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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3년 11월 2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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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는 세계 35개국에 253개의 매장을 보유한 스웨덴의 다국적 가구기업이다. 이 이케아의 창업자인 잉바르 캄프라드는 블룸버그가 선정한 올해 세계 갑부 순위에서 5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최고 부자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97위인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부자인지 짐작이 간다. 이 회장의 4배가 훨씬 넘는 재산을 갖고 있다.

이렇게 세계적 갑부로 명성이 자자한 잉바르 캄프라드지만 한편으론 지독한 구두쇠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해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버리지 않고 재활용해 다른 사람에게 보내며, 출장갈 때 어지간한 거리면 비행기 대신 기차를 탄다고 한다. 이때 물론 경로 우대 할인도 꼭 챙긴다. 또 슈퍼마켓에 갈 때는 떨이 상품을 싸게 사기 위해 항상 문 닫기 직전에 간단다.

이 밖에도 폐지를 잘라 메모지로 쓰고, 호텔에 투숙할 때 편지봉투와 볼펜을 챙겨오는 등 여러 억만장자들의 근검절약 스토리는 많이 알려져 있다. 평범한 사람들로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행태들이다. 매일 펑펑 써도 죽을 때까지 다 쓰지 못할 재산을 가진 사람이 그깟 돈 몇 푼에 벌벌 떨다니. 여기에는 단순하게 '절약정신'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모두 설명하지 못하는 비밀 한 가지가 숨어 있다.

책 '부자들의 생각법'에선 부자들의 공통점으로 '베버-페히너의 법칙'에 웬만해선 잘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꼽고 있다. 베버-페히너의 법칙이란 자극의 강도와 사람의 감각 사이에 일정한 비례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양초가 10개 켜 있는 방에서 양초 하나에 더 불을 붙이면 밝아졌다고 느끼지만, 100개가 켜 있는 방에 양초 1개를 더 켜면 아무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식이다.

물건을 살 때도 마찬가지다. 10만원짜리 물건을 1만원 더 싸게 살 수 있는 가게가 있다면 사람들은 얼마든지 멀리 있는 가게로 걸어가지만, 20만원짜리 물건을 1만원 더 싸게 살 수 있다고 하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똑같은 1만원이지만 20만원짜리 물건을 살 때는 상대적으로 더 푼돈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베버-페히너의 법칙이야말로 돈 관리에 있어서 부자가 되지 못하게 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에이 얼마 되지 않는데'라는 생각이야말로 최악의 '생활비 파괴자'가 된다. 베버-페히너 법칙이 적용되는 사례는 우리 생활에서 얼마든지 있다.

좋은 오디오를 사고 나면 상대적으로 '얼마 안 된다'는 생각에 헤드폰을 사는데 돈을 쉽게 쓴다. 비싼 휴대폰을 사고 나면 몇 만원짜리 액세서리에는 어렵지 않게 지갑을 연다. 마트에 가서 '싼 건데'라며 이것 저것 카트에 담다 보면 계산할 때 '이렇게 많이 나왔나'라며 놀라게 된다. 결혼할 때도 그렇다. 일단 비싼 집을 장만하면 스튜디오 촬영비, 혼수품, 신혼여행 경비 등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느끼고 결국엔 예산을 초과한다.

심리적 문제는 소비와 저축을 크게 좌우한다. 집을 사거나 주식을 살 때도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이처럼 책은 전통 경제학에 나오지 않는 심리적 요소를 포함한 행동경제학의 주요 원리들을 쉽게 설명한다. 좋은 주식 고르는 법이나 투자포트폴리오 구성법 대신에 '돈을 대하는 생각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소비와 저축부터 부동산과 주식투자, 노후대비 등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약점과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짚어준다. 세계 최고의 주식부자인 워렌 버핏이 왜 월가에 살지 않는지, 왜 항상 주식은 내가 팔면 오르고 내가 사면 떨어지는지, 펀드를 고를 때 수익률을 절대 봐선 안 되는 이유 등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올해 독일의 최우수 경제경영 도서에 선정됐다. 자신의 약점과 실수를 다스려 부자가 될 수 있는 마음가짐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준다.

부자들의 생각법
하노 벡 지음, 배명자 옮김/갤리온

억만장자가 경로우대 할인을 챙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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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친 몸과 무표정한 얼굴로 만원 지하철을 타고 직장으로 향하는 샐러리맨, 학부모 모임에서 남의 집 아이들이 다닌다는 학원 얘기에 불안해하고 남의 집 엄마가 걸치고 온 값비싼 가방에 기죽는 아줌마…. 많은 현대인은 실상 자유롭지 못하면서도 지금 삶의 방식이 태초부터 주어진 것인 양 어떠한 의심도 품지 않고 살아간다.

건국대 디자인학부 교수인 저자는 왜 많은 현대인이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지레 두려움을 느끼는 노예가 되었으며 현재를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느냐는 근본적 물음부터 던진다. 머리말에 담긴 이런 문제의식은 책을 끝까지 붙들게 하는 흡인력을 지닌다. 저자는 그 해답의 실마리를 근대, 즉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 살핀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삶의 방식과 감수성의 상당 부분이 처음 이 땅에 나타난 것은 고작 100여 년 전이라는 것이다.

책은 20세기 초 조선에 등장한 7가지 문화와 산물, 즉 시계, 투시법, 미인대회, 우량아 선발대회, 문화주택, 백화점, 기차를 살핀다. 1899년 경인선 선로 위를 달린 조선 최초의 기차는 근대적 시간 개념을 주입했다. 이전까지 조선은 닭 울음소리에 잠을 깨고 해가 지면 일을 마치고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는 자연의 시계를 따랐다. 시간표를 지켜야 하는 기차는 조선인들을 정해진 시간을 엄수하는 규칙적 생활 체계로 몰아넣었다. 손목시계의 등장은 시계가 비로소 몸의 일부가 되었으며 인간이 시간에 종속당한다는 뜻이었다.

영화나 신문을 통해 서구인의 체형과 패션이 알려지면서 한복은 불편하고 비위생적인 옷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한복을 입은 조선 여성들에겐 가슴 부위를 동여매는 방식도, 금세 더러워지는 흰 옷도, 매일 반복되는 빨래와 다듬이질도 불편함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1920년대 도입된 미인대회는 여성의 몸을 평가의 대상으로 보는 인식의 시발점이었다.

근대의 신문과 잡지 기사를 풍부하게 인용하면서 비판적 철학적 성찰을 이어가는 저자의 필력이 돋보인다. 주어진 삶의 방식에 별 의심 없이 살아온 무표정한 현대인을 쿡쿡 찌르는 책이다. 부제는 ‘우리를 디자인한 근대의 장치들’.

근대의 역습
오창섭 지음/홍시

  고달픈 현대인의 삶을 디자인한 근대의 7가지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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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가장 예민한 모더니스트였던 이상의 소설에는 매춘부와 돈이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주인공인 예술가 혹은 지식인 남편은 아내가 매춘을 통해 벌어오는 돈으로 연명하면서도 어린아이처럼 무구한 태도로 돈에 대해 메스꺼움과 혐오의 감정을 드러낸다. 흡사 신진대사의 일부처럼 아내는 종아리에서 돈을 뱉어내는 것으로 표현되고('지주회시'), 남편은 그런 돈을 한 푼 한 푼 모아 일부러 변소에 빠뜨린다.('날개') 이상 소설의 근본서사라 할 만큼 많은 작품에서 반복되고 있는 패턴이다. 도대체 왜일까?

게오르그 짐멜(1858~1918)의 <돈의 철학>에 따르면, 돈의 본질과 매춘의 본질 사이에는 숙명적 유사성이 발생한다. "돈의 사용의 모든 무차별성, 그 어떤 인간 주체와도 진정으로 결합하지 않기 때문에 주저 없이 모든 주체로부터 분리되는 돈의 불충함, 순수한 수단으로서의 돈에 특유한 그리고 모든 감정적 관계를 배제하는 돈의 객관성" 때문이다. "매춘은 모든 인간관계 중에서 단순한 수단으로의 상호전락의 가장 명확한 보기이며, 그래서 화폐경제, 즉 가장 엄격한 의미에서의 수단의 경제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자신이 유발한 쾌락 속에서도 언제나 냉담한 매춘부의 이미지는 그러므로 그대로 화폐의 알레고리다. 단지 감수성만으로 이 본질적 상동성을 포착해낸 한 예술가의 위대성은 돈을 철학의 주제로 과감하게 끌고 들어온 짐멜의 위업에 의해 보장받게 된다.

독일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짐멜의 대표적 저서 <돈의 철학>이 독일어 최초 완역으로 새롭게 출간됐다. 평생 31권의 저서와 256편의 방대한 글을 남긴 짐멜은 게오르그 루카치, 에른스트 블로흐, 알베르트 슈바이처 등 당대의 문화적 엘리트들까지 앞다퉈 그의 강의를 들을 정도로 유명했던 "베를린의 특별한 지적 사건"이었다. 유추적인 접근법을 구사하며 에세이 형식의 글을 많이 썼던 그는 체계적이고 연역적인 사유와 논리를 특징으로 하는 독일의 학계에서 다소 이질적인 존재였던 탓에 56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대학 정교수가 됐지만, 그가 남긴 방대하고도 탁월한 지적 성취는 훗날 수많은 인문학 분야에 풍부한 광맥이 되었다.

짐멜은 <돈의 철학>에서 카를 마르크스의 특허품 같았던 화폐라는 주제를 "경제적 현상의 외면적 차원으로부터 심층적 차원으로 뚫고 들어가 모든 인간적인 것의 궁극적 가치와 의미에 도달"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돈은 "개인적인 삶과 역사의 가장 심층적인 흐름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기술하기 위한 수단, 재료일 뿐"이다. 왜 하필 돈인가? 그것은 인간 정신의 가장 영향력 있는 특성들 가운데 하나가 돈에서 강력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짐멜이 보기에 "돈은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의 적절한 표현"이다. 교환은 삶의 형식이며, 사물들의 가치는 교환을 통해 주관적인 차원을 벗어나 상호 주관적이 된다. 객관성에 육박해가며 사물의 가치에 대한 합의를 이루는 과정, 즉 "인간이 상징물을 구성하는 능력"은 돈에서 최고도로 발전했으며, 주체와 객체(대상) 간의 가장 순수한 상호작용은 돈에서 그 가장 순수한 표현을 발견했다. 돈은 가장 추상적인 것의 구체화다.

변증법적 사고의 자장 안에 있는 짐멜은 이 책에서 상호작용을 '규제적 세계원리'로 고수한다. 상호작용은 짐멜의 지적 세계 전반을 주도하는 형이상학적 원리다. 범박하게 요약하자면, 인간만 돈에 작용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돈도 인간에게 작용을 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은 돈의 본질을 일반적인 삶의 조건과 관계로부터 이해하고자 하는 1부 '분석'과 돈의 영향으로 인해 변화하게 된 근대적 삶의 본질과 모습을 추적하는 2부 '종합'으로 구성돼 있다.

독자의 흥미를 끌 만한 논의들은 "무차별화되고 밖으로 드러나게 되는 모든 것에 대한 상징이자 원인"인 돈의 본질을 논한 1부보다는 주로 돈이 인간 삶의 형식을 규정하게 되는 과정과 양태를 설명하는 2부에 집중돼 있다. 돈에 대한 짐멜의 방법론을 통해 해석될 수 있는 것은 비단 매춘만이 아니다. 근대적 삶의 거의 모든 것의 본질이 돈을 통해 해석될 수 있다. 살인배상금과 벌금, 매매혼, 신부 지참금, 뇌물 등 극단화된 인격적 가치의 등가물에서부터 노동분업과 화폐임금, 지성 활동, 신용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광범위하다. 일례로 수학적 연산을 필연적으로 만든 화폐경제로 인해 근대의 인간은 모든 가치를 아주 작은 단위로까지 세분화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이를 통해 삶의 내용에 훨씬 더 큰 정확성을 부여하고 경계를 더 엄밀하게 확정하는 태도를 익히게 됐다.

특기할 만한 것은 짐멜이 당대의 다른 지식인들과 달리 자본주의를 "이제 단순히 거역하거나 그 흐름을 되돌릴 수 없는 역사ㆍ사회적 세력과 질서"로 파악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문화의 파괴나 타락의 원인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다. 인격에 대비해 '물격'으로 표현되는 물질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짐멜은 개인 의지와 능력 여하에 따라 인간이 화폐를 통해 자유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은 화폐 덕분에 가축이나 곡물로 노동의 대가를 받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곳에서 다양하고도 추상적이며 지적인 직업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우리가 지금도 노동의 대가로 돼지 한 마리를 받고 있다면, 이 세계에 문학가나 학자, 의사 같은 고도의 정신작업을 하는 직업은 존재하지 않았으리라는 게 짐멜의 추측이다.

짐멜은 돈이 신도 악마도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이 세계의 본질적인 운동형식의 상징"이다. 그는 20세기를 여는 시대의 명저를 통해 돈이 단지 생산수단이나 경제학적 논구의 대상만이 아니라 근대적 삶과 근대성에 대한 사유의 핵심적 코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누구도 돈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오늘날, 돈은 이제 지양하기보다는 변증법적으로 고양해야 할 우리 현대적 삶의 중심축이다. 그러므로 짐멜은 돈이 인간 자유의 해방구가 될 수 있음을 간파한 최초의 철학자로서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 환영받아야 마땅하다.

돈의 철학
게오르그 짐멜 지음, 김덕영 옮김/길

이제 ‘자본론’을 잠시 덮고, 아프게 ‘돈의 철학’을 읽자
화폐가 없었다면 인간 정신의 진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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