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장정일

(31)
부의(賻儀) - 구광렬 부의(賻儀) —구광렬편지 봉투와 돈 봉투 크기 같음을 친구 놈 죽고서 안다 그 시절 우리 대신 눅눅한 지폐 밀어 넣는 내 손바닥이 그 크기 같음에 소스라친 것이다마술 같은 인생이다 봉투를 여는 내 입김 여전히 뜨거운데 나 몰래 깊이 파인 손금의 손바닥은 싸늘한 네 입술 같은 지폐 몇 장을 애간장 태우던 지난 편지 대신 집어넣고 있다무작정 마시고 돈 없어 시계 잡히던 그 옛날 막걸리 됫박값 종이돈이 답장도 못 받아볼 글 없고 끝없는 편지가 된다—『불맛』, 실천문학사, 2009 —장정일구광렬의 시에는 ‘시적인 번득임’이 있다. 소금이 짜고 설탕이 단 것처럼 시가 시적인 번득임을 뿜어내는 일도 당연하다. 하지만 모든 시가 시적인 번득임을 간직하고 있지도 않은 데다가 모든 시인이 시적인 번득임의 획득을 시..
노자, 함곡관으로 돌아오다 역사 인식(재해석)을 새로 하는 것으로 현실적 문제에 대한 지혜와 비판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작업에는 늘 두 가지 혐의가 따른다. 첫째, 현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를 동원하는 것(관제화된 역사문화) 둘째, 검열을 피하기 위해 역사 뒤에 작가의 발언을 숨기는 것(도피로서의 역사문학). 다행히도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소품문에서는 두 가지 혐의를 발견할 수 없다.「노자, 함곡관으로 돌아오다」는 중국인의 현실주의를 잘 드러내 주는 작품이다. 소를 타고 인간이 없는 사막을 찾아 道와 德을 찾으려고 했으나, 자신이 아끼던 소만 죽이고 다시 마을로 돌아와 이렇게 말한다. 검둥이 소가 내 선생이 됐던 거지. 그는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네. 즉 인간관계를 절대로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과, 인간관계를 떠..
장정일이 읽은 김수영 『김수영 평전』은 김수영의 삶을 추적한 평전이고 『김수영, 근대를 향한 모험』은 김수영 시에 관한 평론이다. 김수영은 ① 일제시대 때 누구나 다 가담한 사회주의 운동이나 항일 운동 자체에 대해 무관심했다. ② 해방 후, 뒤늦게 사회주의(좌익)월북 인사에 대한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③ 6.25라는 참상과 직면하자, 모든 이데올로기적 판단이 중지되고 생존의 방법으로 남한을 택한다. ④ 휴전선이 고착되고 냉전이 시작되자 사회주의에 대한 콤플렉스에 다시 시달린다.김수영은 ① 또는 ③과 같이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는 도피와 생존을 택하고, ② 또는 ④와 같이 상대적으로 유화적이고 과도기적인 공간에서는 과격한 자유주의자 내지 회의주의자가 된다. 김수영이 4.19에 왜 그토록 열광했는지의 비밀은 여기 있다. 4.19는..
주자행장 이 책은 주희의 제자였던 황간이 주자의 일생을 정리한 것으로 주자를 알 수 있는 최초의 전기다.그의 일생은 ① 관직을 거듭 사양하는 대신, ② 천자에게 많은 상소를 올린 일로 요약된다. 흥미롭게도 유학자로서의 주자의 삶은 송시열과 같은 조선시대의 소중화주의자에게 하나의 전범이 되어, 관직을 사양하는 것과 나라(사직)와 백성을 위한다는 빌미로 임금에게 훈계(유학의 념)를 늘어놓는 일이 지조 있는 선비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양식화됐다.주자에 의하면 인과와의 본무론적 조화는 자연히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수양과 자기 도야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가 편찬한 『소학』에 강조된 오륜은 가족주의적, 내향적인 인과 국가주의적 의가 절충되어 균형이 잡히도록 고안되었다.(주자에 대해 너무나 모른다. 조선의 문제는..
채우기 위해서는 조금씩 비워둬야 한다. 그게 책장이든 마음이든. : 《장서의 괴로움》 《장서의 괴로움》은 딱 제목만큼이다. 우리와 다르게 목조 건물이 많은 일본에서는 책 무게를 견디지 못해 집이 기울거나 무너질 우려가 있다. 물론, 콘크리트 집이라고 안전하다는 것은 아니다. 무너질 정도의 책을 가진 이가 얼마나 많을까? 무너질 염려는 없지만 1000권이 넘어가면 책은 부담스러운 존재이다. 집과 떨어진 공간에 서재를 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가 장서 괴로움의 시작이다. 장정일의 추천의 글 “순수하고 무모한 열정의 괴로움”이 장서가인 저자를 잘 표현하고 있다. 장서가는 순수하다. 또한, 무모하다. 장정일의 장서에 관한 내용은 그의 《독서일기》에서도 말했다. 장서가는 모두 독서가, 독서가는 모두 장서가일까? 둘의 상관관계는 없지만 그럴 확률이 높다. “실제로..
[책 권하는 책] 독서에도 습관의 때가 있다 : 《장정일의 독서일기》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이라는 것은 없다.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꿀 만큼 인간이란 단순하지 않다. 단지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다. 다독가이며 저술가이자 철학자 강유원은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 중의 절대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라고 했다. 자신의 책 《책과 세계》에서 책 읽기를 강요하는 세상은 소수의 음모라고 말한다.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오늘날의 사람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책을 읽는 이는 전체 숫자와 비교해서 몇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대다수 사람이 행하고 있다 하여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며, 압도적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소수 책..
그대 아직도 노벨문학상을 꿈꾸는가 아일랜드의 삼총사라는 오스카 와일드 · 버나드 쇼 · 제임스 조이스는 모두 영어로 글을 썼다. 그래서 이들을 영문학에 포함하는 게 상식이지만, 일본의 문학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은 어느 자리에서 “우리가 보통 ‘영문학’ ‘영문학’ 하지만, 어떻게 보면 영문학이란 실은 아일랜드 문학”이라고 말했다. 이들 작품에 공통된 패러독스 · 아이러니 · 모순어법은 영어로 글을 써야만 하는 식민지 지식인의 복수였다. 그들은 그런 방법으로 식민 종주국인 영국의 교양과 문학 전통을 조롱하고 전복했으며, 영어 자체를 비틀고 오염시켰다. 실로 제임스 조이스 이후 영문학은 더는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나 찰스 디킨스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이 상황을 비틀즈 · 롤링스톤즈 · 애니멀즈와 같은 영국 밴드가 미국 대중음악을 집어삼켰던 ‘..
오래된 책 그리고 사라진 책방 오래된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꺼내들었다. 1994년 나온 책이니 20년이 되어간다. 이 책에 특별한 의미를 두는 게 아니다. 그저 필요에 의해 꺼내들었을 뿐이다. 책이 오래되어도 용도 폐기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책이 오래되었기에 다른 기억의 파편을 보여준다. 종로서적에서 나눠주는 책갈피, 지금은 볼 수 없는 서점의 가격표다. 두 곳 모두 지금은 없다. 서울문고는 얼마 전까지 영어이름으로 있었지만······ 둘 모두 애용하던 책방이었는데, 기억은 없고 그 흔적은 남아있다. 살아온 나날이 길어지니 작은 기억의 조각에 큰 의미를 두려한다. 그저 지나간 파편에 불과한 것인데.
착각, 다시 착각, 혼동 그나마 다행. 그리고 운명이 아니라 필연 착각錯覺 장정일의 《공부》를 꺼내었다. 책장에 있은 지 몇 년 되었으니 당연히 읽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제목만 알고 있는 책장 속의 많은 책이 있음에도 오만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처음 읽는 책처럼 느껴진다. 조금 더 읽어보니 많이 본 내용이다. 목차의 내용을 찬찬히 보니 읽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다시 착각錯覺 단편적으로 《장정일의 독서일기》7권 모두 읽었으니 이 책도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에 읽었다고 생각했다. 친일파와 전범에 관한 내용을 찾으려 이 책을 꺼냈는데 읽지 않았다면 출발부터 잘못이다. 혼동混同 착각이 아니다. 완독한 책을 남기는 독서기록에 《공부》가 있다. 3년 전 읽었다. 혼동混同.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고 또 내용을 보니 읽은 것으로 생각하고 기록을 보니 읽..
파란 눈을 가진 서양인은 공자와 《논어》를 어떻게 생각할까? 파란 눈을 가진 서양인은 공자와 《논어》를 어떻게 생각할까? 한자를 번역하여 출간된 책을 읽을 것이다. 아니면 우리처럼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중역하여 읽을지도 모를 일이다. 영어로 된 《논어》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고 설령 기회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 뒤집어 생각해 보자. 우리가 읽고 있는 《논어》가 우리말로 된 것이 아니라 번역되어 우리에게 주어졌다. 공자가 전해주는, 아니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논어》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우리는 가끔 《논어》가 번역서가 아닌 우리 책이라 착각한다. 《논어》를 읽기보다는 논어를 빌어 해석한 책만 넘치고 있다. 길게는 수천 년을 내려오는 동안, 짧게는 조선 오백 년 동안 내려온 도덕적 가치관이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와 《논어..
자투리 시간 독서법 효과가 있을까? 책을 읽으려고 가방에 항상 책을 넣고 다닌다. 그것도 2권씩이나 들고 다닌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멍한 시간과 무료함을 달래려 책을 읽는다. 혹 읽던 책이 눈에 안 들어오면 다른 책으로 바꾼다. 자투리 시간을 아껴 책을 읽으려 한다. 물론 5분이나 10분 정도의 자투리가 아닐 때가 많다. 장정일은 이런 나의 자투리 시간 활용법을 비웃는다. 하지만 자투리 시간을 합치면 책을 좀 더 많이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이 있었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장정일의 말이 옳다. 책은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저자와의 공감을 이뤄내는 작업이다. 단순히 글자를 읽고 것이 독서가 아니다. 책이 지닌 열정, 저자의 열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지 못한 독서는 책 읽기가 아니다. "어떤 책을 3일 이상 뭉그적거리면..
가장 엄밀한 의미를 좇는 쾌락주의자가 되고 싶다 : 장정일의 독서일기 5 나이 마흔에 다섯 번째 독서일기를 내게 되었다. 기쁘기 한량없다. - 서문을 대신해 장정일은 마흔에 다섯 번째 독서일기를 출간했다. 그에 대해 더 논하면 장정일에 대한 부러움이 더 커지기에 그만하기로 하자. 그보다는 책의 뒷면에 있는 그가 되고 싶은 것에 공감한다. 오늘날 누가 얼굴을 똑바로 하고 자기 자신을 쾌락주의자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 단어가 가진 가장 엄밀한 의미를 좇는, 쾌락주의자가 되고 싶다. 이제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1권부터 7권까지 책꽂이에 넣어두었다. 이제 7권을 읽으면 그의 독서일기에 대한 여정이 끝난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5 장정일 지음/범우사 덧_ 독서일기를 읽고 내가 다시 세상에 내놓은 책을 아래에 적는다. 장정일이 책에 대한 인용한 부분과 그것에 대한 생각이다. 장정일의..
내 가면을 뒤집어쓴 자의 망상일 뿐이다 : 중국에서 온 편지 들어보십시오. 나는 부소입니다. 나는 부소이자, 나는 부소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가면입니다. 그러니 이건 소설도 아니고 평전도 아니고 역사는 더욱 아닐 겁니다. 되기로 한다면 이건 겨우 읽을거리나 될까요. (9쪽)부서는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을 이룬 진시황의 장남이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나는 부소입니다'는 그 자신이 부소가 아니라 '부소라 말하는 사람의 가면'을 장정일이다. 이 소설(이야기)은 1999년 처음 출간되었다. 이 때는 1997년 필화(? 라고 말해도 되는가)사건으로 여론과 문단에게 집단 이지메(왕따와는 조금 다르다)를 당하고 있을 때이다. 그래서 '나'는 '겨우 읽을거리'라 말하는 것이다.들어보십시오. 나는 부소입니다. 이제야 나는 내 입으로 부소를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건 소설도 아..
책을 만드는 모든 분께 절을 올리고 싶다 : 장정일의 독서일기 3 지난주는 장정일만 읽었다. 중간마다 다른 책을 읽었지만, 이빨 빠진 독서일기를 채워 읽었다. 6권을 읽고 4권 그리고 3권을 읽었다. 지금은 5권을 사서 읽고 있다. 도서관에 가면 있지만 구매해서 읽고 싶었다. 역순으로 읽으니 독서일기에서 장정일의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만드는 모든 분께 절을 올리고 싶다. 당신들, 당신들을 진정 사랑한다. 《장정일의 독서일기》의 끝을 바라보고 있다. 장정일이 독서일기란 이름으로 계속 출간하지 않은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다고 느낀다. 장정일의 생각과 같은지 장담할 수 없지만. 독서일기 전편으로 갈수록 읽은 책이 종종 더 보인다. 아마도 1980년대 책이 가끔 독서일기에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흔히 예술은 불온한 것이라고 말해지지만, 굳어진 형식에 아무런..
독서에도 습관의 때가 묻는다 : 장정일의 독서일기 4 좋은 책을 읽는 방법은 먼저 나쁜 책을 읽지 않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행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독서에도 습관의 때가 묻는다. 다음에는 더 좋은 책을, 방긋방긋 웃으며 읽고 싶다. 뭐가 나쁜 책인지 알아야 읽지 않을 수 있을 터인데 그것은 오로지 많이 읽는 수밖에는 없다는 말인가. 장정일의 말처럼 "알고 행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말이다. 며칠 전 을 읽었다. 많은 세상에 나오지 않은 책을 내가 세상에 꺼내 놓았다. 이번 4권에서는 몇 권 되지 않는다. 소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여 건너 띄고 읽었다. 지금껏 7권까지 나왔는데 (다른 이름까지 포함한다면 9권, 를 포함하면 10권이다) 번호를 채우지 못한 것을 구매해 모두 읽으려 한다. 읽으려 하니 구해진다. 인터넷 중고책방에서 배송비만 추가..
인민人民이 책을 읽지 않으면 우중愚衆이 된다 : 장정일의 독서일기 6 장정일을 읽을 때마다 그의 다독과 박식함에 부럽고 우울해진다. 이제 그것을 넘어설 때도 되었건만 부러움에 대한 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정일은 언제나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그처럼 책을 다독하지도 못하며 또한 자유분방하지도 못하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생각의 자유로움을 책장 너머로 볼 수 있는 책이다." 예전 장정일의 을 읽고 쓴 대목이다. 이 책도 그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장정일의 자유분방함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민주사회란 여러 가지 의견이 존재하는 사회이다. 그래서 시민이란 타인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과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그것과 함께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렇게 말하고 다닌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렇게 말하고 다닌다. 시민을 책을 읽는 사람이..
통조림처럼 유통, 소비되는 인문학 : 불온한 인문학 언젠가부터 인문학이라는 이름이 이곳 저곳 나온다. 인문학을 모르면 안그래도 무식한 인간이 더 무지한 인간으로 취급받는 세상이 되었다. 여기에 자기계발서가 독자를 기만하면서 교묘하게 인문학으로 위장하여 팔리고 있다. 여기에는 유통업체 문화센타들, 대기업 CEO 조찬 XXX도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다. 그곳에는 소위 인문학을 했다는 먹물들이 앞장서 소비를 유통시키고 있다. 당연히 인간이 배제된 인문학이 소비되고 있다. 수유+너머에서 분화된 수유너머N의 새로운 인문학을 위한 선언서(?) 정도가 되는 책이다. 인문학과 싸우는 인문학 "불온한 인문학"이다. 인문학 열풍에 대한 비판서이다. 왜 인문학이 체제순응적이어야 하는가. 인문학이 과잉 소비되어 다시 인문학의 위기라 한다. 수유+너머는 인문학의 최대 수혜자라 ..
더 리더 : 그 이면을 다시 읽다 장정일의 책을 읽으며 다시금 를 다시 생각하다. 소설을 가지고 현실에 빗대어 말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장정일이 외설의 절대적인 피해자임을 그는 말하지 않지만 근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나만 외설이냐'고 말하는 듯하다. 외설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독자만 판단할 뿐이다. 장정일의 글을 읽고 다시 생각해 본 몇 가지. 물론 몇 가지는 처음부터 의구심을 가진 내용이지만 이번에 다시금 생각해본다. 왜 여주인공 한나 슈미츠는 문맹인가? 왜 연상(여자)연하(소년) 커플인가? 왜 섹스를 하였는가? 왜 고전을 읽어주었는가? 왜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는가? 는 작년에 읽었다. 내가 읽은 것은 글자를 읽은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그 내용의 근간이 무엇인지 고민한 흔적이 없다. 소설을 고민하면서 읽어야 하..
책을 파고들수록 현실로 돌아온다 :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장정일은 읽을 때마다 우울하게 만든다. 1년 전에도 그랬고 더 오래전에도 그랬다.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1년 전 장정일에 대한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장정일은 언제나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그처럼 책을 다독하지도 못하며 또한 자유분방하지도 못하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생각의 자유로움을 책장 너머로 볼 수 있는 책이다." (시기, 질투, 부러움 그리고 아쉬움) [읽을 책]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 장정일이라는 포스팅을 올린 것이 2010년 9월이다. 거의 8개월 만에 장정일을 손에 잡았다. 책을 구매하려 하였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다. 하지만 구매를 하여야 한다. 꼭 필요한 책은 아니지만 간간이 읽어보면 책 읽기와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기 때문이..
기형도와 장정일 그리고 김훈의 짧은 여행의 기록 얼마전 김훈의 을 읽으며 기형도를 보았습니다. 김훈은 "기형도는 내 친구"라 했습니다. 또한 그와는 "큰 인쇄업종에 근무하는 동직자"이기도 합니다. 1989년 봄, 기형도가 죽었을때 김훈은 그를 추모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그래, 그곳에도 누런 해가 뜨더냐.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라" 이러한 계기로 기형도를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또한 그의 글에서 장정일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인연입니다. 기형도와 장정일, 연관이 잘 되지 않습니다. 기형도는 장정일을 '소년장정일'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지금은 절판이지만 에는 같은 제목으로 여행기가 있습니다. 그중 대구에서의 장정일과 만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대구로 가기로 했다. 그곳에는 장정일이라는 이상한 소년이 살고 있다.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