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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외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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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혼자 먼저 가지 말자. 우리 함께 오래오래 남아 자연사하자 우리는 모두 자살 생존자이다자신이 자신을 놓을 때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영생을 얻는 길은 자살뿐이다. 자고 일어나면 듣는 수많은 자살 소식, 하지만 그 많은 자살 중 진정한 자살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자살을 가장한 사회적 타살이다. 자신을 놓으려는 행위가 아닌 타인이나 다른 이유가 나를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었다. 수많은 자살은 진정한 의미의 자살이 아니다.자연이 인간에게 선물한 온갖 선물 중에서 적절한 시기에 죽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는 것을, 각자는 무엇보다도 자기 영혼의 약으로서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더구나 그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선물은 자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이라고 할지라도 결코 만능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은 설사 스스로 자살하기를 바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
이땅의 메마른 사상 지평 넓힌 전환시대의 지식인, 리영희 리영희(李泳禧), 1929년 12월 2일~2010년 12월 5일리영희(81). 5일 타계한 그는 한국 민주화운동사에서 이름 석자로 통하는 몇 안 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기자·교수·사회운동가 등 여러 직함이 있지만 ‘지식인’이란 호칭이 어울리는 삶을 살았다.1970∼80년대는 그의 시대이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을 필두로 대한민국의 산업화가 속도를 내던 시절, 대한민국의 다른 한 축을 이루는 민주화운동 진영에 리영희가 있었다. 기자 출신의 대학 교수였고, 가진 것은 펜밖에 없었지만, ‘약한 펜’으로 군사독재의 ‘강한 벽’을 허무는 데 앞장섰다. 네 번의 해직, 세 번의 투옥을 겪었다. 고통이었지만 영광이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우리 현대사에 그가 기록해 놓은 공적으로 평가된다.한국 현대사의 명암고인의..
고양 금정굴 사건 진상규명 시작… 마임순 전 유족회장 별세 마임순, ~ 2025년 9월 16일, 향년 73세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최소 153명이 북한에 부역한 혐의자 및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집단 총살당한 고양 ‘금정굴 사건’. 1990년 진상규명 운동을 시작해 2007년 정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로부터 이 사건을 ‘국가의 불법적 폭력’으로 인정받는 데 앞장선 마임순 전 고양금정굴유족회장이 지난 16일 오전 10시 10분께 일산백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18일 전했다. 향년 78세.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난 고인의 시댁(남편의 가족)은 1950년 한국전쟁 와중에 남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삼촌, 큰형, 작은형 등 5명이 경찰에 끌려갔다가 금정굴에서 희생당했다. 남편의 작은아버지가 월북했다는 게 이유였다. 가족들은 연좌제 그늘에서 숨..
韓 당구 산증인, 이제 역사로… 김기제 빌리어즈 발행인 타계 김기제, ~ 2025년 9월 21일 (향년 90세) 당구계의 또 하나의 별이 졌다. 한국 당구의 산증인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이 21일 새벽 3시 15분에 타계했다. 향년 90세.고인은 1935년 경남 창원시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일간스포츠, 주부생활, 학원사(농원), 영화세계 등 스포츠·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1981년 팔복원을 설립한 고인은 국내 최초로 월간 자동차와 월간 주유소, 월간 빌리어즈(월간당구)를 창간해 자동차 및 당구 문화 창달에 기여했다.특히, 1986년에 빌리어즈를 창간한 고인은 40여 년 동안 국내에서 당구를 스포츠로 격상시키기 위해 법률과 제도적 장치를 정비하고, ‘미성년자 당구장 출입금지’ 위헌 판결(1993)과 국내 최초 아마추어 전국당구투어 개최(1993..
주머니에 단돈 5천원…법정 안팎의 의인 백기완 - 한승헌 백기완(白基琓), 1932년 1월 24일~2021년 2월 15일추모글 _ 한승헌 변호사21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열린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삼우제에서 유족들이 절을 하고 있다.고인이 되신 백기완 선생이 겪은 수난 내지 박해엔 법정이라는,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특수 공간을 빼놓을 수 없다. 따라서 변호인인 나는 증언자의 소임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할 때가 있다.박정희의 폭주가 끝날 줄 모르자 대학가 반정부 시위가 격화됐고, 1973년 12월엔 마침내 함석헌·윤보선 등 지도급 인사를 망라한 ‘개헌청원운동본부’가 장준하, 백기완의 주도 아래 ‘유신헌법 폐지 100만 인 서명운동’에 돌입했다.박 정권이 최악의 위기를 벗어나려는 대증요법으로 긴급히 내놓은 조치가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였다. ..
부고를 써라, 인생이 달라진다 – 워런 버핏의 조언 부고는 죽음을 기록하는 글이 아니라,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다.‘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도 부고를 삶의 나침반으로 삼았다. 그는 “사업과 인생에서 큰 실수를 피하려면 자신의 부고 기사를 미리 써보라”라고 조언했다. 미리 부고를 써본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가 드러난다. 버핏은 “그 부고에 맞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찾아내면 된다.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라고 덧붙였다.버핏이 강조한 메시지는 단순하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의 선택이 달라진다. 돈을 모으는 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의 문제다. 그는 “친절한데 친구가 없이 죽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돈은 많아도 친구 없이 생을 마친 경우는 수없이 보아왔다고 했다. 돈보다 인간관계, 재산..
고양금정굴 학살사건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 과거사 - 고양 금정굴 사건 1993년 9월 25일 오후 2시경 경기 고양시 탄현동 고봉산 기슭에서 금정굴양민희생자유족회와 진상규명위원회 회원, 고 백기완 선생, 제정구 국회의원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43주기(1회) 금정굴양민희생자위령제가 열렸다.위령제에 참석한 유족들은 “1950년 9·28수복 후 조직된 치안대와 경찰, 그에 더해 인민군들에게 가족을 희생당한 일부 주민이 합세해 인민군 점령 기간의 좌익 활동자와 부역자 및 그들의 가족들을 떼죽음시켰다”며 “이들 희생자의 주검은 대부분 이곳 금정굴에 묻혔다”고 증언했다. 금정굴은 일제 말기에 금광 개발을 위해 50m 깊이로 뚫어놓고 방치한 굴인데 당시에는 흙으로 입구가 메워져 움푹 팬 구덩이만 남아 있었다. 첫 위령제가 열리고 2년 뒤인 199..
빨갱이 낙인 무서워 아무도 유해 근처에 안가려 해, 유족회장 마임순씨 2011년 9월 24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설문동의 봉안시설 청아공원에 들어선 마임순(64) 고양금정굴유족회 회장은 흐르는 눈물을 가누지 못했다. 가슴속에서는 ‘그동안 헛고생한 것은 아니었다’는 회한이 밀려왔다. 서울대 의과대학 창고에 16년간 보관됐던 고양 금정굴 사건 희생자의 유해는 이날 청아공원에 안치됐다. 마 회장은 “이제야 원점으로 돌아왔다”라고 말했다.16년 전인 1995년 가을. 당시 유족이 100만 원씩 각출한 발굴비와 시민단체가 모금한 성금으로 일산서구 탄현동 황룡산 자락의 금정굴에서 유해 발굴이 시작됐다. 발굴 작업은 예상과 달리 수월했다. 주민들은 희생자가 묻힌 곳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빨갱이’란 낙인이 두려워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뒤 45년 동안 아무도 근처에 가지 않..
당구를 음지에서 양지로… 빌리어즈 발행인 김기제씨 별세 김기제, ~ 2025년 9월 21일 (향년 90세) 1987년부터 당구 잡지를 발행하며 당구가 스포츠 종목으로 인정받는 데 공헌한 김기제 빌리어즈 발행인이 21일 오전 3시 15분께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90세.1935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일간스포츠, 주부생활 등의 기자로 일하다 1981년 군사 안보 전문 출판사 팔복원을 설립했다. 다른 한편 잡지에 관심을 두고 ‘월간 자동차’와 ‘월간 주유소’를 발행했다.지인 중 한 명이 “빌딩마다 당구장이 있는데 당구 잡지가 없다”라고 권한 것을 계기로 1987년 2월 ‘월간 당구’ (현 빌리어즈) 창간호를 펴냈다. 당시 당구 관련 법정단체는 보건사회부 산하에 등록된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가 유일했다. 2020년 빌리..
장산곶매 같았던 백기완 선생의 민주 · 통일 한평생 백기완(白基琓), 1932년 1월 24일~2021년 2월 15일 황해도 장산곶 마을에 깃든 매 한 마리. 약한 동물들 괴롭히지 않고, 한해 딱 두 번 자기 둥지 부수고 대륙으로 사냥 나가던 장수매. 어느 날 대륙에서 거대한 독수리가 쳐들어와 마을을 쑥밭으로 만들자 장산곶매 날아올라 피투성이 되도록 싸웠다. 독수리를 물리치고 낙락장송 위에 앉은 장산곶매. 이번엔 큰 구렁이가 매를 노리고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소리치며 기진맥진한 매를 깨우려 했다.백기완 선생의 삶에는 동시대를 거친 누구나 마찬가지로 우리 현대사가 응축돼 있다. 황해도가 고향인 선생은 해방 뒤 서울로 내려왔다가 남북이 갈리는 바람에 이산의 아픔을 겪었다. 식민통치와 전쟁으로 얼룩진 유소년기에는 마땅한 학교 교육도 받지..
소리없이 사그라지는 역사의 증인에게 우리 언론은 너무 소홀하다 10년이 지난 칼럼이라 현실과는 차이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논하는 맥락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종이신문의 위세가 무너진 시대에 1면, 2면의 배치가 더 이상 중요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오늘의 신문 부고란은 ‘한국식 죽음’을 나열하는 형식에 머물러 있다. 고인의 삶은 사라지고, 기자의 이름조차 없는 부고기사만 남았다. 제 역할을 잃은 지면이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 이제는 부고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고인을 중심에 세우는 새로운 부고 사이트가 필요하다. “영국 신문의 지면을 한국에 수입할 수 있다면?” 이 질문에 개인적으로 답을 붙인다면 두 개의 지면은 한국에 가져오고 싶다. 영국 신문의 여론면과 부..
‘진보정치’ 꿈 접고 떠난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무엇이 젊은 그를 좌절케 했나 박은지(朴恩智), 1979년 1월 23일 ~ 2014년 3월 8일 “한 해 동안 아이는 키가 9.4cm 컸고, 방과 후 학교 어딘가에서 수업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가방 한 번, 실내화 주머니를 두 번 잃어버렸다 다시 찾았고, 꿈을 기관사에서 딱지장사로 바꿨다…”고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35)가 지난달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아이가 1학년을 무사히 마쳤다”로 시작하는 글이다.‘싱글맘’으로 홀로 아들을 키워오던 그는 사랑하는 아들을 남긴 채 지난 8일 오전 서울 사당동 자택에서 목을 매 숨졌다. 그의 아들은 이제 겨우 아홉 살. 자신 역시 서른다섯 살에 불과했던 젊은 진보 정치인은 예고도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났다.경찰 조사 결과 박 부대표는 우울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세상..
아이디어의 계급사회 모든 아이디어가 같은 대우를 받지는 않는다. 누구의 주말 프로젝트는 뉴스가 되고, 누구의 앱은 다운로드된다. 같은 아이디어라도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관심이 달라진다.아이디어에도 계급이 있다. 유명인의 아이디어는 태생부터 주목받지만, 무명인의 아이디어는 아무리 좋아도 묻힌다. AI가 코딩을 민주화했지만, 관심은 여전히 불평등하다.AI 덕분에 누구나 앱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코딩을 몰라도, 디자인을 못해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된다. 창작의 문턱은 낮아졌지만, 모든 창작물이 같은 주목을 받는 것은 아니다. 유명인의 앱은 기사거리가 되지만, 똑같은 기능을 가진 무명의 앱은 사라진다. 창작은 민주화되었지만, 관심은 여전히 소수의 몫이다. 이것이 AI 시대의 새로운 불평등일지도 모른다.성공한 사람의 사이..
박남철은 많은 사람에게 골치 아픈 인간이었으나, 재능은 있었다 박남철(朴南喆), 1953년 11월 23일 ~ 2014년 12월 6일 문학에서, 한 작가를 후대의 역사는 영향력으로 평가하고, 당대의 비평은 재능으로 평가한다. 박남철은 많은 사람에게 골치 아픈 인간이었으나, 재능은 있었다. 여러 사람이 그의 부고에 날 괴롭힐 일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과 안쓰러움이 교차했을 것이다.-황현산 박남철 시인, 영면에 들다박남철(朴南喆), 1953년 11월 23일 ~ 2014년 12월 6일 박남철 시인, 영면에 들다—문계봉 시인한 시대를 다소 거칠고 위악적인 모습으로(친한 지인은 격정적이라고 표현하겠지만...) 통과해 온 시인이maggot.prhouse.net
나를 키운 건 8할이 두려움 -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대한민국의 1세대 철학교사. 등 대중을 위한 철학책을 60권 남짓 쓴 작가. 2033년 1월 31일 새벽, 서울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 향년 64살. 생전에 안광복은 자기 인생을 도스토옙스키에 견주곤 했다. 도스토옙스키는 평생 빚에 쫓겼다. 별처럼 많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은 생계에 대한 절박함이 빚어낸 결과였다. 안광복의 집안은 한국전쟁 때 월남한 실향민이었다.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살아남아야 했던 부모 세대의 비장함은 그의 뇌리에 DNA처럼 박혀 있었다. 어린 시절, 그의 집은 악다구니로 들끓던 시장 한복판에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돈을 놓고 벌이는 세상의 비정함에 일찍 눈떴다. 청소년 시기에 그는 ‘이중(二重)의 콤플렉스’에 빠져들었다.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영혼의 한쪽을 짓눌렀다면, ..
죽음을 기억하는 새로운 방식, 부고사이트의 필요성 누군가의 부고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누구를 떠올리는가. 정작 세상을 떠난 사람의 얼굴이나 삶보다 남겨진 유족의 이름과 직함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고인은 ‘누구의 아버지’, ‘누구의 장인’ 정도로만 언급되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유족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이다. 그래서 부고를 읽다 보면 정작 “도대체 누가 세상을 떠난 거냐?”라는 물음이 저절로 나온다. “정승 개 죽은 데는 문상을 가도, 정승 죽은 데는 문상을 안 간다”는 말이 있다. 죽음을 기리는 형식이 얼마나 기묘하게 뒤틀려 있는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부고 역시 망자를 위한 글이 아니라 산 사람을 위한 도구로 기능한다. 이런 구조에서 망자의 신분은 자식이나 유족의 지위에 의해 결정된다. 장례식장은 애도의 공간이라기보다 관계를 확인하고 체면을 ..
스웨덴, 부고광고 詩에도 저작권료 지급 제도 마련 [스웨덴] 신문에 부고광고를 할 때 사용되는 詩에 대한 저작권료도 저작자에게 돌아갈 수 있는 제도 마련—박은정 스웨덴에서는 詩를 이용하여 가족, 친지 등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부고광고를 전하는 것이 오랜 문화로 정착되어 있음. 그러나 저작물 이용에 대한 저작권료는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고 이 부분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스웨덴장례식협회와 스웨덴문학저작권자협회는 1년간의 협의를 통해 저작권료를 저작자에게 돌아갈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함.◉ 스웨덴 부고광고• 1910년대부터 스웨덴에서는 친인척 등 부고를 전할 때, 그림과 함께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을 담은 詩를 삽입하여 신문에 알리기 시작함. 이런 부고광고가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었고, 신문지면으로 시작된 부고광고는 2007년부터는 온라인상에도 (fam..
제임스 본드 로고 만든 그래픽 디자이너 조 카로프 타계 조 카로프(Joe Caroff), 1921년 8월 18일 ~ 2025년 8월 17일 1962년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닥터 노의 로고 제작을 의뢰받았을 때, 그래픽 디자이너 조 카로프는 007의 마지막 숫자 줄기가 월터 PPK 권총의 손잡이와 닮았다는 사실을 알아챘다.그는 비밀 요원의 번호와 무기를 하나의 휘장으로 결합했다. 구불거리는 기울임은 화려함과 위험을 동시에 전했다. 처음에는 회사 레터헤드에 쓰일 디자인으로 300달러를 받았지만, 로고는 존 배리의 주제곡처럼 즉시 알아볼 수 있는 상징이 되었다.카로프는 이후 로고가 재작업하는 과정을 불만스럽게 여겼다. “내 자존심이 상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만든 것은 내가 한 것만큼 좋아 보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그는 본드 로고에서 보여준 간결함을 ..
내 부고, 내가 직접 쓰자…인생은 이야기가 된다 올 여름 휴가 땐 내 삶의 마지막을 상상하며 ‘나의 부고’ 초안을 써보자.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의 저자 제임스 알(R). 해거티는 나의 부고는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 - 제임스 해거티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 서양화가 박수근이 남긴 묘비명이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우물쭈물 살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묘비명은 재치 있고 익살스러운 문구로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린다. 묘비명 얘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자신의 묘비엔 뭐라고 쓸지 장난스럽게 얘기를 나눈다. 그런데 그렇게 묘비명을 간단하게 생각해 보는 것을 넘어 자신의 부고를 자신이 직접 당장 써보라고 권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를 쓴 제임스 알..
쿠바의 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90세의 나이로 별세 피델 알레한드로 카스트로 루스(Fidel Alejandro Castro Ruz), 1926년 8월 13일 ~ 2016년 11월 25일 사령관은 바티스타를 타도하고 공산주의 국가를 수립했으며 수많은 미국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았다.쿠바는 피델 카스트로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9일간의 국가 애도를 선언했다. 피델 카스트로의 90세의 나이로 사망은 하바나와 마이애미에서 감동적인 장면, 세계 지도자의 추모와 반성을 촉발시켰고, 섬을 불확실한 시대로 이끌었다.2년 전 워싱턴과 하바나 간의 외교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거래를 중개한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1961년 단절된 이후 처음으로 조의를 표하며 미국의 생각과 기도가 쿠바 국민과 함께 한다고 말했다.“우리는 이 순간이 쿠바와 미국의 쿠바인을 강력한 감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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