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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외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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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호를 왕호감으로 바꾼 '오버액션'밴드 될 때까지 하면 됩니다. - 오버액션 왕비호 윤형빈이 이라는 밴드를 만들었다. 밴드를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뮤직비디오의 제작과정과 특히 나는 그의 발상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김중태님은 왕비호 개그맨 윤형빈이 결성한 밴드 '오버액션'과 웹2.0의 조화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그들의 행위를 높이사고 있다. 하지만 거창한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개그맨스러운(?) 코믹함과 그들의 노력은 우리가 높이사고 배워야 할 점이다. VLUU로 만들어진 무예산 프로젝트라고 한다. 물론 협찬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아니면 고도(?)의 PPL일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아주 잘한 PPL이다. 전혀 거부감을 주지않고 VLUU를 사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한다. 무엇보다도 "2220번의 시도와 12번의 성공..
2008. 09. 28. - 보고 듣고 느낀 한마디 01_ ‘위기의 출판계’ 울리는 편법 할인 판매는 오늘 당장 생긴일이 아니다. 생산이 유통에 목을 메는 일은 전 산업에 걸쳐있다. 유독 출판계만 '우는소리'를 한다. "운다고 옛사랑이 올까" 그날만 바라보고 살기엔 앞으로 남은 날이 너무 많다. 02_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 다녀왔다. 매년 매년 행사의 의미가 줄어들고 책을 팔고 사는 의미로 전락하고 있다. 물론 그 만큼도 의미가 있다. 몰랐던 책들도 많이 보인다. 덕분에 몇권 샀다. 파주 출판단지에 토,일에 상시적인 것을 하면 좋지 않을까? 우는 소리만 하지말고 몸부림을 쳐야 하지 않을까? 내가 누구보고 충고를 하나. 내 앞가림이나 잘하자. 03_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에 한국의 책쟁이들은 언제 나올까라는 포스트가 올랐다. 단순한 호기심이었..
아무 이유없이 만날 수 있는 친구 어제 메일링을 하는 에서 "친구"라는 제목의 메일이 왔다. 여러번 읽었다. 그 친구의 죽음이 슬퍼서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생각하면서 여러번 읽었다. 과연 그러한 벗이 몇이나 될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렇게 명함이 수북이 쌓여가도 시그널만으로 상대방 마음을 헤아려줄 ‘친구’라는 단어를 쓸 사람은 정말 만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말 그런 ‘친구’는 평생 한번 만나기도 힘들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뼈저리게 느낍니다. 핸드폰 속에 그 많은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아무리 뒤져도, 정작 필요할 때, 아니 아무런 이유 없이도 선뜻 만나 술 한 잔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그런 벗이 여러분은 얼마나 됩니까? 더불어 편지의 마..
다양성을 부정한다면 "민주주의2.0"은 없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을 오픈했다는 뉴스는 얼마전 들었다. 노공이산으로 활동(?)중으로 논객 노무현 하루에 6개의 글을 적다라는 포스팅도 보았다. 한계레가 이러한 노공이산님의 행보에 대하여 [사설] 전직 대통령의 토론 웹사이트 개설 유감을 썼다. 그에 대한 내용은 노무현에 대한 한겨레의 딴지는 정당한가?를 보고 알게되었다. 이 포스트는 괜히 노무현에게 시비 거는 한겨레에 덧하는 글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한겨레'가 어찌 '조중동'의 논조를 써가며 노공이산에게 그럴 수 있냐는 말이다. 어찌보면 한겨레도 네티즌의 안티를 염두에 두고 기자의 이름으로 칼럼을 쓴 것이 아니고 사설이라는 익명을 이용한 것이다. 한국에는 자기의 정체성을 밝히는 신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때 그때 달라지는 논조가 있을 뿐이다. 신문..
'배려'는 관심에서 출발한다 매경에서 이라는 컬럼을 보았다. 다른 말을 하려고 인용한 것이 마음에 들어 생각해 본다. 얼마 전 학회에 참석하려고 일본을 다녀온 동료 의사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호텔에 도착하여 입구에 들어서는데 호텔 직원이 이름을 부르며 '○○님, 어서 오십시오'라고 반가운 인사를 했다고 한다. 당연히 처음 방문한 호텔이고 처음 보는 얼굴이다. '어떻게 이름을 알지?' 하고 의아해 하는데, '택시에서 짐을 내리면서 여행가방 네임태그에 적혀 있는 이름을 봤다'는 직원 이야기. 그 짧은 순간에 센스를 발휘한 직원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 덕분에 처음 가는 낯선 곳임에도 한없이 편안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한상복님의 에서 "세상의 이치는 시험 문제를 푸는 것과 같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하면 풀리지 않는 일이란 없다(7..
2008. 09. 21 - 보고 듣고 느낀 한마디 01_ 가끔, 오프라인 데이를 가져보세요를 보니 옳은 말인것 같기도 말이 안되는 것도 같다. 디지털에 얶매여 산다기 보다는 종속되어 사는 나를 보니 이 말이 필요는 해보인다. 02_ 독후감과 서평의 차이점은 잘 모르겠다. 서평을 쓰려고 한것이 아니기에 그냥 느낀대로 나중에 보기 위하여 메모를 한다는 마음으로 작성하자. 03_ 과거에서 빠져 나와라..를 보고 아주 조금 생각했다. 개인적 한풀이도 되지만 나를 비롯한 다른 이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 인생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라고 생각하란다. 그래 해보자. 아직 남은 시간은 많다. 04_ 도서유통시장 파괴하는 '북리펀드' 행사를 즉각 중단하라를 보니 단순하게만 여겼던 것에 복잡한 이해관계와 문제점이 있음을 알았다. 사물과 대상을 좀 더 깊이 관..
"18년 글을 써도 논술이 안된다"면 어쩌라고 북스조선은 신간 리뷰를 위하여 구독하고 있다. 이 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다. 서글프다. "저자는 18년간 신문기자를 하며 글을 썼다. 하지만 2008 연세대 정시 논술 문제 답안을 한 달이 걸려서도 못 쓰는 경험"을 한 뒤에 논술에 대한 '근본적인 오류'가 있다고 깨달아 책을 썼다고 한다. 서글프다. "배경지식이나 글쓰기 실력이 반드시 논술 능력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인다. 논술은 "출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답을 논리적으로 제시하는 훈련이 돼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잘 풀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런 말을 하면서 책을 내는 현실, 그리고 이 책을 봐야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책이 얼마나 '쪽집게 과외'의 역활을 할지 모르지만 기분은 영 아니다. 논술을 보는 수험생들이 얼..
어처구니없는 '불교는 무법자들" 이야기 불교는 무법자들인가? 라는 포스팅을 보았다. 내용을 차지하고 제목이 말이 안되어 좀 웃다가 글을 보게되었다. 글쓴이는 무슨 이유에선지 상당히 감정이 상해 있어 보인다. 물론 나중에 글을 다 읽어 보니 그 이유는 있었다. 그 이유를 여기에 표현하기도 싫다. 글은 북멘토를 자처하는 박안석씨의 블로그에서 보았다. 이 포스트를 보고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내가 불교를 믿어서가 아니다. 나는 종교와는 무관한 자칭 꼬뮤니스트라고 늘 말하였다. 코칭, 멘토를 말하는 사람이 불교가 전 불교도를 칭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어떤 것이 사람(人)을 칭하는지 구분을 하지 못한다. '불교'가 그러는 것이 아니고 '불교도'가 그러한 것이다. 또 '기독교'는 아니고 '기독교도'는 이라 말하여야 한다. 대상이 무엇인지 한정짓지 않..
인용이 많은 책이 좋은 책인가? '관찰력에도 비결'이라는 포스트를 보았다. 송숙희 님이 의 글귀를 인용한 것이다. 을 읽지 않아 세부적인 내용은 알 수가 없다. "사고의 깊이와 넓이는 레퍼런스의 차이에서 온다"라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경험의 기반으로 사물을 판단한다. 레퍼런스가 많다는 것은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하고 '입체적'으로 느끼게 한다. 모두 공감한다. 하지만 "레퍼런스란 책 뒤에 실린 참고 문헌과 비슷하다. 모든 책은 그 참고 문헌만큼만 책이다."라는 말에는 일부는 공감하지만 일부는 동의하지 못한다. 처음 송숙희 님의 책을 읽었을 때 수많은 인용에 놀라웠다. 많은 독서량에 기인한 인용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수많은 인용으로 인하여 본질을 파악함에 거추장스럽고 말하..
詩가 나에게 주는 의미는 詩 안읽는 시대에 시집을 권하다는 포스트를 보니 기분이 우울하다. 예전에 쓴 詩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가 생각나서 더욱 그러하다. 詩로 혁명을 꿈꾸던 시절의 詩와 지금의 詩는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인가. 정희성시인의 말처럼 '차라리 시를 가슴에 묻'을 수만 있다면 차라리 좋겠다. 지금은 '가슴에 묻'기를 희망한다. 또한 김남주시인은 '法이 없으면 詩도 없다'고 절규한다. 차라리 김남주시인의 말이 맞는 시대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시대에 살며 詩의 존재를 생각해야하는 것이 서럽다. 살아남은 자 모두 피고라는 하길종감독을 기리는 말처럼 지금 이시대에 살아가는 모든이는 '피고'일지 모를일이다. 하지만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 이길 것이다는 신동엽시인의 절규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생각에 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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