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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2년 6월 2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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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서재>에 이은 또 하나의 서재 인터뷰로, 책 읽는 대한민국 대표 CEO 8人에게 듣는 경영의 예술이 담겨 있는 책이다.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을 책임지며 성공적으로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리더들에게 서재란 어떤 의미인지, 젊은 날의 그에게 영향을 끼친 책과 한 기업의 리더가 된 지금 경영에 영감을 준 책들은 무엇인지, 호기심의 발로에서 시작한 것이 이 책이다.

1년 여 동안 다양한 분야의 CEO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정원 작가가 얻은 결론은 단 하나. 그들은 책에서 읽은 것을 체화해 기업경영에 적용하고 터득한 지혜를 현실에서 실천하는 ‘행동파 CEO’였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책은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선택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반이었으며, 한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도록 토대가 된 경영철학의 원천이었다. 또한 책은 오늘날 그들을 성공의 자리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이었으며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도록 부추기는 훌륭한 참모진이었다.

이 책은 그동안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대한민국 대표 CEO들의 사유의 공간, 사적인 삶의 내면을 엿볼 수 있고, 더불어 책으로부터 얻은 지혜를 어떻게 경영에 접목시켰는지 그들의 경영철학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지금의 그들을 만든 책들의 목록과 세계를 무대로 도약을 꿈꾸는 청춘들에게 권하는 추천도서도 만나볼 수 있다.

CEO의 서재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행성B잎새

서재에서 답을 찾는 회장님, 우리 회장님
CEO의 서재 [행성: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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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 인문과학 캠프 시리즈 3권. 「타임스」의 스포츠 저널리스트인 매슈 사이드가 스포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세상을 보는 패러다임을 새롭게 제시한다. 2010년 한국에 출간된 <베스트 플레이어>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아침독서신문 등에서 ‘청소년들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선정된 바 있다.

스포츠는 경쟁을 통해 승부를 가리고 목표를 향해 도약하는 가장 생생하고 원초적인 인간의 육체 활동이며, 인간의 내밀한 욕망과 감정이 밖으로 표출되는 직관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포츠에는 인생이 있고, 성공과 좌절의 드라마가 있고, 승자들이 만들어낸 승리의 법칙과 성공의 메커니즘이 숨어 있다.

매슈 사이드는 베스트 플레이어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답을 얻었다. 베스트 플레이어들에게는 누군가를 닮고 싶은 욕구,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습관, 노력을 칭찬하는 훈육 방식이 남달랐다는 것이다. 근육과 뇌신경에 축적하는 경험과 지식의 축적하고 잘 조합하면 ‘평범한 사람도 베스트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저자는 베스트 플레이어들이 타고난 재능이나 부유한 환경의 혜택, 인종적 우수성과 같은 유전자의 확률적인 행운이 결코 성공의 근원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심리학 연구와 스포츠과학, 행동경제학, 신경과학, 문화인류학, 종교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논거들을 통해 입체적이고 과학적인 글쓰기로 독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베스트 플레이어
매슈 사이드 지음, 신승미 옮김, 유영만 해제/행성B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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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조상이 ‘지금의 우리’로 진화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혁신과 변화, 진보가 있어야 했을까. 책은 인류가 진화과정에서 이뤄냈던 주요한 혁신의 첫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이른바 인류를 진화시킨 최초의 행위나 물건 18가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핀다. 직립보행부터 최초의 도구, 최초의 불, 최초의 언어, 최초의 살인무기 등 이렇게 다뤄지는 ‘최초의 것’들이 모두 18가지다. 인간의 삶을 결정적으로 발전시킨 18가지 ‘최초의 것’들을 연대순으로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가장 첫머리에 ‘직립보행’을 제시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아프리카 차드의 한 사막 퇴적층에서 한 노련한 인류학자가 악어와 거대물고기의 잔해를 발견한다. 그 50㎝ 아래 퇴적층에서 영양과 돼지, 하이에나의 뼛조각들과 함께 700만 년 전에 살았던 인류 조상의 두개골이 나왔다. 그 두개골은 지금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인간종의 표본이었다. 700만 년 전에 이 땅에서 살았던 두개골의 주인에게는 ‘투마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학자들은 투마이가 두 발로 걸었던 것으로 추론했다. 저자는 투마이가 호숫가의 얕은 가장자리를 걷는 장면을 3인칭 전지적 시점의 소설, 혹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묘사한 뒤 그가 걷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으며, 걷고나서는 무엇이 변화했는지를 추적하고 분석한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최초의 도구와 불의 발견, 최초의 언어 등이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추적한다. 당대에 함께 생존했으니 어디선가 반드시 있었을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와의 첫 만남,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사용했던 무기, 가장 먼저 그림을 그렸거나 피리를 불었던 순간 등에 대한 탐구가 어찌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최초의 것
후베르트 필저 지음, 김인순 옮김/지식트리(조선북스)

인류가 남긴 ‘위대한 첫 발자국’ 18가지
CSI처럼 밝혀낸 인류 고대사 18장면
직립보행부터 컴퓨터까지 18개 주제로 본 ‘재미있는 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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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이남 국가들이 지난 1970년 이래 40여년 동안 서구 등지에서 받은 개발원조금은 3000억 달러 이상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 국가들은 지금까지 끝이 없어 보이는 부패와 질병, 빈곤, 원조 의존의 악순환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다.

잠비아 루사카에서 태어나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각각 석사 및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책에서 일반적인 통념과는 반대로 “원조 때문에 아프리카 국가들이 더 빈곤해졌다”고 주장한다.

하버드대의 저명한 경제사학자인 니얼 퍼거슨 교수의 제자이기도 한 저자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원조 의존이 가장 높았던 국가들은 도리어 -0.2%의 연간 성장률을 나타냈다. 아프리카 원조가 절정을 이뤘던 1970년에서 1998년 사이에 아프리카의 빈곤비율은 11%에서 믿기 어려운 정도인 66%까지 치솟았다. 저자는 “원조는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에게 전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인도주의적 재앙이 돼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단언한다.

저자는 무엇보다 아프리카에 제공되는 양허성(비긴급상황) 차관 및 증여가 부패와 갈등을 조장하는 동시에 자유기업 체제를 방해한다고 말한다. 가령 자이르공화국(1971년부터 1997년까지 사용된 콩고민주공화국의 옛 이름)의 세세 세코 모부투 대통령은 재임기간 국가의 전체 외채와 맞먹는 액수인 50억 달러를 빼돌린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03년 아프리카가 받은 해외 원조 수령액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금액인 최소 100억 달러가 매년 아프리카 대륙에서 어디론가 새어나가고 있다. 원조금은 대개 아프리카의 각국 정부에 직접 전달되기 때문에 횡령이 쉬울 뿐 아니라 영향력을 갖기 위해 각축을 벌일 만한 가치가 있는 정부를 통제할 수 있게 해준다.

죽은 원조
담비사 모요 지음, 김진경 옮김/알마

아프리카는 원조 때문에 더 가난해졌다
“선진국 원조가 아프리카 죽인다” 잠비아 여성 경제학자의 ‘절규’
아프리카 살리려면 ‘죽은 원조’부터 중단하라
서방의 ‘이기적 원조’가 아프리카를 빈곤의 수렁에 빠뜨렸다
아프리카 원조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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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나쁜 평판'이다. 이를 퍼뜨리는 데 뒷담화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누군가를 험담한다. 이때 타인에 대한 정보를 친구에게 전해주는 것은 충성심의 표현이다. 누군가를 뒷담화하면서 내가 당신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연예인에 대한 소문은 불량식품과 비슷하다. 특히 사람들은 연령과 성별이 같은 연예인 소문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다. 심리학자 프랭크 맥앤드루 교수는 일상생활에서 공통점이 많은 사람들이 친구나 경쟁자가 되기 때문이라고 추론한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나을까?"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둘은 양립하기 어렵다.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사랑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짝짓기를 위해 싸우는 수컷 새들은 노랫소리를 몇 초만 듣고도 상대가 나보다 센지, 약한지 바로 안다. 그런데도 새들은 몇 분 더 노래한다. 이번 대결에서 이기진 못하지만 노래를 듣고 있는 다른 새들에게 자신이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라는 메시지를 줘서 자기에게 함부로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물고기 베타 수컷은 상대가 약해 보이면 꼭 암컷 앞에서 싸운다.

평판도 먹고살기 좋을 때 생긴다. 샐리 앵글 메리는 그리스의 목축민들을 연구하면서 소문과 스캔들, 남의 의견을 걱정하는 사람은 중산층밖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층민들은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 반대로 상층민들은 예의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을 의식하지 않고 거의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

사람들은 평판을 보호하기 위해 소통을 조작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예를 들면 페이스북 프로필엔 친구가 아닌 대학 입학사정관에게 잘 보일 만한 행동을 중점적으로 기록한다. 국가도 평판을 관리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셸링은 1966년 "우리가 3만명의 병력을 잃으면서까지 6·25 전쟁에 참여한 것은 진정으로 한국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과 국제연합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였다"고 썼다.

무심코 내뱉은 말, 습관적인 행동 하나, 사소한 '장치'들이 모여 '나'를 결정한다. 수군수군 두런두런, 어디선가 내 얘기를 하고 있는 누군가(들)가 보인다. 나는 평판에 휘둘리는 사람인가, 스스로 평판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인가. 지구상의 모든 다세포 생물의 유전자에 깊숙이 각인되어 있는 평판의 진면목을 과학적으로 파헤쳤다.

국가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 또한 이런 평판의 특성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인류 역사가 기록된 이후 모든 집단은 싸움에서 한 번 물러서면 적에게 나약함의 신호로 받아들여져 공격을 부를 가능성이 커진다고 우려했다.

저자는 “평판은 타인을 신뢰하기 전에 미리 체험하는 간접 경험이자 노력의 낭비를 막아주는 장치다”라고 말한다. 이런 평판은 사람들의 행동을 반영하는 동시에 형성하기도 한다. 앞으로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지금의 내 행동에 달려 있다는 인식은 부정적인 행동이 주는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평판을 인간관계의 핵심으로 규정하며 진화생물학, 심리학, 행동경제학, 신경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설명한다. 저자는 진화생물학자답게 인간처럼 무리를 지어 살고, 다른 개체의 시선을 의식하며 평판을 이용하는 다양한 동물과 물고기 사례를 제시해 인간이 어떻게 평판을 형성하고 이용해 왔는지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다. 동료의 행동을 관찰·모방해 먹이를 찾는 청가시고기, 다른 수컷들의 대결 소리를 엿듣고 어떻게 싸울 것인지 전략을 세우는 박새 등의 이야기는 평판의 세계를 보다 흥미롭게 이끈다.

평판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다양한 평판 관리 방법을 일러주는 책은 많다. 하지만 이처럼 평판의 탄생에서부터 순기능과 역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통찰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무엇이 우리의 관계를 조종하는가
존 휘트필드 지음, 김수안 옮김/생각연구소

왜 붐비는 식당이 괜찮아 보일까… 그게 바로 평판
조직내 나의 평판, 능력만큼 중요하다

사람도, 동물도 '평판'에 목매는 까닭은?
이베이 성공 비결? 평판에 약한 인간 심리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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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은 명쾌하다. 열대 섬을 떠올려 보자. 오렌지와 바나나가 손만 뻗으면 닿을 높이에 주렁주렁 열려 있다. 다들 훌라춤을 추며 기분 좋게 하나 둘 따서 입에 넣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 틈엔가 손쉽게 따 먹을 만한 자리에는 열매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바로 17세기 이래 미국(나아가 선진국 일반)이 이런 길을 걸어왔다고 쓴다. '따먹기 쉬운 과실'이란 광활한 땅과 풍부한 이주 노동력, 강력한 혁신 기술을 말한다. 19세기 말까지 미국엔 비옥한 땅이 널려 있었다. 이곳으로 머리 좋고 야망 있는 유럽인들이 몰려들었다. 여기에 폭발적인 기술혁신이 더해졌다.

전기·전등·자동차·비행기·전화기·의약품·가전제품 등 현대의 이기(利器)들이 대부분 1880~1940년 사이 쏟아져 나왔다. 오늘날 우리의 생활환경도 1950년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물론 더 편리하고 풍부해졌다. 하지만 2~3세대 이전과 비교하면 실질임금 상승은 눈에 띄게 둔화했고 기술 변화도 더디다. 여전히 우리는 자동차를 몰고 전기로 냉장고를 쓴다. 기술 혁신율은 1955년경 이후 급락세다. 계속된 경제 침체는 이런 물밑 사정의 반영일 뿐이다.

인터넷이 있지 않으냐고? 물론 IT 혁명은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정작 경제 수익이나 고용 창출에 관한 기여도는 기대 이하다. 과거 기술 발전은 수익 증가로 이어졌지만 웹에서는 다르다. 저자는 1년 전에 이미 "페이스북은 최근 5억 명의 회원을 확보했지만 사람들은 페이스북이 큰돈을 벌어 경제에 도움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썼다. 페이스북은 지난달 상장 후 주가가 곤두박질 쳤다.

20세기 초 포드와 GM이 상장했을 때만 해도 일자리 수백만 개가 생겼다. 구글의 고용 효과는 2만명, 페이스북 1700(+α)명, 트위터 300명 수준이다.(2010년 기준) 웹 2.0은 사용자나 프로그래머들, IT 전문가들에게는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 금고를 채우지도, 많은 가계를 부양하지도 못한다. 결과는 '고용 없는 성장'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탈물질주의의 역설'이다. 오늘날 부자들이 물질주의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찾고 명상과 요가에 빠져들면서 오히려 경제는 동력을 잃고 있다. 대부분 웹서핑을 하면서 다이아몬드는 사지 않고 무료 정보·오락을 즐기거나 SNS에 탐닉한다.

저자는 당분간 우리 앞에 손쉽게 따먹을 과일이 없다는 현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재도약을 위해서는 완전히 혁신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저자는 세 가지에 희망을 건다. 첫째, 세계 성장의 엔진으로 떠오른 인도와 중국이 과학과 공학 기술에 관심을 보인다. 이들에게 혁신 주체로서 더 큰 역할을 기대한다. 둘째, 인터넷이 지금보다는 더 큰 수익을 창출할 거란 믿음이다. 인터넷이 앞으로 수십년간 과학적 발전에 촉매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셋째, 혁신의 온상인 교육 개혁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저자가 가장 방점을 두는 것은 혁신의 주축인 과학과 과학자를 우대하는 문화 조성이다. 저자는 무언가 창조해낸 사람들과 혁신을 존중하고 과학에 기반을 둔 기업을 더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피는 작지만 현대 경제가 고민해야 할 화두를 알차게 담고 있다. 잘 쓰인 책이 꼭 길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이유를 상기시킨다.

거대한 침체
타일러 코웬 지음, 송경헌 옮김/한빛비즈

북스 화제의 신간 '새 물건'은 1950년에 다 나왔다… 그게 지금의 위기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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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명언들만 모아놓은 독특한 책이다. 저자 마디 그로시는 물건 대신 '말'을 모으는 수집가. 수십년 동안 닥치는 대로 명언을 수집해온 그는 '절대'로 시작하는 명언 파일을 정리해 신간 '독한 충고'를 펴냈다. 원제는 '네버리즘(Neverisms)'.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의 'Never'에다 '~주의(主義)'를 뜻하는 'ism'을 붙여 그가 만든 신조어다.

미국의 비즈니스 연설가 하비 매케이는 저서 '하늘 위까지 편지를 보내라'에서 8살 때의 일화를 언급했다. 계단 난간에 앉아있던 그에게 아래서 올려다보던 아버지가 "난간을 미끄러져 내려오면 내가 받아주마"라고 했다. 미심쩍은 하비가 "아빠가 정말 잡아줄지 어떻게 알아요?"라고 되묻자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안심시킨다. "나는 네 아버지고, 내가 잡아준다고 했지 않니." 안심한 아들은 난간을 타고 주욱 미끄러졌다가 '쿵'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아버지가 말했다. "비즈니스에서는 절대 누구도 믿지 마라. 상대가 네 아버지라 해도 말이다." 매케이는 "그날 이후, 나는 어떤 비즈니스를 할 때건 모든 것을 확실히 해두려 애썼다. 계단 난간은 효과적인 교과서였다"고 회고했다.

직장 상사라면 한 번쯤 곱씹어볼 만한 네버리즘이 수두룩하다. '절대 남들 앞에서 직원을 혼내지 마라' '절대 불평하는 직원의 응석을 받아주지 마라' '절대 열심히 달리는 말에 박차를 가하지 마라'…. '절대 내부 관련자가 알려준 정보에 의존하지 마라. 그들은 나무 때문에 숲을 보지 못한다'처럼 투자의 원칙도 알려준다. 유명한 월가의 명언 중엔 이런 말도 있다. '절대 떨어지는 칼을 잡으려 들지 마라.' 폭락하는 주식을 사지 말라는 경고다.

정치인의 입에선 '절대 아무것도 서면으로 남기지 마라'류의 격언이 자주 오르내린다. 보스턴 출신 정치인 마틴 M 로머스니는 "말할 수 있다면 절대 쓰지 말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절대 말하지 말며, 눈짓으로 충분하다면 절대 고개를 끄덕이지 마라"고 했다.

밥 돌은 '정치의 위트: 배꼽 잡고 백악관까지(갈 뻔했지)'(1998)란 책에서 빌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이 말을 최고의 조언으로 여겼다고 적었다. '잉크를 들통째 사는 사람과는 절대 싸우지 마라.' 신문사 발행인이나 기자와 불필요한 언쟁을 피하라는 격언이다. 벤 프랭클린을 비롯해 마크 트웨인, 윈스턴 처칠, 오스카 와일드 등 수많은 명사들이 이 말을 애용했다.

저자가 특히 애착을 갖고 있다는 명언은 이것. "절대 이성적으로 설득해 남의 편견을 없애려 들지 마라. 애초에 편견을 갖게 된 이유가 비이성적인데, 어찌 이성적으로 설득한다고 편견을 없앨 수 있겠는가."(영국 수필가 시드니 스미스)

남녀 관계 '작업의 정석'도 한 챕터를 차지했다. 어느 미국 작가는 아들에게 "절대 '사랑해'와 '너와 결혼하고 싶어'를 혼동하지 마라"고 충고했다. 2005년 잡지 '에스콰이어' 편집진은 '남자의 인생 지침서' 코너에서 "세 잔 이상 술을 마셨다면 '사'자와 '랑'자와 '해'자를 절대 입 밖에 내지 마라"고 썼다.

저자는 저명인사들의 명언에서부터 영화 속 대사, 책 속 문장에서 찾아낸 2000여개 격언을 18개 챕터로 분류해 인간관계, 직장생활, 정치, 비즈니스와 경영, 섹스와 로맨스 등 다양한 상황 속에서 적용할 수 있는 조언과 충고로 엮었다. '세상에는 해야 할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더 많다'는 부제가 달렸지만, '절대'로 시작한다고 해서 부정적 행동을 이끄는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이런 명언은 웃음을 자아낸다. '절대 책을 빌려주지 마라. 아무도 돌려주지 않으니까. 내 서재에 있는 책은 모두 남들이 빌려준 책이다.'(프랑스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 경구 모음집이지만 중간중간 역사적 이야기와 배경까지 녹여넣어 '읽는 재미'가 쏠쏠한 책이다.

독한 충고
마디 그로시 지음, 문수민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김부장, "절대"라는 말은 절대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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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70년 7월 하순, 몇 달째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로마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티투스는 6만명의 로마군에 공격 명령을 내렸다. 예루살렘 성벽 너머는 50만명의 유대인이 굶주림과 죽음의 공포 속에 연명하는 생지옥이었다. 병사들은 금화를 삼키고 탈출하는 예루살렘인들의 배를 갈라 내장을 뒤졌다. 성벽을 무너뜨린 로마군은 성전(聖殿)에 불을 질렀고 유대인들의 목을 베었다. 성전 수장고에 숨어 있던 여자와 어린이 6000명은 산 채로 불태워졌다. 로마에 반기를 들었던 유대 군벌들은 자중지란 속에 무너졌다. 현장을 목격한 역사가 요세푸스는 "태초부터 그런 잔인함을 용납한 도시는 어디에도 없으며, 한 세대를 그처럼 사악하게 양육한 시대도 없었다"고 했다.

역설적이게도, 예루살렘은 파괴됐기 때문에 거룩함의 원형으로 남았다. 나라를 잃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파괴된 예루살렘을 애통해하며 경외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성전의 몰락을 예수의 계시가 진실이라는 증거로 삼았다.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는 신이 유대인들로부터 거둬들인 축복을 이슬람에 내린 증표로 여겼다. 마침내 예루살렘은 "하나의 신(神)이 사는 집이자, 두 민족의 수도이며, 세 종교의 사원이고, 하늘과 땅에서 두 번 존재하는 유일한 도시"가 된 것이다. '예루살렘 전기'는 기원전 1000년 안팎의 이스라엘 왕이었던 다윗으로부터,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태어난 독립국 이스라엘이 아랍 연합군을 궤멸한 1967년 '6일 전쟁'까지 3000년의 역사를 짚어나간다. 저자는 이스라엘 독립에 큰 역할을 한 유대 명문가 출신으로, 케임브리지대에서 제정 러시아 역사를 전공한 논픽션 작가. 마치 삼국지를 읽는 듯 등장인물들이 생동하고, 현장 묘사에도 실감이 넘친다. 각주가 53쪽, 정기간행물, 논문, 1~2차 사료로 구분된 참고문헌 목록만 25쪽에 달할 만큼 엄밀한 취재와 연구가 낳은 결과물이다.

이 도시에서 평화는 늘 짧았고 피와 보복의 시간은 길었다. 서양의 모든 정복자는 예루살렘을 원했다. 예루살렘을 품에 넣은 자는 서구 세계를 장악했다. 알렉산더 대왕의 부대, 로마제국, 십자군, 아랍과 페르시아 제국, 나폴레옹도 그랬다.

사람은 신을 예루살렘에 가뒀다고 믿었지만, 예루살렘은 늘 그 사람들을 지배해왔다. 역자인 한국외대 유달승 교수(이란어과)는 "각국의 종교문학에서 예루살렘은 관능적이고 활기 넘치는 미인이었다가 추잡한 매춘부로, 또 연인에게 버림받아 상처 입은 공주로도 그려진다"며 "역사 속 수많은 영웅이 미인을 탐하듯 예루살렘을 탐했지만 영원히 예루살렘을 얻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가능하지 않았다"고 했다.

책에서 가장 큰 미덕은 예수가 활동한 로마 지배기와 십자군 원정, 1960~70년대 중동전쟁, 현 팔레스타인 분쟁 등에 가려진 예루살렘의 역사를 방대한 자료조사로 복원해냈다는 데 있다. 덕분에 우리는 이 도시 전기에서, 엄숙한 제례와 매음 등의 세속적 일탈이 엇갈린 4~6세기 비잔틴 시대 예루살렘 성전과 이교도들간 학살과 관용이 어지럽게 되풀이된 맘루크·투르크 왕조 지배기의 도살장 같은 풍경, 퇴폐적인 세기말 분위기로 가득했던 1910~30년대 향락도시의 뒷골목 등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 분쟁을 예시하듯 팔레스타인과 유대인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19세기 말 시온주의 등장으로 이미 본격화했으며, 나치즘 화신 히틀러가 유대인 절멸의 꿈에 들떠 예루살렘 입성을 고대했다는 사실 등도 알게 된다. 일생 동안 집필한다는 느낌으로 숱한 연구자, 정치가들과 문서고 자료들을 뒤진 지은이의 열정은 말미의 60쪽 넘는 새카만 원문 각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예루살렘 전기>는 기실 시큼한 인간들의 역사이자, 위선·탐욕·사랑 등 세상사 본질이 얽히고설킨 기록이다. 지은이가 이 수난투성이의 도시 역사에 사람처럼 전기란 제목을 붙인 것도, 이 도시 자체가 역사를 관통하는 인간의 속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신성과 인성이 가장 극적으로 맞닿거나 충돌했던 곳, 바로 예루살렘이었다.

예루살렘 전기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유달승 옮김/시공사

알렉산더도 나폴레옹도 갖지 못한 도시, 예루살렘
모든 민족이 탐낸 도시 예루살렘 ‘파란만장 영욕사’
예루살렘, 신의 축복과 피의 살육이 교차했던 3000년
글자크기 글자 크게글자 작게 예루살렘의 운명, 런던·로마·메카가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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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유럽이 혁명으로 들썩이던 19세기 후반, 걸출한 혁명이론을 내놓았던 카를 마르크스의 가장 도드라진 경쟁자는 러시아 태생의 아니키즘 혁명가 미하일 바쿠닌(사진·1814~1876)이었다. 그는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과 더불어 ‘아나키즘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큰 발자취를 남겼다. ‘제1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협회)을 두고 벌어진 마르크스와 바쿠닌의 대립은 20세기 세계 전역에서 펼쳐졌던 볼셰비즘과 아나키즘 사이 치열한 대립의 원조이기도 했다. 그러나 바쿠닌은 치밀한 이론가였던 마르크스와는 달리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하는 작업을 하지 않아, 그 진정한 실체를 꿰뚫어보긴 쉽지 않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지은이이자 20세기 가장 유명한 역사가 가운데 한 명인 에드워드 핼릿 카의 <미하일 바쿠닌>은 촘촘한 사료 분석으로 바쿠닌의 실제 모습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간 평전이다. 1937년 쓰인 이 책은 1989년에 국내에 소개된 바 있지만 축약·번역본이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모두 한계에 부딪힌 지금, ‘오래된 미래’로서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는 시점에 나온 첫 완역본이어서 눈길을 끈다.

지은이는 바쿠닌의 삶이 모순으로 가득했다고 평가한다. 러시아 귀족 출신으로 독일 낭만주의와 헤겔 철학에 이끌렸던 바쿠닌은 1840년 유럽의 아나키즘에 경도된 뒤로 프랑스 2월혁명(1847), 프라하 봉기(1848), 드레스덴 봉기(1849), 폴란드 무장봉기(1863), 이탈리아 혁명운동(1864~1868) 등 온 유럽을 무대로 삼아 한평생 혁명을 찾아다녔다. 만년엔 마르크스와 4년 동안 대립하다 제1인터내셔널에서 제명됐으며, 지독한 가난 속에 살다 스위스 베른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토록 넘치는 열정과 의지에도 불구하고 바쿠닌은 이렇다 할 성과나 성취를 이룬 적은 없었다. 그가 관여한 여러 무장봉기는 모두 실패했다. 마르크스의 <자본> 번역 등 벌인 일들이 제대로 끝맺은 경우도 극히 드물었다. “꿈꾸던 모든 것이 이뤄진다면, 나는 즉시 내가 만든 모든 것을 다시 무너뜨리기 시작할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바쿠닌은 일평생 권위를 무너뜨리려 달려들기만 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인물 자체는 더욱 모순적이다. 굉장한 카리스마와 열정을 갖췄지만, 늘 누군가를 가르치려 드는 자세에다 거의 한평생 남에게 빚을 지고 살았다. 중앙집권과 제도적 권위를 부정하면서도 음모에 기반한 비밀결사 활동에 매진하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바쿠닌이 아나키즘의 아버지가 되어 스페인·이탈리아·러시아 혁명 등에 폭넓은 영향을 줄 수 있었을까? 지은이는 그의 핵심적 가치를 ‘절대적 개인주의’에서 찾는다. 그는 책 곳곳에서 마르크스와 바쿠닌을 비교하며, “개인주의는 바쿠닌의 사회적·정치적 체계의 진수이며 마르크스를 반대하는 바쿠닌 사상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마르크스가 정치가·행정가의 눈으로 대중을 바라본 데 반해, 바쿠닌은 선지자이자 공상가로서 대중이 아닌 개인, 제도가 아닌 도덕에 관심을 쏟았다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농민에 관한 태도 차이다. 마르크스는 혁명을 수행할 능력에 대한 냉정한 평가에 기반을 두고 농민은 결코 계급혁명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나 바쿠닌은 러시아 농민의 삶 속에 ‘공유’를 신성시하는 삶의 태도가 배어 있다고 보고, 이를 근거로 삼아 혁명 세력으로서 농민에 대한 믿음을 굳게 지켰다.

지은이는 바쿠닌이 “역사상 (어떤 권위나 제도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의 정신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했다”고 평가한다. “바쿠닌은 ‘생명의 능동적 자발성’을 보여줬다”는 하승우 지행네트워크 연구활동가의 책머리 해설도 주목할 만하다. 정치철학자 카를 슈미트가 지적했듯, 바쿠닌은 “이론이나 과학과 같은 인위적인 틀에 기대지 않고도, 생명 자체의 원리로부터 모든 지배와 권위를 거부하는 정당성을 창조해냈다”는 것이다.

미하일 바쿠닌
에드워드 H. 카 지음, 이태규 옮김/이매진

모든 권위와 맞서 싸운 ‘아나키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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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역사 과목이 찬밥이다. 고등학교에서 한국사는 필수 과목이 아니고, 세계사는 네 가지 선택 과목 중 하나로 들어가 있는 정도이다. 그나마 세계사를 선택하는 학생은 소수이다. 외울 게 너무 많고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는 학생들은 이해가 간다. 이해가 안 가는 건, 그 어지러운 연대표와 수많은 전쟁·사화들, 세금·병역·과거 제도의 이름들을 앞에 놓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학창시절을 보냈을 어른들이 여전히 그런 교육 방식을 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행히 그렇지 않은 어른들도 있다. 찬밥인 역사를 따뜻한 식탁 위에 차려놓아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이야깃거리로 제공해주는 어른. <식탁 위의 세계사>가 그런 어른이 쓴 책이다. ‘식구들의 식탁을 챙기는 주부이자 엄마’인 지은이는 우리가 날마다 먹는 음식에도 온 세계가 들어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생각을 아이들과 나누다가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돼지고기·닭고기·빵·감자 같은 주식류에서 바나나·포도 같은 과일, 소금·후추 같은 양념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열 가지 먹을거리에는 종횡무진 세계사가 들어 있다. ‘종횡무진’이라고 한 것은, 책을 하나의 큰 주제 개념으로 끌고 가기보다는 인물·사건·이데올로기 등의 범주를 골고루 분포시켰기 때문이다.

인물 쪽을 보자면, ‘닭고기’ 편에서 16세기 프랑스 왕 앙리 4세와 20세기 초 미국 대통령 후버가 함께 등장하고, ‘돼지고기’에서는 중국의 권력자 마오쩌둥을, ‘옥수수’에서는 옛 소련 지도자 흐루쇼프(흐루시초프)를 만날 수 있다. 소금은 주로 간디와, 빵은 주로 마리 앙투아네트와 연결돼 있다. 그런가 하면 ‘감자’에서는 100만명이 굶어죽은 아일랜드 대기근이, ‘차’에서는 중국과 영국의 아편전쟁이, ‘후추’에서는 향신료 무역으로 촉발된 대항해 시대가 설명된다. ‘바나나’에는 거대 다국적기업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바나나 산업의 어두운 이면과 중남미 국가들의 ‘핏빛 역사’가 담겨 있고, ‘포도’는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이끌어낸다. 그러면서도 깨알 같은 재미를 주는 작은 아이템들이 요소요소에 숨어 있다. 고흐의 그림부터 섬뜩한 바나나 사진의 포스터에 이르기까지 시각적 자료들, 국기에 십자가가 그려진 나라와 초승달 그려진 나라의 발견 같은 것들이 그렇다.

지은이는 이 책을 읽은 독자가 식탁 위의 음식을 무심히 보아 넘기지 않게 될 것을 바라는 듯하다. 세계사가 “책 속에 박제되어 있는 학문이 아니”라 “우리 삶의 곳곳에 스며” 있으면서 우리 삶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라는 것을 알아주기를, 그러니 관심을 가지고 눈길을 돌려주기를 희망하는 듯하다. 그 희망에 동의하면서 한 가지 바라는 바를 밝히자면, ‘이야기’가 좀더 굵게 들어 있었으면 하는 점이다. 조곤조곤 친절한 말투로 많은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맥을 잃지 않은 서술이 정성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이야기가 충분히 전개되지 않은 듯한 미진함이 남는 것이다. 이 책이 개론서 성격이라면, 이 열 개의 소재들이 하나씩 독립되어 힘 있는 이야기와 함께 좀더 깊이 있게 펼쳐지는 후속 작품들이 나와도 좋을 것이다.

식탁 위의 세계사
이영숙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먹거리로 맛있게 버무린 세계사, 안 외워도 ‘쏙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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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연재물을 재구성한 이 책은 53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국 근대의 풍경을 되돌아 본다. 저자가 다시 그려낸 대한제국 멸망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는 우리 역사의 암흑기다. 대개 제국주의 일본의 억압과 수탈, 그리고 그에 맞선 우리의 독립운동으로 설명되곤 한다. 이런 이분법을 저자는 벗어나보고자 했다. 특히 조선 망국의 배경을 당시 국제정세의 변화를 중심으로 재조명한 점이 돋보인다.

44년 동안 재위에 있던 고종은 일왕 메이지(明治)와 1852년생 동갑이다. 두 군주가 즉위한 1860년대만해도 큰 우열을 가리기 힘들던 두 나라가 어떻게 먹고 먹히는 처지가 됐을까. 외세배척론자였던 평민 출신의 이토 히로부미가 영국 유학 뒤 개화파로 변신해 총리까지 오르는 반면 조선의 개화파는 뜻을 펴지 못하고 스러진 역사를 대비시킨 대목이 흥미롭다. 조선 망국의 뿌리를 1623년 인조반정 체제로까지 끌어올리며 이후 300여 년 가까이 집권한 노론 세력이 집단적으로 매국에 나섰다는 해석도 눈여겨볼 만하다.

저자는 임시정부 중심의 우파 독립운동과 함께 사회주의, 아나키즘도 함께 다뤄 오늘날 좌우파 이념 갈등의 뿌리를 독립운동사까지 올라가 살펴볼 수 있게 했다. 100여 장의 자료 사진은 입체감을 더한다.

근대를 말하다
이덕일 지음/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인조반정과 집권 노론세력이 조선 망국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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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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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에 ‘행복전도사’가 등장한 적이 있다. 스마일 마크를 가슴에 달고 등장하는 그는 “우린 모두 행복해요”라고 외친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누구나 한 달에 몇 십억원은 벌잖아요. 몇 십억원 아니면 월급이 아니죠. 그냥 용돈이죠.” 현대사회에서 행복은 곧 돈이며, 행복할 만큼 돈을 벌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강조하는 그는 뒤틀린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을 씁쓸한 웃음으로 전했다.

미국의 작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사진)가 쓴 <긍정의 배신>(원제 Bright-Sided·부키)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행복전도사’들을 통렬히 비판하는 책이다. 한국에서 2011년 4월 출간된 이 책은 1년여 만에 3만부 이상이 판매되는 호응을 얻었다.

책은 에런라이크가 유방암 진단을 받아 투병하는 개인적 경험을 서술하면서 시작한다. 그는 암환자들의 생기발랄하고 낙관적인 투병기를 들으며 의문을 갖는다. 어떤 환자들은 암 투병 과정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기에 “암은 축복”이었다고 말하고, 의사들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암이 낫는다고 권한다. “긍정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유방암 환자들의 문화에서 지상명령과도 같이 군림하고 있어 불행하다고 느낄 경우엔 죄의식이 들 정도”였다는 것이다.

유방암 투병을 둘러싼 문화는 현재 미국을 지배하고 있는 ‘긍정적 사고’가 구현된 한 사례다. 처음 북미 대륙에 발을 디딘 청교도들의 이데올로기였던 칼뱅주의가 ‘사회적으로 강요된 우울증’이었다면, 19세기 중반 싹트기 시작한 신사상(New thought)은 이에 대한 반동이었다. 신사상 운동가들은 죄책감 대신 행복을, 파멸의 예감 대신 성공의 기회를 잡을 것을 권했다. 신사상은 성공지상주의를 강조하는 20세기 자본주의와 궁합이 잘 맞았다. 오프라 윈프리는 마음가짐이 상황을 이긴다고 말했고,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해고돼도 불평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권했다.

신사상은 기독교를 바탕에 둔 자기계발서에도 녹아들었다. <시크릿>은 “원하는 것에 집중하면 그것은 당신에게 끌려온다”고, <긍정의 힘>은 “하나님은 당신이 부자가 되길 원하신다”고 주장한다. <긍정의 힘>의 저자 조엘 오스틴 목사의 교회는 십자가, 예수, 스테인드글라스를 찾기 힘들어 교회라기보다는 은행이나 기업처럼 보인다. 속죄, 부활 등 대중이 듣기 싫어하는 전통적 교리 대신 ‘긍정적 사고’로 ‘고객’을 끌어모았다. 온갖 코치와 목사들이 설파하는 ‘긍정적 사고’는 책, CD, DVD로 제작돼 큰 산업을 이루었으며, 경쟁이 치열한 직장에서는 이런 상품들을 구매해 직원들에게 무료로 돌린 뒤 더 많은 실적을 올리라고 볶아대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긍정적 사고’가 현실을 직시하는 걸 방해한다는 점이다. 회사에서 잘리면 “당신의 잘못입니다. 체제를 탓하지 마십시오, 상사를 비난하지도 마십시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기도하세요”라고 코치와 목사들은 조언한다. 테러 위험이 명백했지만 ‘긍정적 사고’로 방어한 덕에 9·11 테러를 겪었고, 주택 거품 붕괴가 임박했지만 잔치의 흥을 깨려는 사람이 없었기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그러나 인류의 지적 진보는 인간이 감정을 투사해 사물을 볼 때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파악할 때 이루어졌다. 결국 에런라이크는 아무도 차 앞에 튀어나오지 않을 것이라 믿기보다는 부정적인 마음으로 브레이크를 밟을 준비를 해야 한다며 ‘방어적 비관주의’를 갖출 것을 제안한다.

이권우 도서평론가는 “신자유주의 사회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개인의 가능성을 극대화해야 하고, 이에 따라 피로, 우울, 과잉행동장애에 빠진다”며 “<긍정의 배신>은 이것이 개인이 아닌 체제의 문제라는 점을 짚어줘 독자의 호응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존에도 기독교 계열의 비합리적인 자기계발서를 비판하는 책들은 있었지만, 대체로 기독교 교리를 잘못 적용했다는 점을 지적했을 뿐 이를 과학적·학문적으로 파고들지는 않았다. 에런라이크는 양자물리학을 제멋대로 인용하는 <시크릿>이나 유방암과 감정의 상관관계를 서둘러 결론내는 학술 논문을 비판한다. ‘기획회의’에 ‘자기계발 다시읽기’를 연재 중인 이원석씨는 “<긍정의 배신>은 기존에는 언급되지 않던 긍정심리학의 과학적 담론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며 “에런라이크가 생물학자(세포생물학 박사)이기 때문에 효과적인 논박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긍정의 배신>은 무엇보다 ‘쉽게 읽힌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에런라이크는 개인적 체험 위에 현장 취재, 인터뷰 등을 더해 생동감을 냈다. 문체는 유머가 있으면서도 신랄하다. 오스틴의 교회를 “팝콘만 없지 교외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완벽하게 똑같았다”고 묘사하는가 하면, 긍정심리학의 핵심 인물인 마틴 셀리그먼이 내놓은 ‘행복 방정식’에 대해서는 “방정식을 제시하면 과학처럼 치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권우 평론가는 “서구 저자들의 경우 문제의 인물을 실제로 만나보고 객관적 사실을 드러내 공감을 사는 탐사 보도 형식의 저술들을 잘 써낸다”며 “한국에도 그와 같은 형식의 책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부키

자본주의 사회의 뒤틀린 ‘행복전도사’ 통렬하게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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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의 덫
미키 맥기 지음, 김상화 옮김/모요사

자기계발의 덫 : 책 권하는 心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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