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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새로울 수 없으리라 확실한 예감에 사로잡히는 중년의 가을은 난감하다 내일이 새로울 수 없으리라 확실한 예감에 사로잡히는 중년의 가을은 난감하다. 젊은 글쟁이 가운데 몇몇이 외우고 있었다는 문장을 여러 번 읽어보았습니다. 중년과 가을은 왜 이리 서글픈지, 밟히는 낙엽 소리가 서월의 흘러감을 더 서글프게 합니다. 하지만 김훈은 '난감하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서글픔보다는 난감함이 마음이 더 아프게 합니다. 발문을 쓴 이인재 시인의 말을 빌려보겠습니다. "그때 나는 30대 초반이어서 저 난감함이 절실하지 않았다. (...) 선재의 중년은 가을이 아니었다. (...) 선배의 중년은 난감하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김훈의 중년은 난감하지 않은데 왜 우리의 중년은 가을이며 난감하다고 느껴야 하는지 진짜 '난감'합니다. 첫 번째로 엮은 "시로 엮은 가을"은 정말 난감합니다. 은 89년..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 길은 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말도 안 된다. 길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다니,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고 다시 읽었다. 무릎을 쳤다. 그렇지. 이게 맞는 말이지. 단지 차이는 '도'와 '이'가 '은'으로 바뀐 것뿐인데. 작은 차이다. 너무 예민하게 읽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읽어도 아니다. 왜 이렇게 바꾸어 사용했을까? 정호승이 바꾸었나 아니면 편집장의 의도? 묻고 싶다. 작은 차이에 많은 게 달라진다. 그 차이를 모른다는 게 문제이고 더 큰 문제는 차이를 알고 싶지 않은 것이다. 봄길 _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
그의 시가 이제 쓸모없는 세상이 돼버려서 그는 떠났다 김남주 유고시집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창작과 비평사, 1995)을 샀다. 시인의 부인 박광수가 엮었다. 시인의 떠남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법 없이도 다스려지는 세상이 돼서가 아니라 시를 쓸 수가 없어서, 시인이 필요없는 세상이어서가 아니라 그의 시가 이제 쓸모없는 세상이 돼버려서 그는 떠났다." 시인 _김남주 세상이 몽둥이로 다스려질 때 시인은 행복하다 세상이 법으로 다스려질 때 시인은 그래도 행복하다 세상이 법 없이도 다스려질 때 시인은 필요없다 법이 없으면 시도 없다 박광수의 말은 틀렸다. '그의 시가 이제 쓸모없는 세상이 돼버려서 그는 떠'난게 아니다. 그의 그는 아직도 필요하고 더욱 필요한 세상이다. 그가 없어도 그의 시가 필요한 세상이 남아있다. 그래서 시인은 행복하다. 시인..
11월 13일 -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사랑하는 친우親友여, 받아 읽어주게.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 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領域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말을 들어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
나는 이런 편견들을 부숴 버리고 싶을 뿐이다 : 내일도 우리 담임은 울 삘이다 문제아의 문제가 단지 그들의 문제라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한다. 왜? 문제아이니까. 너희들의 시선 _정준영 내가 공고에 다닌다고 그렇게 쳐다 볼 일 아니잖아 내가 공고에 다닌다고 그런 말 해도 되는 거 아니잖아 그런 어른들의 시선이 우릴 비참하게 만들잖아 너희 학교는 공고니까 비웃듯 말하는 네 표정이 너랑 나랑 이젠 다르다는 말투가 '내가 왜 그랬지'라는 하지 않아도 될 생각을 하게 만들잖아 자꾸 그렇게 볼 수록 정말 난, 네가 말하는 내가 되어 가고 있잖아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사람들은 실업계를 어떻게 생각할까? 무식하고 사고 치고 예의 없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왜일까? 바로 실업계라는 것 때문이다." 편견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잣..
언제나 안개가 짙은 안개의 나라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안개는 신비하다. 도대체 무엇인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다. 안개의 정체를 알 수 없음은 물론이고 안개가 감싸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 안개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안개가 감싸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안개는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하지만 안개도 만능이 아니다 멀리 보이는 것만 보호한다. 가까이 다가가 그 실체를 알려고하면 안개의 그 자취를 감춰버린다. 그 자리의 안개는 다른 먼 곳을 보호하려 그곳으로 가 있다. 그래서 안개는 현실적이다. 보지 않으려 하는 것만 감춘다. 보려 하면 안개는 그저 말없이 보여준다. 얼마전 신문에서 '안개의 나라'라는 詩를 빗대어 쓴 글을 읽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안개의 나라'라는 것이다. 온통 안개속에 있어 무엇인지 구별할 수 없..
외줄 위에선 희망도 때론 독이 된다 외줄 위에서 - 복효근 허공이다 밤에서 밤으로 이어진 외줄 위에 내가 있다 두 겹 세 겹 탈바가지를 둘러쓰고 새처럼 두 팔을 벌려보지만 함부로 비상을 꿈꾸지 않는다 이 외줄 위에선 비상은 추락과 다르지 않다 휘청이며 짚어가는 세상 늘 균형이 문제였다 사랑하기보다 돌아서기가 더 어려웠다 돌아선다는 것, 내가 네게서, 내가 내게서 돌아설 때 아니다, 돌아선 다음이 더 어려웠다 돌아선 다음은 뒤돌아보지 말기 그리움이 늘 나를 실족케 했거늘 그렇다고 너무 멀리 보아서도 안되리라 줄 밖은 허공이니 의지할 것도 줄밖엔 없다 외줄 위에선 희망도 때론 독이 된다 오늘도 나는 아슬한 대목마다 노랫가락을 뽑으며 부채를 펼쳐들지만 그것은 위장을 위한 소품이다 추락할 듯한 몸짓도 보이기에는 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외길에서..
청년이라야 가슴에 고래 한 마리를 키우는 것은 아니다 비가 와도 담배를 피울 수 있는 빨뿌리 공장을 차리고 싶다는 영철. 동해 바다의 고래 잡으러 떠난 영철. 그에게는 늘 마음 속에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마음 속의 고래를 찾아 동해 바다로 뛰어든다. 고래를 찾아 떠난 영철은 고래를 찾아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살아있다면 지금은 환갑을 넘긴 나이일텐데 아직도 마음 속에 고래 한 마리를 키우고 있을까. 고래를 위하여 - 정호승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올라 별을 바라본다. 나도 가끔 내 마음 속의 고래를 위하여 밤하늘 별들을 바라본다 - 내 마음속에 고래 한 마리를..
이 땅은 아직도 시가 필요한 세상이다 : 이성부 시인을 그리며 이성부 시인이 2월 28일 돌아가셨다. 뒤늦게 알게되어 검색하니 신문 몇몇에만 몇줄의 기사가 보인다. 詩가 죽었다지만 시인의 세계마저 죽은 것은 아니다. 시인의 명복을 빈다. 시인은 3번 째 시집 의 후기에서 "어렵고 버림받은 사람들의 승리가, 반드시 고통 속에서 쟁취된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더불어 "그러기에 나는 나와 내 이웃들의 고통의 현장에서 한발자욱도 비켜설 수 없다"고 1977년에 말했다. 35년전 시인이 말하는 "버림받은 사람들"이 지금도 우리곁에 있다. 그러기에 시인의 노래는 우리와 같이 할 것이다. 시인 김남주가 "세상이 법 없이도 다스려질 때 / 시인은 필요 없다 / 법이 없으면 시도 없다"고 했다. 이 땅은 아직도 법法으로 다스려지지 않는 세상이다. 이 땅은 아직도 詩가 필요한 세..
詩가 죽은 세상에서 황지우의 <발작>을 읽다 98년 12월 초판 발행인데 99년 3월에 8쇄다. 시詩가 팔리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詩가 죽었다. 내가 詩를 사지 않으니 詩가 죽었다고 말해도 좋다. 정희성을 좋아하고 지하를 존경하며 백석을 전부라고 생각했다. 내가 황지우를 알게된 것은 생일에 후배에게서 시집을 받고 나서였다. 라는 황지우의 시집이다. 시집 뒷편에는 후배의 글이 있다. "형. 생일 축하하우. 항상 태어나는 아픔을 ... 일천구백팔십육년 일월 십구일" 그 이후 황지우는 정희성에 버금가게 좋아했다. 지금은 세월과 함께 잊었지만 내 머리 속에는 황지우의 이해하지도 못하는 구절을 외우곤 했다. 이제는 다시 정희성과 황지우의 책을 손에 잡고 그의 글을 읽는다. 후배는 지금 어디서 뭘하고 있을까. 왜 지금은 만나지 못하고 있을까. 책을 보면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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