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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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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 옷을 입은 돈가스, 일본 근대화의 산물이다 일본인은 7세기에 덴무天武 천황이 살생을 금지한 이래 1,200년 동안 소와 같은 육고기는 먹지 말도록 철저히 교육받아왔다. 가축을 먹는 것은 기마민족의 습관으로, 고대 일본에는 없었던 것을 '도래인'이 가져온 것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일본인에게 육식 금지는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은 금지령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불교의 융성과 함께 대두하기 시작한 도래인 세력을 음식 측면에서 억압하려고 한 정책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1867년 1월 약관 열여섯 나이로 즉위한 메이지 천황은 쇄국에서 개국으로 정책을 180도 전환했고, 온 나라가 서양 여러 나라를 따라잡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당시 지도자의 고민거리는, 근대화의 격심한 차이도 차이지만, 위로 올려다보아야 할 정도에 이르는 서구인과의 체형의 차이였다. 그런 현실에..
성녀 마더 테레사는 있다 없다 마더 테레사의 전 생애를 이끄는 힘은 바로 기독교 정신인 사랑이며, 삶을 이끈 기독교적 지침이다. 마더 테레사는 "우리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을 예수님 같다고 여기고 섬긴 것이 아니라, 바로 그들이 예수님"이기 때문에 섬겼다. 마더 테레사에게 가난한 사람이란 "굶주린 사람, 의로운 사람, 먹을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굶주린 사람, 목마르고 무지한 사람, 지식 · 평화 · 진리 · 정의 · 사랑에 목마른 사람, 헐벗고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 인간의 존엄을 박탈당한 사람, 누구도 원하지 않는 사람, 태어나지 않은 아이, 버려진 사람, 인종차별을 당하는 사람, 떠돌아다니는 사람, 집뿐만 아니라 이해해주고 사랑해줄 사람이 없는 사람, 병자, 가난하게 죽어가는 사람, 몸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이 갇힌 사람,..
맹자와 《맹자》를 서양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서양인은 맹자와 《맹자》를 어떻게 생각할까? 클리프턴 패디먼의 《평생 독서 계획》에 나온 공저자 존 S.메이저의 맹자에 대한 평은 공자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흥미롭다. 공자에 대해서는 "새로운 직업이 필요했고, 찾아 나섰다.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다른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프리랜서 정치 고문으로 출세하려고 했다"고 평했다. 공자를 '프리랜서 정치 고문'으로 생계를 유지하려 했다는 것과 비교하면 맹자에 대한 평은 사뭇 다르다. 맹자는 "춘추전국시대의 통치자에게 조언을 해주는 방랑 철학자로서 생계를 유지했다"며 '철학자'로 평했다. 둘의 차이가 무엇일까? 맹자를 '철학자'로 평한 이유는 '혁명'이 계몽사상 지도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어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대 미국인이 《맹자》를 읽어야 할 중요한 이유를..
번역, 서양문명을 수용하다 제목처럼 "번역과 일본의 근대"에 관한 짧은 책이다. 같은 제목의 《번역과 일본의 근대》 (이산)과는 다른 책이다. '번역'이 단순히 번역으로서만이 아니라 일본 근대화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크다. 일본 개화기의 "사상가는 서양 학문을 적극 수용하고자 하는 이유가 일본의 독립과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양 학문의 수용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 '번역어'이다. 일본이 서양 문물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온 고민의 산물이 번역어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가. 메이지시대 번역가, "한국은 근대 문물을 받아들일 당시의 정세를 보면, 중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는 오랑캐라는 중화사상에 사로잡혀, 서구식 근대화에 대한 정체성을 찾기도 전에 일본이 청일전쟁 이후 동양사회의 강자로 등장하는 과정에서 방향을 잃고 ..
불량 독자가 득실거리는 것은 99 퍼센트가 출판사 탓이다 리더스북 대표 이홍이 에 연재한 것을 묶어 출간한 책이다. 출판동네(?)를 잘 모르는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 나는 다소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책을 읽었다. 불순한 의도는 지피지기知彼知己이다. 그들의 생각을 안다면 나를 좀 더 돌아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책이 팔리지 않는다고 아우성인데, 결국 책이라는 상품이 독자라는 소비자와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_ 이홍기획자이거나 출판에 관련된 이라면 좀 더 피부에 다가올 내용이다. 나같이 겉으로만 도는 '불량 독자'를 위한 책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생각과 왜 늘 출판시장은 단군이래 늘 불황이라고 말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불황은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말한다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 꼴인지도 모른다. 그..
파란 눈을 가진 서양인은 공자와 《논어》를 어떻게 생각할까? 파란 눈을 가진 서양인은 공자와 《논어》를 어떻게 생각할까? 한자를 번역하여 출간된 책을 읽을 것이다. 아니면 우리처럼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중역하여 읽을지도 모를 일이다. 영어로 된 《논어》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고 설령 기회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 뒤집어 생각해 보자. 우리가 읽고 있는 《논어》가 우리말로 된 것이 아니라 번역되어 우리에게 주어졌다. 공자가 전해주는, 아니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논어》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우리는 가끔 《논어》가 번역서가 아닌 우리 책이라 착각한다. 《논어》를 읽기보다는 논어를 빌어 해석한 책만 넘치고 있다. 길게는 수천 년을 내려오는 동안, 짧게는 조선 오백 년 동안 내려온 도덕적 가치관이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와 《논어..
신문 리뷰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조선일보에 리뷰가 실리면 5천만 원 이상의 광고 효과가 있다고 한다. 측정할 수 없는 매스미디어 효과이니 확언할 수 없다. 마케터가 선호하는 매체임이 틀림없다. 한데, 매체의 리뷰가 칭찬 일색이 아니라면 광고 효과는 얼마나 될까? 책을 파는데, 도움이 될까 아니면 해가 될까. 이런 리뷰가 실리는 것도 득실을 떠나 고무적이다. 조선일보를 구독하고 있다. 요즈음 어떤(?) 먹잇감을 물어 연일 물어뜯고 있다. 논조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신문의 편집과 일관된 취재는 여타 신문이 따라올 수 없다. 동아, 중앙은 말할 것도 없고 한겨레, 경향도 많이 배워야 한다. 특히 북리뷰에 관한 챕터는 인터넷과 더불어 매체 중에서 제일이다. 오늘(19일) 최근 읽은 북리뷰 중에서 멋진 리뷰를 보았다. (읽었다고 말하고 싶지 ..
나관중은 《삼국지연의》의 저자인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이하《삼국지연의》)의 저자로 여겨지는 나관중은 《삼국지평화》를 비롯한 민중속에서 자라나 전해 내려오는 방대한 삼국지 설화를 수집하고 《정사 삼국지》같은 전통적인 역사 자료와 대조하여 지나치게 황당무계한 요소를 빼버리고 문장을 다듬어 정리하고 집대성했다. 그렇다면 나관중은 《삼국지연의》의 저자인가? 알 수 없다. 그저 그렇다고 알려졌을 뿐이다. 먼저 나관중이란 인물의 실체를 알 수 없다. 실존했던 인물인지 저작자들의 대표적인 필명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나관중이 생존한 인물이었다면 여러 자료로 미루어보아 불우한(아니면 가난한) 지식인(?사대부)일 거로 추측할 수 있다. 지체 놓은 유복한 지식인이라면 당시 민중 예술에 관심을 둘 리가 없고, 어느 정도의 지식이 없다면 전통적인 ..
번역어는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간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념어는 "진지한 고민이나 내면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책에서 예를 들고 있는 社會, 個人, 近代, 美, 戀愛, 存在, 自然, 權利, 自由, 그, 그녀 등을 한자어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어휘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새롭게 개념화된 개념어이다. 우리에게는 단지 이러한 한자어는 "번역어가 아닌 그저 한자로 된 일본어였을 따름"일 뿐이다. 따라서 "같은 한자문화권인 우리에게는 번역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었다." '한자로 된 일본어'에 대한 "어떤 진지한 고민이나 내면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일본에서 만들어진 번역어는 또다시 '한국적'으로 왜곡과 변질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번역의 시발점은 네덜란드어로 된 책에서 시작되었..
세상은 우리가 볼 때마다 달라지며, 세상을 보는 순간 우리도 달라진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은 "세상은 우리가 볼 때마다 달라지며, 세상을 보는 순간 우리도 달라진다."이다. 정조 때의 문인 유한준의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더라." 와 뜻을 같이한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가 말하듯이 "역사는 '사실'에 대한 해석"이다. 역사가는 "자신이 속한 사회 구성원의 사고를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표현 방법에 동의하지 않지만 "역사 기록은 필연적으로 왜곡을 동반"한다. "역사가가 어떤 관점을 갖는 순간 역사적 사건은 왜곡"된다. 고종석의 에 나오는 글이다. "사실이 말하지 않은 것은 함부로 말하지 마라", "우리 역사학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객관적 진실만을 말합니다."라고 말하는 학자가..
페어 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다른 누군가가 권력을 얻을 기회를 만들어주는 자는 자멸한다. _마키아벨리90년 전에 노신이 한 말이 아직도 유효한 이 땅에 사는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하나. 노신을 아직도 읽게 해주는 세상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긍정적인 사고일 것이다.이 땅에는 때려잡아야 할 발바리나 개새끼가 왜 이리도 많은지. 그것이 누구인지 일일이 열거하면 얼마나 많을지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다. 물에 빠진 개를 측은하게 생각하면 안된다. 물에 빠졌다고 그들의 습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건드려도 노하지 않는다'는 것은 관용의 도道이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는다'는 것은 곧음의 도(直道)이다. 그러나 중국에 제일 많은 것은 삐뚤어진 도(枉道)이다.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으면 도리어 개에게 물린다. 이는 순진한..
친구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 아니라 "가깝게 오래 사귈 사람"이다 친구를 사귐에는 오로지 정신을 깊게 하는 일 말고는 딴 뜻을 두지 마라. _칼란 지브란 좋은 친구란 서로의 빈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사이일 것이다. 서로의 빈 마음에 현재의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그런 사이여야 할 것이다. 그 어떤 선입관념을 가지고는 친구가 될 수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가 정신을 깊이 한다는 것은 참으로 소망스러운 일이다. 정신을 깊이 하는 일을 통해서, 서로가 힘이 되고 빛이 되어 한없이 승화할 수 있다. 형식논리로는 하나 보태기 하나는 둘밖에 안 된다. 그렇지만 정신을 깊이 하는 창조적인 우정에는 둘을 넘어 열도 백도 될 수 있다. 정신을 깊이 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예절과 신의를 바탕으로 서로 간에 창조적인 노력이 기울여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범속한 사귐과 한때의 알..
제철에 나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 우리집 건강식탁 프로젝트 가끔 신맛 나는 냉면이 먹고 싶다든지 갑자기 사과가 먹고 싶다는지 하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먹고 싶은 거 놓치지 말고 사서 먹어라. 돈 아끼지 말고."라고 돌아가신 모친이 늘 하신 말씀이다. 아들이 걱정되어 한 말이라 생각했었는데 한참 뒤에야 '삶의 지혜'였음을 알게 되었다. 무언가 먹고 싶다는 것은 몸에서 필요한 영양분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 영양분을 공급해주어야 병치레도 하지 않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과학적 근거는 모르지만 맞는 말이라 생각하고 아이에게도 말해주었다. 미국의 통합의학, 약학의 선구자 앤드류 와일 박사는 "우리 몸은 항상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며, 균형이 깨졌을 때 이를 정상적으로 회복시키는 치유시스템이 있다"고 했다..
역사가 항상 진실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 세상을 속인 거짓말 "어떤 역사적인 사건이나 설명이 교묘하게 위장되거나 거짓말로 포장되면 이를 알아차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기에 이 교묘하게 위장된 거짓말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저자의 의도라 생각한다. 하지만 거짓말이라기보다 그것은 '위선', '보이지 않는 다른 이면'이다. 위정자들이 대중, 인민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 이면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깨어있어야 한다. 장정일의 "인민人民이 책을 읽지 않으면 우중愚衆이 된다"는 말처럼 읽어야 한다. 읽어야 속지 않는다. 좋은 재료로 만든 요리가 이상한 국적도 없는 요리처럼 보인다. 이라는 제목에 맞지 않는 내용이다. 그러고 보니 좋은 재료가 아니라 좋은 제목에 걸맞지 않은 재료로..
담배는 습관성 약품, 대마초는 마약이 아닌가? 《18cm 여행 (개인편)》을 읽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18센티미터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표현하기 어려운 단순한 크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18센티미터는 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도 당연한 것이 이 책은 남자에 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 그리고 여자, 그 둘 사이에 일어나는 지극히 당연하고 생리적인 관계, 즉 섹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수십만 킬로미터 떨어진 달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은 잘 알지만 정작 배꼽 아래 10센티미터에서 일어나는 일은 잘 알지 못한다. 아이러니 한 일이다. 이는 우리가 그것에 무지하기도 하지만 금기시하는 사회풍토에 더 큰 원인이 있다. 저자도 말하듯이 "우리 중에 페니스를 지나 질로의 18센티미터 여행하던 중 다른 반쪽을 만나 자궁을..
오래 같이 산 부부 같은 심야식당 8 처음 연애하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그것도 잠시, 조금 지나면 시들해진다. 알 것 다 알아 다음 것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비단 연애만이 아니다. 좋아하던 것이 싫증이 난다.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은 오직 아이의 얼굴이다. 또 하나가 있다. 재즈다.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니 계속 양파를 벗기는 느낌으로 항상 새롭다. 그래서 질리지 않는다. 야베 아로의 을 읽었다. 2008년 겨울 처음 1권을 읽고 5권까지 사서 읽었다. (한 번쯤 가고 싶은 심야식당) 하지만 지금 책은 나에게 없다. 무인서가를 위해 책을 주었다. 그 뒤로 기억에서 잊었다. 1권을 읽고 야릇한 느낌에 어쩔 줄 몰랐다. 그 느낌도 권 수가 지속되면서 나에게 흥분과 짜릿함을 주지 못했다. 한정된 공간 특이한 (사실 특이한 것이 ..
불의에 맞서는 우리의 분노는 여전히 그대로 살아있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 스테판 에셀은 레지스탕스의 동기가 '분노'였음을 환기하며 "여러분 각자가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찾으십시오. 역사의 큰 흐름에 합류하십시오!"라고 말했다. 이 연설이 바로 이 책의 시발점이 되었다. 레지스탕스이며 1948년 12월 10일 작성에 참여한 저자 스테판 에셀이 이 시대에 외치는 선언이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이건 소중한 일이다.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 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저자는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라고 말한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할 수밖에..." 이런 식의 말하는 태도를 경계한다. ..
삼국지가 재미있는 이유는 모두 '3' 때문이다 삼국 시대라는 역사적 시대가 후세 사람으로부터 이 정도까지 사랑을 받고 줄곧 이야기된 것 또한 '3'이라는 수와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이야기꾼은 대체로 전란과 분열의 세계를 다룬다. 평화롭고 안정된 시대의 이야기는 들어서 재미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분열된 난세가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너무 복잡하게 여러 축으로 나뉘져 버리면 이야기로 꾸며 내기 어렵다. 반대로 두 영웅의 대결 구도는 자칫하면 단조로워질 우려가 있다. 그렇다면 그 사이의 셋 정도가 가장 적당하지 않을까. 삼자정립은 분열과 항쟁의 관계에서는 갖아 안정된 성질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두 영웅은 양립하기 어렵지만, 삼강의 정립과 경합은 그 나름대로 구조적인 안정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남녀 간의 삼각관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자유를 꿈꾸는 非자유인, 飛자유인 그대 이름은 비주류 자유인을 꿈꿨다. 자유라는 말이 생긴 그날부터 그 자유로 때문에 감옥이 생기고 이 땅은 하나의 거대한 사상의 감옥이 되었다. 비자유인을 꿈꿨다. 비자유인은 非자유인이며 飛자유인이다. 인간들은 자유로써 너무도 자주 기만을 당한다. 자유가 가장 숭고한 감정의 하나로 헤아려지는 것과 같이, 그에 상응하는 착각 역시 가장 숭고한 감정의 하나이다. 학술원의 피터도 붙잡혀 왔지만, 결코 자유를 원하지 않았다. 출구가 하나의 착각일 뿐이라 하더라도, 오른쪽, 왼쪽, 그 어디로든 다만 하나의 출구를 원한다. 장석주는 비주류가 자신의 본능이라 말한다. 비주류는 언제나 바깥이고 변두리고 非급이고 B급이고 삼류다. 소수자이다. 장석주는 삼류라 말하지만, 비주류는 삼류가 아니다. B급이며 플랜B다. 플랜B는 지금의 대안이 아..
오행론으로 삼국지를 바로 읽기 2002년 11월 9일 에 쓰인 삼국지에 관한 글을 정리한 것이다. 먼저 장정일의 글에서 언급된 춘추사관, 정통론 그리고 언급하지 않았지만, 삼국지뿐 아니라 중국을 이해하는데 기본이 되는 오행설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 글은 (김문경, 사계절)을 참조했다. 삼국지의 정통론은 가볍게 여길 내용이 아니므로 다음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겠다. 이덕무는 그의 저서 에서 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다. 그의 말은 3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연의演義나 소설은 음란한 말을 기록한 것이니 보아서는 안 된다. 자제들이 보지 못하게 금해야 한다. 간혹 남에게 소설 내용을 끈덕지게 얘기하거나 그것을 읽도록 권하는 사람이 있는데 애석하도다! 사람의 무식이 어찌 이 지경일까? 는 진수의 정사와 혼동하기 쉬운 것이니, 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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