. 상대도 나와 같은 정보를 가지고,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고,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고 있지 않은가.
전략은 언제 틀리는가. 상황이 바뀌었을 때가 아니다. 그 상황을 다르게 해석할 가능성을 닫아버렸을 때다. 반대 의견이 사라지고, 질문이 사라지고, 확신만 남았을 때. 그때 전략은 이미 틀릴 수 없는 구조가 된다.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 틀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 책의 결론은 단순하다. 완벽한 전략은 없다. 전략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중요한 것은 맞는 전략이 아니라, 틀렸을 때 바꿀 수 있는 태도다. 그러나 우리는 그 태도를 가장 늦게 배운다. 아니, 끝내 배우지 못하기도 한다.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정말 상대를 이해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해하고 있다고 믿고 싶은 것인가.
그리고 더 불편한 질문.
우리는 지금, 무엇을 틀릴 수 없다고 믿고 있는가.
우리는,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결정하고 있지 않은가.
덧_
아쉬운 점.
독일연방군 지휘참모대학교, 독일군 정예 장교, 참모, 제독을 교육하는 최고 수준의 군사·정치 훈련 기관을 위해 쓰인 만큼, 일반 독자가 따라가기에는 다소 거리가 느껴진다.
번역은 아쉬움을 남긴다. 몇몇 문장은 한 번이라도 읽어봤다면 그대로 두기 어려웠을 표현이다. 이는 단순한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텍스트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처럼 보인다. 문장이 걸리는 순간, 사고의 흐름도 함께 끊긴다.
—잘못된 전략 (외교 역사와 이론으로 살펴보는 국제정치 속 오판의 메커니즘)- 비어트리스 호이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