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부고쓰기

(174)
남이 쓰는 부고 대신 자신이 미리 써서 삶과 사랑을 기록하기 이것은 너무 늦게 도착한 부고다. “내 아내는 우리나라의 큰 성씨인 안동 김 씨이다. 향년 22살. 그중 8년을 나와 함께 살았다. …아아! 당신처럼 현숙한 사람이 중간의 수명도 누리지 못하고 아들도 두지 못했으니, 천도라는 것이 과연 있는지 믿기 어렵다. 곤궁하던 시절에 나는 당신과 마주 앉아 작은 등불을 켜서 밤을 밝히며 책을 읽었다. 그러다 내가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울 것 같으면 당신은 그때마다 농담처럼 이렇게 말했다. ‘게으름 부리시면 제 부인첩이 그만큼 늦어집니다.’ 그때야 어찌 알았겠는가. 18년 뒤에 이 부질없는 문서 한 장을 당신의 영전에 바치게 될 줄을! 그 영예를 누릴 사람은 조강지처 당신이 아니니. 당신이 이일을 안다면 필시 한숨 쉬며 서글퍼할 테지. 아아, 슬프다!” 허균은 아내가..
한 르네상스적 완전인에 대한 뒤늦은 부고 기사 - 에릭 시걸 Erich Wolf Segal (June 16, 1937 – January 17, 2010) 고전문학자 에릭 시걸은 소설 『러브스토리』로 유명하다. 이 소설은 대중소설이 이 정도의 기품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고전문학 가르치기 · 대중소설과 영화 각본 쓰기 · 달리기가 삶 자체였다고 할 정도로 그는 다재다능했다. 문학의 가장 흔한 주제는 사랑이야. 대중소설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본격소설에서도 그렇지. 마르셀 프루스트의 그 기다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것도 결국 사랑 얘기야. 좀 짧은 소설로는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이것 역시 사랑 얘기지. 사랑은 소설을 비롯한 산문에서보다는 시에서 더 자주 다뤄지지만, 소설도 태반은 결국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 연극도 마찬가지고. 대중소설..
사나이, 아버지, 그리고 배우… 故 송재호 배우를 추모하며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이 있는 한, 작별인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쉼 없이 긴 연극 같은 삶이었다. 막간을 둘 새도 없이 배역을 달리하며 무대 위의 성실함으로 삶을 채웠다. 60여 년의 배우 인생을 뒤로하고, 지난 11월 7일 배우 송재호가 영면했다. 향년 83살. 1년 가까이 지병으로 투병했지만 마지막은 평온했다고 전해진다. 에서는 베트남전쟁에서 돌아온 당대의 열혈 청년으로, 드라마 에서는 인자한 아버지로, 에서는 묵직한 기둥이었던 수사반장으로, 에서는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간직한 노인으로 출연하며 송재호는 배역을 따라 나이 들었다.혹여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 둔감했던 관객에게조차, 송재호의 푸근한 미소는 영화와 드라마 곳곳에 스며들어 미더운 약속처럼 기억된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이 ..
음식인류학의 아버지, 시드니 민츠 93세의 나이로 타계하다 시드니 민츠 (Sidney Wilfred Mintz) November 16, 1922 – December 27, 2015 Sidney Mintz, Father of Food Anthropology, Dies at 93 (Sam Roberts)음식인류학의 아버지, 시드니 민츠 93세의 나이로 타계하다 (샘 로버트)출처: 뉴욕 타임스 / 2016년 1월 1일 Sidney W. Mintz, a renowned cultural anthropologist who provocatively linked Britain’s insatiable sweet tooth with slavery, capitalism and imperialism, died on Sunday in Plainsboro, N.J. He was 9..
죽기 전 최고의 글쓰기, 나의 부고 쓰는 법 사망했다, 먼 여행을 떠났다… 동사가 내 인생관 “더 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꼭 물어야 지금이 쓰기 가장 좋은 때, 부모 인생 기록해둬야 고인은… 미화되기 보다 ‘그대로’ 기록되길 원해 저는 항상 질문합니다.첫째, 이 사람이 본인의 인생을 살면서 이루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둘째, 왜 그걸 목표로 삼았을까? 셋째, 성공했을까? 이 질문은 제가 고인에 대해 쓰려고 했던 이야기의 핵심을 찾도록 도와줍니다. 제임스 해거티 인터뷰 中타인의 부고를 쓰는 것 혹은 읽는 것은, ‘애도’라는 여비를 지불하고 한 인간의 인생 터널을 관람하는 ‘가성비 높은’ 체험이다. 수많은 죽음을 접한 그가 살아있는 이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무엇일까?바로 ‘당신의 부고는 당신이 직접 쓰라’다.만약 부모가 병석에 누워 돌..
부고 - 나에 대한 마지막 소식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스스로 쓴 부고(訃告)문입니다. “러셀은 한평생을 천방지축으로 살았고 그의 삶은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이었지만 일관성이 있었고, 이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19세기 초 귀족 출신 반역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신념은 기묘했으나 그의 행동은 늘 신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참조: 『인기 없는 에세이』, 버트런드 러셀, 「스스로 쓴 부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3월 29일 인터넷 판에서 ‘유관순, 일제 통치에 저항한 한국 독립운동가’라는 제목으로 유관순(1902-1920) 열사를 추모하는 부고기사를 실었습니다.지금까지 부고기사에 백인 남성들에 관한 기사만 쓰느라 간과한 사람, 그중 주목할 만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실었는데 한국인 여..
광고로 남는 한국의 부고, 기사로 남는 미국의 부고 신문사에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광고의뢰가 있다. 부고(訃告)다. 원래 부고는 예약 못하는 광고다. 세상에 장례날짜를 정해놓고 거기 맞춰 죽는 망자는 없다. 그래서 갑자기 상을 당한 유족들은 묘지구입, 장례식장 임대 등으로 허둥지둥 바빠지지만 그런 경황에도 신문에 부고부터 낸다. 장례식 지난 후의 부고는 버스 떠난 후 손드는 것과 마찬가지다.신문부고는 천편일률적이다. 고인의 사망일자, 향년, 유족명단, 장례일정, 연락 전화번호가 전부다. 고인의 생애를 설명하는데 너무 인색하다. 특히 고인이 사회활동을 하지 않은 여성이면 본인 이름 앞에 ‘아무개 회장의 모친’이라거나 ‘아무개 박사의 부인’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일쑤다. 인생퇴출을 알리는 부고에서까지 남편이나 자식의 그늘에 가린다.미국신문의 부고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누가 죽었다고? - 고인 없는 고인 부고기사 고인이 유명인사가 아니면 보통 누구의 부친상, 모친상 또는 빙부, 빙모상 등으로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상주인 자식이나 사위의 회사 명의나 직위는 빠짐없이 표시되어 있다.어디에도 고인은 없다. 그런데 누가 죽었다고?학연이나 지연 또는 사업상 관계를 통해서 찾아오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고인에 대한 추모의 정이나 애도의 정이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이에 반해 미국의 신문은 부고란의 비중도 크고 평범한 사람이라도 고인 중심의 기사를 싣는다.최소한도 고인의 이름 석자와 간단한 약력을 소개해 주는 것이 고인에 대한 예우도 될 것이고 또 조문하는 사람에게 필요로 하는 정보가 될 것이다.한국식 죽음- 김승희김금동씨(서울 지방검찰청 검사장), 김금수씨(서울 초대병원 병원장), 김금남씨(새한일보 정치부 차장) ..
11월 13일 불에 몸을 맡겨지금 시커멓게 누워 있는 청년은죽음을 보듬고도결코 죽음으로쫓겨 간 것은 아니다. 희망공부 _정희성절망의 반대가 희망은 아니다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빛나듯희망은 절망 속에 싹트는 거지만약에 우리가 희망함이 적다면그 누가 이 세상을 비추어줄까* '희망공부'라는 제목과 노랫말의 첫행은 백낙청선생의 글에서 따왔고, '희망함이 적다'는 표현은 전태일 열사의 일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땅은 아직도 시가 필요한 세상이다 : 이성부 시인을 그리며 이성부 시인이 2월 28일 돌아가셨다.뒤늦게 알게 되어 검색하니 신문 몇몇에만 몇 줄의 기사가 보인다. 詩가 죽었다지만 시인의 세계마저 죽은 것은 아니다.시인의 명복을 빈다.시인은 3번 째 시집 의 후기에서 "어렵고 버림받은 사람들의 승리가, 반드시 고통 속에서 쟁취된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더불어 "그러기에 나는 나와 내 이웃들의 고통의 현장에서 한 발자국도 비켜설 수 없다"라고 1977년에 말했다. 35년 전 시인이 말하는 "버림받은 사람들"이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 그러기에 시인의 노래는 우리와 같이 할 것이다.시인 김남주가 "세상이 법 없이도 다스려질 때 / 시인은 필요 없다 / 법이 없으면 시도 없다"고 했다. 이 땅은 아직도 법法으로 다스려지지 않는 세상이다. 이 땅은 아직도 詩가 필요한..
스티브 잡스 1955 ~ 2011 당신과 동시대에 살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이제는 책으로만 당신을 만날 수 있겠군요.하지만 당신이 바꾼 세상은 잡스 당신을 영웅으로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나는 튼튼한 기초를 토대로 모든 것을 개조하고 싶습니다.기꺼이 벽을 허물고 다리를 놓으며 불을 지필 것입니다.내게는 많은 경험과 에너지, 그리고 약간의 비전이 있기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애플 맥 웹사이트에 실린 자기소개서 잡스가 돌아갔다.원래 온 곳으로 돌아갔다. 그의 죽음에 대해 하는 말 중에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말이 있다. 신도 아이폰이 필요했다.구름 위 하늘로 i-cloud 만들러 갔다. 한때 잡스의 연인이었기도 한 Joan Baez의 노래가 더 구슬피 들린다.
최선이 아니면 최악이 아닌 것을 선택하라 - 김대중 선생 별세 김대중(金大中) 1924년 1월 6일~2009년 8월 18일 87년 나의 생각은 '최선이 아니면 최악이 아닌 것을 선택하라'였다.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백기완선생의 중도포기로 혼돈을 격었던 나의 선택이었다.그 최악이 아닌 선택이 나와 다른 세상에 있다. '돌아가신' 것이다. 사람에게는 공과 과가 있다. 그에게도 과가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라 하더라도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의 공을 덮을 수는 없다.공이 많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87년 YS와 단일화를 포기하지않고 끝가지 단일화를 이루었더라면... '비판적 지지'라는 명목으로 재야가 갈라지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좀 더 달라지지않았을까? 신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결선에서 승리한 위대..
1970년 11월 13일 오늘은 11월 13일. 1970년 11월 13일은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외치며 몸을 던졌다. 1970년 11월 13일은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절규가 있었다. 전태일君 - 이성부 불에 몸을 맡겨지금 시커렇게 누워버린 청년은결코 죽음으로쫓겨간 것은 아니다. 잿더미 위에그는 하나로 죽어 있었지만어두움의 入口에, 깊고 깊은 파멸의처음 쪽에, 그는 짐승처럼 그슬려 누워 있었지만그의 입은 뭉개져서 말할 수 없었지만그는 끝끝내 타버린 눈으로 볼 수도 없었지만그때 다른 곳에서는단 한 사람의 自由의 짓밟힘도 世界를 아프게 만드는,더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의 뭉친 울림이하나가 되어 벌판을 자꾸 흔들고만 있었다. 굳게굳게 들려오는 큰 발자국 소리,세계의 생각을 뭉쳐오는 소리,사람..
오늘이 루이 암스트롱이 귀천한 날 “They're really saying ‘I love you’(그들은 진심으로 말하네, 널 사랑해라고).” (‘What a wonderful world’ 중에서)팝스(pops). 친근한 아저씨.언제나 쾌활했다. 세간의 주목을 즐겼다. 외로운 예술가보단 사랑받는 연예인이길 바랐다. 연주 도중에도 농을 하기 일쑤였다. 동료들은 어릿광대짓을 타박했으나 달변의 ‘satchel mouth(입이 큰 녀석)’는 멈추지 않았다.‘새치모(satchmo)’ 루이 암스트롱.어린 시절 ‘뉴올리언스’의 삶은 각박했다. 가난한 창녀의 아들. 아버지도 모른 채 오두막에서 태어났다. 11세에 의붓아비의 총에 손을 댔다 들어간 소년원. 그곳에서 코넷(트럼펫보다 약간 작은 금관악기)을 배운 건 손오공이 여의봉을 쥔 격이었다.“It d..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