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노래는 하나도 모른다.
지금은 그녀가 너무 예쁘다. 성형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천진함이 좋다. 이제 연기자로 자리를 잡은 그녀에게 희망과 꿈이 늘 하기를 바란다.
그녀를 바라보는 나또한 그녀 덕분에 행복하다.
그녀에 대한 인터뷰이다. 재미있고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꾸미지 않은 톰보이, 배우 윤은혜의 재발견 | |
|
|
|
|
드라마 ‘커피프린스…’서 남장여자 열연 신채경에서 고은찬까지… 단 세편의 드라마로 아이돌 꼬리표 떼 오기ㆍ독기로 배역에 몰입… 더이상 그녀의 연기력을 논하지 말라
뽀얀 피부에 맑고 동그란 눈동자는 예전 그대로였다. 어눌한 발음에 툭툭 내뱉는 듯한 무신경한 말투도 달라진 게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느새 아이돌그룹 시절의 윤은혜를 잊어버렸다. 단지 짧게 자른 머리로 남장여자 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일까. 단 세 편의 드라마로 ‘베이비복스의 막내’라는 수식어를 떼어내고 연기자로 발돋움한 윤은혜(23)의 이야기.
▶소녀장사 윤은혜
1999년 걸밴드 베이비복스의 멤버로 데뷔한 윤은혜의 별명은 ‘리틀 성유리’였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핑클의 성유리처럼 예쁘장한 얼굴에 인형처럼 서 있는 여자 아이. 윤은혜는 그랬다. 유달리 노래를 잘하거나 춤을 잘 추는 것도 아니어서 다섯 명이나 되는 언니 멤버들 사이에서 주목받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열심히 눈에 띄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니었다. 있는 듯 없는 듯했던 윤은혜는 수명이 짧은 편인 아이돌 그룹이 해체됐을 때 ‘가장 할 일이 없을 것 같은’ 멤버 중의 하나였다.
그러던 그가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예능 프로그램. 베이비복스 해체 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게임을 하면서 윤은혜라는 캐릭터가 각인되기 시작했다.
예능 프로그램 속 윤은혜는 학창시절의 추억을 묻는 질문에 “연예계 활동 때문에 너무 피곤해 잠을 잔 기억밖에 없다”고 당황스러울 만큼 솔직하게 대답했다. 지난 2004년 그리스 올림픽 때는 ‘그리스는 왜 새벽에 축구하죠?’라는 엉뚱한 질문을 던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SBS ‘일요일이 좋다-X맨’ 코너에서는 웬만한 남자 연예인들을 씨름으로 넘어뜨리곤 해 한동안 ‘소녀장사’로 통했다. 이른바 ‘이미지 관리’가 없는 연예인 윤은혜의 장점은 거기 있었다. 그다지 달갑지 않았을 ‘소녀장사’라는 별명에도 싫은 내색보다는 무심한 반응을 보였다. 스무살 또래에 섞어놓으면 구분이 어려울 만큼 스타의 화려함보다는 자연스럽고 풋풋한 모습 그 자체였다. 언제나 털털하고 거침없는 윤은혜는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 스타 반열에 올랐다.
▶털털함의 극대화, 고은찬
드라마 ‘궁’은 윤은혜를 새롭게 발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박소희의 인기 만화 ‘궁’이 드라마로 제작된다고 알려지면서 동시에 주인공 채경 역에 윤은혜가 낙점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각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윤은혜의 캐스팅을 비난하는 글들이 이어졌다. 원작에서 날씬하다 못해 마른 체형인 주인공 역에 ‘소녀장사’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이 같은 반대 여론은 윤은혜의 배우 데뷔에 만만찮은 걸림돌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정작 윤은혜는 의연했다. “가수로 활동할 때도 즐거운 마음으로 했고, 연기를 하는 지금도 정말 즐겁다”는 것이 윤은혜의 반응이었다.
즐기는 자가 노력하는 자를 이긴다고 했던가. 윤은혜가 즐기면서 연기했다는 MBC 드라마 ‘궁’은 20%를 넘나드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교복 치마 속에 체육복을 입고 낡은 운동화를 꺾어 신고 다니는 황태자비는 10대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었다. ‘대략난감’ 등 유행어는 물론 윤은혜가 직접 쓴 글씨도 ‘신채경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누렸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줬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어눌한 말투, 샐쭉한 표정의 윤은혜는 여고생 채경과 자연스럽게 동화됐다. 윤은혜의 발랄함은 곧 신채경의 발랄함이었다.
지난 여름 방송된 KBS 드라마 ‘포도밭 그 사나이’는 윤은혜의 진가를 재확인한 작품이다. 시골청년과 사랑에 빠지는 깍쟁이 도시처녀 지현은 예쁘고 귀엽지만 털털하고 솔직한 여자라는 점에서 채경의 연장선이었다.
‘포도밭 그 사나이’에서 윤은혜는 뛰어난 미모가 아니어도, 뭇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모델 같은 몸매가 아니어도, 예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평균 이상의 미모에 성격도 좋을 것 같은 여자. 인기 가수 출신에서 연기자로 벼락 데뷔해 화제작 주연을 꿰찬 윤은혜는 그렇게 평범함 속에서 특별한 매력을 찾아나갔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인 연기자들처럼 윤은혜도 ‘연기 변신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성숙한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그러나 아직은 이르다는 생각이에요. 그냥 드라마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길 바랄 뿐이에요.”
MBC 월화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은 윤은혜의 장점인 평범함과 털털함을 극대화시켰다. 이번엔 남장여자. 누가봐도 남자로 보이는 소녀 가장 고은찬 역이다. 가사를 돕기 위해 신문배달, 인형 눈 붙이는 작업, 태권도 강사 등 안 해 본 일 없는 은찬은 남장을 하고 커피전문점에 취직해 사장 한결(공유)과 사랑에 빠진다.
사실 윤은혜는 드라마 출연에 앞서 여자로서 ‘파격’이라고 할 만한 남장여자로의 변신에 망설였다고 털어놨다.
“감독과 처음으로 상의한 부분이 머리카락 자르는 거였어요. 작품은 좋지만 나도 여자라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소녀장사’라고 불리다가 예쁘다는 얘기를 들은 지도 얼마 안 됐고요.(웃음) 그래도 역할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 머리카락은 과감하게 포기했어요.”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지난 2일 첫회가 방송된 이후 시청률은 20%를 넘어 30% 고지를 바라보고 있다. 게다가 남자처럼 짧게 자른 머리에 너덜너덜한 청바지 차림의 윤은혜는 그 어느 때보다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선머슴 같은 차림에 언뜻언뜻 비치는 예쁘장한 얼굴도 그렇지만 성격 좋고 일 잘하는 은찬은 윤은혜가 그동안 쌓아온 털털한 이미지에 귀여움까지 곁들여졌다.
“이번 작품을 통해 많은 걸 얻었어요. 많은 분들이 제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좋아하신다는 것도 그렇고요. 드라마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영화도 보고 공부를 많이 했어요. 연기 동작 하나하나에도 신경 쓰게 됐어요. 머리카락을 자르고 남자처럼 행동하는 연기를 하다 보니 이제는 앉을 때 다리가 벌어지기도 해요. 그렇지만 남자처럼 보이려고 의도적으로 과장하진 않아요. 남자 같지만 사랑스러운 모습이 있는 은찬을 귀엽게 봐주시도록, 찾아봐 주시도록 연기해야죠.”
▶“연기자라고 생각하고 연기하지 않아요.”
가수에서 연기자로 안착한 성공사례로 꼽히는 윤은혜는 정작 스스로를 ‘연기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수로 활동할 때도 가수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지금도 제가 연기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편 부정확한 발음 등 연기력 논란은 윤은혜를 계속 따라다녔다. 작품 운이 좋아 매력 있는 캐릭터를 맡았을 뿐 윤은혜의 연기력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런 비판은 윤은혜의 작품 선택 능력이 탁월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윤은혜의 작품 선택 기준은 뭘까.
“드라마를 고르는 데 특별한 선별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제가 전문가도 아니고요. 괜히 욕심부렸다가 어울리지 않는 역할은 피하고 싶어요. 그냥 새 작품이 들어왔을 때 저를 대입시켜 보는 거죠. 저를 그려봤을 때 상상이 되고 좋은 기분이 드는 작품이요. 작품 선택 때문에 고심해본 적은 없어요.”
겸손하면서도 무신경한 대답에서 윤은혜의 인기 광고 CM송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괜찮아 잘될 거야’를 외치며 우울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콘셉트의 녹차 광고. 광고 속의 낙천적인 성격과 씩씩함은 실제의 윤은혜가 갖고 있는 장점이기도 하다.
낙천적인 성격은 윤은혜를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동료 연기자들 사이에서 소문난 노력파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의 동료배우 공유는 “윤은혜가 남자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래방에서 소리를 하도 소리를 질러 목소리가 쉰 채로 대본연습 장소에 왔더라”며 감탄했다. 김창완 역시 “몸 사리지 않고 도전하는 여배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노력하지만 욕심내지 않는 것. 연기자 윤은혜의 변신과 성장에 기대를 걸게 하는 충분한 이유다.
김하나 기자(hana@herald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