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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왕과 나 :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요즈음 삼국지에 관심이 많다.

지금까지 알고 있는 삼국지와 다른 삼국지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지 읽을 수록 혼란스럽다. 모든 것이 내 만족을 얻기 위하여 다른 관점의 책을 찾고 그 만족될때 까지 멈추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 가지 의문점은 우리가 아는 삼국지 즉 삼국지연의는 가장 전형적인 역사 왜곡인데 가장 잘 팔리고 필독서로 알려져 있다. 아이러니이다.

역사물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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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도 역사 왜곡으로 말이 많다. 전채적인 흐름을 깨치지 않는 이상 문제는 없다고 보인다. 하지만 아직 역사를 잘 모르는 청소년에게는 드라마가 역사로 각인될 소지가 많다. 물론 작가가 거기까지 고민하여야 하나?

왕의 남자는 “공길 이라는 광대가 왕에게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니 비록 곡식이 있은 들 먹을 수가 있으랴”(60권 22장)’는 말을 하였다가 참형을 당했다”라는 연산군 일기 속의 한 줄의 기록뿐이다.
나머진 상상일 뿐이다. 영화나 연극은 역사 왜곡인가?

예종의 독살은 실록에 나와 있지 않은 내용이다. 하지만 조선애서 4명중 1명은 독살되었다는 말이 있다. 예종이 죽고 장손인 월산군이 아닌 자을산군이 즉위에 올랐는지에 대한 의문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의문이다.

예종 사망 당시 예종의 아들 제안군이 있었고, 자을산군의 형인 월산군도 있었다. 제안군은 4세밖에 되지 않아 왕위 즉위가 제외될 수 있었지만 16세인 월산군은 배제될 이유가 없었다. 더욱이 월산군은 세조의 장손이었다.
그런데도 정희왕후 윤씨는 자을산군으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했다. 이는 왕위 세습의 관습에 의할 때 비정상적인 절차였다. 자을산군이 왕이 된 데는 한명회라는 당대 최고의 권력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명회는 자을산군의 장인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는 아직 혼인이 이루어지지 않고있고 어떻게 한명회와 사돈을 맺게 할것인지 역사의 진실과는 다르다.

문제는 실존의 인물을 등장하기 때문에 논란거리 인것으로 보인다. 아니 더 중요한 것은 시청율이 되니 왜곡 문제도 나오는 것이다. 아니길 바라지만 버즈 마케팅의 일부가 아니길 바란다.

태왕사신기는 아직 보진 못하였지만 그 왜곡에 대해서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또 김종학이 홍보의 일환으로 대선을 거론 하였지만 그 뜻이 나쁘지 않았다면 당연한 행동이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흥행에 둔 것이므로 잘못되었다고 한것이다. 그 와중에 애국심에 호소한다는 허튼소릴 해대고. ㅎㅎㅎ [대선을 홍보의 장으로 생각하는 김종학 : 태왕사신기 잘될까?]

나는 역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나는 또 내 '개인적 견해'를 남에게 강요하지는 않는가?

아직 책은 읽지 못하였지만 역사를 읽는 방법으로 적절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에는 세 가지 독법(讀法)이 있습니다.

하나는 옛사람의 입장에 서서 역사를 보는 ‘역사적 견해’입니다.
또 하나는 오늘날의 입장에서 역사를 보는 ‘시대적 견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자신의 입장에서 역사를 보는 ‘개인적 견해’입니다.

[출 처 : 삼국지강의 中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