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기사 (242) 썸네일형 리스트형 돌아보는 삶… 자신의 부고기사 써본 적 있나요? 읽고, 생각하고… 부고기사로 세상 읽기—허병두 서울 숭문고 교사 책따세 대표돌아보는 삶… 자신의 부고기사 써본 적 있나요?신문이 알려주는 소식 중 하나는 ‘부고(訃告)’입니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는 기사이지요. 기사로 정리된 그 사람의 일생은, 독자가 배워야 할 것을 알려주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하나의 본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부고는 슬프면서도 의미 있는 기사이지요.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이 7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동아일보 8일자 A12면에 실린 ‘총리직도 사양… 학자 지조 지킨 長征(장정)의 삶’ 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7일 별세한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은 지조 있는 지성이자 중국 내 한국학 전파자, 광복군에 투신한 독립투사로 다양한 면모의 삶을 살았다. 이.. 헨리 포드 2세 부고기사 헨리 포드 2세 부고기사엔초 페라리가 한 거친 표현 중 헨리 포드 2세가 가장 격분한 게 뭔지 아시는지요. “그는 헨리 포드가 아니다. 헨리 포드의 손자일 뿐이지.” 뉴욕타임스는 1987년 헨리 포드 2세가 별세하자 “그는 할아버지가 설립한 시들어가는 회사를 세계적 기업으로 되살렸다”고 썼습니다. 한국식 실종자 - 김승희 한국식 실종자—김승희 ● 부음이상준 (골드라인 통상 대표), 오희용 (국제가정의학원장), 손희준 (남한 방송국), 김문수 (동서대학 교수)씨 빙모상 = 4일 오후 삼성 서울병원, 발인 6일 오전 5시누군가 실종되었음이 분명하다다섯 명씩이나!순교 문화의 품위를 지키면서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다소곳이남근 신의 가족 로망스 이야기—『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민음사, 2000 한국식 죽음 - 김승희 한국식 죽음 - 김승희 김금동씨(서울 지방검찰청 검사장), 김금수씨(서울 초대병원 병원장), 김금남씨(새한일보 정치부 차장) 부친상, 박영수씨(오성물산 상무이사) 빙부상, 김금연씨(세화여대 가정과 교수) 부친상, 지상옥씨(삼성대학 정치과 교수) 빙부상, 이제이슨씨(재미, 사업) 빙부상 = 7일 상오 하오 3시 10분 신촌 세브란스 병원서 발인 상오 9시 364-8752 장지 선산그런데 누가 죽었다고?—『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민음사, 2000 부고란의 주인공은 ‘고인’이다 「뉴욕타임스」 부고란의 주인공은 ‘고인’이다. “페드라 에스틸. 100년 4개 월 26일 만에 세상을 떠난 나의 어머니. 그녀의 따뜻한 미소와 아름다움은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감쌌다. 그녀는 가장 멋진 엄마였으며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녀의 가슴, 영혼은 항상 나와 함께했다. 그녀를 영원히 사랑하고 그리워할 것이다. 도비.”부고란을 읽는 재미도 있다. 줄줄이 자식의 이름과 직업, 직함을 열거할 필요가 있을까? 한국의 부고기사도 마치 문상을 오는 사람을 모집하는 것 같은 형식을 버리고 이처럼 고인을 추모하는 형식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신문 부고기사 ‘스타일’을 만들자조계환, 『관훈저널』, 여름호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이하 때로 ‘리즈’)가 세상을 떠난 2011년 3월 23일, 「뉴욕타임스」 .. 11월 13일 불에 몸을 맡겨지금 시커멓게 누워 있는 청년은죽음을 보듬고도결코 죽음으로쫓겨 간 것은 아니다. 희망공부 _정희성절망의 반대가 희망은 아니다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빛나듯희망은 절망 속에 싹트는 거지만약에 우리가 희망함이 적다면그 누가 이 세상을 비추어줄까* '희망공부'라는 제목과 노랫말의 첫행은 백낙청선생의 글에서 따왔고, '희망함이 적다'는 표현은 전태일 열사의 일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아듀 Jack Bruce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이가 하나둘 사라진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았던 추억이 그때를 기억한다.Cream의 베이시트이자 보컬 잭 브루스가 71세 나이로 2014년 10월 25일 사망했다. 크림은 최초의 슈퍼그룹이며, 잭 브루스(B), 에릭 클랩튼(G) 그리고 진저 베이커(D)의 3인조 밴드다.덧_크림(밴드)Jack Bruce, Cream’s Adventurous Bassist, Dies at 71 Cream - Sunshine Of Your Love (Farewell Concert - Extended Edition) (1 of 11)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박은지(朴恩智), 1979년 1월 23일 ~ 2014년 3월 8일 자신이 자신을 놓을 때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영생을 얻는 길은 자살뿐이다. 자고 일어나면 듣는 수많은 자살 소식, 하지만 그 많은 자살 중 진정한 자살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자살을 가장한 사회적 타살이다. 자신을 놓으려는 행위가 아닌 타인이나 다른 이유가 나를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었다. 수많은 자살은 진정한 의미의 자살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자살생존자이다. (조금 늦었지만) 오늘 또 자살이라 불리는 소식을 들었다. 노동당 부대표 박은지의 죽음이다. 자살의 원인으로 당연하게 여기는 “우울증이라는 진단명”을 다시 들었다. “우울증”을 죽음의 원인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모든 죽음을 설명하기 어려운 ‘우울증’으로 치부한다.오늘.. Lou Reed Dies at 71 Lou Reed died on October 27, 2013, at the age of 71.또 추억이 하나 사라지다.음악은 남겠지만.이렇게 하나씩 빼먹다보면 뭐가 남을까. 10년 후에는 무엇을 추억하며 살고 있을까.CNN은 이렇게 보도 했다. Rock legend Lou Reed dies at 71 진실을 담아내는 사진작가 최민식 별세 최민식(1928년 3월 6일 ~ 2013년 2월 12일) 책과 사진으로만 보았던 최민식, 이제 그를 기억할 방법은 그가 남긴 진실한 삶의 얼굴을 가진 사람의 사진과 글뿐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다. 이 사진을 보면 지금 우리 세대의 얼굴은 어떻게 기록될까? 연예인의 가식적인 얼굴이 시대를 대변할 거라 생각하니 한숨만 나온다. 신문에 난 부고 기사로 그의 삶을 말할 수 없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 1세대 작가 최민식 씨가 2013년 2월 12일 오전 8시 40분 부산시 남구 대연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 최민식의 '모든 예술은 진실해야' 한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사람에게서 희망을 볼 수 있고, 사람이 곧 삶이다. 사진(寫眞)은 말 그대로 진실을 찍.. 11월 13일 -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사랑하는 친우親友여, 받아 읽어주게.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 주게.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領域의 일부인 나.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주게.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좌석을 마련했으면 내말을 들어주게,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 찌질한 참모총장 장도영 진실을 안고 저 세상으로 장도영(張都暎, 1923년 1월 23일 ~ 2012년 8월 3일) 2012년 8월 3일 오후 장도영이 89세 나이로 별세했다.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일으켰을때 헛물을 켜 진압해야 할 참모총장의 신분이었던 장도영은 박정희를 인정하고 쿠데타 직후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계엄사령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취임한다. 6월 해임된다. 후 반혁명분자로 숙청된다.기회주의자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박정희 쿠데타에 대하여 찬성도 반대도 하지않은 박쥐같은 행동을 한다. 박정희의 초기 정당성을 세워주고 (당연한 결과이지만) 팽 당한다. 윤보선의 모호한 입장과도 같다.장도영 자신은 쿠데타 음모를 하루전에야 알았고,쿠데타 세력에 대해 방첩대를 동원해 조사를 실시했으나 거짓보고로 실패했고 쿠데다 동조 세력이 아니였다고 주장했다.. 이 땅은 아직도 시가 필요한 세상이다 : 이성부 시인을 그리며 이성부 시인이 2월 28일 돌아가셨다.뒤늦게 알게 되어 검색하니 신문 몇몇에만 몇 줄의 기사가 보인다. 詩가 죽었다지만 시인의 세계마저 죽은 것은 아니다.시인의 명복을 빈다.시인은 3번 째 시집 의 후기에서 "어렵고 버림받은 사람들의 승리가, 반드시 고통 속에서 쟁취된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더불어 "그러기에 나는 나와 내 이웃들의 고통의 현장에서 한 발자국도 비켜설 수 없다"라고 1977년에 말했다. 35년 전 시인이 말하는 "버림받은 사람들"이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 그러기에 시인의 노래는 우리와 같이 할 것이다.시인 김남주가 "세상이 법 없이도 다스려질 때 / 시인은 필요 없다 / 법이 없으면 시도 없다"고 했다. 이 땅은 아직도 법法으로 다스려지지 않는 세상이다. 이 땅은 아직도 詩가 필요한.. 1927. 11. 27. 김수영 2011. 11. 27. 서울 1927년 11월 27일 서울 종로 김수영.1968년 6월 16일 종로 청진동에서 마지막 술자리 후 서강 종점 김수영. 죽은 사람의 생일은 없는 거라 했으니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니다. 이 세상을 살다간 어떤 이가 세상에 나온 날이다. 모든 실험적인 문학은 필연적으로 완전한 세계의 구현을 목표로 하는 진보의 편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다. 그리고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령과의 불온시에 대한 논쟁의 일부분이다.68년이나 2011년 지금도 불온함은 존재해야 한다. 그들의 불온한 노래가 멀리 울려 퍼져야 한다. 김수영의 시적 주제는 자유이다.그는 자유를 시적 시적, 정치적 이상으로 생각하고, 그것의 .. 스티브 잡스 1955 ~ 2011 당신과 동시대에 살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이제는 책으로만 당신을 만날 수 있겠군요.하지만 당신이 바꾼 세상은 잡스 당신을 영웅으로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나는 튼튼한 기초를 토대로 모든 것을 개조하고 싶습니다.기꺼이 벽을 허물고 다리를 놓으며 불을 지필 것입니다.내게는 많은 경험과 에너지, 그리고 약간의 비전이 있기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애플 맥 웹사이트에 실린 자기소개서 잡스가 돌아갔다.원래 온 곳으로 돌아갔다. 그의 죽음에 대해 하는 말 중에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말이 있다. 신도 아이폰이 필요했다.구름 위 하늘로 i-cloud 만들러 갔다. 한때 잡스의 연인이었기도 한 Joan Baez의 노래가 더 구슬피 들린다. 영원한 무쇠팔 최동원 돌아가다 : 나는 “공을 던지고 싶다.” 최동원(崔東原, 1958년 5월 24일~2011년 9월 14일) 영원한 무쇠팔, 최동원을 기리며“공을 던지고 싶다.”그것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최동원을 빼고 한국 야구를 말할 수 없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다섯 차례 등판해 네 번 승리를 거두며 롯데의 첫 우승을 이끌었던 무쇠팔. 그는 강속구의 대명사였고, 선동렬과 늘 비교되었지만, 최동원의 직구는 누구와도 비길 수 없는 고유한 힘을 지녔다.그러나 그를 더 오래 기억하게 하는 것은 기록이 아니라 행동이다. 한국프로야구 선수협의회를 만든 주역이 바로 최동원이다. 그는 이미 충분히 보상받던 스타였지만, 후배 선수들을 위해 가장 앞에 섰다. 그 용기는 한국 야구의 토대가 되었고, 동시에 커다란 불이익을 불러왔다. 삼성에서 유니폼을 벗어야 했고, 마.. 또 하나의 낭만이 사라짐을 애도하며 : 박완서 선생의 영면을 추모하며 박완서 선생이 어제(2011년 1월 22일) 돌아가셨습니다. 평소 돌아가셨다는 말을 참 좋은 표현이라 생각했습니다.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셨으니 편히 쉬시길 빕니다.1978년 11월 두번째 소설집 『배반의 여름』의 서문에서 선생이 한 말입니다. 서문과는 다르게 평생 업으로 문학을 해오셨다. .... 하다못해 죽는 날까지 나의 업業으로 삼을 자신마저도 종종 흔들린다. 나의 문학이 나를 떠나 무엇이 되어 이웃과 만나질 것인지 나는 점점 더 모르겠다. ..... 선생의 단편은 대부분 좋아합니다. 특히 초기의 단편의 셈세함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이 단편의 마지막에 꽁트가 하나 나옵니다. 「화랑에서의 포식」입니다. 몇 번 인용하였습니다. "나는 낭만을 꿈꾸었나 봐."라는 푸념이 남의 말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지금.. 최선이 아니면 최악이 아닌 것을 선택하라 - 김대중 선생 별세 김대중(金大中) 1924년 1월 6일~2009년 8월 18일 87년 나의 생각은 '최선이 아니면 최악이 아닌 것을 선택하라'였다.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백기완선생의 중도포기로 혼돈을 격었던 나의 선택이었다.그 최악이 아닌 선택이 나와 다른 세상에 있다. '돌아가신' 것이다. 사람에게는 공과 과가 있다. 그에게도 과가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라 하더라도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의 공을 덮을 수는 없다.공이 많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87년 YS와 단일화를 포기하지않고 끝가지 단일화를 이루었더라면... '비판적 지지'라는 명목으로 재야가 갈라지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좀 더 달라지지않았을까? 신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결선에서 승리한 위대.. 1970년 11월 13일 오늘은 11월 13일. 1970년 11월 13일은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외치며 몸을 던졌다. 1970년 11월 13일은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절규가 있었다. 전태일君 - 이성부 불에 몸을 맡겨지금 시커렇게 누워버린 청년은결코 죽음으로쫓겨간 것은 아니다. 잿더미 위에그는 하나로 죽어 있었지만어두움의 入口에, 깊고 깊은 파멸의처음 쪽에, 그는 짐승처럼 그슬려 누워 있었지만그의 입은 뭉개져서 말할 수 없었지만그는 끝끝내 타버린 눈으로 볼 수도 없었지만그때 다른 곳에서는단 한 사람의 自由의 짓밟힘도 世界를 아프게 만드는,더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의 뭉친 울림이하나가 되어 벌판을 자꾸 흔들고만 있었다. 굳게굳게 들려오는 큰 발자국 소리,세계의 생각을 뭉쳐오는 소리,사람.. ▶◀ 떠나는 우리님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한시대를 풍미한 산울림의 막내 김창익씨가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였다.유달리 그들의 노랫가사가 구슬피 들린다. "청천하늘 벽력도 이게 무슨 말이더냐" 떠나는 우리 님떠나는 우리님 편히 가소서보내는 마음은 터질듯 하오어이야 디이야 어여쁜 우리님가시는 먼먼 길에 흰국화 만발해라어이야 디이야 이제 가면 언제 오나갈 곳 없는 그 얼굴은 영 떠나버리누나어이야 디이야 꿈이더냐 생시더냐청천하늘 벽력도 이게 무슨 말이더냐어이야 디이야 어여쁜 우리님가시는 먼먼길에 흰국화 만발해라 이전 1 ··· 9 10 11 12 1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