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215) 썸네일형 리스트형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몇 안 되는 장점 제인 캐서린 로터3기, 2C 단계 자궁내막암이 간과 복부로 재발 전이된 상태에서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는, 스스로 자신의 부고를 쓸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장점이라면 더 이상 자외선 차단제를 바를 필요도 없고, 콜레스테롤 수치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시작하겠습니다.저는 1952년 8월 10일 시애틀 노스게이트 병원(지금은 철거됨)에서 태어났습니다. 쇼어라인에서 자라 쇼어크레스트 고등학교에 다녔고, 1975년 워싱턴대학교에서 역사학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열아홉 살 때 8개월 동안 뉴욕에서 살았던 일을 제외하면 평생을 시애틀에서 보냈습니다. 그 시절 저는 B. 알트만 백화점의 전화 주문 부서에서 즐겁고 거리낌 없이 일했지요.직업적으로 저는 프리랜서.. 지하 형님의 추억, 그리고 작별 - 김지하를 추도하며 김지하(金芝河), 1941년 2월 4일~2022년 5월 8일) 본명은 김영일(金英一)김지하를 추도하며 ③—이동순 시인1. 담시 ‘오적’이 준 충격1970년 가을 어느 날, 마침 정주동 교수의 ‘홍길동전’ 수업을 마치는데 진보적 서클 현대사상연구회의 멤버인 동기 K가 상기된 얼굴로 무언가를 돌렸다. 그것은 프린트 등사본으로 된 김지하 시인의 담시 ‘오적(五賊)’이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거친 갱지에 인쇄된 작품의 어법은 당차고 소름이 돋았다.시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김지하로 가는 길 - 김지하를 추도하며 김지하(金芝河), 1941년 2월 4일~2022년 5월 8일) 본명은 김영일(金英一)김지하를 추도하며 ② —정지창 평론가·전 영남대 교수김지하(金芝河), 뭇생명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는 죽임의 문화에 온몸으로 저항한 비극의 주인공이 마침내 무대에서 퇴장했다. 1941년부터 2022년까지 그는 동학농민군의 마지막 생존자로, 분단된 한반도의 남쪽에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새 하늘 새 땅’을 찾아 헤매었으나, 끝내 그가 갇혀 있던 감옥을 탈출하지는 못했다. “어두운 시대의 예리한 비수를 / 등에 꽂은 초라한 한 사내”(「1974년 1월」)의 이마에는 슬픔과 고통과 투쟁과 명예와 패배와 배신의 낙인이 찍혀 있다.「황톳길」과 「타는 목마름으로」를 비롯한 빼어난 시편들을 절규처럼 토해낸 저항시인, 「오적(五賊)」을 비.. 타는 목마름으로, 지하를 다시 생각한다 - 김지하를 추도하며 김지하(金芝河), 1941년 2월 4일~2022년 5월 8일) 본명은 김영일(金英一)김지하를 추도하며 ①—도올 김용옥 T. S. 엘리엇의 시를 읽을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에 잠기곤 한다. “우리에게는 엘리엇보다 더 훌륭한 시인이 있었다.”시인을 놓고 누가 누구보다 더 위대하다는 말을 할 수는 없는 이야기이지만, 최소한 시라는 것은 일상적 언어가 미칠 수 없는 감정이나 느낌의 향연이 바로 지금 여기 우리 삶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의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 향연을 위해 일차적으로 필요한 사태는 언어의 공유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한국인의 시는 한국어로, 다시 말해서 한국인의 마음으로 쓰이지 않으면 안 된다.그렇다고 엘리엇의 시가 단순히 영어로 쓰였다는 이유로 김지하의 시보다 .. 광주의 학살자 전두환 사망... 끝내 사과 안해 전두환(全斗煥), 1931년 1월 18일~2021년 11월 23일 광주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고 수많은 광주시민을 학살하도록 명령한 주범 전두환 씨가 23일 사망했다. 향년 90세.전 씨는 이날 오전 8시 45분께 연희동 자택에서 쓰러졌고, 부인 이순자 씨가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오전 9시 12분쯤 그의 사망을 확인했다. 자택에서 사망 후 서울 신촌연세대세브란스 병원으로 이송될 예정이다.전두환은 악성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 확진 판정을 받고 투병중이었다. 최근 건강 상태가 악화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브리핑을 열고 “전 전대통령이 남긴 유언은 ‘북녘 땅이 바라다보이는 전방의 어느 고지에 백골로라도 남아 있으면서.. 환경운동가이자 침팬지의 친구인 제인 구달 별세 제인 구달(Valerie Jane Morris-Goodall), 1934년 4월 3일 ~ 2025년 10월 1일 (91세)야생 침팬지에 대한 획기적 연구로 동물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고 더 나아가 보호 활동을 촉발한 선구적 과학자1960년 말, 지금의 탄자니아 곰베 국립공원 지역에서, 당시 26세였던 제인 구달은 두 가지 중요한 발견을 하여 야생 영장류 연구자로서의 이름과 명성을 확립했다. 첫째는 침팬지들이 붉은 고기를 먹는 것을 관찰한 일이다. 그 이전까지 과학계의 통설은, 직접적 관찰 증거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침팬지는 초식성이라는 것이었다. 그다음으로는 더욱 예기치 못한 행동을 목격했다. 침팬지 수컷이 흙더미처럼 쌓인 흰개미 둥치 옆에 웅크려 앉아, 긴 풀대 줄기를 정교하게 손질하여 유용한 탐침 .. UN 가족은 제인 구달 박사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제인 구달(Valerie Jane Morris-Goodall), 1934년 4월 3일 ~ 2025년 10월 1일 (91세) Today, the UN family mourns the loss of Dr. Jane Goodall. The scientist, conservationist and UN Messenger of Peace worked tirelessly for our planet and all its inhabitants, leaving an extraordinary legacy for humanity and nature. 오늘, 유엔 가족은 제인 구달 박사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과학자이자 환경운동가, 그리고 유엔 평화 사절로서 우리 행성 지구와 그 안의 모든 생명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선구적인 인도주의자 제인 구달, 향년 91세로 별세 제인 구달(Valerie Jane Morris-Goodall), 1934년 4월 3일 ~ 2025년 10월 1일 (91세)세계적인 침팬지 전문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 박사가 지난 1일(현지시간) 9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구달 박사의 연구는 인간과 침팬지가 얼마나 가까운 관계인지 규명하는 데 기여했다. 동시에 그는 전 세계 환경보호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헌신해 온 운동가이기도 했다.‘제인 구달 연구소’는 성명을 통해 구달 박사가 미국 강연 투어 중 캘리포니아에서 자연사했다고 밝혔다. 이어 박사의 발견은 “과학에 혁명을” 일으켰으며, 그는 “우리의 자연을 보호하고 보전하고자 지칠 줄 모르고 활동한 진정한 옹호자”였다고 전했다.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UN은 구달 박사는 “우리의 지구와 모든 생명체를 위해 .. 죽은 자의 신분은 자식의 지위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누가 죽었다고 … 김승희 「한국식 죽음」 오늘 이웃의 장례식이 두 군데가 있었다. 평소 왕래가 빈번했던 분이라 그분의 생전 모습이 여전히 선명하다. 늘 인자하게 웃으시던 할머니의 가시는 길 평안하시라며 찾은 빈소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음식을 먹기에 번다한 모습이다. 어색하게 굳은 영정 사진 앞에 국화를 놓고, 상주와 인사를 하고, 이내 자리를 떴다. 잠시 할머니의 모습을 상기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 장례식이었다. 비단 이 장례식만의 모습은 아니다. 비슷한 모습의 영정사진과 비슷한 옷을 입은 상주들… 장례식장을 찾을 때마다 다른 점은 별로 없다. 누가 돌아가셨든 같은 모습, 같은 절차에 따라 장례는 진행된다. 이런 장례식장의 모습을 보면서 가끔 생각해 본다. 장례식장에 오는 저들 중 과연 망자를 기..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시인 박남철 10주기 박남철(朴南喆), 1953년 11월 23일 ~ 2014년 12월 6일 지난 6일을 아무도 기억하거나 기록하지 않는다. 문단의 괴짜 사고뭉치 이단아를 생각하기 싫은 까닭이다. 그가 절정기를 살았던 중랑천변을 나 홀로 걷는다ᆢ. 강은 얼지 않았지만 시인은 여전히 꽁꽁 언 겨울강에 돌을 던지고 있다. 쩡쩡쩡쩡쩡ᆢ그의 초기 시 ‘시인의 집’을 떠올린다스승 조병화께서 악수로써 껄껄껄 세배를 받으신 다음 구라파적 술잔에 꼬냑을 따라주시면서, 스승의 연구실을 따뜻했습니다.얘 남철아, 시인에겐 집이 없지 여기 장영자씨도 계시지만 평론가에겐 집이 있지 소설가에게도 집은 있고 극작가에게도 집은 있고 심지어 수필가에게도 높은 집은 있는 법이지 그러나 얘야 남철아, 시인에게는 집이 없지 그냥 사람 인자 시인이지 뭐, 헐헐헐... 아, 리영희 선생 - 백기완 리영희(李泳禧), 1929년 12월 2일~2010년 12월 5일 아, 리영희 선생—백기완리영희가 도대체 누구인데 그의 죽음을 두고 그리 시끄러운 거요 이름도 처음 듣는다는 이의 말에 시끄러운 게 아니지요 또다시 목숨을 걸고 한마디 하시는 거지요 그러구선 나는 먼 날을 더듬었다 어느덧 서른 해가 지났는가 선생이 내 병문안을 왔다가 백선생, 나 대포집이요, 나오시오 그때 일어서지도 못하고 죽도 못 삭이는 날 불러내던 그분은 뉘시던가한살매 목숨을 걸고 불러내던 분이다 분단이 쇠벽이 될 땐 겨레 넋을 불러대고 온몸을 묶을 땐 자유혼을 불러대고 되는 마을엔 새벽을 여는 이가 있듯이 내리친 어두움은 우주가 아니라고 외치고 날강도의 거짓부리기는 우상이라 외치고 할 말을 버린 붓끝은 곧.. 잘가 박남철 선배. 거기 가서는 싸우지 마라 박남철(朴南喆), 1953년 11월 23일 ~ 2014년 12월 6일박남철 시인이 어제 아침 죽었다. 낮 12시쯤 후배 시인에게서 온 연락을 받고 난 멍해졌다. 문단 최고의 깡패인 그를 안 본 지 20여 년 지난 것 같다. 지난해 말인가 페북 친구 요청이 왔길래 묵살했다. 며칠 뒤 살펴봤더니 그 스스로 철회를 했다. 난 알고 있다. 그와 엮이는 순간 내 인생이 피곤하고 힘들어질 거라는 걸. 그는 내 대학 1년 선배다. 방위를 마친 그와 나는 대학 4년을 같이 보냈다. 그와 지긋지긋하게 싸운 날은 셀 수도 없다. 등판도 거의 같은 시기에 했고 내가 3년 후배인 류시화 박덕규 이문재와 시운동 동인을 시작했을 때 그는 나를 엄청 시기했고 괴롭혔다. 그가 문단에서 벌인 깡패짓은 영원히 한국문학사에 남을 것이다.. 리영희 선생 영전에… 진정한 자유인과 함께한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리영희(李泳禧), 1929년 12월 2일~2010년 12월 5일 리영희 선생 영전에… 진정한 자유인과 함께한 우리는 행복했습니다리영희 선생님,초겨울의 우중충한 아침에 선생님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셨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병환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으셔서 오래가시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막상 비보를 접하고 보니 한 번 더 찾아뵙지 못한 것이 한탄스럽습니다. 이렇게 낙엽 지고 스산한 겨울에 무엇이 그리 바빠 서둘러 떠나셨습니까?선생님은 고은 시인의 말처럼 ‘어둠의 시간, 아픔의 시간’에 계셨습니다.1970~80년대 군사독재의 터널 속에서 빛을 찾아 헤매던 저희 세대 한국 청년들의 영원한 스승이셨습니다. 대학의 강의실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었던 사표였으며, 만년필 한.. ‘새 박사’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 별세, 향년 84세 윤무부(尹茂夫), 1941년 4월 15일 ~ 2025년 8월 15일 (향년 84세)‘새 박사’로 이름을 널리 알린 소석(素石) 윤무부(尹茂夫) 경희대 생물학과 명예교수가 15일 0시1분께 경희의료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84세. 윤 교수는 2006년 뇌경색으로 쓰러졌다가 재활에 성공했지만, 지난 6월에 재발해 경희의료원에서 투병해왔다.경남 통영군 장승포읍(현 거제시 장승포동)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영고, 경희대 생물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5년 한국교원대에서 ‘한국에 사는 휘파람새 Song의 지리적 변이’ 논문으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1979∼2006년 경희대 생물학과에서 강의했다. 2006∼2014년 경희대 생물학과 명예교수로 있었다. 1990년 한국동물학회 이사, 19.. 박남철 시인, 그가 갔다 박남철(朴南喆), 1953년 11월 23일 ~ 2014년 12월 6일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해체시의 선두 주자로 불리고 있는 박남철 시인, 투병 끝에 사망 —여러 가지 일화를 남겨두고 시세계를 영원히 떠나1979년 『문학과 지성사』로 등단한 박남철 시인은 황지우와 더불어 해체시의 선두 주자로 불리고 있는 시인이다.1980년대 중반부터 모든 금기를 해체하는 ‘해체시’로 유명해졌다. 그의 작품은 수사나 시의 구조보다는 형태 파괴, 풍자, 분노 등을 여과 없이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독자놈 길들이기」라는 시는 시인과 독자의 관계까지 파괴하는 파격을 보여주었으며, 문학평론가 김수이는 박남철을 “문법 해체를 통해 억압에 저항하려는 문학적 시도”라고 평가했다. 여섯 번째 시집인 『바다 속의 흰.. 최진실 - 21세기의 제망매(祭亡妹) 최진실. 1968.12.24 ~ 2008.10.2 2008년 내 일상의 평정을 가장 사납게 무너뜨린 것은 최진실의 죽음이었다. 그 죽음은 내 삶의 지침인 ‘안심입명’이나 ‘처변불경’ 같은 말을 탄지지간에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별일이었다. 지난해 삶을 버린 연예인이 최진실만은 아니었고, 평소 ‘배우 최진실’한테 홀딱 반해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이 해에는 또 홍성원, 박경리, 이청준 같은 한국 산문문학의 대가들이 타계했다. 이 죽음이 남긴 자국은 내 마음에서 이내 희미해졌다.가령 이청준의 죽음은, 아릿한 슬픔과 함께, 이제 한국문학의 한 시대가 막을 내렸구나, 하는 소회를 남겼으나, 내 마음을 거칠게 샐그러뜨리진 않았다.지난해 대한민국의 대사(大事)는 이런저런 개인의 죽음이 아니었다. 진짜 큰일은 제6.. 신경림 성좌(星座)를 지상에 두고 신경림(申庚林), 1936년 4월 6일~2024년 5월 22일고(故) 신경림 선생님을 추모하며지상의 시(詩) 쓰기를 멈추신 선생님 ‘강정마을 지키기’에 같이 한 기억의 소중함 말로만 떠드는 환경운동가들에 비판과 걱정 하늘의 큰곰~ 전갈자리서 길 잃었을 거목마을 숲 같았던 선생님마을 숲은 난해하지 않다. 오르기에 힘들지 않다. 산길이 문득 깊어서 ‘이쯤에서 길을 잃어야겠다 ‘고 스며들어도 길을 잃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마을 숲의 다정한 보살핌을 그리워한다.시도 비슷한 면이 있다. 난해하지 않으나 엄하고 가지런하고 따뜻한 향기를 지닌 시들은 일종의 공공선처럼 느껴진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안온해지기도 하니 말이다.일주일 전, 마을 숲 같으셨던 시인께서 세상을 뜨셨다는 소식을 들었.. 인생이 망한 것 같아 억울할 때 나는 부고를 쓴다 인생이 망한 것 같아 억울할 때 나는 부고를 쓴다 특별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나 신문 귀퉁이에 자리해 지나치게 쉬운 글어떤 사람이 어떠한 이유로 세상을 떠났다는 공고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매개체이자장례비용을 나눌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문화적 장치그런데잘 쓴 부고에는그 이상의 감동이 있다.나의 첫 번째 부고누구와 함께 헸는지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무엇을 이루었는지대부분 시시콜콜한 이야기지만부고는 인생이 응축된 문장이 모인작은 평전죽음으로 읽는 삶의 이야기때로는 단점도 가감 없이 드러내고사랑하는 사람에게 충실하면서도바람둥이였으며, 대중의 관심에늘 목말라하는 뜨거운 열정의 스페인 남자였다.—피카소 부고당부가 담기기도 한다.내 무덤에 와서 울지 마라.나는 거기에 없고 잠자는 것도 아니다.나는 수천 개의.. 반성 2025 - 검찰 사망 부고에 부쳐 쓸쓸하다.사생활이 걸레 같고 그 인간성이 개판인어떤 유능한 판·검사가고결한 인품과 깊은 사랑의 성자의 얼굴을 하고정의를 선고할 때처럼역겹다.그리고 보통 살아가는 어리숙하고 착하고가끔 밴댕이 소갈딱지 같기도 한 이런저런 모습의평범한 시민에게 법의 잣대를 들이댈 때처럼.그보다 훨씬 똑똑하고 세련된 그가그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도색적인 그가권력 앞에서는 비굴하게 굽실대면서서민 앞에서는 도덕을 설교하는 순간처럼.국민을 위한다 말하며 제 배를 불리고,법치를 말하며 정치에 줄을 대고,역사를 심판한다 떠들면서도스스로는 단 한 번도 심판대에 서지 않는 판·검사와.어쨌든 나는 견디며 살았었다.오늘도, 숨을 뱉는다. 덧_김영승 「반성 190」을 빌어 반성 190 - 김영승반성 190—김영승쓸쓸하다. 사생활이 걸레 같고..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 하늘로 떠난 민중시인 신경림 신경림(申庚林), 1936년 4월 6일~2024년 5월 22일 가난한 사랑 노래—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농무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 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 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 이전 1 ··· 3 4 5 6 7 8 9 ···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