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行間/새로 나온 책

2013년 9월 3주 새로 나온 책

반응형

광고계에 몸을 담고 있는 필자는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언제나 안테나를 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흥미로운 현상이 눈에 띠기 시작했습니다. 이름하여 '비주류의 역습'. 영화, 음반, 도서, 미술, 예능 등 문화계 전반에 걸쳐 소위 '비주류' 또는 'B급'으로 분류되던 존재들이 '메이저' 보다 더 큰 관심을 받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역사서歷史書도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양입니다. 우리가 듣고 보고 배운 기존의 세계사를 뒤집는 새로운 해석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타밈 안사리가 저술한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슬람인의 눈으로 세계사를 재해석한 타밈 안사리, 그가 들려주는 세계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어떻게 다를까요.

서구의 입맛대로 써내려 간 세계사

중동이라는 표현은 서유럽에서 보는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페르시아의 고원 지대에 서 있다면 이른바 중동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중서가 된다. 그러므로 나는 인더스 강에서 이스탄불까지 이르는 전체 영역을 중간 세계라고 부르는 편을 선호하는데, 그 영역이 지중해권 세계와 중국의 세계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타밈 안사리가 역사를 이해하는 태도를 잘 나타내는 구절입니다. '중동'이란 표현은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탄생한 것이니 '중간세계'란 표현이 더 옳다는 그의 주장은 꽤나 설득력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사는 '유럽사와 기타 등등'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유럽 중심적이죠. 그 속에서는 동아시아도, 남북아메리카도, 아프리카도, '중간세계'도 그저 변방의 역사일 뿐입니다. 타밈 안사리는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 '상식'을 뒤집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역사상 최초로 세계를 정복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세계사 좀 안다는 사람이라면'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타밈 안사리의 대답은 다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역으로 쳐들어와 페르시아와 전쟁을 벌였다. 가끔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정복했다는 말이 들리지만, 그가 실제로 정복한 것은 페르시아였으며 그때는 이미 페르시아가 '세계'를 정복한 뒤였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정복한 최초의 '인물'이 아닌 최초의 '유럽인'으로 기록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고 대제국을 건설하고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한 그의 업적까지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죠. 단지 지나치게 서구의 입맛대로 쓰여진 비대칭적인 역사를 바로 잡고 역사적 균형감각을 회복하자는 것이 그의 논지입니다.

이슬람의 눈으로 바라본 십자군 전쟁

타밈 안사리는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주장을 펼칩니다. 우리는 십자군 전쟁을 '종교 해방 전쟁'이라고 교육 받았습니다. 하지만 타밈 안사리는 여기에 태클을 겁니다. 당시 유럽에는 귀족과 기사 계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귀족과 기사는 노동을 일체 하지 않았기에 이들을 먹여 살리는 일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더불어 내란이 일어날 잠재적 위험 또한 높아졌습니다. 이 문제들을 단번에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전쟁이었습니다. 이에 '예루살렘 해방'을 명분으로 셀주크투르크와 전쟁을 일으키니 이것이 바로 십자군 전쟁이었습니다.

우리가 배운 세계사에서는 십자군 전쟁을 꽤나 비중 있게 다룹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이슬람 문화권, 즉 당시의 셀주크투르크에서는 십자군 전쟁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공격을 당하는 지역에서는 물론 프랑코를 두려워했지만, 그렇다해도 이런 공격이 그들의 생각이나 믿음에 대한 지적인 도전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또한 십자군은 지중해 동부 해안에 사는 무슬림들에게 분명 심각한 사안이었지만 무슬림 세계로 깊이 침투하지는 않았다. (중략) 십자군은 바그다드를 포위하거나 유서 깊은 페르시아를 침략한 적도 없었다. 호라산, 박트리아, 인더스 계곡 사람들은 프랑코의 침입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으며 대개는 아예 모르고 지나갔다.

실제로 십자군 원정대는 셀주크투르크 제국의 중심부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했으며 단지 예루살렘 등 일부 지역을 점령했을 뿐이었습니다. 당시 셀주크투르크 입장에서는 십자군 전쟁이 제국 변방에서 일어난 일련의 약탈행위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타밈 안사리는 십자군 전쟁을 통해서도 비대칭적인 역사 인식을 꼬집습니다.

건강한 역사 인식을 기르는 기회

흔히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에서 '비주류'와 'B급'이 사랑 받는 현상은 박수 받을 일입니다. 여러 각도의 인식을 지녔을 때는 비평이 가능하지만 한두 가지 좁은 시선으로는 비평이 아닌 비난만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잘 새겨야 합니다. 주류 세계사에서 비껴나 이채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써내려 간 타밈 안사리의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풍성한 역사인식을 기를 기회를 선사하는 책입니다.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타밈 안사리 지음, 류한원 옮김/뿌리와이파리

세계를 최초로 정복한 인물, 알렉산더가 아니다

+

수학은 어렵다. 머리로야 과학이나 금융의 근간이 되는 중요 학문이란 것을 알지만, 막상 수학문제 앞에 서면 까막눈이 되는 심정은 참 처참하다. 그런데 세계적인 수학 난제들이라…. 그냥 전문가들이 알아서 고민해주면 고맙겠다.

그런데 이 책은 당신도 이 수학 난제들과 무관치 않다고 소매를 잡아끈다. 영국 워릭대 수학과 교수인 저자는 난제 자체를 일반인이 이해할 필요야 없지만 이를 둘러싼 과정이나 정황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푸리에 분석’이란 수학적 아이디어가 어떤 개념인지는 몰라도 괜찮다. 하지만 이 분석이 현대 전기통신의 근거이자 디지털카메라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아두면 좋지 않은가. 심지어 경찰이 지문을 보존하는 기술에도 푸리에 분석이 이용된단다.

위대한 수학 난제 중에는 중학교 교과서에서 이미 마주쳤지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것도 있다. ‘골드바흐 추측’이라는 것인데 바로 소수와 관련된 문제다. 정의를 옮겨 쓰자면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개의 소수의 합으로 표시할 수 있다”이다. 책은 이런 난제를 통해 소수를 연구함으로써 정수론이나 인수분해 같은 분야가 확장됐으며, 이런 결과물이 바탕이 돼 알고리즘과 컴퓨터 운영체계, 인터넷통신의 프로토콜이 성장했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만하면 골드바흐 추측이 우리와 상관없다고 말하긴 힘들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이 책은 무지 어렵다.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다’는 뻔한 소개는 도무지 못하겠다. 물론 난제를 둘러싼 뒷이야기들은 흥미롭다. 하지만 책의 비중이 그쪽보단 수학 개념 설명에 치중돼 머리가 팽팽 돈다.

위대한 수학문제들
이언 스튜어트 지음, 안재권 옮김/반니

수학 난제가 풀릴 때마다… 알게 모르게 덕 보는 우리들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