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론적 문화관을 부정하고 상대론적 문화론에서 출발하는 서순은 '문화의 서열화'를 비판하지만, 이미 독자들의 마음 깊숙이 위계화된 문화적 현실은 녹록지 않다. 문화적 민주주의자로서 고민이 없을 수 없다. 문화의 위계질서를 뒤흔드는 저자의 서술 전략은 질문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이 책에서 도널드 서순은 시종일관 복수의 문화가 같으냐 다르냐는 질문을 버리고, 누가 문화적 가치의 위계와 정전(正典)을 정하는가 하는 구성주의적 질문을 던진다. 어느 문화가 더 좋다는 식의 정답을 제시하는 것은 권력, 더 좁게는 문화 권력이다. 작가·예술가·출판업자·신문기자·역사가·비평가·국가 등 문화 생산자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도 이 구성주의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문화 권력의 구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문인들의 기행, 파격적 예술가들, 미치광이 천재들에 얽힌 이야기들은 더 이상 스캔들이나 기담 차원이 아니라 문화 권력을 만들기 위한 치밀한 연출과 연기의 합작품이다. 많은 부분이 만들어진 괴짜인 것이다. 평범하게 태어나 보헤미안으로 만들어진 예술가들에 대한 예(例)는 풍부하다 못해 넘친다.
민담이든 소설이든 인기를 누리려면 '섹스'와 '폭력'이 필요했다. 많은 경우 도덕적 결론은 섹스와 폭력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편리한 핑계였다. 민족적 정통과 국체를 세우려는 민족 이야기는 섹스와 폭력 이야기에 밀렸다. 민족의 고전으로 남기 위해 에로티시즘이 거세된 춘향전이 얼마나 읽힐지는 의문이다.
1800년부터 유럽인들이 자기네 삶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유통시킨 생활양식으로서 문화는 이처럼 변화무쌍한 행보를 남겼다.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생산자들 간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갈등도 그렇지만, 역사적 행위자로서 소비자들의 개입은 근대 유럽의 문화에 생산적 긴장을 불어넣는 힘이었다.
유럽 역사학계에서 홉스봄의 후학으로 소문난 저자 서순은 마르크스주의적 문화사의 한 경지를 보여준다. 1800년의 귀족이 2000년의 평범한 상점 점원보다 문화적으로 더 궁핍했다는 혜안은 단순한 진보주의자의 관점이기보다는 인류학적 사유의 풍요로운 편린을 드러낸다. 번역도 잘 읽힌다.
간혹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긴장을 잃고, 생산자 중심주의의 서술로 흐르는 것은 옥의 티이다.
유럽 문화사 1 |
'레 미제라블'이 古典 된 건 마케팅(1862년 11개국 동시 출간) 덕이었다
18세기 오페라극장은 난장판 ‘나이트클럽’
인터넷이 문화를 망친다고 ? 역사를 모르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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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세균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세균과는 차원이 다른 바이러스가 주된 원인인 감기에 걸려도 세균 감염에 써야 하는 항생제를 찾는 사람들이 들으면 경악할 이야기다. 항생제라는 강력한 무기를 써도 세균과의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과거 항생제가 없었던 1930년대 이전처럼 페스트·장티푸스 등 각종 세균 감염병에 인류는 또 무차별적으로 쓰러져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이 질문은 벌써 수십년 전에 나온 이야기다. 항생제를 써도 이를 이겨내는 이른바 ‘내성’이 있는 세균의 출현을 보면서 이미 의학자들은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이다.
보통 세균은 100만마리에 1마리꼴로 돌연변이가 일어난다고 한다. 감염병을 일으킬 때 수억마리에서 수십억마리가 번식할 때 그 가운데 수백~수천마리 세균은 돌연변이로 태어나며, 만약 이 돌연변이가 항생제를 피해가거나 이겨낼 수 있다면 항생제를 써도 번식을 해 주류가 되는 것이다. 세균과 인류의 전쟁은 세균의 돌연변이 속도와 인류의 항생제 개발 속도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빠르냐로 요약된다. 많은 의학자들은 세균의 돌연변이 속도를 인류가 따라잡을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요즘의 질문은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인류가 꼭 세균과 전쟁을 해야 하는가?’이다. 인류는 세균을 죽일 항생제를 만들고, 세균은 이를 피해가거나 이겨낼 수 있는 내성균이 살아남는 숨바꼭질을 하는 동안, 무언가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고민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모든 세균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그 가운데에는 인류와 충분히 공생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며,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인류를 해칠 나쁜 세균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장에 살고 있는 대장균이나 평소 피부에 사는 세균들은 처음 인류와 만날 때에는 전쟁을 벌였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공생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공생 관계에 있기 때문에 다른 세균이 서식해 숙주인 인류를 공격하려 할 때, 오히려 이 대장균 등이 다른 세균이 서식하지 못하도록 막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유산균이나 비피더스균과 같은 세균들도 좋은 예이다. 이 때문에 ‘세균을 99.9% 제거한다는 비누 등 생활용품을 쓰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세균 세상에서 건강하게 살아남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으면서 세균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 <좋은 균 나쁜 균>은 인류가 세균을 상대로 벌인 전쟁의 폐해를 소개하면서 이제는 좋은 세균, 더 나아가 세균 자체와의 공생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사실 인류는 항생제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손 씻기 등 위생습관과 상하수도 시설 등 공중위생 덕분에 나쁜 세균을 멀리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 책은 여기에 더해 나쁜 세균이 침투할 수 없도록 인류가 좋은 세균과 함께 산다면 더욱 강력한 방어막을 갖출 수 있다고 제안한다.
좋은 균 나쁜 균 |
나쁜 세균 죽이려다, 좋은 세균 죽이지 마시라
‘항생제 융단폭격’ 대신할 치료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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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종기’라고 했던 질병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종기와는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조선 사람들은 ‘부어 있는 기’를 보이는 질병, 곧 부으면서 염증이 생기고 고름이 나는 모든 질병을 뭉뚱그려 종기라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과거의 종기란 봉와직염, 림프절염, 관절염, 골수염, 때로는 암까지도 포괄한다. 이 때문에 조선 시대 종기는 치료가 쉽지 않은 병이었다.
질병과 이에 대한 치료의 기록은 아무래도 왕실에 가장 많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을 중심으로 왕실에서의 종기 스캔들과 그 치료, 종기 치료의 명인들, 당시 치료 방법 등을 차근차근 살펴나간다.
역대 조선의 왕 27명 가운데 종기를 앓았던 사람은 절반에 가까운 12명이나 된다고 한다. 세자 시절부터 종기를 앓았던 문종은 즉위 2년 만에 사망했고, 이 죽음은 세조가 어린 단종을 제치고 왕위를 접수하는 일로 이어졌다. 광해군은 뺨에 생긴 종기로 고생했다. 다혈질이었던 숙종은 담석에 의한 담도산통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간 또한 나빠서 하복부에 종기가 많았다고 한다. 개혁군주 정조의 사망 역시 등에 난 종기가 심장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뇌경색을 일으켰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종기에 맞서는 조선 의학자들의 노력 역시 치열했다. 곰의 쓸개로 만든 웅담고를 먹고 정조의 수명이 7년 연장됐다거나, 혜경궁 홍씨의 손등에 난 종기를 소똥으로 만든 약으로 치료했다는 기록 등은 당시 사람들이 종기에 맞서 다양한 대응방법을 연구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조선, 종기와 사투를 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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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굶주린 시민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철없는 발언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역사서 어디에도 그가 한 말이라고 나와 있지 않다. 이는 당시 프랑스 혁명군들이 퍼뜨린 루머(소문)였던 것이다. 사치와 허영의 대명사로 낙인 찍혀 있는 앙투아네트도 바로 이 점에선 루머의 피해자라 할 수 있다.
사실 루머는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확산 속도와 파급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현대사회에서 훨씬 더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루머에 관해 수십 편의 논문과 보고서, 연구자료 등을 발표한 세계 최고 루머 전문가인 저자(미 로체스터 기술대 심리학 교수)는 책에서 다양한 사례를 동원하며 루머의 메커니즘을 철저하게 파헤친다. 저자는 소문이 만들어진 뒤 퍼지고 사람들이 이를 믿게 되는 과정 등을 자세히 설명하며 루머를 둘러싼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 현상을 냉철하게 분석해 보여준다. 소문에 대한 시비판단을 보류하고 본질과 위력을 중립적으로 분석한 책은 루머공화국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저자에 따르면 커피 자판기 주변과 회사의 흡연실, 학교 화장실, 인터넷 채팅방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루머가 존재한다.
소문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루머라는 자연스러운 현상 속에 숨어 있는 비정상적인 힘이다. 저자는 책에서 이러한 소문의 영향력을 ▲사람의 눈을 가린다 ▲위험을 경고한다 ▲미래를 예측한다 ▲상황을 인식하고 대처한다 등 4가지로 정리해 설명한다.
소문이 생기고 퍼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지만 루머의 속성을 알면 어느 정도 통제는 가능하다.
소문과 뒷담화, 도시괴담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고 불명확함·애매함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루머를 통제하는 방법 등을 소개하고 있는 책은 인터넷과 SNS를 통해 평범한 사람도 루머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현대사회의 필독서로 손색이 없다.
루머사회 |
무서운 파급력 가진 ‘소문’… 대처하고 이용하라
‘독’ 되는 루머, ‘약’ 되게하는 방법은?
소통의 통로 막힌 사회엔 괴담이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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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고, 아깝고, 원하는…’ 자기 일상의 시시콜콜한 불편함과 욕구에 주목해 이를 자기만의 작은 기업으로 발전시킨 이들이 있다. 평범한 아줌마를 ‘셰프’로 만든 4000원짜리 주먹밥 프로젝트 ‘집밥’, 집에 쌓인 책을 대신 보관해주며 대여도 하는 ‘국민도서관 책꽂이’, 퇴화된 ‘작업 본능’을 깨우려는 일반인을 위해 컴퓨터 설계 프로그램과 전문 공구를 비치한 공동작업실 ‘테크숍’….
책의 부제는 ‘인터넷과 공유경제가 만들어낸 백만 개의 작은 성공’이다. 제목처럼 일상의 작은 공간,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성공들을 소개한다. 이 주인공들은 요즘 누구나 향유하는 인터넷과 작은 정보기술(IT)의 도움으로 이전 시대에 상상할 수 없던 결과물을 내놓았다. ‘커다란 작음이란 역설이 가능한 세상이 왔다. 당신도 빨리 움직이라. 변화는 시작됐다’고 책은 말한다. 매일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포털 사이트를 대하며 단순한 ‘유저’로 살 것인가, 이를 이용해 인생을 바꾸고 좋은 사람들과 더 많은 가치를 공유할 것인가 중에서 선택하기를 직설 아닌 예증을 통해 권한다.
IT와 기업이라는 딱딱한 이야기에 얹은, 소설을 마주하듯 촘촘한 현장성과 디테일, 저자의 감성이 읽는 맛을 더한다. 본문만 치면 200쪽이 채 안되는 가벼운 분량과 명료한 디자인도 책의 미덕이다.
빅 스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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