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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2년 5월 4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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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저만 잘났다. 툭하면 소리 지르고 싸움을 건다. 친구도 없다. 그래도 공부는 늘 1등이니, 식구들은 아무 말도 못한다. 그 아이는 “공부는 예술”이라며 늘 혼을 실어 공부한다고 말한다. 등수는 따라온 것뿐이라며.

애플의 모습이다. 스티브 잡스가 또 그렇다. 애플은 잡스의 디엔에이를 그대로 받아 자란 나무다. 잡스는 자아도취적이며, 변덕스럽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배려할 줄 모른다. 애플이 그렇다.

애플은 또 현대 경영학의 검증된 이론을 완전히 거스른다. 정보공유란 단어가 없다. 온통 비밀스럽다. “애플 직원들은 회사에 목수가 나타나면 뭔가 중요한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직감한다. 새로운 벽이 세워지고 거기에 문이 생기며 보안장치가 마련된다. 투명했던 창문은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코팅 처리된다.”

지은이의 관심은 ‘못된’ 애플을 드러내자는 게 아니라 이런 기업이 어떻게 세계 최고가 되었는가에 있다. 그리고 욕을 먹는 바로 그 못된 짓들에서 비결을 찾는다. ‘아니오’라고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것은 애플 제품 개발의 핵심 교리이다. 좋은 제품은 배려에서 나올 수 있지만 세계 최고는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 누더기가 되는 일쯤은 있을 수 있다. 애플은 직원들끼리 궁극적으로 꼭 알아야 할 것만 공유한다. 제품에 악착같이 필요한 기능만 남기는 철학과 같은 맥락이다. 관심을 꺼야 내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중해야 최고가 나온다.

애플 직원들은 일을 즐긴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만큼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최고 시기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애플에서 일하던 시기가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내가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었다, 그런 회사에서 일한다는 직원들의 자부심은 잡스가 남겨준 유산이다. 그것은 애플을 지탱해줄 가장 강력한 경쟁력의 원천일 것이다.”

인사이드 애플 Inside Apple
애덤 라신스키 지음, 임정욱 옮김/청림출판

‘막돼먹은 애플씨’의 성공 비결
애플을 이끄는 힘 ‘Top Sec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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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주시했던 우리 사회의 ‘스캔들’ 앞에서 스스로의 욕망을 되돌아본다. 예컨대 ‘신정아 사건’에서는 한평생 ‘소년’의 욕망을 억압해왔지만, 성공한 중년이 되자 신씨와의 사랑으로 일탈을 감행한 중년 남성(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의 모습이 보인다. 욕망에 충실한 ‘색’의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다. 일탈하는 아저씨의 반대쪽에는 ‘사냥꾼이 된 아저씨’가 있다. 스캔들이 터지면 희생양을 향해 돌부터 내던지는 이들은 규범에 충실한 ‘계’의 세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이들은 “같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다. 지은이는 ‘그 사람과 내가 뭐가 다르지?’ 질문해보자고 말한다. 사냥꾼이 된 아저씨 역시 다양한 욕망을 품고 있지만, 일탈한 아저씨를 희생양 삼아 그 욕망을 배출하는 것 아닌가? 규범에 대한 과도한 강조가 모든 이들에게 자기 욕망을 억누르고 희생양을 제물로 바치기를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다.

비(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바이러스와 동행하기 때문에 항체가 생기지 않는다. 평생 바이러스를 갖고 살다가, 어느 시기 만성 간염이나 간경화, 또는 간암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그런데 병을 얻는 이유 자체는, 엄밀히 말해 바이러스 탓이 아니다. 나이 들고 약해지면 몸의 면역체계가 평생 별 탈 없이 함께 살아온 바이러스를 새삼 공격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이러스에 대한 과도한 투쟁이 병과 죽음을 불러오는 셈이다.

법과 인권 등의 주제를 다뤄왔던 지은이는 왜 갑자기 욕망 이야기를 꺼냈을까? 욕망은 비형간염 바이러스와 같다. 과도하게 부인하고 억압하면 병을 만드니, 살살 달래가며 살자는 게 책의 1차적인 결론이다.

욕망해도 괜찮아
김두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욕망과 규범은 ‘일란성 쌍둥이’
욕망을 억제대상 아닌 삶의 친구로 삼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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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25책을 팔경(八經), 오서(五書), 십이자(十二子)로 나눠 그 내용을 살폈다. 팔경에는 주역 시경 서경 예기 춘추 악경 이아 효경이, 오서에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소학이, 십이자에는 관자 묵자 노자 장자 순자 손자 한비자 상군서 전국책 공손룡자 양주 추연이 포함돼 있다. 이 중 양주와 추연은 책이 전해지지 않지만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판단에서 다른 저작에 남은 토막글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책마다 10여 장씩 분량을 할애해 저자가 독창적으로 해석한 책의 의미와 핵심 내용을 정리했다.

예를 들어 ‘주역(周易)’에서는 유일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동아시아에서 주역이 미래를 모르는 사람에게 후회할 일을 하지 않도록 하는 예방 백신, 또는 선택을 주저하는 사람에게 확신을 심어줘 과감하게 베팅하게 하는 가속기 역할을 했다고 읽어냈다. ‘논어(論語)’에서는 공자의 ‘인(仁)’을 ‘사랑’으로 봤다. 직업과 나이, 성별, 국적 등 모든 걸 떠나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인이고, 사람다운 것이며, 바로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인간의 쾌락 본성을 다룬 ‘악경(樂經)’이 실종돼 ‘예기(禮記)’ 속 ‘악기(樂記)’라는 한 편명으로만 남은 사연을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나 지난해 큰 인기를 끈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와 비교해 설명한 부분이 흥미롭다. “진시황제는 분서갱유를 실시했고 ‘악경’은 사람들의 시야에서 실종됐다. … 한제국이 등장한 이후에 ‘악경’은 왜 다른 경처럼 모습을 다시 드러내지 않았을까? 쾌감을 용인하지 않는 시대와 권력 의지를 수호하는 경학자들이 ‘악경’의 발견을 저지했기 때문이다. 코미디를 싫어한 (‘장미의 이름’의) 호르헤처럼 쾌감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경학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동양고전 입문서로 권할 만하다. 책들이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고, 어떤 사상과 내용을 담았다는 걸 알게 되면서 추상적 형태로만 있던 동양고전이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다. 인간의 욕망과 언행을 시로 담아낸 ‘시경(詩經)’에서 ‘혼기가 찬 여성이 가지에 남아 있는 매실 개수를 소재로 자신을 하루 빨리 데려가 달라’고 노래한 ‘매실을 따다’를 읽고는 2000여 년 전 여성에게 강한 공감이 느껴져 피식 웃음이 났다.

저자는 “고전의 높이를 낮추고 무게를 줄여 대중이 고전의 바다에서 헤엄칠 수 있어야 한다. 과거라는 무게에 짓눌리지 말고 고전을 지금의 현실에 맞게 해석해 그 속에서 개개인의 삶의 방향성과 자세를 찾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이 책은 ‘단순한 2차 텍스트’로서의 위험성을 부정하기 어려운 다이제스트다. 인문학, 더 정확히는 동양고전 열풍이다. 출판계에서는 ‘논어’란 말만 들어가도 책이 팔린다고 한다. ‘한비자’로 인간을 경영하고, ‘논어’로 마케팅을 한다는 책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 이름은 다 들어본(하지만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는) 고전 핵심 명저들을 한 권으로 정리했다는 이 책은 꽤 매력적이다.

동양 고전을 서양 인문학과 결부시켜, 대중의 눈높이로 창의적 해석
무거운 동양고전? 25책의 大海, 한 권으로 헤엄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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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 차이는 있지만 이들의 성취는 '반역'의 산물이었다. 새뮤얼슨과 로버트 솔로는 연구 초기에 당대 주류인 신고전주의가 효용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게리 베커는 경제학의 편협성에 반기를 들었다. 더글러스 노스는 경제학의 몰역사적 접근 방식에 반대했고, 조지 애컬로프는 경제학이 사회학적인 문제에 무관심한 데 맞섰다. 라인하르트 젤텐도 "나는 한 번도 사람들에게 휩쓸린 적이 없다"고 했다.

원제는 'Roads to Wisdom(지혜에 이르는 길들)'. 하이에크의 고전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을 본뜬 것은 다분히 상징적이다. 하이에크의 책은 1944년 집산주의와 전체주의 세력 확장에 대한 경종이었다.그중에서도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지식의 분업을 통해 시장에서 진화 혹은 진보가 일어난다'는 그의 통찰. '지식의 분업'은 애덤 스미스의 '노동의 분업론'과 연결된다. "우리가 식사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양조장,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익에 대한 그들의 관심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성에 호소하지 않고 그들의 이기심에 호소하며, 그들에게 우리 자신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을 이야기한다."(국부론)

저자는 지식의 진보 역시 시장과 마찬가지로 경쟁의 산물이라는 진리를 일깨운다. "두 영역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혁명적 과정을 이끄는 원동력은 바로 보상을 바라는 야망으로 인해 펼치는 경쟁이다. 그 경쟁은 게임 참가자들의 야망을 사회적인 면에서 적절히 생산적인 방향으로 돌릴 수 있는 규칙에 좌우된다."

학자들의 경제학적 성취의 내용도 충분히 소개된다. 쉽지 않은 내용이지만 인터뷰라는 형식이 이해를 돕는다. 학자들이 자신의 이론을 육성으로 설명해주는 느낌이다. 어쩔 수 없이 따르는 부족한 설명은 저자의 각주로 메운다. 하지만 각주로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을 듯싶다.

경제학을 다루고 있지만 경제학 서적의 성격보다 ‘인터뷰 모음집’의 느낌이 더 강하다. 어렵고 따분하게 느끼기 쉬운 경제학 대가들의 연구실과 자택에서 대화를 듣는 듯한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작고한 새뮤얼슨의 인생이 담긴 인터뷰를 보는 즐거움과 아련함은 덤이 아닐까.

지식의 탄생
카렌 호른 지음, 안기순.김미란.최다인 옮김, 안기정 감수/와이즈베리

‘노벨경제학상’ 10인이 말하는 위기 해법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10명이 본 ‘세계 경제’
재능, 우연, 반역… 노벨상은 그렇게 왔다

노벨상 수상 10人…그들은 어떻게 `경제학 大家`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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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창의력과 적응력, 독창성과 순발력. 크로마뇽인에게는 있었고, 네안데르탈인에게는 없었던 것들이다. 이 차이가 그들의 운명을 갈랐다. 저자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적절한 재료들로 각종 도구와 무기를 만들어낸 크로마뇽인의 능력에 주목한다.

특히 실을 꿸 수 있게 귀가 뚫린 '바늘'은 불의 사용에 비견할 만한 인류 최고의 혁신이자 발명이었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을 듯한 이 작은 도구가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 수만년 동안 네안데르탈인들은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망토처럼 동물의 가죽을 몸에 걸쳤다. 하지만 크로마뇽인은 바늘을 이용해 몸에 꼭 맞는 여러 겹을 덧댄 옷을 만들었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현대 아웃도어 장비를 파는 곳에선 겹겹으로 된 보호장비를 마치 놀라운 발명품인 것처럼 팔고 있지만, 이런 장비는 크로마뇽인이 진작에 사용한 것이다."

크로마뇽인은 일년 중 대부분 기간 동안, 옷을 여러 겹 입고 겉에 가벼운 파카를 걸쳤는데, 이렇게 하면 열이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또 열이 올라 땀이 차면서 체온을 떨어뜨리는 현상도 방지할 수 있다. 반면 네안데르탈인들은 겹쳐 입는 맞춤옷을 만들지 못했던 것이 북유럽 평원에서 일정기간 이상 거주하지 못했던 이유일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현대 스위스 아미(Swiss Army) 칼에서도 크로마뇽인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많은 크로마뇽인들은 몸체가 되는 돌, 즉 몸돌(石核·core)을 지니고 다니면서 특별한 도구가 필요한 상황이 오면 격지(돌 파편으로 만든 조각)를 떼어 내 사용했다. 크로마뇽 석공들은 새기개·긁개 등 다양한 모양의 격지를 제작했는데, 다목적으로 사용된 이들 도구에서 몸체 하나에 여러 가지 도구가 들어 있는 스위스 아미 칼의 철학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크로마뇽인에겐 사냥과 채집은 물론 이주할 때도 '협동'이 기본이었다. 협동 능력은 생존에 필수 태도였다. 그들만의 지혜와 상호 협동, 유연함을 배워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결국 이것. "그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살았고 도전으로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인간이 가진 독특한 적응력과 창조력, 기회주의적 특성에 의존했다. 우리는 먼 과거에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크로마뇽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김수민 옮김/더숲

크로마뇽인 對 네안데르탈인, 승부처는 '바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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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더는 고학력의 리버럴한, 혹은 리버럴한 체 하는 백인을 과녁으로 삼는다. 그들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줄 의료서비스에 모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며 무상의료를 열렬히 지지한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이 건강할 때만 그렇다. 자기가 MRI를 찍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상황이 닥치기 전까지 말이다. 자식이 없을 때, 공립학교를 지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랜더의 글은 중산층 백인들이 '쿨'하게 보이려는 과시욕을 음악, 음식, 패션, 영화, 드라마 같은 일상에서 찾아낸다. "스테레오검이나 플럭스블로그가 없다면 죽어버릴 거야." "조애너 뉴섬이 오늘날 가장 독창적인 아티스트야." 독자들은 스테레오검이나 조애너 뉴섬을 몰라도 전혀 불안해할 필요 없다. 생소한 인디음악을 즐길수록 음악 수준이 높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일 뿐이다. 이 책엔 이런 리스트가 150가지나 실려 있다.

이들은 선댄스, 토론토, 칸 영화제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 '주류'에 속하는 것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거의 강박적으로 외국 영화와 인디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보다 낫다고 말한다. "요즘은 세르비아 영화에 푹 빠져 있거든요. 밴쿠버 영화제의 세르비아 영화 회고전은 정말 대단했어요" 하는 식이다.

이들은 유기농 홉만 사용하는 소규모 맥주집을 선호하고, 마라톤과 인디밴드를 즐기며, 건축에 관한 크고 두꺼운 책을 선물 받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애플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창의적이고 특별한 사람임을 만천하에 알리고자 한다. '창의적으로 이메일을 체크하고, 창의적으로 웹사이트를 검색하고, 창의적으로 DVD를 시청하기 위해'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 같은 애플 제품을 사랑한다.

번역서는 '미국판 강남좌파의 백인문화 파헤치기'란 문구를 표지에 넣어 호기심을 유발한다. '백인은~' 하고 시작하는 랜더의 글이 지나치게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거나, 견강부회도 있어 불편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책장을 넘기다 보면, 쿡쿡 하고 웃게 만드는 대목이 여럿 있다.

아메리칸 스타일의 두 얼굴
크리스천 랜더 지음, 한종현 옮김/을유문화사

교양·배려로 포장된 위선… '미국판 강남좌파'에 하이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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