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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 추모 사이트를 위한 斷想
사라진 별을 기억하며 시드 배럿
Roger Keith “Syd” Barrett (6 January 1946 – 7 July 2006) 사라진 별을 기억하며 시드 배럿록의 역사에서 Syd Barrett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시작’과 ‘사라짐’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Pink Floyd의 창립 멤버이자, 밴드의 초창기를 이끌었던 영감의 중심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먼저 그 빛에서 멀어진 인물이기도 했다.1946년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난 로저 키스 배럿은 어릴 때부터 예술적 감수성이 깊었다.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며 현실보다 상상을 더 믿었다.1965년, 친구와 밴드를 결성하며 이름을 지었다. 두 명의 블루스 뮤지션 Pink Anderson과 Floyd Council의 이름을 합쳐 Pink Floyd라 부른다.그 이름은 곧 한 시대의 상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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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 추모 사이트를 위한 斷想
죽음을 전하는 방식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닿는다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진 유명인의 비보는 많은 이에게 깊은 흔적을 남겼다.그 소식을 다루는 언론의 역할은 단순한 전달을 넘어선다.죽음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이미 지친 누군가의 마음이 조금 더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연구는 유명인의 자살 보도가 이어진 한 달 동안 자살률이 하루 평균 25.9퍼센트 높아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특히 20대와 30대 여성은 위험이 1.6배 증가한다.한 사람의 극단적 선택이 다른 선택을 이끌어내는 ‘베르테르 효과’는 보도가 지닌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그러나 일부 보도와 SNS 글에서는 여전히 고인의 사적인 영역이 불필요하게 드러나거나 사망의 과정이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설명되곤 한다.감정적 표현으로 사건을 미화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생명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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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일 교수를 기억하는가
정수일(鄭守一), 1934년 11월 12일 ~ 2025년 2월 24일 (향년 90세) 1984년 아랍계 필리핀인 ‘무함마드 깐수’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입국하여 단국대학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같은 대학 사학과 교수로 있던 중,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복역하고 2000년 출소했다.그가 『문명교류학』을 펴냈다. 이 책은 세계적인 문명교류학 연구자 정수일 선생이 평생에 걸쳐 이룩한 학문 연구의 정수이자 결정판이다.육로, 해로, 초원로 등 여러 갈래로 이뤄진 고대 실크로드 교역이 한반도까지 이어져 있음을 입증하고, 아메리카를 포함하는 환지구적 해로 차원의 문명교류를 선구적으로 탐방하고 있다. 즉 저자가 문명교류학 연구에 끼친 중요한 성과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오늘날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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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월러, 마음속 다리를 남긴 작가를 기억하며
로버트 월러, 마음속 다리를 남긴 작가를 기억하며1992년, 한 권의 소설이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그 소설을 쓴 로버트 제임스 월러(Robert James Waller)가 2017년 3월 10일,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암 투병 끝에 찾아온 이별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월러는 아이오와에서 자랐다. 그가 걸어온 길과 그의 작품 속 배경은 겹쳐 있다. 작은 마을, 넓은 평야, 그리고 시간 속에 잊힐 뻔한 목조 다리들. 그는 노던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경영학과 경제학, 응용수학을 가르쳤고, 1981년부터 1986년까지 경영대학 학장을 맡았다. 평생 숫자와 관리, 논리와 전략 속에서 살았던 학자가, 세상의 가장 인간적인 순간을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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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생에는 이야기가 있고, 가르침이 있다
1000명의 삶, 이야기로 완성시킨 WSJ 부고 전문 기자 제임스 해거티와 일문일답“모든 인생에는 이야기가 있고, 가르침이 있다”—미 언론은 왜 부고 기사에 각별한가.“부고는 단순히 죽음을 알리는 공지가 아니다. 그 사람이 인생에서 무얼 하려 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작은 전기(傳記)다. 명성이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고, 거기엔 크고 작은 가르침이 있다. 이 때문에 대형 언론사들은 부고 기사에 많은 자원을 투입한다. WSJ만 해도 미리 써놓은 부고가 수백 건이고, 뉴욕타임스(NYT)는 아마 수천 건을 쟁여놨을 것이다.”—부고 기사를 쓸 때 무엇이 중요한가.“당사자가 살아 있을 때 연락해 진짜 궁금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게 예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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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령 비전향 장기수 신현칠 선생을 보내며
신현칠 선생 약력 • 1917년 서울 출생. • 20세쯤에 마르크스주의에 입문하고, 1938년 일본 동경 유학. • 이 무렵 신건(申建)이라는 필명으로 ‘조선소설대표작집’ 출간. • 1942년 일본 치안유지법으로 피검되어 1년간 구금. • 해방공간에서 경제잡지 ‘조선경제’ 발간에 참가. • 남로당에 참가해 ‘국제평론’, ‘조선산업노동조사시보’ 등 당 외곽기관 잡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 • 전쟁 후 북에서 문화선정성에 소속했으며, ‘자강도민인보’ 논설기자로도 잠시 있었음. • 남파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 1962년 봄 10년 형기를 마치고 석방. • 그러나 사회안전법이 제정되면서 1975년에 다시 투옥되고 1988년 이 법이 폐지되면서 72세에 비전향으로 출옥. • 석방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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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마저 재미없다면, 죽는 데 무슨 낙이 있을까?
웨스 앤더슨의 기이한 가족영화 『로얄 테넌바움』(2001) 마지막 장면에서, 심장발작으로 세상을 떠난 로얄 테넌바움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침몰 직전의 전함에서 가족을 구출하려다 비극적으로 전사하다, 로얄 테넌바움(1932~2001).”시대로 보나 그의 성정으로 보나 말이 안 되는 문구다. 콩가루 가족이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 말처럼 그의 유언을 쿨하게 들어준 것이다.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그 거짓말은 그의 허영심과 가족을 꾸리는 일에 대한 생전의 실패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적절한 부고다.월스트리트저널 부고 담당기자가 쓴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는 자신의 부고를 직접 써보라고 제안한다. 물론 로얄 테넌바움처럼 진솔한 거짓말을 쓰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저자는 “인생 최대의 실수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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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성, 아이디어 많지만 남 받쳐주던 사람…욕심없어 더 존경했던 선배
인연의 깊이를 따질 수는 없어요. 거기엔 각자의 진심이 녹아있기 때문이에요. 특히 1호 개그맨 전유성의 소천은 연예계를 넘어온 국민이 애도하는 분위기여서 동료 개그맨들은 각자의 인연으로 고인을 추모하고 친분을 말하고 있어요. 그러다 문득 한국방송(KBS) 카메라에 기록된 최양락의 울먹이는 인터뷰를 보게 됐어요. “전유성이 아니었으면 개그맨도 될 수 없었고 아내 팽현숙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인생을 통틀어 가장 고마운 은인입니다.”1. 80년대 어느 날이었어요. 자전거포 앞에서 멈춰 선 전유성은 개그맨 초년생 최양락에게 자전거를 2대 사오라고 했어요. 영문을 몰라 약간 망설였지만, 최양락은 가진 돈을 다 털어 중고 자전거를 샀고 둘은 곧바로 페달을 밟아 갑자기 여행을 떠났어요. 가진 돈은 없었지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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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숫자가 사라지는 시간, 위안부 할머니 부고기사의 성찰
생존 숫자가 사라지는 시간, 위안부 할머니 부고기사의 성찰2025년, 정부에 공식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240명 중 단 6명만 살아 계신다. 김양주 할머니가 2022년 5월 세상을 떠난 뒤, 길원옥 할머니(2025년 2월), 이옥선 할머니(2025년 5월) 등 몇몇 생존자가 연이어 세상을 떠나면서 생존자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신문은 오래전부터 부고기사 말미에 남은 생존자 수를 기록했다. 단순한 숫자 같지만, 그것은 살아 있는 증언자와 역사적 흔적이 점점 사라져가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하게 하는 상징이었다.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등 4개 신문이 1996년부터 2021년까지 보도한 위안부 부고기사 307건을 분석한 결과, 70%가 생존자 수를 명시했고, 83.7%가 망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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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 추모 사이트를 위한 斷想
백기완, 한 시대의 목소리가 잠들다
백기완(白基琓), 1932년 1월 24일~2021년 2월 15일 2021년 2월 15일, 한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백기완 선생이 향년 88세로 영면했다. 1933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나 해방 뒤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내려온 그는 분단의 현실을 일찍이 체험했고, 그것이 그의 일생을 결정지었다.그의 삶은 한마디로 ‘저항의 생애’였다. 1960년대부터 반독재·민주화·노동·통일운동의 현장마다 그가 있었다. 1974년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투옥된 이후에도 그는 침묵하지 않았다. 그의 시 「묏비나리」는 훗날 「임을 위한 행진곡」의 모태가 되었고, 그의 말과 글은 거리와 광장에서 사람들의 노래가 되었다.“그날이 오면 삼천리 강산에 봄빛이 온통 넘쳐 흐르고 그날이 오면 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