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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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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부고 기사’ … 단순 추모 넘어 저널리즘 영역으로 끌어올려야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별세 … 한국 언론의 평가는 왜 천편일률적인가 「껌으로 시작해 123층 월드타워까지… 맨주먹으로 롯데 키워」오늘(20일) 동아일보 2면에 실린 기사 제목입니다. 어제(19일) 별세한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고인의 생애와 업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부고 기사’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한국의 ‘부고 기사’가 이젠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고인에 대한 객관적인 조명보다 호평 일색의 ‘천편일률적’인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고인에 대해 추모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부고 기사로 다룰 정도의 인물이라면 저널리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온당한 태도 아닐까요. 그게 언론 본연의 역할과도 부합한다고 봅니다..
리영희, 내가 할 역할은 다 했고, 남은 역할은 내가 변치 않고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어주는 것뿐 리영희(李泳禧), 1929년 12월 2일~2010년 12월 5일 내가 할 역할은 다 했고, 남은 역할은 내가 변치 않고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어주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성한 백발에 인자한 팔자 주름, 세로줄이 들어간 청색 양복을 단정히 갖춰 입은 영정 사진이 조문객을 맞았다. 2010년 12월 5일 0시 40분경, 리영희 선생이 향년 81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차남 건석 씨는 “지병인 간경화가 악화됐고, 3주 전부터는 의식이 거의 없었다”라고 말했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병세가 깊었던 탓인지 장례식장은 차분했다. 뇌출혈로 인해 펜을 들 수조차 없어 임헌영 선생과 함께 구술로 적어내린 자서전 〈대화〉(2005)의 마지막 장. 선생은 “내가 할 역할은 다 했고, 남은 역할은 내가 변치 ..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영면 박은지(朴恩智), 1979년 1월 23일 ~ 2014년 3월 8일 진보신당의 최연소 여성 대변인이자 젊은 진보 정당인이었던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35)가 지난 2013년 3월 8일 새벽 서울 사당동 자택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은 박 부대표 죽음의 원인은 세간에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 부대표가 기간제 교사직과 학원 강사를 거쳐 정계에 등장하기까지의 과정은 그녀가 싱글 맘과 군소 정당에 대한 편견과 얼마나 오랜 사투를 벌여왔는지 짐작케 한다. 박 부대표는 무엇 때문에 ‘꿈을 공유하기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소중한 사람들’이라 했던 이들을 뒤로하고 생을 마감해야 했을까.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죽음의 원인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알려졌다. 박 대표의 영결식 ..
‘한국학 거장’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 별세 올해 초까지 매년 한 권 이상의 책을 낸 김열규 교수. 그는 “요즘 사람이 공부를 통해 자신의 영혼이 자라고 우거지는 즐거움을 누렸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한국학 분야의 거장으로 꼽히는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가 혈액암으로 투병하다 2013년 10월 22일 오전 10시 별세했다. 81세.고인은 1932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그는 병약했다. “밥보다 약을 더 많이 먹었다”고 할 정도였다.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도 그의 자리는 책상이었다. 당번과 함께 그는 늘 열외였다. 조회 시간도 체육 시간도 그랬다. 그만큼 약했다. 대신 고인은 그 시간에 책을 읽었다. 몸은 약했지만 생각의 근육을 키웠다. “그 시절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다”라고 회고한 적도 있다.고인은 문학과 여행을 좋..
마땅한 곳으로 돌아감 -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 미리 쓰는 부고(訃告)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 ‘미리 보내는 부고장’을, 그것도 나 자신의 것을 나 스스로 쓰자니, 손이 떨린다. 컴퓨터 자판기에 얼핏 손이 나가지 않는다. 초등학교 이후로 다니던 각급 학교에서 시험지 받아든 순간이 이 지경이었다면, 오직 낙제만 거듭했을 것은 뻔하다. 만만치 않는 머뭇댐을 간신히 가라앉힌 끝에 겨우, 쓰게 되는 게 이 부고장임을 우선 강조해두고 싶다. 일찍이 무슨 일에 손대게 되면서 이토록 미적댄 적은 있었던 것 같지 않다. 한데 막상, 첫 글자를 쓰게 되면서 그 머뭇댐이 겁먹은 것이나 질린 것만은 아니기를 스스로 다짐 두고 싶어졌다. 뭔가 뜻깊고 보람된 것이 되기를 바라고 싶어지기도 했다. 예로부터 죽음을 두고는 ‘돌아간다’고 했다. 그것은 으레 가야 할 곳..
남이 쓰는 부고 대신 자신이 미리 써서 삶과 사랑을 기록하기 이것은 너무 늦게 도착한 부고다. “내 아내는 우리나라의 큰 성씨인 안동 김 씨이다. 향년 22살. 그중 8년을 나와 함께 살았다. …아아! 당신처럼 현숙한 사람이 중간의 수명도 누리지 못하고 아들도 두지 못했으니, 천도라는 것이 과연 있는지 믿기 어렵다. 곤궁하던 시절에 나는 당신과 마주 앉아 작은 등불을 켜서 밤을 밝히며 책을 읽었다. 그러다 내가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울 것 같으면 당신은 그때마다 농담처럼 이렇게 말했다. ‘게으름 부리시면 제 부인첩이 그만큼 늦어집니다.’ 그때야 어찌 알았겠는가. 18년 뒤에 이 부질없는 문서 한 장을 당신의 영전에 바치게 될 줄을! 그 영예를 누릴 사람은 조강지처 당신이 아니니. 당신이 이일을 안다면 필시 한숨 쉬며 서글퍼할 테지. 아아, 슬프다!” 허균은 아내가..
한 르네상스적 완전인에 대한 뒤늦은 부고 기사 - 에릭 시걸 Erich Wolf Segal (June 16, 1937 – January 17, 2010) 고전문학자 에릭 시걸은 소설 『러브스토리』로 유명하다. 이 소설은 대중소설이 이 정도의 기품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고전문학 가르치기 · 대중소설과 영화 각본 쓰기 · 달리기가 삶 자체였다고 할 정도로 그는 다재다능했다. 문학의 가장 흔한 주제는 사랑이야. 대중소설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본격소설에서도 그렇지. 마르셀 프루스트의 그 기다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것도 결국 사랑 얘기야. 좀 짧은 소설로는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이것 역시 사랑 얘기지. 사랑은 소설을 비롯한 산문에서보다는 시에서 더 자주 다뤄지지만, 소설도 태반은 결국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 연극도 마찬가지고. 대중소설..
사나이, 아버지, 그리고 배우… 故 송재호 배우를 추모하며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이 있는 한, 작별인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쉼 없이 긴 연극 같은 삶이었다. 막간을 둘 새도 없이 배역을 달리하며 무대 위의 성실함으로 삶을 채웠다. 60여 년의 배우 인생을 뒤로하고, 지난 11월 7일 배우 송재호가 영면했다. 향년 83살. 1년 가까이 지병으로 투병했지만 마지막은 평온했다고 전해진다. 에서는 베트남전쟁에서 돌아온 당대의 열혈 청년으로, 드라마 에서는 인자한 아버지로, 에서는 묵직한 기둥이었던 수사반장으로, 에서는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간직한 노인으로 출연하며 송재호는 배역을 따라 나이 들었다.혹여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 둔감했던 관객에게조차, 송재호의 푸근한 미소는 영화와 드라마 곳곳에 스며들어 미더운 약속처럼 기억된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이 ..
음식인류학의 아버지, 시드니 민츠 93세의 나이로 타계하다 시드니 민츠 (Sidney Wilfred Mintz) November 16, 1922 – December 27, 2015 Sidney Mintz, Father of Food Anthropology, Dies at 93 (Sam Roberts)음식인류학의 아버지, 시드니 민츠 93세의 나이로 타계하다 (샘 로버트)출처: 뉴욕 타임스 / 2016년 1월 1일 Sidney W. Mintz, a renowned cultural anthropologist who provocatively linked Britain’s insatiable sweet tooth with slavery, capitalism and imperialism, died on Sunday in Plainsboro, N.J. He was 9..
이력서 같은 부고기사 지난(2011년) 4월 25일 타계한 배우 김인문의 부고 기사다. 고인의 죽음도 안타깝지만, 이 기사도 정말 아쉽다. 기사에는 한 시대를 살아 간 예인의 삶과 죽음이 무미건조하고 상투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고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자료만 들춰보고 얼마든지 써낼 수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죽음이란 어떤 의미에서 가장 큰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에는 한 사람이 평생 밟아 온 삶의 궤적이 압축되어 담겨 있다. 죽음은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극적인 계기이며, 그렇게 돌이켜 보는 고인의 삶의 과정이 죽음이라는 드라마의 플롯이 된다. 또 감정 반응을 본질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정서적 사건이기도 하다.보통 사람의 죽음도 그럴진대, 잘 알려진 사람의 죽음에는 이러한 요소가 더욱 많다고 볼 수 ..
죽기 전 최고의 글쓰기, 나의 부고 쓰는 법 사망했다, 먼 여행을 떠났다… 동사가 내 인생관 “더 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꼭 물어야 지금이 쓰기 가장 좋은 때, 부모 인생 기록해둬야 고인은… 미화되기 보다 ‘그대로’ 기록되길 원해 저는 항상 질문합니다.첫째, 이 사람이 본인의 인생을 살면서 이루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둘째, 왜 그걸 목표로 삼았을까? 셋째, 성공했을까? 이 질문은 제가 고인에 대해 쓰려고 했던 이야기의 핵심을 찾도록 도와줍니다. 제임스 해거티 인터뷰 中타인의 부고를 쓰는 것 혹은 읽는 것은, ‘애도’라는 여비를 지불하고 한 인간의 인생 터널을 관람하는 ‘가성비 높은’ 체험이다. 수많은 죽음을 접한 그가 살아있는 이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무엇일까?바로 ‘당신의 부고는 당신이 직접 쓰라’다.만약 부모가 병석에 누워 돌..
죽음은 어떻게 기억돼야 하는가 한국 언론은 죽음을 어떻게 기록하고 해석하는가[한국 사회와 죽음] ② 미디어 속 죽음 —이완수 / 동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인간사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숨을 거두고 육신을 묻는 ‘생물학적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하지만 삶을 기록하고 공표하는 ‘사회학적 죽음’은 다르다. 누구는 기억되지만, 누구는 망각된다. 누구는 크게 다뤄지지만, 누구는 작게 다뤄진다. 어떤 이는 아무 기록으로도 보존되지 않는다.죽음의 기록자, 신문 부고기사죽음의 사회적 기록자는 미디어다. 죽음은 뉴스에서 항상 중요한 주제로 다뤄져 왔다. 사실 우리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미디어를 통해 죽음을 보고 듣는다. 신문에서 죽음을 고정적으로 다루는 것이 부고기사다. 부고기사는 한 사람이 살아왔던 ..
김점선, 한 사람쯤 없을 수 없지만, 둘이 있어서는 곤란한 사람 2009년 3월 22일 화가 김점선 별세했다. 암 투병 중 유명을 달리했다. 늘 말하듯이 '돌아간' 것이다. 해맑음 웃음이 좋았는데 이제는 그 해맑을 볼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자신의 생을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에 '암은 축복'이라고 말했던 김점선 화가. '장엄하게 죽기 위해 이 제목을 택했다'라고 고백하며 담담한 필치로 써낸 자전적 에세이 『점선뎐』은 마지막 저서로 남게 되었습니다. 한문학자 정민 선생은 ‘불가무일 불가유이’(한 사람쯤 없을 수 없지만, 둘이 있어서는 곤란한 사람)라고 애정을 표시했다. 덧_오래된 글을 다시 꺼내 부고기사로 모았다.
부고 - 나에 대한 마지막 소식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스스로 쓴 부고(訃告)문입니다. “러셀은 한평생을 천방지축으로 살았고 그의 삶은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이었지만 일관성이 있었고, 이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19세기 초 귀족 출신 반역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신념은 기묘했으나 그의 행동은 늘 신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참조: 『인기 없는 에세이』, 버트런드 러셀, 「스스로 쓴 부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3월 29일 인터넷 판에서 ‘유관순, 일제 통치에 저항한 한국 독립운동가’라는 제목으로 유관순(1902-1920) 열사를 추모하는 부고기사를 실었습니다.지금까지 부고기사에 백인 남성들에 관한 기사만 쓰느라 간과한 사람, 그중 주목할 만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실었는데 한국인 여..
‘봄비’ 부른 박인수, 78세로 별세…“한국 최초의 솔 가수” 박인수(朴忍洙), 1947년 9월 3일 ~ 2025년 8월 18일 美 입양돼 뉴욕서 솔 창법 접해…신중현에 발탁돼 가요계 데뷔지병으로 무대 떠났다가 복귀도…아내와 37년만 재결합해 화제 히트곡 ‘봄비’를 부른 원로 가수 박인수가 2025년 8월 18일 폐렴으로 별세했다. 향년 78세.고인의 유족은 연합뉴스에 “고인이 오랜 기간 알츠하이머 등을 앓아왔다”며 “서울 시내 한 대학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고, 폐렴으로 건강이 악화해 오늘 오전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고인은 생전 ‘한국 최초의 솔(Soul) 가수’로 불리며 ‘봄비’를 비롯해 다수의 유명한 노래를 남겼지만,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1947년 평북 길주 출생인 고인은 한국전쟁 도중 어머니와 둘이 피란길에 올랐다가 열차에서 어머니의 손을 ..
부고의 사회학 (한국 죽음기사의 의미구성) - 이완수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이처럼 ‘생물학적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러나 ‘사회학적 죽음’은 다르다. 죽음에 대한 미디어의 구성체계는 불공평하고 불합리하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인간사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그가 대통령이든, 아니면 시골의 이름 없는 촌부이든 예외가 없다. 숨을 거두고 육신을 묻는 ‘생물학적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하지만 삶을 기록하고 공표하는 ‘사회학적 죽음’은 다르다. 누구는 기억되지만, 누구는 망각된다. 누구는 크게 다뤄지지만, 누구는 작게 다뤄진다. 어떤 이는 아무 기록으로도 보존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미디어의 구성체계는 때로는 불공평하고, 때로는 불합리하다. 부고기사는 개인의 역사와 동시에 사회가치와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언론..
송재호, 그리움과 존경을 담아서 그를 생각하다 2024년 11월 7일, 많은 이들이 배우 고(故) 송재호의 4주기를 맞이해 그를 기억하며 추모의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국민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배우 송재호는 2020년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존재는 아직도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1. 이야기다채로운 연기 경력, 200편을 넘나든 대배우평안남도 출신의 송재호는 1959년 KBS 부산방송총국 성우로 연예계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후 영화 학사주점으로 영화배우의 길을 시작하며, 그의 연기 인생은 쉼 없이 펼쳐졌습니다. 1968년 KBS 특채 탤런트로 발탁된 후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20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습니다. 스크린에서는 영자의 전성시대, 살인의 추억, 해운대와 같은 다양한 작품으로 관객과 소통했으며, TV ..
장례식장 - 유강희 장례식장 —유강희부의(賻儀), 라고 쓰인 흰 봉투 뒷면에 아직 산 자의 이름을 쓰고 그걸 윗주머니에 넣는다 〈조문〉을 하기 위해 아직 산 자는 이미 죽은 자와 아직 산 자를 위해 아직 산 자를 더 많이 위해 재빨리 검은 옷으로 갈아입는다 살아생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죽은 자의 사진 앞에 〈느림〉으로 엎드린다 한 번 더 반복한다 그러고 나서 제법 애통한 낯으로 아직 산 자가 아직 산 자를 향해 또 한 차례 〈되돌림〉으로 엎드린다 그리고 나서 흰 꽃을 꺼내듯 흰 봉투를 꺼내 아직 산 자는 아직 산 자 앞에서 아직 산 자의 이름이 적힌 그것을 밀봉된 상자의 좁은 구멍에 애써 밀어 넣는다 아직 산 자들이 등뒤에서 자꾸 밀쳐도 아직 남아 있는 자신..
부고에 고인이 없다. 부고의 주인공은 고인이다. 역사책은 참 이상하다. 왕과 장군의 이름만 나온다. 워털루 전쟁 대목에서도 “워털루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졌다.”라고만 되어 있다. 어디 나폴레옹이 싸웠나? 쫄병들이 싸웠지. 역사책 어디를 들춰봐도 쫄병 전사자 명단은 없다.—『미친말의 수기』, 마광수, 「역사」 부고는 죽음을 알리는 글이다. 동시에 한 사람의 삶을 압축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 신문에 실린 부고를 보면, 고인의 삶보다는 다른 것이 중심에 놓인다. 신문의 부고기사는 유가족과 사회적 지위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름 앞에 붙는 직업 역시 특정 분야에 편중되어 있었다. 기업인, 언론인, 학계 인사, 공무원 출신이 대표적이다. 고인이 유명인이 아니라면 직함조차 사라진다. 이름만 남고, 대신 가족관계가 차례로 나..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는 게 부고기사다 한 분야를 오래 맡아 취재하다 보면 ‘이런 사람의 인생은 잘 정리해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려면 취재원에 대한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 문학을 담당하던 시절 필자는 박경리 · 박완서 · 이청준 세 작가의 부고 기사를 썼다. 인생과 작품 세계를 파악하고 작가에 대한 평론까지 대강 읽어 두었는데도 준비 부족을 절감했다.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는 게 부고 기사다.• 영미권 언론은 부고 기사에 각별한 정성을 쏟는 것으로 유명하다. 16세로 미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가 된 엘리너 스미스에 대한 뉴욕타임스 부고 기사는 놀랍게도 그녀가 만 20세였던 1931년에 처음 작성됐다. 스미스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할 경우에 대비해 미리 써 뒀고, 이 글을 80년간 보관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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