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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

사로잡힌 악령

요즈음 신문을 보고있으면 왜  10년도 넘은 소설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초판이후에 사라진  단편소설.
하지만 
힘이 없는 악은 의미가 없다. 악이 악다워지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완숙한 악은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면 파괴되지도 절멸되지도 않는다.

이 말이 머리를 맴돈다. 누구를 떠 올리는 것은 무리한 억측이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구나 생각은 다르다.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사물과 마찬가지로 악도 태어나고 자라고 성숙하고 늘고 죽는다. 악의 태어남은 여러 외형을 가지지만 거짓과 뻔뻔스러움과 천박한 허영은 그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힘이 없는 악은 의미가 없다. 악이 악다워지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권력이든 물리적인 폭력이든 재력이든, 지식이나 기술 혹은 특수한 재능이든 상대를 강제하거나 마비시킬 수 있는 힘을 지녀야만 악답게 자랄 수가 있다.

힘을 가지고 자라난 악은 또 나름의 성숙을 지향한다. 악이 공격성을 드러내면 사회의 대응도 적극적이 되어 분쇄 혹은 절멸의 의지로 나타나지만 그같은 사회의 대응을 견뎌낸 악은 보다 강한 내성을 얻어 더욱 굳건히 자라 가며 분식할 탈을 세련시킨다.

어떤 악은 제 키를 가리고도 남을 면죄부를 찾아내 완숙해진다. 완숙한 악은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면 파괴되지도 절멸되지도 않는다.

아우와의 만남 - (둥지출판사) / 1994
*책 머리에
아우와의 만남 / 만강에서 / 홍길동을 찾아서 / 시인과 도둑 / 미친 사랑의 노래 / 시인의 사랑 / 황장군 전 / 사로잡힌 악령 /
*이문열 중 단편소설의 문학사적 의미
*이문열 작품 연보

그런데 여기서 독자 여러분에게 당부할 게 하나 있다. "사로잡힌 악령"을 읽다 보면 어떤 특정한 시인이 떠오를지 모르나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로 읽어 주길 바란다. 내가 더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악에 대한 우리의 심리적 대응 방식이었지 작품의 인물이 아니다. 내 주제를 담기에 적합한 인물을 만들다 가다 보니 우연히 현실과 사실의 혼동에서 오는 오해에 나는 어지간히 질력이 나 있다.[작가의 서문 中]

지난 1994년 이문열 씨는 《아우와의 만남》(둥지출판사)이라는 중·단편 모음집을 펴냈다. 여기서 한동안 문제가 됐던 것이 바로 〈사로잡힌 악령〉이다. 고은 씨라고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그’라는 화자를 통해 이문열씨는 고은 씨를 연상케 하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그’는 유명한 스님(고은 씨의 경우 효봉 스님) 밑에 상좌로 들어가 명사(名士) 사냥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다진 후 신분의 혜택에 힘입어 문단으로 적을 옮긴다. 그 후 추악한 짓과 교묘하게 시대적인 흐름에 편승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욕구와 야망을 채운다. 색주가인 그는 민주화 운동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시대에 편승함으로써 언제부터인가 민중시인이자 저항시인으로 탈바꿈한다.

물론 시국사건에의 연루, 투옥, 고문, 재판, 중형으로 이어지는 수난의 이미지는 대중적인 지명도를 전국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그가 편승한 대의는 지식인 사회에서까지 그 명성의 실질을 보장해 주었다고 말한다. 계속 이어지는 글에서 이문열 씨는 ‘그’는 어떤 일간지의 지면을 빌어 자서전을 연재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것은 고은 씨가 신문에 연재했던 〈나 고은〉을 빗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까닭에 〈사로잡힌 악령〉은 초판 이후 시비가 불거지면서 《아우와의 만남》에서 삭제된다. 이것을 안 고은 씨는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아마 크게 분노했을 것은 뻔하다. [출 처 : 고은의 만해론을 비판한다]

아우와의 만남
이문열 지음/아침나라(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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