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보니 "신문 첫 꼭지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첫 꼭지에 올랐다는 것은 좋든 나쁘든 그때 그 땅에 살고 있던 많은 인민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지나간 사건인 헤드라인이 지금 사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되짚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는 저자의 의도이기도 하다.
1840년 "1페니 우표의 그림 Penny Postage Picture"부터 2011년 "스티브 잡스 죽다 Steve Jobs Dead"까지 약 170여 년에 걸친 100대 사건이다.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을 뽑았다. 저자도 말했듯이 헤드라인과 사건이 세상을 바꾼 것은 명백하다. 몇몇 헤드라인은 상대적으로 그 파장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크기에 상관없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이를 방증하는 사건이 있다. 1988년 10월 1일 "화이트채플의 공포"이다. 나중에 알게 된 이름이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희대의 살인마 잭 더 리퍼의 첫 범죄를 알리는 헤드라인이다. 11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 사건은 그가 누구인지
그에 의한 피해자의 몇 명인지 모르는 해결 안 된 사건이다. 저자의 말처럼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세상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이 사건도 범인은 잡지 못하고 미궁에 빠졌지만, 세상을 바꾸는 작지만 커다란 발걸음이 되었다.
일련의 사건 이후 사람들은 이스트엔드 지역에 거주하는 가난한 여성의 삶에 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매춘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빈민가 지역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을 형성하였다. 불우한 여성을 돕기 위한 기부금 모금 행사가 활발하게 이어졌고, 거리에 가로등을 설치하였다.
신문은 그 시점에 인민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 또는 권력자가 인민에게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헤드라인으로 삼는다. 세상을 관통하는 '거시사'일 수도 있지만, 당시 '미시사'이기도 하다. 권력자나 영웅에 의해 이루어진 게 아니라 많은 인민의 희생과 노력으로 역사는 진보하였다.
1면 헤드라인만이 의미 있는 기사가 아니다. 작은 기사 하나도 세계를 바꾸고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일 수 있다. 그중 하나가 "경구피임약, FDA 승인받다 Birth Control Pill Approved By Commission"이다. 1960년 5월 9일,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세계 최초로 경구 피임약 에노비드(Enovid)의 판매를 승인했다.
경구피임약을 둘러싸고 수많은 반대와 논쟁이 일어났다. 주요 쟁점은 건강을 해친다는 신체적 부작용과 손쉬운 피임이 초래할 난교 등의 윤리적 부작용이었다. 그러나 피임약은 섹스의 혁명을 가져왔으며,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결정할 수 있게 되어 여성의 독립과 권리 신장에 크게 이바지했다.
피임약이 개발되기 전 미국 여성의 절반이 21세에 결혼했으며, 그 나이에 임신했거나 아이 엄마가 되어있는 경우는 40%에 달했다. 피임약이 나온 뒤 결혼과 첫 임신시기가 급속히 늦어지기 시작했다. 즉 피임약 덕분에 늦게까지 사회생활이 가능해진 여성이 자신의 의지로 사회활동을 하였다. 21세 이하 미혼 여성에게 피임약이 허용 시점은 1960년에서 1974년까지 다양하다. 일례로 1961년 예일대학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코네티컷에서 여성에게 피임약을 처방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갔다. 1965년이 되어서야 미헌법재판소는 성인 나이의 기혼여성에 한해서만 피임약 금지법을 폐지했다. 21세 이하의 미혼여성이 어디서나 피임약을 구할 수 있기까지는 그 이후로도 오랜 세월이 더 흘러야 했다.
이 에노비드는 미국 최초로 산아제한 클리닉을 개설한 마가렛 상거이다. 상거는 여성이 남성과 평등한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여성 스스로 출산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51년 미국 생물학자 그리고리 핀커스 박사에게 호르몬을 이용한 피임약을 개발해달라고 설득한 것도 그녀였다. 피임약이 결혼 연령과 임신시기를 늦추었으며 여권신장에 크게 이바지했다. 피임약 여권신장의 첨병이었다.
저자가 선택한 100가지 헤드라인이 꼭 역사상 중요한 사건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선택과 판단은 주관적이다." 한 줄 헤드라인으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도 있고, 다른 한 편으로는 한 줄 헤드라인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바라본다면 세상을 좀 더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저자는 간명하게 말한다. "헤드라인을 대표되는 과거의 사건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되짚으며 읽는다면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작은 발걸음이 한 걸음 한 걸음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 영향을 주고 바꾸고 있다. 이 책은 사건의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사건을 통해 새로운 책으로 이어지는 독서의 끈을 제공해줄 뿐이다. 이 책은 많은 알려지지 않은 사건과 사람에 관심을 가지는 데 필요하다.
세계사를 바꾼 헤드라인 100 |
덧붙임_
198쪽 경구피임약, 엔보이드(Envoid)는 에노비드(Enovid)의 오류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