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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 탄생 100돌… 들뜬 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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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 탄생 100돌… 들뜬 칠레

지난 12일 칠레 남쪽에 있는 도시 파랄의 철도역. 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리카르도 라고스 칠레 대통령 등 500여명이 역앞에 운집했다. 197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사진) 탄생 100주년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이곳만이 아니었다. 칠레 전역에서 이날 네루다의 문학과 그의 삶을 되돌아보는 행사가 열렸다. 한마디로 네루다 열풍이라고 할만했다.

시 인·외교관·상원의원·대통령후보 등 경력이 참으로 화려한 네루다는 방랑자적 생활과 사랑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남미 최고의 시인이라 해도 무방하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탄생 100주년 행사가 이처럼 거국적으로 벌어진 시인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네 루다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이 팔려 허물어진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네루다를 기리는 열기가 이처럼 뜨거울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 기념행사의 책임을 맡은 관리 하비에르 루이 에가나는 “칠레 국민들이 뒤늦게 네루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고 말했다.

칠레 출판계의 한 인사는 “네루다는 더 이상 칠레를 가르지 않는다”라는 표현으로 네루다의 역할을 강조했다. 네루다가 칠레 통합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네루다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이 이끄는 군사 쿠데타 발생 12일 후인 1973년 9월 11일 6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04년 7월 12일 파랄에서 태어난 네루다의 대표 작품 중에는 20세에 발표한 '스무편의 사랑시와 한편의 절망 노래'(1924)와 '모든 이를 위한 노래'(1950), '100편의 사랑노래'(1960)가 들어 있다.

그의 작품들은 피노체트 집권 17년 동안 판매가 금지됐었다. 그는 수줍음을 잘 타는 성격이었다. 세 번 결혼한 그의 곁에는 언제나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던 연인이 지키고 있었다.

네루다는 산티아고에서 서쪽으로 1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슬라 네그라에서 세번째 부인 곁에 잠들어 있다.

< 출처 : 중앙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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