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行間/새로 나온 책

2012년 3월 3주 새로 나온 책

반응형

세 모녀 에코페미니스가 귀농해 15년 동안 텃밭을 일구며 살아온 성장기를 담은책. 서울대 출신인 싱글맘 '도은'이 두 딸과 함께 산골에서 생활하며 자연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여정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진다.

자연 속에서 나누는 엄마와 딸들의 대화가 편안하고 자유롭다. 물씬 풍겨오는 흙과 고향, 가족과 사람 냄새가 푸근하고 따뜻하다. 오랫만에 자본화된 무력한 인간의 낡은 옷을 벗어던지고 당당하게 사람의 옷을 입은 인간 승리의 한 모습을 만났다. 참으로 반갑고 고맙다. 언제 인연되면 차 한잔 나누고 싶다.

이 책 곳곳에는 현대문명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스며있다. 그 흔적은 혼자서도 해결하기 벅찬 문제들이지만, 그럼에도 세 모녀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고 깨달은 귀한 삶의 의미이기도 하다. 그것은 스스로 먹을 것을 길러내는 노동과 휴식을 즐기는 삶, 학교교육에서 벗어나 스스로 배워나갈 수 있는 인간이 되는 삶, 제도화된 의료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볼 줄 아는 조화로운 삶이다.

없는 것이 많아서 자유로운
도은.여연.하연 지음/행성B잎새

[에세이] 미래를 먹는 인간 | 도은 외

+

셰익스피어 대표작 12편을 법률가의 시선으로 해부했다. "영미법 연구자로서 셰익스피어 전 작품의 법률주석서를 쓰는 작업을 오래 해왔다. 그 중 일부를 먼저 대중서로 낸 것"이라고 했다.

그의 눈에 '햄릿'은 살인죄에 관한 종합 교과서다. 주요 인물이 자연사한 경우는 없다. 선왕 햄릿은 신왕 클라우디스에게 독살당하고, 클라우디스는 선왕의 아들 햄릿의 칼에 죽는다. 햄릿의 연인 오필리아는 물에 빠져 죽고, 햄릿의 모친 거트루드도 독배를 들고 쓰러진다. "이 작품에는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의 살인죄 법리가 정교하게 스며 있다. 법리의 상당 부분은 지금 우리 법에도 맞아떨어진다. 계획적으로 죽였느냐 일시적 흥분으로 죽였느냐에 따라 처벌 강도가 다르다. 죽은 사람의 신분에 따라 존속살인·대역살인 등으로 등급도 달라진다."

빚을 못 갚으면 살을 뜨기로 한 기상천외의 계약, '인육(人肉) 재판'으로 유명한 '베니스의 상인'에 대한 해석은 이렇다. "천대받던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편견 어린 박해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자기 권리를 찾으려는 투사였다. 반면 포셔의 판결은 편견에 찬 자의적인 것…."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토대로 한 영화 '베니스의 상인'(2004년). 배우 알 파치노(맨 왼쪽)가 냉혹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으로 연기하는 장면.

'헨리 6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맨 먼저 법률가 놈을 모두 때려죽이자!" 시대적인 이유가 있었다. 엘리자베스 치하 영국은 소송 폭주 시대. 연평균 100만건 이상의 소송에 400만명이 관련됐다.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재판은 공동체의 정의와 윤리적 일체감을 확인하는 주요 의식이자 시민의 여흥이었다. 당시 런던은 법률가의 도시였다. 우리 사법연수원에 해당하는 법학원에 기숙하는 예비법조인들은 셰익스피어극에 열광했다. 당대 극작가의 20%가 법학원 출신이었다. 셰익스피어도 법조타운 주변을 얼쩡댄 문학청년이었을 것이란 추정까지 있다.

법, 셰익스피어를 입다
안경환 지음/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사느냐 죽느냐' 햄릿의 우유부단 "법 때문이야"
법, 셰익스피어를 입다
사느냐 죽느냐… 햄릿, 자살 아닌 복수 고민했다

+

16세기에 초기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프랑스 상트르 주의 샹보르 성은 내부의 이중 나선형 중앙계단으로 유명하다. 이 계단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실물을 남긴 유일한 건축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출발 지점을 두 곳에 두어 뱀 두 마리가 양쪽에서 막대기를 감아 올라가듯 두 계단이 엇갈리며 돌아 올라가는 모양이다. 왕과 하인의 동선을 분리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것인데 두 계단을 따로 두는 것보다 공간을 절약하고 동선의 효율을 높인 기능적 작품이다.

다빈치가 이런 이중 계단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해부학적 지식 덕분이었다. 혈관과 신경만 따로 떼어 투명 상자에 넣은 것 같은 ‘혈관의 나무’라는 해부도를 남겼던 그는 이 개념을 계단에 적용했다. 혈관과 신경의 작동 방식이 교차적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해 동선의 효율을 높인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몸은 건물과 같다. 사람이 처음 건물을 짓기 시작할 때부터 몸을 모델로 삼았다. 건물은 몸을 보호하는 세 단계인 피부-옷-건물 가운데 하나이자 몸의 생존을 결정짓는 의식주의 한 부분이다. 몸이 정신과 육신의 결합체인 것처럼 건물도 정신적 가치와 구조체의 결합체다. 이 때문에 건물은 인간이 몸을 바라보는 시각을 그대로 반영한다.

전기 그리스 시대(기원전 5세기 이전)에는 몸을 ‘전일론(全一論)’의 시각으로 보았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금언처럼 몸을 육신과 정신으로 나누지 않고 하나로 본 것이다. 그런데 기원전 5세기 이후 소크라테스가 ‘육신은 정신의 감옥’이라 보았고 플라톤이 몸에서 육신과 정신을 분리하는 이원론을 고착시키면서 육신으로서의 몸은 열등한 것으로 치부됐다. 이런 몸의 이원론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9세기 이어진 만국박람회의 건축 양식은 ‘보수 대 진보’ 갈등의 축소판이었다. 역사주의 양식의 건축이 우세하면 보수 진영의 승리로, 철물구조 같은 신건축 양식이 두드러지면 진보 진영의 승리로 여겨졌다. 1900년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에서는 결국 절충된 건축 양식이 나타났다. 주 전시관이던 그랑 팔레와 프티 팔레 모두 철골조와 역사주의 외피의 혼합 양식을 띤 것이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위)은 멀리서는 신건축 양식의 철골 구조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섬세한 레이스 장식의 역사주의 양식이 혼합돼 있다. 르코르뷔지에의 사보아 빌라(아래)는 평평한 지붕과 육면체 형태에서 보듯 공산품을 연상시키며 이는 현대의 도구적 몸 개념과 궤를 같이한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대표작 에펠탑 역시 노출 철골 구조이면서도 가까이서 보면 섬세한 레이스 장식으로 수놓은 혼합 양식이다. 만국박람회의 건축 양식을 둘러싼 대립 구도를 당시 유럽사회가 몸을 바라보던 시각에 대응시킨 저자의 해석이 흥미롭다. 19세기 보수 진영은 ‘전통적 몸으로도 현대 물질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고 진보 진영은 ‘새 몸으로 갈아치워야 한다’는 시각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타협적인 ‘혼합 몸’의 관념이 탄생했다. 이는 고스란히 건축의 혼합 양식에 반영됐다.

기계가 된 몸과 현대 건축의 탄생
임석재 지음/인물과사상사

몸을 기계로 본 순간, 삭막한 잿빛도시가 시작됐다
백화점·터미널, 최초 설계도는 ‘인간의 몸’

+

약물 연구는 이내 과학적 이탈을 넘어 사회운동으로 나아간다. 리어리와 긴밀히 교류했던 비트 시인 앨런 긴즈버그의 “흐루시초프와 케네디가 LSD를 함께 복용한다면 이 세계의 갈등은 끝날 것”이라는 말은 결코 은유가 아니었다. “전쟁, 계급투쟁, 인종 갈등, 경제적 착취, 종교 전쟁 등은 심리적 문제들이 드러난 것이며, 심리적 문제의 바탕에는 신경증적 호르몬이 화학반응한다. 사람들이 두뇌 속 공감의 순환 구조와 만나게 우리가 도울 수 있다면, 사회는 긍정적으로 변할 것이다.”

리어리는 ‘평등’을 강조했다. 모든 성인이라면 자신의 두뇌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CIA는 군사적 목적으로 비밀리에 환각 약물 연구를 추진했고, 약물을 일부 연구자와 엘리트층의 전유물로 만들고자 했다. 리어리는 세상의 모든 ‘지배층’에 위험한 존재였다.

교도소에 수감 중인 무장 강도, 살인범, 횡령범이 함께 모여 환각 약물을 복용한다? 수난절 교회 예배당 안. 신학생 서넛이 모여 약물을 복용하고 환각을 체험한다?

우리는 대개 LSD, 환각 버섯, 매스칼린 등 약물 이름을 듣고 마약, 범죄, 퇴폐와 같은 단어를 떠올린다. 티머시 리어리는 환각 약물이 ‘인류 진화’를 돕는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약물은 범죄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범죄율을 낮추는 수단이었고, 인간이 존재와 지성을 확장해 연대와 평화의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훌륭한 도구였다.

약물을 이용한 교도소 범죄자들의 갱생 프로그램 결과 이들은 “우울증이나 적대감, 반사회적 성향이 줄고, 에너지가 넘치고 책임감과 협동심이 커졌”다. 피실험자의 90%가 감옥 밖으로 나왔다. 신학생들에 대한 실험에선 “종교적인 정황에서 성스러운 버섯을 투약하면 정신적 황홀경, 종교적 계시, 신과 인간의 합일을 당장 얻을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를 얻었다.

그러나 정부는 감옥을 최신식으로 늘리는 데 관심이 있지 범죄율을 줄이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서슬 퍼런 냉전 시대, 그들은 하나의 현실, 하나의 종교, 하나의 정신상태로 사람들을 통제하려 했다.

리어리는 평생 감시 속에 일상을 보냈고, 조작된 마리화나 스캔들로 감옥에 갇히고, 극적인 탈옥과 망명, 감금과 검거를 반복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책은 1960~70년대 격변기를 지나온 리어리가 1990년에 내놓은 자서전이다. 20년이 흘렀지만 약물이 양지에서 거론된다는 사실만으로 한국 사회에선 여전히 급진적으로 읽힌다.

플래시백
티머시 리어리 지음, 김아롱 옮김/이매진

흐루시초프와 케네디가 함께 마약 했다면 갈등은 끝났을 것

+

유럽 중심의 역사가들은 신대륙 탐험가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를 홀대해 왔다. 이탈리아 탐험가 콜럼버스가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아 ‘미지의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 1492년. 당시 아메리카 대륙은 전 세계 인구의 20%인 1억명의 원주민이 살고 있던 ‘오래된 구세계’였지만, 유럽인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신세계’라 불렀다.

그후 유럽 침략자들은 원주민이 오랜 세월 일궈 온 문화와 문명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고 업신여기며 원주민을 노예 삼아 터줏대감처럼 행세했다. 승자인 백인·유럽인·침략자들이 ‘아메리카인’이 됐고, 피정복민은 ‘인디언’ 혹은 ‘원주민’이라는 이름으로, 승자 위주의 역사만 전해 왔다.

이 책은 1492년 이후 아메리카를 피정복민의 시각에서 재조명한다.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 아메리카 원주민의 문명과 역사를 연구해 온 영국인 저자는 식민지배를 받았던 원주민 자료들을 찾아내 유럽 위주에서 벗어난 역사 읽기를 시도한다. ‘빼앗긴 대륙’ 이야기는 멕시코의 아스테카와 유카탄 반도의 마야, 페루의 잉카, 미국 남부 체로키, 미국-캐나다 사이 오대호 일대의 이로쿼이 등 5개 문화권에 초점이 맞춰진다.

콜럼버스 출현 이후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몰살당했다. 유럽 정복군의 무력에, 그리고 정복자들을 따라 들어온 전염병의 위력에 원주민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저자는 아메리카 대륙을 결정적으로 강타한 것은 천연두, 홍역, 페스트, 콜레라 같은 전염병이었다고 지적한다. 백인들이 ‘토착문화가 미개해서 원주민이 파멸했다’는 식으로 유럽 우월주의적 시각에서 역사를 왜곡하지만 무기와 권력보다 전염병이 더 치명적인 위협이었다는 것.

정복군을 따라 전파된 전염병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100년여 동안 극성을 부리면서 원주민 인구는 1억명의 10% 선에 불과한 1000만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빼앗긴 대륙, 아메리카
로널드 라이트 지음, 안병국 옮김/이론과실천

콜럼버스이후 신대륙… 침략-저항-부활의 500년
500년째 멈추지 않는 '아메리카의 눈물'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