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215) 썸네일형 리스트형 ‘진보정치’ 꿈 접고 떠난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무엇이 젊은 그를 좌절케 했나 박은지(朴恩智), 1979년 1월 23일 ~ 2014년 3월 8일 “한 해 동안 아이는 키가 9.4cm 컸고, 방과 후 학교 어딘가에서 수업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가방 한 번, 실내화 주머니를 두 번 잃어버렸다 다시 찾았고, 꿈을 기관사에서 딱지장사로 바꿨다…”고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35)가 지난달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아이가 1학년을 무사히 마쳤다”로 시작하는 글이다.‘싱글맘’으로 홀로 아들을 키워오던 그는 사랑하는 아들을 남긴 채 지난 8일 오전 서울 사당동 자택에서 목을 매 숨졌다. 그의 아들은 이제 겨우 아홉 살. 자신 역시 서른다섯 살에 불과했던 젊은 진보 정치인은 예고도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났다.경찰 조사 결과 박 부대표는 우울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세상.. 박남철은 많은 사람에게 골치 아픈 인간이었으나, 재능은 있었다 박남철(朴南喆), 1953년 11월 23일 ~ 2014년 12월 6일 문학에서, 한 작가를 후대의 역사는 영향력으로 평가하고, 당대의 비평은 재능으로 평가한다. 박남철은 많은 사람에게 골치 아픈 인간이었으나, 재능은 있었다. 여러 사람이 그의 부고에 날 괴롭힐 일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과 안쓰러움이 교차했을 것이다.-황현산 박남철 시인, 영면에 들다박남철(朴南喆), 1953년 11월 23일 ~ 2014년 12월 6일 박남철 시인, 영면에 들다—문계봉 시인한 시대를 다소 거칠고 위악적인 모습으로(친한 지인은 격정적이라고 표현하겠지만...) 통과해 온 시인이maggot.prhouse.net 나를 키운 건 8할이 두려움 -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대한민국의 1세대 철학교사. 등 대중을 위한 철학책을 60권 남짓 쓴 작가. 2033년 1월 31일 새벽, 서울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 향년 64살. 생전에 안광복은 자기 인생을 도스토옙스키에 견주곤 했다. 도스토옙스키는 평생 빚에 쫓겼다. 별처럼 많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은 생계에 대한 절박함이 빚어낸 결과였다. 안광복의 집안은 한국전쟁 때 월남한 실향민이었다.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살아남아야 했던 부모 세대의 비장함은 그의 뇌리에 DNA처럼 박혀 있었다. 어린 시절, 그의 집은 악다구니로 들끓던 시장 한복판에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돈을 놓고 벌이는 세상의 비정함에 일찍 눈떴다. 청소년 시기에 그는 ‘이중(二重)의 콤플렉스’에 빠져들었다.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영혼의 한쪽을 짓눌렀다면, .. 죽음을 기억하는 새로운 방식, 부고사이트의 필요성 누군가의 부고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누구를 떠올리는가. 정작 세상을 떠난 사람의 얼굴이나 삶보다 남겨진 유족의 이름과 직함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고인은 ‘누구의 아버지’, ‘누구의 장인’ 정도로만 언급되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유족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이다. 그래서 부고를 읽다 보면 정작 “도대체 누가 세상을 떠난 거냐?”라는 물음이 저절로 나온다. “정승 개 죽은 데는 문상을 가도, 정승 죽은 데는 문상을 안 간다”는 말이 있다. 죽음을 기리는 형식이 얼마나 기묘하게 뒤틀려 있는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부고 역시 망자를 위한 글이 아니라 산 사람을 위한 도구로 기능한다. 이런 구조에서 망자의 신분은 자식이나 유족의 지위에 의해 결정된다. 장례식장은 애도의 공간이라기보다 관계를 확인하고 체면을 .. 스웨덴, 부고광고 詩에도 저작권료 지급 제도 마련 [스웨덴] 신문에 부고광고를 할 때 사용되는 詩에 대한 저작권료도 저작자에게 돌아갈 수 있는 제도 마련—박은정 스웨덴에서는 詩를 이용하여 가족, 친지 등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부고광고를 전하는 것이 오랜 문화로 정착되어 있음. 그러나 저작물 이용에 대한 저작권료는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고 이 부분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스웨덴장례식협회와 스웨덴문학저작권자협회는 1년간의 협의를 통해 저작권료를 저작자에게 돌아갈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함.◉ 스웨덴 부고광고• 1910년대부터 스웨덴에서는 친인척 등 부고를 전할 때, 그림과 함께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을 담은 詩를 삽입하여 신문에 알리기 시작함. 이런 부고광고가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었고, 신문지면으로 시작된 부고광고는 2007년부터는 온라인상에도 (fam.. 제임스 본드 로고 만든 그래픽 디자이너 조 카로프 타계 조 카로프(Joe Caroff), 1921년 8월 18일 ~ 2025년 8월 17일 1962년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닥터 노의 로고 제작을 의뢰받았을 때, 그래픽 디자이너 조 카로프는 007의 마지막 숫자 줄기가 월터 PPK 권총의 손잡이와 닮았다는 사실을 알아챘다.그는 비밀 요원의 번호와 무기를 하나의 휘장으로 결합했다. 구불거리는 기울임은 화려함과 위험을 동시에 전했다. 처음에는 회사 레터헤드에 쓰일 디자인으로 300달러를 받았지만, 로고는 존 배리의 주제곡처럼 즉시 알아볼 수 있는 상징이 되었다.카로프는 이후 로고가 재작업하는 과정을 불만스럽게 여겼다. “내 자존심이 상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만든 것은 내가 한 것만큼 좋아 보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그는 본드 로고에서 보여준 간결함을 .. 내 부고, 내가 직접 쓰자…인생은 이야기가 된다 올 여름 휴가 땐 내 삶의 마지막을 상상하며 ‘나의 부고’ 초안을 써보자.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의 저자 제임스 알(R). 해거티는 나의 부고는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 - 제임스 해거티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 서양화가 박수근이 남긴 묘비명이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우물쭈물 살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묘비명은 재치 있고 익살스러운 문구로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린다. 묘비명 얘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자신의 묘비엔 뭐라고 쓸지 장난스럽게 얘기를 나눈다. 그런데 그렇게 묘비명을 간단하게 생각해 보는 것을 넘어 자신의 부고를 자신이 직접 당장 써보라고 권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를 쓴 제임스 알.. 쿠바의 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90세의 나이로 별세 피델 알레한드로 카스트로 루스(Fidel Alejandro Castro Ruz), 1926년 8월 13일 ~ 2016년 11월 25일 사령관은 바티스타를 타도하고 공산주의 국가를 수립했으며 수많은 미국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았다.쿠바는 피델 카스트로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9일간의 국가 애도를 선언했다. 피델 카스트로의 90세의 나이로 사망은 하바나와 마이애미에서 감동적인 장면, 세계 지도자의 추모와 반성을 촉발시켰고, 섬을 불확실한 시대로 이끌었다.2년 전 워싱턴과 하바나 간의 외교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거래를 중개한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1961년 단절된 이후 처음으로 조의를 표하며 미국의 생각과 기도가 쿠바 국민과 함께 한다고 말했다.“우리는 이 순간이 쿠바와 미국의 쿠바인을 강력한 감정으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부고기사 대행서비스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상주님의 편의를 위하여 신문부고(유료/무료)를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많은 이용 바랍니다. 부고(訃告)무료게재사망사실을 간결하게 알리는 것으로 신문의 사회면에 게재하는 것상(喪)의 종류 : 부친상, 모친상, 빙부상, 빙모상 등유료게재사망사실과 장례 전반에 대해 알리는 것으로 신문의 광고란에 게재하는 것상(喪)의 종류 : 부친상, 모친상, 빙부상, 빙모상 등신문의 면과 단수에 따라 금액 결정이용시간일간지 : 15:00까지 초판 인쇄, 19:00까지 재판 인쇄의료전문지 : 정오까지 초판 인쇄, 정오 이후 재판 인쇄이용안내운영사무실에서 FAX로 각 신문사에 전송 Joe Caroff Obituary Joe Caroff ObituaryGraphic designer Joe Caroff died August 17, 2025, at his home in New York City at the age of 103.He designed the iconic James Bond logo, turning the codename 007 into the handle of a gun.He is also being remembered for his movie poster art – he designed memorable posters for "West Side Story," "A Hard Day's Night," "Cabaret," and many others.Caroff was a U.S. Army veteran. 바로가.. 김지하를 보내며…“구성지게 부르던 ‘부용산’ 들려주고 싶구려” 김지하(金芝河), 1941년 2월 4일~2022년 5월 8일) 본명은 김영일(金英一) 고 김지하 시인을 보내며—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1983년 7월 초순 민주화운동의 전국연합조직 결성을 위해 원주 지역 대표자를 논의하고자 구룡사 계곡에서 만났을 때 모습이다. 그때 원주에서는 이창복 선생을 추천했다. 오른쪽부터 장일순 선생, 이부영 민중민주운동협의회 공동대표, 최열 공해추방운동연합 대표, 김지하 시인. 최열 대표 제공김지하 시인이 떠났다. 함부로 입에 올리기를 삼가야 할 김지하가 떠났다. 내게 그의 추도사를 써달라고 요청이 오기까지 여러 곡절을 거쳤으리라. 써야 할 사람이 사양하는 일들 말이다. 내게는 그 요청이 오면 거절할 수 없는 지엄한 이유가 있다. 그의 오늘이 있도록 만든 원인 제공자였기 .. 「더칼럼니스트」의 부고, 짧은 소식 아닌 이야기로 남는 부고 『더 칼럼니스트』는 고인을 기리는 글을 따로 모아 두고 있다. 단순히 죽음을 알리는 소식이 아니라, 살아온 길과 남긴 흔적을 담아낸다. 부고라는 형식이 때로는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담백하게 풀어낸다. 고인의 삶을 기록하는 방식은 짧고 단정하다.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사실과 의미를 전하려는 태도가 돋보인다. 이 코너는 신문 지면에서 흔히 보던 부고 기사와는 다르다. 직함이나 배경보다 그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읽다 보면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다시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부고가 단순한 알림이 아니라 기록이자 기억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죽음을 말하면서도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더 칼럼니스트』의 부고 코.. 백기완 선생 장례 ‘사회장’으로 엄수 백기완(白基琓), 1932년 1월 24일~2021년 2월 15일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 별세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9세. 1933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난 그는 1950년대부터 농민·빈 민·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하며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참여했다. 15일 오전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고인의 영정이 놓여있다. seephoto@yna.co.kr(서울=연합뉴스) 문다영 기자 = 15일 오전 타계한 백기완(향년 89세)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장례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5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주축이 된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으로 엄수된다.장례위원회는 이날 오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 007 권총 로고를 만든 디자이너 조 카로프 향년 103세 별세 조 카로프(Joe Caroff), 1921년 8월 18일 ~ 2025년 8월 17일 이름 내세우는 데 평생 초연했던 007 로고 디자이너 조 카로프 “마감 지키려 애쓰며 일했을 뿐” 묵묵한 일꾼이 세상을 움직인다2025-08-22뉴욕타임스는 지난 일요일 103세로 별세한 미국 그래픽 디자이너 조 카로프(Joe Caroff)의 부고 기사에서 고인을 ‘조용한 거인(quiet giant)’이라고 표현했다.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은 작품을 발표하면서도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디자이너에게 어울리는 수식어라고 생각했다.디자인 전문 매체도 그의 부고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카로프는 ‘잊힌’ 디자이너였다. 그러나 그가 디자인한 영화 007 시리즈 로고는 누구나 기억한다. 숫자 7의 가로선을 오른쪽으.. 내가 매년 부고를 쓰는 이유 호프스트라 대학교 영문과 교수 켈리 맥마스터스(Kelly McMasters)는 지난 9월 29일 뉴욕타임스에 ‘내가 매년 부고(사망기사)를 쓰는 이유(Why I Write My Own Obituary Every Year)’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한때 서점을 운영했고, 지난해에는 에세이 회고록 『떠나는 계절(The Leaving Season: A Memoir-in-Essays)』을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맥마스터스는 지난주에도 부고를 썼다. 그는 해마다 한 번씩 자신의 사망 기사를 쓰는 일을 하나의 의식처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주변에도 해마다 부고를 쓰는 이가 있다. 어떤 교사는 그것을 새해 첫 문장으로 삼고, 또 어떤 이는 유대인의 새해인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에 부고를 쓴다. 또.. 한국의 군인 출신 독재자 전두환, 90세로 사망 1931년 1월 18일 ~ 2021년 11월 23일, 90세 오래 살았다. 뉴욕타임스 전두환 부고기사. “한국의 군인 출신 독재자 전두환, 90세로 사망(Chun Doo-hwan, Ex-Military Dictator in South Korea, Dies at 90)”.한국의 군부 독재정권의 상징과도 같은 악명 높은 인물인 전두환은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찬탈한 뒤 1980년대 대부분 철권통치를 이어갔다. Nov. 22, 2021쿠데타로 집권하고 1980년대 대부분을 철권으로 나라를 통치하고 낙하산병과 장갑차를 파견하여 수백 명의 민주화 시위대를 진압했던 한국의 가장 비방받는 전 군부 독재자 전두환이 화요일 서울 자택에서 사망했다. 그는 90세였다. 그의 죽음은 한국 경찰청에 의해 확인되었다. 퇴임 8년.. 동료가 말하는 말론 브란도를 추모하며 말론 브란도 주니어(Marlon Brando, Jr.), 1924년 4월 3일 ~ 2004년 7월 1일Marlon Brando를 추모하며“말론 브란도는 연기에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고, 대변혁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연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말론 브란도에게서 여자를 뺏어 본 적이 있는 남자는 내가 유일하다.” —영화배우 토니 커티스브란도는 1951년작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비비안 리와 함께 출연했다. 이 영화로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처음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오르게 된다. “나는 말론 브란도와 함께 일했던 멋진 순간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와 함께 연기했던 그 장면들을 언제나 소중히 간질할거다. 그는 가장 관대하고 능력있는 배우 중 한 명이었다.” —‘워터프론트’에서 에.. 부고기사를 보면 사회의 공적 미덕과 민주주의 수준을 알 수 있다 부고는 기억할 만한 사회적 가치가 있는 내용을 보여주는 작은 창문이자, 특별한 역사적 순간을 개인의 삶과 연결해 해석하는 죽음의 사회학인 것이다. 신문의 뒤쪽을 보면 ‘부고’ 또는 ‘부음’이라고 적힌 부분이 있다. 한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것으로, 언제 죽었으며 어디서 장례식을 하는지 말해준다. 우리나라에서 부고 제도가 시행된 시기는 고려 말 이후로 보고 있다. 신문에 부고 기사가 지면을 채운 역사는 100년이 됐다. 일제 강점기부터 최근까지 우리나라 일간지 부고 기사 100년 사를 정치, 사회, 문화, 역사적 관점에서 추적하며 그 실체를 밝혀낸 책이 발간됐다. 책은 특히 이념적으로 정치적 대척점에 놓여 있던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언론 부고 기사에서 어떻게 다르게 반영되어 기록됐.. 내 부고는 내가 가장 잘 쓴다 모든 故人이 위인일 순 없다… 찬사 줄이고 실수도 기록하라모든 고인(故人)은 위인(偉人)이다. 부고 기사는 대개 고인에 대한 찬사로 차고 넘친다. 그나마 공과(功過)를 따지는 건 지도자나 정치인 등의 부고에 제한된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저널 부고 전문기자인 저자는 필부필부(匹夫匹婦)의 부음조차 찬사 일변도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유명인 아닌 일반 부음은 빈소와 발인 날짜, 유족명 등만 간단하게 알리는 우리 언론과는 달리, 서구 신문은 부고(obituary) 지면을 별도로 마련, 망자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전한다. 이러한 차이를 감안하고서라도, 죽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관심사.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가? 저자의 조언에 귀 기울여 보자. “헌사는 지면 낭비일 뿐” ‘훌륭한.. 시대의 실천적 지식인 리영희 선생 별세 리영희(李泳禧), 1929년 12월 2일~2010년 12월 5일 시대의 실천적 지식인 리영희 선생 별세 우리 시대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이자 ‘큰 언론인’이었던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가 2010년 12월 5일 별세했다. 향년 81.지병으로 서울 중랑구 면목동 녹색병원에 입원했던 리 교수는 이날 오전 0시30분께 병원에서 가족과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그의 평생은 ‘반지성에 맞선 치열한 싸움의 역정’이었다. 근무하던 언론사와 대학에서 각각 두 번씩 해직됐고, 모두 다섯 차례 구속됐다. 1980년 신군부가 ‘광주소요 배후 조종자’ 중 한 명으로 그를 지목 · 투옥했을 때 프랑스 일간지 는 리 전 교수를 ‘메트르 드 팡세’(사상의 은사)라고 불렀다.1929년 평안북도 운산군에서 태어난 리 전 .. 이전 1 ··· 5 6 7 8 9 10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