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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척사(衛正斥邪), 동도서기(東道西器), 문명개화(文明開化).
서구 문명이 동아시아에 침투하면서 전통 지식체계는 큰 혼란을 겪는다. 낯선 세계에서 온 문명을 받아들일 것인지 배척할 것인지의 기로 앞에 선 지식인. 그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서구에서 들어온 새로운 개념을 동아시아의 언어로 치환하는 과정을 분석한 신간 ’개념의 번역과 창조’가 발간됐다.
양일모, 박노자, 쑨장, 요하임 쿨츠 등 11명의 국내외 학자들이 당대의 출판물과 기록을 토대로 서구의 새로운 개념과 사상들이 동아시아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밝혔다. 서울대 사회학과 박명규 교수는 책에 수록한 논문 ’근대 한국의 사회 개념 수용과 문명론적 함의’에서 지금의 용례로 쓰는 ’사회’ 개념은 19세기 말에 처음 보급되었다고 쓴다.
당시 ’대조선독립협회보’ 제2호에 번역·소개된 일본 학자 후추자와 유키치의 글.
“자연상태라는 것은 인류가 아직 사회 편성하기 전시대를 상상하야 언(言)함을 지(指)함이니 차설은 루스우씨 일파 사회계약주의를 봉하는 학자 창설함일네라.”(96-97쪽)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조선에 소개된 순간이다. 그러나 ’사회’ 개념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확산한 데는 독립협회의 역할이 컸다고 저자는 말한다.
당시 독립협회가 발간한 ’독립신문’에 사회라는 말을 자주 등장했다는 것. “나라마다 각색 회가 잇서 회에셔 규칙잇게 의론 하야 쟉뎡한 일은 대개 공변될 밧긔 슈가 업고.” (98쪽) 나라의 주인인 인민이 마땅히 사회적인 사안들에 관심을 두고 공론을 통해 그 사안들을 해결하는 데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한 당시 독립협회는 모이고(社) 또 모이는(會) 것으로 ’사회’를 번역했다. 그러나 사회의 개념이 확실히 정착하지 못한 만큼 ’사회’의 의미 또한 변주가 심했다.
저자는 독립협회 외에도 친일적 근대화를 추구했던 천도교와 일본 통감부가 발행한 윤리 교과서를 다르게 사용했다며, 개념이 주체에 따라 또 시기에 따라 정치적·윤리적 함의를 달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뿐 아니라 주권, 문명, 윤리 등의 서구 사상이 동아시아에 뿌리내리는 과정의 진통도 책에 담겼다.
개념의 번역과 창조 이경구.박노자.양일모 외 지음/돌베개 |
개념으로 읽는 동아시아 대전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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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정보를 실어 나르는 매체가 절대 부족하던 시기에는 정보의 존재 그 자체가 중요했다.
정보를 소유하거나 독점하는 계층이 특권을 누려왔다. 하지만 수집되는 정보의 양도 적었고 그 정보가 전달되기까지의 거리, 시간은 정보의 본질을 왜곡시키기까지 했다. 교통수단의 발달은 정보 전달의 가속화를 불러왔지만 오늘날과 같은 인터넷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다. 요즘 정보의 생성과 확산의 속도는 빛의 속도를 능가하지 않을까?
이런 기술적, 사회적 변화는 정보에 대한 가치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에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인터넷의 팽창은 무차별적이며 양도 많은 무료 정보를 배포하게 되었고, 정보의 수신자로서의 대중들은 저자의 말처럼 정보의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텍스트를 최소화 한 인포메이션 그래픽은 정보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가장 효율적인 예는 혈액형의 수혈 관계도. 관계도로 정보를 전달하면 간단하지만 이것을 문장으로 전달하려면 32개의 문장이 필요하다.
"내 자신의 호기심과 무지함을 충족하기 위해, 내가 답을 알고 싶은 주제들을 우선적으로 골랐습니다. 그리고 직접적인 사실과 건조한 통계를 피하는 대신 정보를 의미 있게 만드는 사실들 간의 관계와 맥락, 연결성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저자가 위에서 말하듯이 이 책의 장점은 정보 디자인으로 표현한 원천 정보 자체가 재미있고 매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대학 전공별 성 경험이 없는 학생 분포'를 보면 미술 전공은 0퍼센트, 수학 전공은 100퍼센트에 가깝다. 이런 조사의 의미를 떠나 기발한 소재다. 즉,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일간지, 주간지에서 보는 것과는 내용과 형식이 아주 다른 것이다.
국내 일간지의 경우 속보와 통계가 주를 이루며 담당 디자이너 한 명이 하루에 서너 개의 분량을 처리하지만 외국의 경우는 기사 내용을 정리하는 에디터, 내용에 들어갈 각종 이미지를 담당하는 일러스트레이터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미지와 글을 조직화해서 레이아웃을 하는 디자이너. 최소 3인 이상이 하나의 정보 디자인 생산에 관여를 하고 있다.
<정보는 아름답다>는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인포메이션 그래픽과 그래픽 뉴스 그리고 그래프 형식을 망라해서 보여주고 있다.
'무슨 색을 입었을까?'는 2002~2010년까지의 여름과 겨울의 유행한 여성복의 색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정리되어 있고 '누가 세계를 움직일까?'와 음모론인 '누가 진짜 세계를 움직일까?'는 호사가들의 흥미를 돋우는 대목이다.
'댄스 음악과 록의 계보'는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한 정보 디자인의 좋은 예이다. 각 음악의 경향에 어울리는 서체를 선택하고 색상과 도형의 모양으로 관계를 표현한 이 정보는 지면 크기가 여유만 있었어도 대표 가수나 밴드의 로고 타입, 사진을 넣었으면 마니아들에게 열렬한 반응을 얻었을 듯하다.
'당신에 대한 책'은 사람의 DNA를 책으로 은유해서 풀어낸 것이다. 유전자는 페이지로 염기쌍은 문단으로, DNA는 단어로 표현한 부분이 재미있다.
표지에도 사용된 '색과 문화(세계 각국에서 색깔들이 갖는 의미)'를 보면 동심원과 방사선을 활용해서 11개 지역에서 13개 색이 가지는 84개의 의미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특정색이 지역별로 상충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노란색은 권위를 의미하지만 미국에서는 비겁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페터스 투영도법(대륙의 실제 크기)'은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관(?)을 뒤집는다. 교과서에서부터 여행서적까지 우리가 보는 거의 모든 세계 지도는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그려진 것이다. 이 도법의 문제는 적도에서 멀어지는 나라일수록 면적이 부풀려진다는 점이다. 즉, 러시아, 북미, 북유럽 등이 넓어지고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는 축소된다. 즉, 현재 시점의 강대국들의 영토가 넓어 보이는 무의식적 사대주의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정보는 아름답다 데이비드 맥캔들리스 지음, 이정인 옮김/생각과느낌 |
성 경험 없는 학생? 미술 0% vs. 수학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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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에게 일갈한다. 마음이 탐욕스럽다고. 약탈자라고. 진실의 신을 위해서라도 부디 진실을 행하라고. 4000년 전 귀족의 토지 관리인에게 억울하게 당나귀를 빼앗기고 매질까지 당한 한 이집트 농부가 올린 탄원서 내용이다.
기원전 1813년 이름을 모르는 농부에서 시작해 2010년 가자지구를 두고 지구상에서 가장 큰, 문 없는 감옥이라고 꼬집은 스웨덴의 소설가(헤닝 만켈)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인류 역사에 새겨진 분노와 저항의 자취를 담고 있다. 힘없는 백성, 지식인 그리고 혁명가들의 여러 주장을 모았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불합리와 부조리에 맞서 싸운 목소리는 처절하다. 생생하다.
카를 마르크스(공산당 선언), 에밀 졸라(나는 고발한다) 같은 유명인사뿐만 아니라 노예, 무산계급, 유색인, 학생, 노동자 등 수많은 ‘무명씨’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그들의 항변은 출판물, 연설문, 대자보, 슬로건, 팸플릿, 법정 최후진술, 시위대의 낙서, 대중가요 등 다양한 형식으로 표출된다. 간략한 시대적 배경을 덧붙여 이해를 돕는다.
프랑스혁명이 발발하고, 세계대전이 터지고, 신자유주의 질서가 확립되고, 9·11 테러가 일어나는 역사 속 굵직한 사건들과 연결되면서 인류의 저항 운동 변천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여성 인권의 신장은 모든 사회적 진보의 기본 원칙이다”(샤를 푸리에), “결혼은 고대 인간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큰 오류다”(파리코뮌 지지자)처럼 책은 여성과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세계 곳곳에서 자료를 구하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느냐? 때가 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왜 우리만 상전의 매질을 당해가며 뼈가 빠지게 일만 해야 하는가!” 책은 이처럼 고려시대 노비들의 폭동을 주동했다가 숨진 만적의 성토와 동학농민운동, 4·19혁명, 광주민주항쟁에 관련된 기록에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에 실린 시 ‘어쩌면’까지 담으며 한국의 저항사도 관통한다.
저항자들의 책 앤드루 샤오 & 오드리아 림 엮음, 김은영 옮김, 타리크 알리 서문/쌤앤파커스 |
기원전 이름모를 농부서 마르크스까지… 인류사에 새겨진 분노와 저항의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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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에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란 단어가 있다. '남의 불행에서 얻는 행복'이란 뜻. 우리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지 않는가. 세계 20여개 언어에 이와 비슷하게 강자를 비난하는 표현이 있다. 대중은 성경의 다윗이 골리앗을 때려눕힌 이야기나 복싱 영화 '로키'에 열광하고 신데렐라 같은 반전(反轉) 동화나 드라마에 매료된다.
왜 그런가. 저자는 누구나 겪는 성장 과정에서 체득된 습성 같은 것이라 설명한다. 우리는 작고 무력한 상태에서 크고 힘 있는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고 자란다. 그 과정에서 약자의 기분을 느껴봤고 힘센 존재에 의한 피해 의식을 키워왔다. 언더도그마는 일종의 동병상련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인 것도 같은 이치다. 언더도그 아마추어가 메이저 음반사와의 계약을 꿈꾸며 열창하는 모습에 응원을 보낸다. 하지만 정작 우승자의 음반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뉴스에서도 무명이 일약 스타가 되거나 유명인이 추락하는 기사가 단연 인기다. 오늘날 '악당'은 부자와 권력자다. 영화 타이타닉에서도 3등석의 가난한 청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연기)은 여주인공의 사랑을 받는 반면, 1등석의 부유하고 괴팍한 사람들은 구명보트를 차지해 착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물에 빠져 죽게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정치인들이 서민 점퍼를 입고 보통 사람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으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드골은 "정치인은 주인이 되기 위해 하인의 자세를 취한다"고 했다.
언더도그마는 이제 전통적인 좌-우 이념을 대체해 우리 시대 쟁점을 보는 기준이 됐다. 문제는 언더도그마가 '주의(ism)'로 고착될 때다. 약자는 어떤 행동을 해도 무조건 정당하고 강자는 어찌 됐건 조롱의 대상이 된다. 언더도그마가 판치는 곳에 음모론도 기승이다. 강자는 흔히 음흉한 '빅 브러더'로 묘사된다.
이 언더도그마를 어찌할 것인가. 저자는 누그러뜨리거나 껴안아야 한다고 말한다. 약자를 잘 다독거리고 격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저자 스스로는 비이성적인 언더도그마에 대해 맞서 싸우겠다고 다짐한다.
언더도그마 마이클 프렐 지음, 박수민 옮김/지식갤러리 |
약자는 언제나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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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정치와 ‘마음’이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저자는 마음의 눈으로 정치를 바라보면 정치를 전진하고 대항하는 체스 게임, 권력을 잡기 위한 야바위 노름, 서로 비난만 해대는 두더지 잡기 게임으로 보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시대의 정치는 ‘비통한 자들의 정치’다. 이 표현은 정치학의 분석 용어나 정치적 조직화의 전략적인 수사학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 대신 인간적 온전함의 언어에서 그 표현이 나온다. 오로지 마음만이 이해할 수 있고 마음으로만 전달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 정치에도 그러한 측면이 있는데 우리 모두가 의지하는 일상생활을 잘 다듬어 가려는 핵심적이고 영원한 인간적인 노력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것은 링컨이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향해 상한 마음을 개방해 나갈 때 실행했던 정치”라고 단언한다.
저자는 오늘날 정치 세계를 개선하고자 할 마음의 습관으로 ‘뻔뻔스러움’과 ‘겸손함’을 제안한다. 뻔뻔스러움이란 ‘표출할 의견이 있고 그것을 발언할 권리가 있음을 아는 것’이고, 겸손함은 ‘내가 아는 진리가 언제나 부분적이고 전혀 진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서 ‘마음’이란 ‘우리의 모든 앎의 방식-지적·정서적·감각적·직관적·상상적·경험적·관계적·신체적-이 수렴되는 중심부’다. 저자는 “마음은 머리로 아는 것과 직감적으로 아는 것이 통합되는 곳이고, 지식이 보다 인간적으로 충실해질 수 있는 장소”라고 정의한다. 그는 “우리가 자아와 세계라고 하는 모든 것이 마음이라고 불리는 중심부에서 하나가 될 때 자신이 아는 바에 따라 인간적으로 행동할 용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저자는 미국의 정치, 경제, 교육, 언론, 종교 등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도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정치와 맺는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 옮김/글항아리 |
‘야바위 정치’ 할퀸 상처엔 뻔뻔-겸손함이 ‘藥’이다
약자는 언제나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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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라는 블루 오션을 찾아낸 이들의 출발점은 사람과 문제, 아이디어로 요약된다. 수요 창조자는 사람들의 열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애쓴다는 설명이다.
그 중요한 과정 중 하나가 고객의 ‘고충 지도’를 바로잡는 것이다. 고객의 체험 속에 있는 불안감과 불편함, 복잡함, 위험 등을 크고 작은 결함을 없애거나 고치고 혹은 기쁨으로 바꾸면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된다.
‘고충 지도 바로잡기’를 통해 새로운 제품을 내놓는, 수요 창출의 과정은 현실을 건드리고 변화시키려는 시도다. 때문에 수요 창출이 성공하려면 제품은 언제나 매력적이어야 한다. 애플의 아이폰처럼 감성적 어필과 기능성이 합쳐진 매력적인 제품만이 소비자를 꽉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철철 넘치는 매력으로는 부족하다. 관성과 습관, 의심과 무관심으로 무장한 게으른 소비자는 ‘구관이 명관’이라며 선뜻 움직이지 않는다. 구경꾼을 고객으로 탈바꿈시킬 발화점(책에서는 ‘방아쇠’라고 표현했다)이 필요하다.
물론 방아쇠가 당겨지고 문턱을 넘어왔다고 끝은 아니다. 고객의 마음은 갈대처럼 늘 변한다. 제품을 출시한 뒤에도 제품이 더 좋아지도록 가파른 궤도를 구축해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경쟁자를 따돌리기 위해서도 꾸준한 개선 과정은 필수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지난해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꼽은 '경제사상가 50인'에 오른 저자 에이드리언 슬라이워츠키(Slywotzky·61)는 이 책에서 "성공은 고객에 대한 명확한 이해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스타벅스를 집안으로 옮긴 네스프레소, '블록마다 차량 배치' 개념을 도입한 렌터카 회사 집카(ZipCar) 등 불황에도 탁월한 성과를 창출한 기업들의 사례를 면밀히 분석하여 '성공적인 수요창출 비결' 6가지를 제시한다. ▲매력 ▲고충지도 ▲배경스토리 ▲방아쇠 ▲제품 개선 ▲수요 다변화 등이다.
디맨드 Demand 에이드리언 J. 슬라이워츠키 & 칼 웨버 지음, 유정식 옮김/다산북스 |
'마음을 훔친' 대박 비법은 뭘까?
클래식 초심자 공연 유인책? 주차장부터 넓혀라
‘불황의 시대’ 수요 창출의 비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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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사회는 우울한가. 왜 자살률은 그토록 높을까. 네이션빌딩에 성공한 ‘신데렐라 국가’ 대한민국인데도 왜 그렇게 공동체(공화국)에 대한 합의는 태부족할까. “믿을 사람 하나 없어. 나 혼자 살아남아야 해!” (168쪽)이라는 강박관념 내지 일등주의 심리는 과연 누가 심어준 것일까.
그 핵심으로 ‘뒤틀린 근대’를 심어준 일제강점기의 폐해를 지목한다. 제국주의 일본이 나쁘다는 공격이 아니다. 후쿠자와 유기치의 근대화론 자체가 철학적 성찰이 배제된 일등주의에 불과하며, ‘묻지마 근대화론’이라는 지적이 볼만하다. 곁들여진 일본 유학(儒學)의 특징 분석도 신선하다.
과연 이대로 살 것인가, 재(再)프로그래밍할 것인가 하는 철학적 성찰도 꽤 듬직하다. 훌륭한 문제제기, 여운이 풍부한 글쓰기는 ‘젊은 고수(高手)’의 출현을 알린다. 박람강기(博覽强記)를 조절하는 호흡도 갖고 있다. 하지만 아쉬움도 없지 않다. 이 책을 위해 수백 권의 책을 보았다는데, 편식이 좀 심했다.
분량은 작지만 강력한 책이다. 1971년생 전산학도 출신이 쓴 이 신간은 해방 전후 지금까지 한국·한국인을 다룬 담론서의 범주에서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11년 전 대중적으로 성공한 『한국인의 정체성』(탁석산), 1960년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이어령), 그 이전 논란 속의 『민족 개조론』(이광수) 등과 같은 문제작의 하나로 읽힌다.
우리는 어떻게 프로그래밍 되었는가 고진석 지음/갤리온 |
우울한 한국인, 일본서 건너온 일등주의가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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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회적 기업가를 매우 한국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 외에도 한국 사회적 기업의 상황을 투사해 볼 수 있는 여러 요소를 담고 있다.
첫째, 여기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사회적 기업은 노동부 인증을 받은 사회적 기업이다. 사회적 기업은 본질적으로 풀뿌리 경제 조직이며 때문에 정부 부처가 인증하고 관리하는 한국형 모델은 매우 특수한 결과물일 뿐임에도 사회적 기업의 기본 요건은 제도권이어야 한다는 것인가 싶다.
노동부 인증을 받지 않은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여기에 등장하는 사회적 기업가들 못지않은 훌륭한 스토리를 가진 이들이 많은데도 인증 기업으로 범위를 국한했다는 한계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덧붙이자면, 내가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역시 노동부 인증을 받은 사회적 기업이다)
둘째, 이 책이 만들어지게 된 방식 역시 한국의 사회적 기업 모델을 빼 닮았다. 이 책은 모 증권 회사의 사회 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자금 지원을 받아 발간되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정부 지원이나 대기업 지원이 사회적 기업의 유력한 재무적 자원이 되는 사회적 기업의 현실과 유사하다.
물론 그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후원과 지원의 과정에서 책이 가지는 본질적인 가치가 왜곡된 것이라면 자본의 성격이 문제가 된다. 사회 공헌 성격의 지원금 기반으로 책을 제작하니까 홍보 사례집 식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그게 앞서 말한 노동부 인증 기업만을 다룬 이유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세상 고쳐 쓰기 이회수 엮음, 김종락.이경숙.이재영 지음/부키 |
제2의 박원순? '피리 부는 사나이'한테 속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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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백과사전보다 두툼한 이 책은 말 그대로 카프카의 일생을 모조리 수록한 사전인 양, 삶의 단면들을 시기별, 항목별로 세세히 다루고 있다. 유년 시절부터 독일 소년초등학교 시절, 오스트리아 왕립 김나지움 시절, 법학 대학 시절을 거쳐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 입사한 이후의 직장인 생활에 이르기까지, 누구를 만나고 어디에 갔으며 무슨 책을 읽었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했는지, 주위의 평가는 어땠는지. 말 그대로 작가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카프카가 누구인지를 전형적인 평전의 시선으로 파헤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이 평전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면 할수록, 작가의 일대기를 훑는 시선의 간격이 촘촘하면 할수록, 나는 그 시선에 편입되기가 힘겨웠다. 그러니까 나의 독서를 괴롭게 만든 것은, 평전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감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카프카의 약혼녀 이름이 그동안 펠리체 파우어로 표기되어 왔는데 사실은 벨기에식 이름이므로 펠리스 바우어로 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나, 펠리스와 갈등이 있던 시기에 중재자로 등장한 그레테 블로흐라는 여성에게 카프카의 마음이 기울었는가 아닌가 하는 논의는, 카프카의 첫 성경험을 기술한 구절만큼이나 지겨웠다. 전혀 궁금하지 않은 대목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문호의 일생을 시간 순으로 훑어보는 일이란 꽤나 고리타분할 수 있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독자들의 호기심에 떡밥을 던져줄 만한 이야기들을 평전에서 빼버린다면 그것도 곤란한 일일 것이다. 평생의 후원자이자 대변인, 동료이자 친구였던 막스 브로트와의 우정 어린 일화들도 그런 범주에 속할지 모른다.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막스 브로트는 원고를 모두 불살라 달라는 카프카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그가 죽은 뒤 유고를 출판해 결과적으로 카프카를 역사에 남게 한 장본인이다.
카프카 평전 이주동 지음/소나무 |
카프카,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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