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이란 '해방 전 일본에 갔다가 계속 살게 된 조선인과 후손'을 말한다. '재일동포'다. 같은 뜻이라도 '재일조선인'이라면 흔히 '조총련계'를 떠올린다. 하지만 재일동포 2세인 저자가 '재일조선인'을 고집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재일조선인 1세인 부모 세대가 현해탄을 건넜을 때 한반도는 분단 이전이었다. '조선인'의 정체성이 강했다는 것. 자신도 지금은 한국 국적이지만, 민족 전체를 가리킬 때는 '조선'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한반도 현실에 대한 그의 이해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일본은 배척하고 한국은 무관심했던 '경계인', 재일조선인의 102년 역사는 현기증 나는 것이었다. 일찍이 조선인이었으되, 하루아침에 일본 신민이 되었다가 별안간 무국적 신분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1919년 일왕의 조칙은 그럴 듯했다. "나는 이전부터 조선의 평온무사를 바라고, 그 민중을 어여삐 여겨 차별하는 일 없이, 소중이 생각한다. 나의 신민으로서 조금도 차이는 없다…."하지만 조선인은 '열등' 신민이었다. 차별은 커져갔고 조선인의 반감은 일본군이 통치에 차질을 빚을까 걱정할 정도였다. 1933년 군이 배포한 '조선동포에 대한 내지인 반성 자료기록'엔 이런 내용도 있었다. '내지인이라고 생각해 정중하게 이발하고는, 나중에 조선인인 것을 알고 모욕한다' '활동사진(영화관) 구경하러 가서 빈자리가 있어도 (조선인은) 앉을 수 없다' '불이야! 하는 소리에 달려갔지만 조선인의 집이라는 것을 알고는 모두 되돌아간다'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임산부도 선불을 주지 않으면 왕진하지 않는 의사'….
해방 후에도 한동안 재일조선인에겐 모국이 없었다. 일본 정부는 1951년 전후(戰後) 처리를 위한 샌프란시스코조약을 체결한 후 구 식민지 출신자는 일본 국적을 상실한다고 선언했다. 당시 한반도는 두 동강이었고 남북한 모두 일본과 국교가 없었다. 재일조선인은 국적 없는 난민 신세였다. 1965년 한일 간 국교가 체결된 후에야, 재일조선인의 한국 '국민'화가 진행됐지만 차별은 여전하다.
재일조선인 문제를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국내 상황에 대입하는 대목은 아프게 다가온다. "'재일조선인'이란 단어를 '이주노동자' '국제결혼이주자' '연변조선족' 등으로 바꿔보라. (…) 지금 한국에 있는 많은 외국인은 재일조선인이 일본에서 맛본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저자는 묻는다. "내가 평생 걸쳐 저항해온 대상이 바로 일본인 다수자의 '국민주의'인데 한국인에게도 그와 닮은꼴의 '국민주의'가 침투하고 있지는 않은가?" 저자는 "재일조선인을 '차별받는 가여운 타자'로 규정짓거나 '일본인'이라는 '악'을 만드는 것으로 자신을 정당화하지 말고, 오히려 재일조선인 속에서, 혹은 재일조선인을 차별하는 일본인 속에서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바란다"고 쓴다.
단순히 '재일조선인에 관한 문답서'에 그치지 않는 것은 근대의 개인과 국가라는 어려운 문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반복해서 '국가주의'를 비판하지만 다른 한편 국가의 중요성 역시 부인하지 못한다. 그는 근대국가의 문제가 극한까지 발휘된 것이 식민지 지배, 차별, 학살이라며 경계한다. "아이덴티티가 국가로부터 주어진 상태는 여러분 자신에게 위험하다"는 경고도 던진다. 하지만 "국가에 속하지 않으면 자신의 안전과 권리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은 유감스럽지만 아직 현실"이란 말도 한다. "재일조선인이나 다른 난민(가령 팔레스타인 사람)은 속한 국가가 없거나 불안정하기 때문에 불리하고 불편한 생활을 강요받고 있다."
일찍이 '세계시민사회'를 말한 이는 18세기 칸트였다. 하지만 21세기 국제사회의 기본 축은 여전히 국가이고 작동 논리는 냉엄하다. 이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남한도 북한도 아닌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역설하는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까.
역사의 증인 재일 조선인 |
일본은 때리고 한국은 모른 척했던 그 이름 '조선인'
일본 남자는 모두 비겁자, 겁쟁이인 것을…
재일 조선인 차별…우리는 떳떳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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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말기, 도조 히데키(東條英機·1884~1948) 총리가 비행학교를 시찰하다 열대여섯 살 먹은 소년들에게 물었다. "적의 비행기를 어떻게 격추시킬 것이냐." 소년들은 기관총 또는 고사포로 격추시키겠다고 답했다. 도조는 고개를 저었다. 한 소년이 "저의 기백으로 격추시키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도조의 얼굴이 환해졌다. 냉철한 판단으로 사태 수습에 힘을 쏟아야 할 전쟁 책임자가 '정신력'에만 기대는 비현실적 판단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1941년 총리 겸 육군 대신을 맡았던 도조는 진주만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이 때문에 종전 후 열린 도쿄 전범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사형 판결을 받고, 1948년 12월 29일 교수형을 당했다. 일본의 논픽션 작가 호사카는 6년에 걸쳐 도조의 아내를 비롯, 관련자 수백 명을 취재해 군국주의 시대를 이끈 도조 히데키의 실체를 파헤친다.
도조의 아버지는 유능한 군사전략가였으나 군(軍)내 최대 파벌이었던 조슈벌(閥)에 밀려 중장으로 예편한 불운의 인물이었다. 도조는 육군중앙유년학교에 들어갔고, 육군사관학교·육군대학을 졸업하면서 아버지와 달리 승승장구했다. 도조는 초급장교 시절부터 일왕에 대한 철저한 충성을 맹세했고, '일왕의 군대'라는 자부심을 기회 있을 때마다 내비쳤다. 1920년대 후반 '후타바카이' '잇세키카이' 같은 정치적 성향이 강한 군(軍) 사조직을 이끌었고, 군대가 주도하는 총동원체제를 통해 미·영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겠다는 망상을 품었다. 1937년 관동군 참모장으로 중·일전쟁을 겪고 육군 대신을 거쳐 총리에까지 오른 도조는 전쟁 말기 유례없이 육군참모총장까지 겸임했다. '도조 막부시대'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저자는 그런 도조가 정작 패전 후엔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해 듣기 민망할 만큼 찬사를 보냈다고 말한다. 체포당하기 직전 자살을 시도한 도조는 "치료를 받는 동안 나를 옆에서 돌봐준 미국 헌병은 참 훌륭했다… 교육 수준이 높았기 때문일 터인데, 국민을 자각하게 한 뒤 이들을 장악하면 힘이 된다. 미국식 민주주의의 힘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고 했다는 것이다.
태평양전쟁 개전에 대해서도 "일·미 양국은 마음을 열고 직접 교섭해 화평의 길을 용감하게 모색해보아야 하지 않았을까"라고 반성했다. 최고 전쟁 지도자를 지낸 사람의 인식으로 보기에는 무책임한 인식이었다. 저자는 국가를 병영화하고 국제 정세에 무지했던 지도자가 어떻게 한 시대를 움직일 수 있었는지, 그것이야말로 일본이 가장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문제라고 비판한다.
지은이가 보기에, 도조의 불행은 곧 사상이 빈약한 일본 근대국가의 불행이었다. 일본군 장성들은 군사 전술론과 천황 충성주의 말고는 정치·경제, 세계 정세에 대한 식견이 별로 없었다. 국체의 정신력, 결단만 중시하는 유아적 군인들은 정부와 의회를 전쟁 수족으로 부리는 ‘정치군인’의 길을 성찰 없이 내달려갔고, 이런 파행의 정점에 도조가 있었다. 그는 황도파와 통제파로 나뉜 1920~30년대 일본 군부 내 파벌 다툼과 만주사변·중일전쟁에서 정부를 무시하고, 확전을 부추긴 육군 엘리트들의 욕망을 출세의 사다리로 활용했다. 총리가 된 뒤 ‘3천년 국체가 있는 일본과 달리 미국에는 나라의 중심이 없다’는 정신주의 환각 속에서 전쟁을 일으켰고, 1944년 거듭된 패전에도 정신론만 역설하다 정계에서 ‘왕따’당한 끝에 실각하기에 이른다. 지은이는 도조 정권의 이면에서 지역주의 파벌과 무능한 중신 정치, 육해군의 극단적 대립 등 일본 근대 정치·군사 제도의 온갖 모순을 끄집어낸다. 근대 일본이 단순한 자원·생산력 부족만이 아니라, 통찰력과 전략적 사고가 빈약했던 국가기구의 한계로 패망을 자초했다고 짚어낸다. 도조는 근대 일본 정치·군사제도의 모든 모순을 집약시켜 결국 전쟁으로 해체시켜버린 ‘청산자’로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 존재라는 게 이 책의 냉정한 결론이다.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 |
태평양전쟁 일으켰던 도조, 패전 후에는 "미국 만세"
도조 히데키 죽었지만, 일본 군국주의는 살아남았다
天皇만을 떠받든 戰犯의 무지
日군국주의 A급 전범의 속내를 파헤치다
일본이 독도를 탐낼 때 우리는 도조 히데키를 본다
일 제국주의 ‘모순의 결정체’ 태평양전쟁 전범 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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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장터만큼 ‘사진적인 풍경’이 또 있을까. 장터마당에 손바닥만한 좌판을 깔고 물건이래야 고작 호박 네댓 개를 앞에 두고 있는 할머니, 허름한 선술집에서 막걸리를 들이키는 노인, 뻥튀기의 폭발음에 잔뜩 겁을 먹고 귀를 막고 서있는 아이들…. 이런 풍경들은 정작 맨눈으로 보았을 때는 별 느낌이 없지만,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겨지면 그 이미지는 더없이 강렬해진다.
이 책은 25년 동안 줄곧 한국의 시골장터를 기록해온 사진가이자 소설가인 저자의 사진집이다. 저자가 전국의 여든 두 곳 장터를 돌면서 담아낸 사진들이 책 속에 빼곡하게 실려 있다. 저자의 관심사는 당연히 5일장에 모여드는 사람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인물들과 눈을 맞추고 찍은 사진은 드물다. 강렬한 이미지의 의도화된 사진들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저자는 구태여 구도를 계산하거나 이미지를 의도하지 않고 목격자의 시선으로 장터에 카메라를 들이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마치 스냅사진을 찍듯이 자연스럽게 시골장터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봤다. 이런 시선은 아마도 저자가 사진작업의 결과물을 ‘작품’으로 내세우는 게 아니라, 쇠락해가는 장터의 모습을 기록하는 쪽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인 듯하다.
책을 잡으면 사진집이라 응당 사진에 먼저 눈이 가겠지만, 이 책의 미덕의 절반 이상이 사진에 얹은 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전국의 82개 5일장을 도별로 분류하고 다시 가나다 순의 군 단위로 쪼개서 하나하나 장의 분위기와 특산물 등을 소개하고 있다. 편집이 백과사전식이라 문장도 건조한 사전식 소개 위주일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의 장터 목격담은 생생하고 세밀하다. 예를 들어 충남 청원의 미원장을 ‘농사일만 해온 노인들은 따로 취미가 없어 장날이면 버스에서 내리는 아는 얼굴이라도 만날 셈으로 노상에 앉아있는 노인들이 많다’고 소개하고, 평창의 진부장을 두고는 ‘한산한 장터에서 바둑 삼매경에 빠진 장꾼들은 소일거리가 있어 다행’이라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렇게 그려내는 이미지가 어찌나 생생한지 눈앞에 쇠락한 5일장의 나른한 풍경이 떠오르는 듯하다.
시골장을 이야기하면서 사람 이야기도 빠질 리 없다. 나주 공산장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낙지를 팔러 나온, 영산포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는 서금순(74) 할머니가 등장하고 무안 일로장에서는 승합차에 카세트테이프를 잔뜩 싣고 왔다가 손님이 없어 혼자 발장단만 맞추고 있는 노점상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소설가답게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도 문장이지만, 부지런한 발과 사람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 풍부한 감성, 꼼꼼한 기록 등이 거기 더해졌다. 이 책이 시대를 반영하는 사진집이면서 전국의 시골장을 아우르는 백과사전, 풍부한 감성의 에세이, 혹은 기층민의 삶의 기록을 담은 인문학 자료집처럼 드넓은 경계를 넘나들면서 읽히는 것은 이 때문이겠다.
한국의 장터 |
허름한 좌판·선술집… 쇠락해가는 5일장 풍경
사진에 담은 5일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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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저자가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소비행위를 연구하고 그 속에 숨겨져 있던 한국 소비자의 마음을 분석했다. 소비자의 진짜 속마음을 알기 위한 도구로'마음의 MRI 찍기'방법을 소개하고 이를 실제로 적용한 사례들을 제시한다. 한국인의 다양한 삶을 잘 보여준다고 판단되는 스포츠 활동과 휴대전화 소비가 연구 주제다. 또한 디지털문화와 명품소비 현상을 통해 소비자의 소비스타일, 구매심리, 그 속에 감춰진 욕망 등을 꼼꼼히 짚어준다.
심리학, 난해한 암호 같았던 대한민국 소비자의 마음을 해독하다
왜 사람들은 ‘꽝’이 될 걸 알면서도 매주 복권을 사는 걸까? 왜 ‘오늘까지만 할인’ 혹은 ‘얼마 이상 구매 시 상품권 증정’이라는 문구에 혹해서 생각지도 않았던 지출을 하는 걸까? 점심은 김밥 한 줄로 대충 해결하고 밥값보다 더 비싼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속마음은 뭘까?
『대통령과 루이비통』은 이런 질문들―사람들이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준다. 특히 ‘한국 소비자’에게 궁금한 점을 알 수 있는 책이다. 문화 및 정치?경제 상황 등이 다른데도 외국의 이론을 한국에 적용해 설명하는 기존의 마케팅 도서들과 달리 이 책의 중심에는 ‘한국인’이 있다. 저자인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 교수는 교육열, 디지털 활동, 프로 야구 붐, 명품소비 등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소비행위를 연구한 끝에 ‘야구 팬의 여섯 가지 유형’, ‘디지털 신인류’, ‘명품소비 심리코드’ 등 숨겨져 있던 한국 소비자의 마음을 수면으로 끌어냈다. 지금까지 소비자를 단순히 물건 팔 대상으로만 보고, ‘원인’도 모르면서 마케팅 전략을 짜느라 머리를 싸맸던 기업들에게 소비자의 행동 원인인 소비심리를 구분해 소비집단을 나누고 집단별로 적용할 수 있는 마케팅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은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트렌드, 주류를 따르는 한국인의 심리 등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은 누군가―기업, 정치인, 심지어 명품을 좋아하는 여자 친구를 가진 남자까지!―와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한 소비자 개인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담았다. 또한, 단순히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행위로만 인식됐던 ‘소비’에 ‘선거’와 ‘소통’ 등 다양한 행위를 포함시키며 새롭게 정의한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하는 행위와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 더 나아가 자신의 가치관대로 인생을 사는 것조차 모두 소비행위이라는 것이다. 『대통령과 루이비통』은 ‘소비자 인사이트’, 아니 ‘한국인 인사이트’를 발굴, 한국인의 마음을 이해하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바람직한 소비’의 길을 전망한다.
대통령과 루이비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